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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04)화 (105/145)

104화

청연은 착잡한 눈으로 쥐고 있던 단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심문 중 잠깐 혼자 남겨진 틈에. 당신이 나한테 와서 그랬지.”

‘그러게 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지. 고생을 사서 하는구나.’

“맞아. 사실은… 받아들일 수도 있었어.”

그의 손가락이 오래된 검 자루를 만지작거렸다.

“일단은 당신을 스승으로 받들겠다 약속한 뒤에 벗어날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었겠지.”

“…….”

“그런데 그때의 나는 그게 죽기보다 싫었나 봐.”

문파 사람들이 자신을 믿어 줄 거라는 확신도 있었고.

“당신이 그런 말도 했었잖아. 선하게 살아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결국엔 강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거고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한 거라고.”

“…….”

“사실 그건 전제부터 틀렸어. 그 당시에 나는 선하게 살기로 선택한 게 아니었거든. 마가 아닌 정을 선택했을 뿐이지.”

청연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뾰족한 검 끝을 그의 가슴팍에 가져다 댔다.

“정공을 쓴다고 다 선한 게 아니고 마공을 쓴다고 다 악한 게 아니라는 말이야.”

그 증거가 지금 바로 내 뒤에 있잖아.

“악한 건 그냥 당신이었어.”

그리고 당신이 그 죗값을 치렀으면 좋겠어. 말을 끝마친 청연은 그의 가슴을 단검으로 빠르게 찍어 내렸다. 푹 소리와 함께 검날이 깊게 박혔다.

세화의 몸속에 쌓여있던 분노가 한꺼번에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청연은 찌른 곳을 반복해서 찌르며 고통으로 물드는 그의 표정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얼굴에 붉은 핏방울이 잔뜩 튀어도 개의치 않았다.

말을 하지 못해 나오는 거친 신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푹, 푹. 검날은 계속해서 그의 몸에 깊은 상처를 냈다. 청연은 이미 이성의 끈을 놓은 채였다.

그때 뒤에서 나타난 커다란 손이 청연을 저지했다.

“잠깐.”

“왜….”

그제야 정신이 반쯤 돌아온 청연은 얼굴만 살짝 돌려 무호를 바라보았다. 무호가 청연의 손을 살며시 감싸 쥐며 말했다.

“그렇게 하면 너무 쉽게 죽어.”

그는 청연의 손 위로 단검을 겹쳐 잡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날이 살을 가르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무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상대의 목숨을 끊지 않은 채 극한의 고통을 줄 수 있는지.

청연은 그가 자신의 손을 움직이도록 내버려 둔 채 눈앞의 남자를 멍하니 응시했다. 살갗이 찢기는 방향에 따라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속이 메슥거렸다.

세화의 감정을 느껴도, 그를 대신해서 복수를 해도 자신은 결국 그가 아니었다. 코앞에서 갈기갈기 조각나는 몸통을 지켜보고 있자니 뒤늦게 구역감이 올라왔다.

더 이상 보고 있기가 힘들었던 청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단검의 움직임에 따라 몸이 움찔거리며 떨리자 자신을 지그시 내려다보는 무호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윽고 청연의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따뜻한 손이 눈 위를 덮어 잔인한 광경을 보지 못하도록 가려주고 있었다.

“…….”

이유는 모르겠지만, 청연은 문득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무호의 뒤에서 손을 잡고 글을 가르쳐 주던 기억이었다.

두 사람이 쥐고 있던 붓은 날카로운 검이 되었고, 종이가 아닌 사람의 몸을 검붉게 물들이고 있었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게 있었다. 무호가 곁에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는 것 같았다.

***

“조금 더 먹어.”

“먹고 있어. 너도 먹어.”

청연은 젓가락을 움직여 음식을 입 속에 넣었다. 조금 전부터 속이 안 좋았는데 기껏 차려놓은 상을 물릴 수 없어 억지로 먹던 참이었다.

지난번 이곳에서 머물 때와는 달리 정상적인 음식이 차려졌다. 온갖 산해진미가 눈앞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청연은 맛을 느끼기 어려웠다.

고기를 입에 넣은 채 한참 동안 우물거리자 보다 못한 무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그는 앞에 놓인 그릇들을 대충 밀어내고 탁자 위에 걸터앉았다. 그의 손가락이 청연의 턱 부근을 쓸고 지나갔다.

“뭐 하는… 아.”

손가락에 붉게 피가 묻어났다. 얼굴을 닦는다고 닦았는데, 한 방울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죽이지 말 걸 그랬나?”

망설이던 청연은 무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대로 곤륜에 데려갔어야 했을까? 가서 그 사람 얼굴 들이밀고 상황 설명했으면 믿어 줬을까?”

“아니.”

무호의 단호한 대답에 청연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 검. 신물 말이야. 아직 여기 있는 거 맞지? 너는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지?”

“…….”

“그거 나한테 줄 수 있어?”

“안 돼.”

