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제가 힘들 게 뭐가 있어요. 형들도 다 잘해 주시고, 정우도 잘해 주고… 노래도 할 수 있고, 그냥 전 다 재밌어요.”
“이야, 마침 강하진 열혈 팬 차정우 온다. 강하진은 여기 있는데 차정우는 왜 안 나오나 했다.”
하진은 해성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만 해도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말소리에 깬 모양이었다. 정우가 후드 모자를 뒤집어쓴 채 나오는 게 보였다. 해성과 바닥에 앉아 얘기하고 있던 하진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허리가 뒤로 쑥 당겨졌다.
“언제 나갔어요. 형도 자는 줄 알았는데.”
아직 잠이 묻은 낮은 목소리가 목덜미로 뭉개지며 닿아왔다. 하진은 저의 뒤에 앉아 허리를 끌어안고, 어깨 위에 얼굴을 묻은 정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해성은 그런 정우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정우 쟤는 서른 먹어도 하진이 너한테 그럴 거야. 우리한테는 안 그러는데 너한테는 애교 부리고 막 그러더라.”
“연습하고 할 때… 워낙 같이 밤도 많이 새고 그래서… 그때 친해졌거든요.”
“하긴 나도 이영우랑 그렇게 친해졌지. 그때가 제일 힘들 때라 의지하게 되고 하니까. 쟤 자나 본데?”
해성의 턱짓에 하진은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우가 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는 사람이 이렇게 세게 팔로 끌어안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진은 거실 테이블 아래로 손을 넣어 배 위에 단단히 맞물린 그 손을 풀려 애썼지만, 손은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몸이 밀착됐고,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아, 배고프다. 12월 내내 스케줄 몰아쳐서 진이 다 빠지고 나니까 뭘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아. 피자나 시켜 먹을래? 어때?”
“아… 전 좋아요.”
“정우는 피자 원래 좋아하고, 인규 형도 피자 킬러고… 이영우는 어제 먹었다는 거 같던데. 물어봐야겠다.”
해성이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하진이 다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정우의 맞물린 손가락을 떼어내려 애썼다.
“…안 자는 거 알거든.”
“자는데.”
“대답도 잘 하면서 무슨…. 빨리 놔줘.”
“어디 가게요?”
자꾸 목덜미로 숨이 닿아와 곤란했다. 그리고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아래쪽이었다. 정우의 다리 사이에 앉은 꼴이 되어 일어나려고 움직일 때마다 정우의 다리 사이와 엉덩이가 문질렸다. 벗어나야 하는데 결박된 것처럼 벗어날 수는 없고, 정우의 숨과 목소리가 목에 닿아오고, 또 아래까지 비벼지는 감촉에 정말 더는 무리였다.
하진은 확 정우의 팔을 풀어냈다. 저의 힘이 아니라 정우가 놓아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대로 일어난 하진이 아무렇지도 않게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세면대 앞에 서서 물을 세게 틀었다.
“…….”
이러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은 분명 있었다. 그런 생각조차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마음을 접은 척, 너의 그 스킨십에도 나는 더 이상 동요하지 않는 척, 연기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 안에 도사린 죄책감은 분명 있었다. 하진은 뻔뻔하게 굴려 노력하지만, 애초에 뻔뻔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흣…….”
하진은 입고 있던 트레이닝팬츠와 속옷을 내렸다. 헐렁한 팬츠가 발목까지 주르륵 한 번에 흘러내렸다. 한 손으로 세면대를 짚은 채 반쯤 발기한 성기를 쥔 하진이 느릿하게 손을 움직였다.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모든 것을 감춰 줄 것이었다. 하진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점점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여전히 단단해진 기둥을 쥐고, 손바닥으로 감싸 쓸어주는 단순한 행동이 전부였다.
