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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객잔 정상 영업합니다 (109)화 (110/145)

109화

“뭐?”

황당해하는 무호의 반응을 살피던 청연은 아예 그를 향해 돌아앉았다. 시선을 한군데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그를 보고 있자니 저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일단 잡아 두는 건 성공한 것 같은데… 이제 어쩌지?’

평소에는 잘만 들이대던 놈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은 딱 두 번째로 보는 것 같았다. 지난번 목에 남은 울혈을 보고 오해했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찾아와서 책임지겠다는 말이라도 했지, 지금은 손끝이라도 닿았다가는 큰일 날 것처럼 굴고 있었다. 청연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자 그는 스르륵 몸을 움직여 한 걸음 멀어졌다.

“또 어딜 가?”

“…….”

“가만히 있어, 이 답답아. 좀 닿는다고 부서져?”

내 몸이 무슨 순두부도 아니고.

하필 만신창이가 돼 있을 때 그의 정신이 돌아왔으니 충격받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달라져도 되는 건가. 언제는 싫다고 발버둥을 쳐도 끌어안더니.

“계속 나 피할 거야?”

청연은 손을 뻗어 무호의 팔뚝을 붙들고 물었다. 한 걸음 더 물러나려다 붙잡힌 그는 우물쭈물 답했다.

“…내가 언제.”

“언제? 아까 방에서도 내 말 안 끝났는데 도망갔고, 그 뒤로 돌아오지도 않고. 조금 전에도 내가 목욕한다니까 가려고 했잖아.”

“…….”

“그리고 지금도. 나 쳐다보지도 않잖아. 아니야?”

입을 꾹 다문 그는 그제야 천천히 시선을 들어 청연의 눈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모두 말을 하지 않으니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만 선명하게 들려왔다.

청연은 복잡미묘한 무호의 표정에서 무수한 감정들을 읽을 수 있었다. 부끄러움, 불안함, 그리고 죄책감.

그가 성인이 된 후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통 알 수 없다고 여겼는데, 어쩌면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내가 노력할 테니까… 그러니까….’

조금 더 터놓고 이야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기만 한다면 그를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과하고 싶어?”

청연은 무호를 바라보며 넌지시 물었다. 제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사과를 받으면 그의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그러고 보니 그에게서 한 번도 직접적인 감정 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가 어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화를 내거나 꺼지라고 소리치면서도 화가 난 이유는 절대 말하지 않았다.

고맙다, 미안하다 같은 기본적인 표현도 해본 적 없는 것 같았다. 심지어 좋아한다는 고백조차 말로 하지 않았으니.

“어때? 미안하다고 할래?”

“…….”

무호는 여전히 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너무 많은 걸 바란 듯싶었다. 청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일부러 그런 거 아니니까 사과 안 해도 괜찮아.”

청연은 심란한 그를 토닥여 줄 생각으로 다치지 않은 오른팔을 뻗으며 한 발짝 더 다가갔다. 그러나 이내 자신이 욕탕에서 벌거벗은 상태임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 떨어졌다.

‘이런.’

큰일 날 뻔했다. 무호가 제정신이 아닐 동안 그에게 딱 달라붙어 있는 게 너무 익숙해졌나 보다. 습관은 무서운 거라더니.

“어깨는.”

“응?”

갑작스러운 질문에 청연은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그래도 마음이 조금 놓였는지 무호의 안색이 이전보다 나아져 있었다.

“어깨….”

“아, 안 아픈 건 아닌데 그래도 통증이 좀 줄었어. 부기도 약간 빠진 것 같아. 볼래?”

청연은 젖은 머리를 오른쪽으로 쓸어 넘겨 왼쪽 어깨를 드러냈다. 피멍 가득한 피부를 바라보는 무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또다시 도망가기라도 할까, 청연은 그의 팔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런 걸로 너 원망 안 해. 대신 뭐가 문제인 건지 나한테 말해주면 안 돼?”

“…그냥 가.”

“가라고? 지금 손님 쫓아내는 거야?”

“안 그러면 또….”

또?

청연은 그의 팔을 끌어당겨 자신을 마주 보도록 돌려놓았다. 순순히 돌아선 그가 시선을 피했다.

“또 다치게 할 거라고?”

“…….”

“너 지금까지 계속 그랬어? 몇 번이나?”

교주가 그런 상태였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고?

청연의 머릿속은 의문투성이였다. 첫째로 마교주의 위치에서도 이런 일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게 이상했다. 본인의 무위도 뛰어난 데다가 마음만 먹으면 용한 의원이든, 귀한 영약이든, 희귀한 정보든 전부 손에 넣을 수 있는 자리 아닌가.

그리고 둘째로 그동안 소문 한번 나지 않은 채 이 사실을 숨길 수 있었다는 게 이상했다. 중원에는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많아 무슨 소문이든 빠르게 퍼져 나갔다. 곤륜에서 신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숨기려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말이 새어 나간 것만 봐도 그랬다.

“얼마나 자주 그래?”

“…….”

“나 좀 봐.”

청연은 그의 얼굴을 잡아 억지로 눈을 맞췄다.

“걱정돼서 묻는 거야. 너만 내 걱정하는 거 아니고 나도 네 걱정 한다니까.”

