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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파업 선언 외전-21화 (254/257)

엑스트라 파업 선언 외전 21.

결국 욕실에서 씻다가 두 번이나 더 하고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침대에 늘어졌다. 자기 전까진 없던 성산하가 옆에 누워 있다는 게 기분 좋아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놈을 꽉 껴안았다. 노곤노곤한 기분이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우리 관계 밝힐까?”

뜬금없는 물음에 고개를 들어 성산하를 바라봤다. 잘생긴 얼굴이 날 향해 있었다.

“기사 내보내게?”

“어떤 것으로든.”

“응. 좋아.”

단번에 승낙하자 성산하가 모호한 웃음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정말 괜찮겠어? 한번 공개하면 못 물러.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어. 안 놔줄 거야.”

“나는 후회 같은 거 안 해.”

게다가 나도 바라는 일이었고. 사실 아까 열애설을 보고 화가 나 확 질러 버릴까 하다가 성산하를 위해 참은 건데 먼저 물어보다니. 싫을 이유가 없었다.

잠자코 바라보던 성산하가 얼굴을 가까이해 입술을 포갰다. 간지럽고 가벼운 키스에 놈을 둘러 안다 번뜩 스치는 생각에 인벤토리를 열었다.

목뒤로 정교하게 꼬아진 가죽끈을 묶어 주자 열쇠가 길게 늘어져 가슴 위에 닿았다. 입술을 뗀 성산하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열쇠?”

“내 약산에 들어올 수 있는 열쇠야. 주호현이 내 약산에 들어왔었는데 나올 때 보니까 갑자기 열쇠가 생겼다는 거야. 내가 뺏어 온 건 아니고 걔네가 먼저 나한테 반납했어. 이거면 너 외국 가서도 우리 만날 수 있으니까……. 어엇.”

성산하가 나를 꼭 끌어안아 말을 더 이을 수 없었다. 조금 북받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산까지 열어 주다니, 생각보다 더 감동인데.”

“……억만금을 줘도 못 사는 거야.”

“그렇게 비싸? 다 갚으려면 평생 걸리겠다.”

생각보다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괜히 으쓱했다. 좋아하는 걸 확인했으니 이제 한 가지가 더 남았다. 슬쩍 몸을 떼 내며 성산하와 눈을 맞췄다.

“할 말이 하나 더 있는데.”

“무슨?”

***

성산하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말없이 태제헌만 바라봤다. 결국 정적을 참다못한 내가 입을 열려던 순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프라이즈 선물치고는 과한데.”

“…….”

“살리려고?”

성산하가 나를 돌아봤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표정을 읽기 힘든 얼굴에 순간 멈칫했지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살리고 싶어.”

“왜? 아니 그 전에, 이걸 보여 주는 이유가 궁금한데 난. ……어차피 살릴 생각이었던 거 아니야?”

성산하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 말이 맞다. 처음엔 일단 저지르고 어떻게든 해결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렇게 성산하의 얼굴을 마주하자 그게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난, 그러니까 나는….”

“…….”

“성좌가 되기 전에 약산에 넣어 놨는데…….”

말을 고르고 고르다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아 냅다 성산하를 껴안았다. 머리 위에 곤란한 한숨이 내려앉았다.

“미남계는 반칙인데.”

“태제헌 그날 나 때문에, 날 구하다 이렇게 된 거야. 적어도 나를 구하다 죽게 두고 싶진 않았어.”

성산하가 화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선택으로 성산하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몇 번이나 고민하다 결국 어렵게 입술을 뗐다.

“네가 싫다면 안 할게.”

잠시 후 성산하의 두 팔이 나를 마주 안았다. 그제야 긴장이 풀려 성산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성산하가 다정한 손길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의진인 살리고 싶잖아. 근데 내가 싫다면 안 하겠다고? 왜?”

“그야 당연히…….”

널 사랑하니까지 멍청아.

기어 들어가듯 작은 목소리를 들은 성산하가 웃음을 흘리며 내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내가 널 한 번이라도 이길 날이 올지 모르겠다.”

“…….”

“네 뜻대로 해. 강의진.”

“성산하.”

“네 뜻이 내 뜻이야.”

성산하와 함께 오두막으로 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일곱 가지 신화급 포션에 대해 들었을 때는 성산하도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 정도 급의 포션이 여섯 개가 더 있을 거라니. 믿기지 않는군.”

“대단하지? 모두 내가 찾아 주겠어. 신화급 히든 포션이라니, 포션 마스터가 아니면 누가 찾겠어!”

“물론이지. 이렇게 대단한 강의진이 아니라면 누가 찾겠어.”

성산하의 치사에 기분이 좋아 크게 웃었다. 부활의 포션을 빤히 바라보던 성산하가 물었다.

“태제헌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녹스와 폰투스는 사라졌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한 인간이야. 살아 있다는 것을 알면 태제헌에게 다시 돌아갈 위험인물들도 다수고.”

“이젠 도망갈 이공간도 있으니까. 그리고…….”

벌떡 일어나 방 안쪽 서랍 깊숙이 넣어 놨던 것을 들고 왔다. 성산하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걸 어떻게…….”