쏴아, 세게 쏟아지는 물에서 작은 물방울이 튀어 닿기도 했다. 하진은 자꾸만 꽉 깨문 입술 사이에서 신음이 흐르는 것에 고개를 저었다. 자위를 관두면 될 텐데, 성기를 만지는 손을 멈출 재간은 없었다. 하진은 다른 손으로 제 티셔츠를 들어 올려 그 끝자락을 입에 물었다. 단순히 입술을 깨무는 것보다 소리가 덜 흘러나왔다. 손을 적시는 액이 흐르고, 미끈해진 느낌이 쾌감을 도왔다.
“흐으…….”
앓는 소리가 물소리 안으로 전부 빨려 들어갔다. 하진의 발꿈치가 들렸다가 다시 놓이기를 반복했다. 아랫배가 조여들고, 사정감이 길게 밀려들었다가 멀어졌다.
목덜미에 뭉개지던 정우의 목소리, 아랫배 위에 단단히 엉기던 손가락. 그 목소리가 입속으로 파고들고, 그 손가락이 제 성기를 쥐고 만져주면 어떨까. 정우의 팔 힘이 제 몸을 뒤로 확 당기는 것을 상상하자, 사정감이 다시 확 밀려들었다. 정우야, 차정우. 하진은 눈도 뜨지 못한 채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이미 제 뒤에 몸을 붙이고 선 정우가 한 팔로는 제 허리를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제 성기를 쥐고 흔들어 주는 느낌이었다. 하진은 죄책감과 쾌감으로 물든 새빨간 감각이 치솟음에 허리를 크게 움찔대었다. 발꿈치가 확 들렸다. 하진은 손을 축축하게 적시는 느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하아…….”
입을 벌리자 물고 있던 티셔츠 아랫단이 떨어졌다. 하진은 긴 숨을 내쉬며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휴지로 다리 사이를 정리했다. 세게 쏟아지는 물 아래로 손을 대자 물방울이 이리저리 부딪쳐 튀었다.
하진은 정액을 전부 씻어냈다. 점액질이 씻겨 나간 손에 거품을 내고 또 냈다. 핸드 워시의 상큼한 향이 화장실 안에 가득 퍼졌지만, 그래도 하진은 손을 닦고 또 닦았다. 그런다고 해서 죄책감이 씻겨 나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질없는 행동을 한참이나 이어 갔다.
“…….”
손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닦은 하진은 심호흡했다. 그리고 거울 속 제 얼굴을 바라보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렸다. 자위 후에는 늘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거울 속 스스로의 얼굴을 바라볼 용기조차 사라져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가쁜 숨이 사라지고 언제 그랬었냐는 것처럼 흥분감이 사라진 뒤에야 화장실을 나섰다. 아무도 없는 거실을 한 번 본 하진이 머뭇대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자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사정을 해서 그런지 몸에 힘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
하진은 제 침대 쪽을 보고 누워 자고 있는 정우를 바라보았다. 깨지 않도록 조용히 움직여 침대에 앉은 하진이 멍하니 정우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날마다 보는 얼굴인데도 늘 이렇게 마음이 깨질 것처럼 흔들렸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정우를 좋아하는 것은 죄였다.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오래 마음이 지속될 줄은 몰랐다.
좋아한다는 게 원래 이런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어릴 때 누구라도 한 번 좋아해 볼 걸 그랬다. 고백해 온 사람과 한 번 연애라도 해봤으면, 이렇게 깜깜한 곳에 혼자 남겨진 기분은 아니지 않을까. 하진은 몸으로 파고드는 무기력함을 누른 채 침대에 누웠다.
“…….”
오늘은 벽이 아니라 정우를 본 채였다. 늘 이러고 싶었는데, 좋아해 버린 뒤에는 이럴 수가 없었다. 들켜버린 뒤에는 더더욱 어려웠다. 이제 아니라고, 나 널 보고 누워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보여주기 위해 정우를 보고 누웠다가도, 정우가 잠이 든 것 같으면 얼른 벽을 보고 돌아누웠다.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잠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늘 그랬었는데 오늘은 그냥 정우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피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정우를 보다가 잠들고 싶었다.