“…….”

“병이야?”

병이라면 의원이 고치면 될 일이고, 그게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된다. 청연은 초조하게 그의 답변을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연 무호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사술.”

“응?”

“어렸을 때… 사술에 걸렸어.”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청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사술에 걸렸다고? 언제?”

“다섯 살, 여기 처음 왔을 때.”

이어진 무호의 고백에 청연은 가슴이 철렁하는 것 같았다.

‘무슨 사술인지는 몰라도 다섯 살짜리 어린애한테 그런 짓까지 했다니.’

지금은 그를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없다지만, 어렸을 때 일어난 일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너 나랑 처음 만났을 때는 멀쩡했잖아. 그 사술이라는 게 발동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는 건데?”

“이십 년.”

“다섯 살 때부터 이십 년이면 아직 안 됐는데….”

청연은 제게 폭력적으로 굴던 무호의 지난 행동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그런 행동이 전부 전조증상에 불과했다는 걸까.

“이십 년이 지나면 어떻게 돼?”

무호는 답하고 싶지 않은 듯 다시 입을 다물었다. 사실 다음 내용은 그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동안 본 게 있었으니까.

‘폭력적인 성향이 더 짙어지겠지. 어쩌면 그 상태에서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을지도….’

마교주가 될 만큼 높은 무위를 지녔는데 어떻게 사술 따위에 지배당하느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오래전부터 몸속에 자리를 잡아 착실히 뿌리 내린 저주가 얼마나 커져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다섯 살부터 이십 년이라면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말문이 막힌 청연은 입술을 잘근 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면 내가 읽은 이야기 속에서 무호가 전쟁을 일으키고, 그 많은 사람을 죽인 것도 전부 다 사술 때문인 거야?’

그건 너무하잖아. 같은 인간한테 어떻게 그런 짓을 해?

그제야 무호가 왜 그리 진실을 숨기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청연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팔뚝을 붙든 손에 꾹 힘을 주었다. 그 손을 힐끗 내려다본 무호는 왠지 모르게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 갔다.

그에게 사술을 건 사람은 당시 소교주로 있었던 혈마이고, 대상은 어린아이들부터 성인까지 다양했다.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 중 자질이 보이고 자기 마음에 드는 이들을 고른 것이다.

혹시라도 아버지의 눈에 차는 자가 나와 자신이 소교주 자리에서 쫓겨날 때를 대비하여 남겨 둔 일종의 보험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쭉 정파를 몰아내고 중원을 제패하기만을 꿈꿔왔으니까.

그리고 사술에 걸린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가 무호였다. 다른 이들은 이십 년이 지나기 전에 전부 죽었다.

청연은 심각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게 해서 네가 전쟁을 일으키면 그 사람이 얻는 게 뭔데?”

“내가 그놈 통제 아래에 있게 될 테니까.”

“아.”

그러니까 손 안 대고 코 풀겠다고? 무호가 미친 듯이 사람들을 죽이는 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가, 일이 끝나면 주술의 통제 아래 있는 그를 손쉽게 처리하고 천마신교를 되찾겠다는 거였다.

청연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문질렀다.

“너는 이런 걸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열다섯.”

“나랑 만나기 전부터?”

무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당시에는 믿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천산에서 탈출하던 그날, 사술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는 했으나 자신의 정신을 흩트리기 위한 소교주의 수작인 줄로만 알았다고.

그러나 모든 게 사실이었고, 대략 일 년 전부터 조금씩 증세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점점 빈도가 잦아지고, 지속 시간도 길어지고 있었다.

“그냥 혈마를 죽이면 안 되는 거야? 그래도 사술은 몸에 남는 거야?”

무호는 가만히 청연을 바라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청연은 아직 궁금한 게 많았다. 무호가 말해 주는 정보는 언제나 상당 부분이 생략된 느낌이었다. 게다가 지난밤, 가슴팍에 감고 있던 붕대는 무엇이었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자신의 비밀까지 들춰가며 평소보다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더 이상 물었다가는 또 멀어지려고 할 것 같은 예감에 청연도 질문을 꾹 참기로 했다.

“속상해….”

질문은 참아도 속상함은 참을 수 없었다. 평생을 악인들에게 둘러싸여 시달려온 그의 삶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게다가 아무것도 모르고 그를 미래의 최종 보스쯤으로 여기며 두려움에 떨었던 과거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그동안 도대체 어떻게 살았어?”

“…….”

“너는 한 번이라도 행복한 적이 있었어? 나였으면 벌써 포기…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마음 아파하는 건 나중에. 일단은 사술을 억제할 방법부터 찾자.

혹시라도 도움이 될지 모르니 제하의 스승님께 서신을 써도 되겠느냐 묻자 무호는 마지못해 허락했다.

“대화 끝났으니까 나와. 옷 입어.”

드디어 빠져나갈 틈이 생겼다고 생각한 건지 무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첨벙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물방울 탓에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렸던 청연은 이윽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모든 고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원시천존이시여.’

그는 탕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무호의 모습을 바라보며 침음했다. 결국 눈을 질끈 감고 스스로에게 질문까지 던지게 되었다.

‘나는… 남자가 맞나?’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그 모든 세월을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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