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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 외전-19화 (252/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외전 19.

케이블카 문이 열리자마자 성큼성큼 앞질러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헌터 등록증을 본 직원이 놀란 얼굴을 하긴 했으나 사진을 같이 찍어 주고 큰 소란 없이 던전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저번에 성산하와 갔던 길을 따라갔다. 가는 길목에 희귀하고 특별한 재료들이 널려 있었지만 지금은 그다지 채집할 기분이 들지 않아 묵묵히 워프를 향해 걸었다.

주호현의 정원에 도착해 구름이를 땅에 내려놓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전과 같이 아름다운 광경, 이 넓고 고요한 정원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주호현을 기다리며 연못 옆 기다란 평상에 드러누웠다. 높고 푸른 하늘을 보자 울렁이던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빨리 와라. 멍청아.”

기분이야 어떻든 성산하를 보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았다.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 몸을 일으키자 구름이를 품에 안고 걸어오는 류수윤과 주호현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주호현이 이쪽으로 서둘러 달려왔다.

“의진아!!”

“어. 왔냐?”

“미안, 기다렸지. 주벤 할아버지와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

“별로 오래 안 기다렸어. ……여기서 쉬니까 편하기도 했고.”

류수윤이 어디선가 마실 것을 가져다줬다. 찰랑거리는 액체의 색이 시시각각 바뀌는 이상한 음료였다. 이걸 마셔도 되는 건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데 류수윤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혼자네요. …의진 씨 기분도 별로 안 좋은 것 같은데 무슨 일 있나요?”

“나? 아닌데. 멀쩡한데?”

“그럼 다행이고요.”

“…….”

다정한 얼굴로 미소 짓는 류수윤을 보다 자리를 고쳐 앉으며 입을 열었다.

“근데 있잖아, 내 친구 얘긴데…….”

***

“나라도 기분이 좋진 않을 것 같아. 하지만…….”

이야기를 다 들은 주호현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내 기분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주호현 뒤에서 류수윤이 뻔뻔한 표정으로 말을 가로챘다.

“바람이네요.”

“응…?”

“뭐라고? 야, 무슨…….”

“연인 사이를 규정 짓는 것은 두 가지예요. 서로의 마음, 그리고 외부의 시선. 오해받게 행동했으면 그것 역시 바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남들이 우리 관계를 부정하게 놔둬선 안 되죠.”

“수, 수윤아…….”

“호현아, 가령 네가 어제처럼 나를 피해서 사달멜리크가 우리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어떻겠어. 그래서 네게 대쉬라도 하면 어떻게 해?”

“어제 그 얘기는 더 안 하기로 했잖아.”

“결국 바람이야.”

“……그런가.”

온화한 얼굴로 사이비 같은 소리를 하는 류수윤은 역시 제정신이 아니었다. 질린 표정으로 듣다 결국 못 참겠어서 버럭 소리 질렀다.

“뭐가 그런가……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혹시 정말 바람이더라도 뭐 어때요. 몰래 죽여 버리세요. 혹시 세뇌 포션 같은 것도 제작할 수 있나요? 산하 씨에게 먹이면 좋을 텐데……. 사랑의 묘약 같은 거 말이에요.”

“의진이 너는 그럴 만한 힘이 있으니까. 몰래 처리하는 것은 일도 아닐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또라이 새끼들. 너희 정말 인간성이 사라졌구나.”

“하하, 그런가요?”

“미안…. 조금 무뎌진 느낌이 들긴 해.”

“영생을 버텨야 하는 몸이니까.”

류수윤은 애초에 정상이 아닌 데다 주호현은 그런 류수윤밖에 모르는 바보라는 것을 잊은 내 잘못이지.

에휴. 둘은 연애를 오래 했으니 뭐라도 알지 않을까 했는데.

한숨을 쉬며 원래 내가 찾아온 목적을 상기해 냈다.

“그건 됐고, ■■■■■에 대해서 아는 것 좀 있어?”

내 물음에 멈칫한 둘이 시선을 교환했다. 주호현이 조금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그건 갑자기 왜, 의진아? 혹시 바깥에 놈의 흔적이라도 남았다거나…….”

“아니야. 그런 건 아니고 태제헌 때문에.”

“태제헌이라면…… 그 사람은 죽었잖아.”

“어엉. 죽긴 했는데…….”

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이자 주호현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의진아, 너 설마 그 사람을…….”

“사실 완전히 죽기 전에 이공간에 넣어 놨어. ……살려 보려고.”

뭐라 말을 잇지 못하는 주호현 대신 류수윤이 물었다.

“정확히 뭐가 어떻게 된 건데요?”

“가사 상태에서 깨울 수 있는 방법은 뭐든 써 봤어. 그런데 전혀 들지 않아. 심지어 부활의 포션까지 만들었는데 그것도 소용이 없고. 태제헌의 상태창에 ■■■■■의 저주와 비슷한 글자만 뜨더라. 아무래도 놈의 힘 때문에 그런 것 같단 말이지.”

“이 땅에서 ■■■■■의 힘은 모두 거둬진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혹시 볼 수 있을까요?”

“태제헌을? 여기서 선산이 열리려나?”

주호현의 정원도 명목상 던전 중 하나긴 하니 될 것 같기도 하고…….

반신반의하며 스킬을 사용하니 문이 생겨났다.