“어때. 나도 다 생각이 있었다고.”

손에 들린 라이라프스의 목줄을 쥐고 웃었다. 성산하가 한쪽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천랑의 귀속물이라 네가 사용할 순 없을 텐데.”

“걱정 마. 할배…버지한테 명의 이전받았으니까.”

“할아버지가?”

믿기 힘들단 표정에 머리를 긁적였다. 취임식 직후 성훤을 따로 찾아가 나눴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라이라프스의 목줄을 달라고? 속 썩인 녀석 뭐가 이쁘다고 주느냐.

-흥. 다 필요한 데가 있으니까 부탁하는 거잖아…요. 보답은 확실히 해 줄 테니까…요.

-유감이지만 코 묻은 포션으로 꾀어내기엔 내가 너무 늙었다. 돌아가.

안 줄 것처럼 말해 놓고선 성훤은 아무 대가 없이 목줄을 내어 줬다.

‘늙기는 무슨. 전투계라 존나 정정하던데……. 혹시 7가지 전설의 포션 중에 안 늙는 약도 있을까?’

안 늙는 포션이라니. 포션 같은 거 필요 없다고 한 할배도 그 정도면 받지 않고는 못 배길 거다! 감격한 표정을 꼭 보고 말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내가 라이라프스의 목줄과 함께 뭘 받아 왔는지 성산하는 상상도 못 할 거다. 성훤 할배가 무려 외형을 과거나 미래로 바꿀 수 있는 팔찌인 ‘시간의 거울’도 선물로 주기로 했다고! 지금은 빌려 간 사람이 있어서 돌려받으면 전해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인즉 조만간 우리 사나도 볼 수 있단 말이다.

혼자 웃던 날 보던 성산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라프스의 목줄이라면 적어도, 최소한의 대비는 할 수 있겠군.”

***

성좌의 힘이 담긴 액기스를 사용하니 드디어 ■■■■■의 힘이 거두어지고 태제헌의 상태창이 제대로 띄워졌다.

<태제헌 - 헌터>

-속성 : 어둠

-상태 : 심정지

마지막 숨을 머금은 상태로 시간이 멎어 있다.

-사인 : 필멸의 저주, 복부관통상

-치사율 : 100%

<치료법>

►부활의 포션(히든)

정원에서 놀고 있던 룬과 루트를 부르자 둘이 내게로 달려왔다. 구름이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폴짝폴짝 뛰어왔다. 선산에서 나와 셋을 모두 태우고 성산하와 함께 서울 외곽의 천랑 수련관으로 향했다.

수련관에 도착해 내리자 넓은 운동장과 뒤로 뻗은 산이 마음에 드는지 룬과 루트가 이리저리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녔다. 너무 멀리 가지 말라 말하고는 다시 성산하와 함께 선산으로 들어갔다.

호숫가에 눕혀진 태제헌 위에 쌓인 꽃을 털어 냈다. 이 짓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포션을 만들며 수십 번을 마주한 태제헌의 잠든 얼굴을 내려보다 목에 목줄을 채웠다. 철컥 하고 잠기는 목줄에 묘한 희열감과 함께 손끝이 저릿했다. 태제헌과는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는 목줄이 투명화되어 사라졌다.

“뭐야, 저절로…….”

“투명화가 디폴트야. 보이게 하는 게 따로 설정해야 하는 거고.”

“씨이. 너 예전엔 나한텐 투명화 가지고 생색 존나 내더니!”

옆에 선 성산하의 다리를 퍽 치고는 눈앞의 상태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상이 판단 불가한 상태입니다. 동의 절차 없이 진행됩니다.

<라이라프스의 목줄>을 <태제헌>에게 사용하시겠습니까?

※주의!

회수 조건을 유의하십시오.

키워드 : 미정

사용 기간 : □□□일

“키워드 태제헌, 기간 50년.”

성산하가 옆에서 휘파람을 불었다.

“50년? 지독하군.”

“……어쩔 수 없잖아.”

눈앞에 뜬 불공정 계약 조건을 모른 체하며 부활의 포션을 꺼냈다. 성산하를 올려다보자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았는지 걱정 어린 눈으로 말했다.

“뒤로 쉴드 펼쳐 놓을 테니까 포션 먹이자마자 안으로 피하고.”

“응.”

“지금이라도 저걸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해. 눈 깜빡이는 찰나에 목숨을 끊어 놓고 싶지만, ……참고 있는 거니까 정리 잘해.”

무슨 마음에서 하는 말인지 알아 성산하를 세게 끌어안았다.

“……고마워.”

“나는 저기에 있을게.”

왼쪽의 숲을 가리킨 성산하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내가 부탁한 거지만 태제헌과 둘만 남자 나도 모르게 긴장해 땀이 나는 손을 꽉 쥐었다 폈다.

포션병을 열어 조심스럽게 태제헌의 입술 사이로 흘려 넣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반응을 기다리는데 잠시 후 밀랍 같던 얼굴에 서서히 생기가 돌더니 감고 있던 눈이 떠졌다. 그리고 눈앞에 번개 같은 섬광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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