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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2)화 (13/145)

012화

“당신 누구야.”

위협적인 목소리가 낮게 울리고, 커다란 손아귀가 금방이라도 다시 목을 옥죄어 올 듯 꿈틀거렸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아, 맞다.’

청연은 혀를 깨물고 싶었다. 너무 놀라서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입 밖으로 뱉어 버렸다.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지.

당황하여 사고가 정지된 와중에 무호는 한 걸음 더 다가오며 청연을 밀어붙였다. 어둠 속에서 붉게 빛나는 눈이 위험한 맹수를 연상시켰다.

“그게… 음….”

“천마신교 사람인가? 누가 보냈지?”

“그게 아니라….”

순간, 무호의 손이 청연의 어깨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가 벽을 내리쳤다. 벽에서 쩌적 금이 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보나 마나 손자국이 남았을 거다.

열다섯 소년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 만큼 엄청난 힘이었다. 제대로 한 대 맞으면 즉사하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대답.”

위험할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일단 생각할 시간이라도 벌어 보자.

“다 설명할게. 할 테니까 여기서 이러지 말고 방으로 올라가자.”

“…….”

저를 바라보는 눈빛에 경계심이 가득했다. 무슨 말을 해도 믿을 것 같지 않은데, 뭐라고 변명하면 좋을까.

“가자, 응? 누가 오기 전에.”

청연은 애원하다시피 하며 벽을 짚고 있는 그의 소맷자락을 살며시 붙잡았다. 그 와중에도 머리는 쉬지 않고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설득한담….’

마지못해 따라오는 무호를 이끌고 계단을 올라 방으로 들어섰다. 그가 지금 마교에 쫓기는 상황이라면 더 이상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을 테다.

경계를 세운 채 방 안을 두리번거리던 무호의 시선이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는 약재로 향했다.

‘음…. 약재?’

그의 눈치를 살살 살피던 청연의 머릿속에 문득 좋은 생각이 반짝하고 떠올랐다.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도나 해 보자.

“사실 나는….”

그러나 그 시도는 시작도 하기 전에 그만두어야 했다. 청연은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너 지금 뭐 하니…. 옷소매는 왜 찢니…. 그걸로 뭐 하려고.’

무호는 제 옷소매를 이로 물어 길게 찢어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청연을 똑똑히 응시하는 눈이 희번덕거렸다.

‘아, 그냥 정신을 잃고 싶다.’

왜 이럴 때는 쓰러지지 않는 건지. 차라리 누군가 머리를 쳐서 기절시켜 줬으면 했다.

넓은 보폭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무호는 청연의 목깃을 쥐더니 침상으로 질질 끌고 갔다.

“왜! 뭐 하려고… 아윽.”

그는 청연의 몸을 침상 위로 내동댕이쳤다. 딱딱한 표면에 부딪힌 허리가 지끈거렸다.

“꼭 그렇게 던져야겠어? 설명해 준다니까… 아니, 손목은 왜 묶는데!”

그는 찢어 낸 소맷자락을 이용해 청연의 손목을 침상 기둥에 꽁꽁 묶어 버렸다.

한순간에 포박되어 맹수에게 산 채로 바쳐진 제물처럼 무력했다. 어차피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런 치밀한 놈.

청연은 그를 노려보고 싶었지만, 저를 내려다보는 날 선 눈빛에 기가 죽어 눈을 깔고 말았다.

중2한테 당하다니, 이건 창피해서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이었다. 물론 묻힐 무덤이라도 있다면 말이다.

“도망 안 갈 테니까 이것만 좀 풀어 주면 안 될까… 요.”

“…….”

“손목이 아파서 그래… 요.”

이렇게 비굴할 수가.

수치심이 두려움보다도 커지려 할 때쯤, 무호는 의자 하나를 끌어와 맞은편에 앉았다. 삐딱한 자세로 앉아 청연을 바라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묻는 말에 답이나 하지.”

“응! 다 말해 줄게!”

이때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자 무호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더 이상 마기를 감추지 않는 그의 주위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청연은 하마터면 헤엑, 소리까지 낼 뻔했다.

“이름.”

“여기 객잔 이름이랑 같아. 청연…. 유청연. 내가 여기 주인이거든.”

