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얼마나 마셔서 침대도 착각하고 여기서 자는 걸까. 지금까지 숙소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술을 마신 적이 없으니 사실 침대를 착각할 일도 없었지만, 아무리 피곤하고 정신이 없어도 각자의 침대를 헷갈리거나 잘못 누운 적이 없었다. 그냥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너무 당연하게 자신의 침대로 몸이 저절로 움직일 정도로 익숙해진 방이었다. 하진은 그런 정우가 제 침대에 와 잠든 것을 보며 소리 없이 웃음 지었다. 술 잘 마시는 척하더니 이런 실수를 다 하네.
“귀여워.”
숨과 섞인 다정한 목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하진은 손을 뻗어 제 가까이에 마주 누운 정우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그리 밝지 않은 아침의 빛이 정우의 얼굴을 부드럽게 비추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방 안, 우연히 마주한 이 순간이 꼭 꿈인 것 같았다.
“…….”
꿈? 그래 꿈일지도 몰랐다. 정우처럼 똑똑하고 실수하지 않는 애가 침대를 잘못 찾아왔을 리가 없지 않은가. 평소 정우에 대한 꿈을 많이 꿨으니 이번에도 그런 건 아닐까. 정우가 저를 바라보고, 손을 뻗어 몸을 만지고, 숨도 쉬지 못하게 입을 맞추며 잔뜩 입속을 헤집던 그 느낌도 이렇게 생생했었다.
손가락 사이를 간질이는 머리칼, 귓바퀴에 작게 자리 잡은 심플한 피어스, 고른 숨소리와 내리감긴 얇은 눈꺼풀, 기다란 속눈썹과 닿아버린 다리. 하진은 멍하니 정우를 바라보았다. 닿고 싶었다. 가까이 조금 더 가까이 머물고 싶었다.
그래서 하진은 정우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없고, 스스로를 말릴 수도 없었다. 이끌리고 또 이끌렸다. 아직 술기운이 남아 이렇게 무모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꿈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런 걸까. 하진은 빛이 내려앉은 그 얼굴 가까이로 다가가 다물린 입술 위로 제 입술을 가볍게 대었다.
물기가 전혀 없는 건조한 두 입술이 마주했다. 늘 생생했던 꿈처럼 지금도 너무나 생생했다. 입술이 닿는 느낌도, 그 체온도, 입술 위로 닿아오는 정우의 숨도 모두 꿈이 아닌 것 같아 심장이 아프게 조여들었다.
하진은 이 기분을 알고 있었다. 그동안 내내 겪었던 일이었다. 꿈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생했고 또렷했었다. 진짜 정우가 저를 원하고, 사랑해 주는 것 같았다. 몸을 만져주던 그 뜨거운 손길도 발끝부터 타고 오르던 쾌감도 모두 진짜 같았다. 심장이 조여들고, 너무 좋아 울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늘 꿈에서 깨어났다. 그 무엇도 진짜인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었다. 달라질 건 없지만, 그래도 닿아 있는 이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꿈에서는 그 무엇도 죄가 아니지 않은가. 정우에게 닿는 것도, 정우를 사랑하는 것도, 정우와 뒤엉키는 것도 전부 죄가 아니었다. 하진은 조금 더 대담하게 정우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리고 잠든 정우의 입술을 부드럽게 물어 머금었다.
“…정우야.”
애가 탔다. 지난 꿈처럼 빨리 입 맞추고 싶었다. 하진은 서툴게 살짝 혀를 내밀어 정우의 다물린 입술을 할짝였다. 물기가 없던 입술이 조금씩 젖어들었다. 하진은 살짝 벌어진 그 입술 사이로 먼저 파고들었다. 어설프게 맞물린 입술 속으로 들어간 하진의 혀가 정우의 혀끝을 살짝 문질렀다. 눈을 감은 정우의 미간이 느릿하게 구겨졌다.
“…으응…….”
하진은 정우의 혀끝을 문지르며 어쩔 줄을 몰랐다. 평소보다 더 뜨겁고, 아랫배가 조여들었다. 이렇게까지 느껴진 적은 없었는데, 정말 머리끝까지 치미는 쾌감에 미칠 것 같았다.
점점 깊게 파고드는 하진의 혀를 정우의 혀가 움직여 스친 순간, 하진은 어깨를 확 움츠렸다. 제가 움직여서 닿은 게 아니라 정우가 움직여서 닿았다는 그 자체로 느낌이 너무나도 달랐다. 하진은 저와 같이 움직이기 시작한 정우의 혀에 오히려 꼼짝도 못 하고 굳어버렸다. 정우가 그런 하진의 혀끝을 문지르고, 빨아들였다. 하진은 눈도 뜨지 못한 채 정우의 입술에 제 입술을 붙인 채 신음했다.
“하아… 으응…….”
몸이 더 가까이 붙었다. 하진은 정우의 몸 위로 완전히 제 몸을 맞붙인 채 더 깊게 입술을 맞물렸다. 정우의 혀가 하진의 입속을 헤집고, 혀를 빨아올 때마다 하진은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느낌에 어쩔 줄을 몰랐다. 몸이 가까이 붙었는데도 더 붙고 싶었다. 하진은 부드러운 정우의 뺨을 매만지며 제 혀를 문지르는 정우의 혀끝을 마주 문질렀다. 다리 사이가 저릿해지는 느낌이 났다.
하진은 정우의 손을 잡아 제 허리 위로 이끌었다. 정우는 아주 맛있는 것을 먹는 것처럼 하진의 혀를 빨아들였다. 입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야릇한 숨소리도, 또 목에서 울리는 신음도 모두 흥분을 도왔다. 정우는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다.