“미친, 된다. 이리 들어와!”

조금 상기된 얼굴로 발을 들인 주호현이 이공간 내부를 둘러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의진아. 너 정말 대단하구나…….”

“당연하지. 난 세계 유일의 S급 포션 마스터라고.”

주호현과 류수윤이 들어올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둘 다 문제없이 이공간으로 들어왔다.

“메에에에!!”

몇 번 와 봤다고 선배 태가 나는 구름이가 저만 따라오라는 듯 앞장섰다.

“그래서 그 메인 퀘스트는 어쩌기로 했나요?”

“그거? 그냥 못 본 척하려고 했는데 포션과 관련된 이상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일단 신화급 포션 7개는 다 찾아내야지.”

“포션은 좋지만 이름이나 등급으로 보아 성좌와 관련이 있어 보이던데. 네가 괜한 일에 휘말릴까 봐 걱정이 돼.”

나 역시 멸망 퀘스트를 겪으며 고등급 퀘스트라고 마냥 좋은 것은 아니란 사실을 톡톡히 배웠기에 내심 걱정 중이긴 했다.

“아직은 아무 단서도 없으니까. 어차피 할 수 있는 건 없어. 혹시 위에 무슨 일 생기면 말이나 해 줘.”

“그럴게.”

“저기, 태제헌이다.”

호숫가에 다다라 한곳에만 쌓여 있는 꽃들을 털어 내자 조용히 잠든 태제헌의 모습이 드러났다. 성좌들에겐 그것의 힘이 느껴지는지 주호현과 류수윤의 얼굴이 동시에 어두워졌다.

“이건……. 확실히 ■■■■■의 힘이네요. 몸 전체에서 느껴져요.”

“그치. 상태창도 아예 잠식당했다니까. 뭐 다른 방법 없을까?”

류수윤과 주호현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조디악의 힘으로 정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전에도 그랬고…….”

“모두 모일 필요도 없어. 실체가 없으니 그렇게까지 까다롭진 않을 거야. 한 성좌의 것만으로도 충분할걸?”

“그럼 의진이에게 내 땅의 것을 주면 되겠다. ……그런데 어느 정도로 줘야 할까? ■■■■■의 힘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 몰라서 고민이네.”

“고민할 게 뭐 있어. 의진 씨 헛걸음 안 하게 종류별로 다 드리면 되지.”

“…그렇네. 고마워. 수윤아.”

“고맙긴. 의진 씨 일이라면 네 일이나 다름없는데.”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놈들 뒤에서 헛구역질을 했다. 구름이에게 물어 버리라고 손짓하려다 내게 고개를 돌리는 주호현과 눈이 마주쳐 서둘러 손을 거뒀다.

“이 사람의 상태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네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여러 개 알고 있어. 나가서 줄게. 그걸 이용해 봐.”

“고맙다. 역시 네게 물어보면 답이 나올 줄 알았어!!”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주호현이 환히 웃었다.

마지막으로 오두막까지 구경시켜 주고 선산을 나왔다. 다시 주호현의 정원으로 돌아와 선산의 문을 닫는데 마지막으로 나온 주호현이 화들짝 놀라며 제 손을 내려다봤다.

“……이게 뭐지.”

주호현의 중얼거림에 나와 류수윤 모두 놈에게 다가가 손을 내려다봤다. 주호현의 손에 황금빛 열쇠가 놓여 있었다.

“열쇠?”

“나오니까 갑자기 이게 생겼어.”

처음 보는 열쇠였지만 이상하게 보자마자 어떤 것일지 느낌이 왔다.

“써 봐.”

“써 보라니, 어떻게?”

“글쎄? 허공에 넣고 돌려 보든가.”

주호현이 허공에 열쇠를 꽂고 돌리는 척하자 존나 익숙한 황금빛 문이 생겨났다. 역시나, 내 약산으로 들어가는 아이템이었다.

놀라는 주호현 옆에서 머리를 긁적였다.

“뭐지. 이런 건 처음인데. 쌍둥이라서 그런가?”

“미, 미안. 여기 돌려줄게.”

“미안은 무슨. 네가 꺼낸 거니까 네 거지. 뭐, 자주 볼 수 있으니 좋겠네. 마음대로 들어와.”

손을 까딱이며 말하곤 시선을 돌리는데 주호현 옆에서 묘하게 기분 나쁜 눈으로 열쇠를 바라보는 류수윤이 보였다. 그 표정에 의아함을 느끼는데 잠시 후 류수윤이 고개를 가까이해 주호현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곧 주호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다가와 열쇠를 내밀었다. 눈살을 찌푸리고 류수윤을 바라봤다.

“뭐야, 너 설마 주호현한테 뭐라고 했냐? 받지 말라고?”

“설마요. 좋은 아이템인 만큼 그 쓸모에 대해 대화를 나눴을 뿐인걸요.”

“언제든 널 만나러 갈 수 있는 열쇠라니 정말 기쁘지만…….”

“말로만 기쁘다 하지 말고 그냥 가져가라고.”

“나보다 의진이 널 더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 인간이 아닌 나보다 네게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누굴 말하는지 알아 입술을 삐죽였다.

“……별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만 주호현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거면 그 좆같은 해외 출장을 가도 만날 수 있는 거잖아?

씨익 웃으며 다시 주호현에게 열쇠를 받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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