“출신.”

“출신이랄 게 뭐가 있어…. 아, 혹시 고향을 묻는 거라면 호북이야.”

그 말에 무호의 눈가가 약간 움찔했다. 청연은 잠시나마 준비해 둔 말을 줄줄 읊기 시작했다.

“너도 호북 출신이잖아. 맞지?”

“…….”

“이름을 어떻게 아냐고 물었지? 너는 어렸을 때라 기억 안 나겠지만 사실 우리 같은 동네 살았거든. 그땐 너도 조그맣고 귀여웠는데. 아무튼 마교에 잡혀갔다는 소문은 들었어. 거기서 도망쳐 나온 거야?”

“…적어도 십 년 전인데 나를 알아본다고.”

무호는 의자를 더욱 가까이 당겨 앉았다. 표정이 복잡미묘했다.

“가진 거 하나 없이 빌어먹던 동네 꼬마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역시 믿지 않는다. 사실 제가 생각하기에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뭐라도 지껄여 봐야지.

“너, 너… 그때 어머니가 아프셔서 매일 약방에 왔잖아. 우리 집이 약방 했거든.”

“…….”

사실 원작에서 천무호의 과거에 대해 주어진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그가 납치당하기 전까지는 호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과 병든 홀어머니 밑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것. 청연은 그 정보를 어떻게든 끼워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 말을 들은 무호는 갑자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얼굴을 쓸어내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무언가를 중얼거리기도 했다.

“약방….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어?”

‘뭐지? 먹혔나?’

청연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물었다.

“나 기억나?”

“얼굴은… 기억 안 나는데.”

“뭐가 기억나는데?”

“약방 아들…. 매번 약재를 공짜로 챙겨 주던…. 그게 진짜 당신이야?”

‘오, 그런 일이 있었어?’

마침 잘 걸렸다 싶어 청연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나야! 기억하는구나! 믿기 힘들겠지만 난 너 보자마자 알아봤어. 너 어렸을 때랑 똑같이 생겼거든. 눈가에 그 흉터만 빼면.”

“…….”

무호는 흉터를 매만지며 곰곰이 생각에 잠긴 듯했다. 아무래도 쐐기를 박아야 할 때인가 싶었다.

“너희 어머니 돌아가셨다는 소문 듣고 뒤늦게 찾아가기까지 했었는데. 넌 이미 잡혀가고 없더라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개소리.”

무뚝뚝한 말투였지만 끝 음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남의 은공을 가로챈 것 같아 죄스럽기는 한데 뭐 어쩌겠나. 일단 살고 봐야지.

한참이나 흉터를 문지르던 무호가 대뜸 물었다.

“호북에 살던 사람이 왜 여기까지 와서 객잔을 하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청연은 다시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 내야 했다.

“어, 나도 아버지 돌아가시고, 약방 문도 닫고 그래서…. 친척이 있는 사천으로 옮겨 왔어. 객잔은 내가 원래부터 관심 있던 사업이라서…. 하하….”

“…….”

여전히 불신 가득한 눈빛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특수한 환경에서 자랐으니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몰랐다. 이제 겨우 열다섯인데.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져 두려움도 조금은 옅어지는 것 같았다.

“이제 이것 좀 풀어 주면 안 돼? 팔 저린데.”

“…….”

풀어 줄 생각 없구나. 그렇다면 비장의 무기를 꺼내자.

“너 배 안 고파?”

뜬금없는 질문에 무호가 고개를 들었다.

“주방에 가서 먹을 것 좀 만들어 줄까?”

“…수작 부리지 마.”

단호한 태도로 말하는 무호였지만, 청연은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찰나를 잡아냈다.

아무리 미래의 천마라도 지금은 성장기의 십 대 남자애다. 한창 많이 먹을 시기에 음식 거절 못 하지.

뼛속까지 한국인인 청연은 밥으로 그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저녁 장사 하고 남은 재료들이 좀 있거든. 숙수는 아니지만 나도 요리는 할 줄 아니까 걱정 마. 뜨끈하게 소면 말아 줄까? 아니면 고기 잔뜩 넣어서 만두 빚어 줄까? 아, 사천에 왔으니까 매운 음식은 어때?”