“빨리…….”
애가 탄다는 듯 재촉하는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정우는 상대가 이끌어 놓은 곳을 손으로 문질렀다. 얇은 니트가 손끝에 걸려 들렸고, 부드러운 피부가 닿아왔다. 만지고 있는데도 더 만지고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피부를 따라 손을 더 깊숙하게 밀어 넣자 더 긴 신음이 쏟아졌다. 정우는 그 신음마저 전부 집어삼킬 요량으로 혀를 쭈욱 빨아들였다. 저에게 매달리며 거의 우는 소리가 나는 게 좋았다. 기분이 좋아서 멈출 수가 없었다.
“하아… 하으……!”
정우가 하진의 허리를 꽉 쥐는 순간 혀가 풀려버렸다. 하진은 견디기 힘들 만큼 크게 오는 감각에 고개를 숙여, 정우의 품으로 파묻었다. 니트 안으로 들어간 큰 손이 허리를 쥐었다가, 위로 올라가 등을 만져 주었다. 더, 더 큰 자극을 원했다. 하진은 다시 고개를 들어 정우의 입술을 찾아들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정우의 귓바퀴에 있는 피어스 옆을 느릿하게 문질렀다. 귀를 만지는 느낌에 정우가 인상을 썼다. 그리고 다급히 하진의 입속으로 파고들었다.
다시 매끈하고 질척하게 뒤엉킨 혀가 마구 문질렸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에게 몸을 붙이고 마구 비벼댔다. 닿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으응… 정우야…….”
정우야. 정우는 제 이름을 부르는 이 목소리를 너무나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감고 있던 눈을 처음으로 뜬 정우는 너무 가까워 잘 보이지 않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감긴 얇은 눈꺼풀만 봐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아니, 알고 있었다. 정우는 니트 안에 넣었던 손을 빼내어 하진의 어깨를 확 잡아 밀어냈다. 맞붙어 있던 입술이 떨어지며 타액이 길게 늘어났다가 툭 끊겼다.
하진은 벽 쪽으로 밀려난 채 엉망으로 달아오른 숨을 내쉬며 정우를 바라보았다. 꿈에서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이렇게 저를 밀어낸 적이 없었다. 꿈이니까 늘 다정했다. 늘 뜨거웠고, 저를 당기고, 만지고, 끌어안기만 했었다. 하진은 아직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채 정우를 바라보았다.
“…하아… 하아…….”
가쁜 숨을 제대로 내쉬지도 못해 엉망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말려 올라가 드러난 얇은 허리와 젖은 입술. 그리고 입술처럼 젖은 눈동자. 늘 누구보다 예쁘다고 생각했던 얼굴이 있었다. 정우는 하진처럼 달아오른 숨을 내쉬며 그런 하진을 바라보았다. 뭐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려고 하는데, 생각이 또렷하게 맺히지 않았다. 화를 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하는 건지 생각을 하려고 하는데, 드는 생각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
제 처분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밀려난 그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잔뜩 흐트러진 하진을 보니 미칠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미친 듯 헤집던 입속의 열기가 아직도 혀끝에 남아 있었다. 부드러운 피부의 느낌도 또 제 피어스 위를 만지던 손길도 전부 그대로 느껴졌다.
이런 식의 쾌감은 처음이었다. 1년 남짓 연습생 생활을 하고, 데뷔 준비를 하는 동안에는 여자 친구를 만난 적이 없었다. 연습생이 되기 전 중학생 때 누구를 잠깐 사귄 적은 있었지만, 이런 식의 스킨십은 해본 적이 없었다. 노래와 춤, 그리고 스포츠에 더 큰 관심을 두었고, 얼마 만나지도 못하고 헤어졌다. 그저 그게 전부였다.
그런 정우에게 이런 쾌감은 밀어내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하진이었다. 정우는 하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해 본 적도 없고, 좋아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저를 좋아하는 것까지 비난하거나 나쁜 일이라고 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저는 아니었다. 그리고 팀을 위해서도 절대 이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정우는 당장이라도 하진에게 다가가 다시 그 입속을 헤집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 채 절망적으로 눈을 꽉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려는 그 순간 하진이 다시 가까이 다가와 정우를 붙잡았다.
“꿈에서까지 가면 어떡해…….”
“…….”
“안 그랬잖아. 꿈에서는 너도 나 좋아했잖아. 응? 정우야…….”
꿈? 꿈인 줄 아는 걸까. 정우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꿈이라 말하는 하진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이게 정말 꿈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이게 꿈일 리가 없었다. 그렇게 선명한 감각과 쾌감이 아직도 이렇게 몸에 남아 있는데, 이게 어떻게 꿈일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게 왜 꿈이에요.”
“네가… 내 침대에 있잖아.”
“…….”
“정우 네가 내 옆에서 자는데… 당연히 꿈이지. 꿈이 아닌데 네가 나를 만져 줄 리가 없잖아.”
정우는 그제야 이곳이 하진의 침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 여기 있는 걸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새벽에 술에 취해 침대를 잘못 찾아 누운 모양이었다. 정우는 다시 밀려드는 절망감에 눈을 깊게 감았다가 떴다. 어느새 제 앞으로 가까이 다가온 하진의 얼굴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그 얼굴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 너랑… 더 하고 싶어.”
하진의 얼굴이 다시 더 가까이 다가왔다. 입술이 맞물리는 동안 정우는 하진을 밀어내지 못했다. 생각이 전부 다 지워졌다. 정우는 제 입속으로 들어오는 하진의 혀를 휘감으며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