이번에도 그의 답변은 단호했다.

“왜? 그걸 곤륜에 도로 가져가면 누명도 풀 수 있을 거고, 그러면….”

그러면 시랑의 처지가 좀 나아질 텐데. 청연은 말을 꾹 삼켰다.

검을 내놓으라고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미 오래전에 마교로 넘어온 물건이고, 제게 그걸 빼앗을 권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저 무호가 그걸 내어 주지 않는 이유가 궁금할 뿐이었다.

무호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가 입을 연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그놈들이 진짜 몰랐을 거라고 생각해?”

“…어?”

“정파한테 제일 중요한 게 뭐야.”

뜬금없는 질문에 청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야 당연히 협….”

“명예.”

“…….”

“그리고 체면.”

순간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깨달은 청연은 눈알을 도르륵 굴렸다.

“그러니까 네 말은… 그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는 거야? 진짜 신물을 훔친 사람이 누군지?”

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청연이 전혀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낱낱이 들려주었다.

세화가 신강에서 발견되어 잡혀 온 뒤, 그의 증언이 운현을 지목하자 장문인과 장로들의 마음속에는 한 줄기 의심이 싹텄다. 듣고 보니 자신들이 운현의 행적을 제대로 알지 못할 때가 많았던 것이다. 게다가 세화의 침상 베갯잇 속에서 보란 듯이 발견된 지도 또한 미심쩍었다.

한 문파의 장로가 마교의 간자일 수 있다는 의심은 적당히 넘길 것이 아니었다. 확실한 물증이 필요했다. 그들은 이 일을 뒤에서 철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문도들은 여전히 붙잡혀 심문당하는 세화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운현이 사라졌다. 정말 말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애초에 이곳에 없었던 사람처럼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말이다. 그때까지 제대로 물증을 잡아내지도 못했던 그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누가 진짜 마교의 간자였는지.

‘이, 이 일을 어찌합니까? 곤륜에 그토록 오래 몸담았던 이가 실은 마인이었다는 게, 심지어 신물까지 훔치고 도주했다는 게 밝혀지면 우리 곤륜의 명예가 얼마나 실추되겠냐는 말입니다. 강호에서 차마 얼굴을 들고 다니지도 못할 겁니다.’

문파의 장로가 죄를 저지르고 사라질 때까지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보다는 일개 삼대제자에게 그 죄를 덮어씌우고 간자를 잡았다고 공표하는 게 훨씬 나을 터였다.

결국 그들은 세화를 간자로 몰 수밖에 없었다. 제자들의 앞에서 보란 듯이 그를 심문하고, 처형하려고 했다. 오로지 문파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그리하여 여운이 검까지 휘둘러 가며 세화를 데리고 도망쳤을 때도 전력을 다해 쫓지 않았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세화는 이미 배신자로 낙인찍힌 뒤였다.

그들은 이 일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며 뒤에서는 운현의 행적을 추적했다. 물론 그가 신강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마교에 쳐들어가 신물을 되찾으려고도 해보았지만 번번이 패했고, 곤륜의 신물은 그렇게 천마신교의 것이 되었다.

“말도 안 돼….”

청연은 넋이 나가 중얼거렸다.

“그러면 내가 들은 이야기는 뭐야? 운현이 장로직에서 내려올 때까지 곤륜에 남아 있었다는 건?”

“거짓말.”

그들은 운현이 갑작스러운 폐관수련에 들어가게 되었음을 알렸다. 곤륜산맥의 영험한 기가 흐르는 어느 동굴 속에서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아주 오랜 시간, 홀로 수련할 것임을.

시간이 흘러 여운이 돌아왔을 때, 그는 가장 먼저 폐관수련 중이라는 운현과 만나기를 시도했다. 어떻게 해서든 진실을 밝혀 세화가 쓴 누명을 풀어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본산 제자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활동 반경까지 제약받게 되었다. 외부로 나가는 것은 허용되었으나 내부에서 마음껏 돌아다니는 건 금지된, 기묘한 상황이었다.

“이게 말이 돼? 나는… 나는 그럼 그동안….”

“그러니까 망하게 내버려 둬.”

무호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안 그러면 싹 다 잡아 죽일 거니까.”

“…….”

혼란에 빠진 청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곤륜의 장로가 마교의 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배신감에 휩싸였다.

도가 무학의 발상지라는 곤륜이 이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웬만한 사파들보다 비겁했고, 치졸했으며 또 무능했다. 자신들의 무능함으로 인해 벌어진 일을 개인의 잘못으로 뒤집어씌우고, 그 사람의 인생을 철저히 무너뜨렸다. 이 모든 게 그 잘난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청연.”

“…….”

청연은 대답 한마디조차 하지 못한 채 흔들리는 눈으로 무호를 올려다보았다.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들려왔다.

“교주님.”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흑의인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탁자 위에 앉아 있던 무호는 심기 불편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는 긴장하여 바짝 움츠러든 채로 입을 열었다.

“그,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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