그렇게 하진은 한참이나 정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지런한 속눈썹도 스타일링을 하지 않아 그저 단정히 이마를 덮은 앞머리도, 다물린 입술도 전부 너무 좋아 견딜 수가 없었다. 보기만 해도 좋다가, 보는 것만으로 부족해져 손을 뻗었을 때, 놀라 몸을 돌렸다. 침대 바깥으로 뻗어 나간 손이 화끈거렸다. 하진은 그 손을 붙잡은 채 몸을 웅크렸다. 죄지은 사람처럼 심장이 마구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미쳤어.”
손을 뻗어서 뭘 어쩌려고? 만지기라도 하려고? 자는 애 얼굴에 손이라도 대려고? 그러다가 깨기라도 하면? 더럽다는 말을 기어이 들어야 끝이 날까. 혐오스럽다고, 도저히 같은 팀에 있을 수가 없다고 멤버들에게 알리고 소속사에도 다 소문이 나야 끝낼 수 있는 걸까.
하진은 다시는 앞으로 나갈 수 없게 손을 품에 묻은 채 더 몸을 동그랗게 말아 웅크렸다. 너무 무서워서 몸이 다 떨렸다. 어떤 짓까지 하려고 이러는 걸까. 이 연기는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너는 이런 나를 어디까지 봐줄 수 있을까.
의문은 넘치고, 답은 하나도 없는 평화롭고, 소란한 낮이었다.
***
2월 14일은 정우의 졸업식이었다. 오랜만에 교복을 입은 정우가 학교로 향했다. 아포제 멤버들이 온다는 소리에 팬들은 졸업생의 가족처럼 강당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 팬들뿐만 아니라 교문에 기자들도 잔뜩 와 정우를 기다렸다. 정우가 밴에서 내리자 플래시가 막 터지고, 졸업을 하는데 기분이 어떤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그런 정우의 뒤로 아포제 멤버들이 내리자 멤버들에게도 질문이 이것저것 쏟아졌다. 영우와 해성은 졸업하는 정우에게 영상 편지를 남겨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웃으면서 천연덕스럽게 하트를 날렸다. 하진과 인규 역시 기자에게 둘러싸여 여러 인터뷰를 하고, 정우와 같이 사진을 찍었다.
강당으로 매니저와 함께 들어가자 아포제를 알아본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경호원들이 여기저기에 배치되어 상황을 살피고 통제했다. 하진은 학부모들 사이에 서서 저 앞에 선 정우를 바라보았다. 188cm의 월등히 큰 키로 조금만 움직여도 눈에 잘 보였다. 늘 같은 콘셉트로 옷을 입거나 또 숙소에 같이 있던 모습을 보다가, 교복을 입고 또래와 어울려 선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와, 차정우 피지컬 장난 아니다. 정우만 보여.”
“그러게요. 우리가 막내 하나는 진짜 확실해요. 우리 자랑거리.”
“오늘도 아포제는 정우가 있어서 행복합니다.”
꼭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처럼 말하는 해성에 하진이 작게 웃었다. 웃는 하진을 보며 여기저기에서 찰칵대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은 공로상을 시상하겠습니다. 시상은 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해주시겠습니다. 공로상, 차정우. 단상 위로 올라와 주세요.”
정우의 이름이 불리자 강당 안이 소란해졌다. 여기저기에서 정우가 움직이자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안까지 들어온 기자들이 마구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하진과 인규는 크게 박수를 쳤고, 해성과 영우는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크게 환호했다.
“공로상 차정우. 위 학생은 그룹 아포제의 멤버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학교의 명예와 발전에 공헌하였기에 이 상장을 드립니다.”
정우는 교장에게서 상장을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여기저기에서 비명과도 같은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졸업식 사회를 보는 선생님이 정숙해 달라고 몇 번이나 요청했지만, 장내는 고요해지지 않았다. 결국 정우는 상장을 받고 교무실로 먼저 올라가야 했다. 진행하기로 한 짧은 인터뷰 또한 학생들과 팬들이 워낙 몰려 교무실 안에 있는 상담실에서 진행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