“…….”

그의 목울대로 침이 꿀꺽 넘어가는 걸 지켜보며 청연은 웃음을 삼켰다.

***

예상은 했지만, 무호는 참 많이도 먹었다. 만두를 쪄 내는 동안 벌써 소면을 세 그릇째 비워 내고 있었다. 청연은 네 번째 그릇을 식탁으로 가져다주었다.

‘대체 얼마나 굶은 거야.’

어둠을 밝히는 등불 아래로 쌓여 가는 빈 그릇들을 보며 청연은 속으로 혀를 찼다. 묶여 있던 손목에는 빨갛게 자국까지 남았건만, 마음속 두려움은 지워 버린 지 오래였다.

꼭 고딩 때 수업 끝나고 컵라면 부수던 내 모습 같잖아.

네 번째 그릇도 단숨에 비워 낸 무호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어색하게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더 먹어도 돼. 원하는 거 다 말해 봐. 힘닿는 데까지 만들어 줄게.”

“…왜.”

의심 가득한 무호의 눈이 청연을 곧게 응시했다.

하긴, 마교의 지하 감옥에 갇혀서 그동안 뭘 먹고 살았을지 눈에 선했다. 음식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들이었겠지. 그가 지내 왔을 열악한 환경을 떠올리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조금 전까지 거짓말을 잘만 늘어놓던 청연은 처음으로 솔직한 속마음을 내뱉었다.

“불쌍해서.”

“뭐?”

“네가 불쌍해서. 어린애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니는 게 보기 딱해서.”

본인은 목숨까지 위협당했던 주제에 무호에게 연민을 내비치고 있었다. 불쌍하다는 말이 불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예쁜 말로 포장하고 싶지 않은 진심이었다.

무호는 조금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무, 물어볼 게 더 있….”

“기다려. 만두 가져올게.”

청연은 그의 말을 자르고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사실 소설을 읽을 때만 해도 별생각 없었다. 악역은 어디에나 있고 악역마다 제각각 사연이 있는 건 당연하니까. 천무호도 그런 악역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걸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청연은 갓 쪄 낸 만두를 꺼냈다. 한입 베어 물자 뜨거운 육즙이 흘러나왔다.

‘음, 역시 못 하는 게 없어. 거짓말도 잘하고 요리도 잘해.’

아무래도 장르를 요리물로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제목은 <천마님의 셰프가 되었습니다> 이런 걸로.

***

‘뭔가 말린 기분인데.’

무호는 낑낑거리며 목욕물을 퍼 나르는 청연을 지켜보았다. 마침 온몸이 근질거렸는데 따뜻한 물에 목욕이라니. 이런 호사는 처음이라 무슨 질문을 하려고 했는지도 까맣게 잊었다.

청연은 이내 옷장에서 옷 한 벌을 꺼내 건네주었다.

“일단은 내 옷 줄게. 좀 작겠지만 불편해도 오늘만 참아. 내일 날 밝으면 새 옷 사다 줄 테니까.”

무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그가 건네는 옷을 받아 들었다.

이건 과연 대가 없는 호의일까. 나중에 훨씬 더 큰 값을 치르게 되지 않을까.

그가 뱉은 말이 사실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여전히 의심스러웠고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모르는 제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술술 읊어 댔을까.

그러면서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저 자신이었다. 의심스러운 남자를 당장 죽이고 떠날 생각은 하지 않고, 그가 쥐여 주는 사탕을 곧이곧대로 받아먹는 미련한 모습이 스스로도 낯설었다.

“걱정하지 마. 돈 안 받아.”

청연은 그의 표정을 읽은 듯 말했다.

“늦었으니까 일단 목욕부터 하고 자자.”

“꺼져.”

“응?”

“옷 벗을 거니까 꺼지라고.”

“…예에, 꺼지라면 꺼지겠습니다. 근데 여기 내 방인데.”

청연은 대충 대답하며 목덜미를 긁적였다. 그는 걸음을 돌려 방을 떠나면서도 생전 처음 듣는 가락의 요상한 노래를 흥얼거렸다.

드디어 홀로 남겨진 무호는 닫힌 방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 하는 인간이야,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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