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제-61화 (61/122)

#61

싱크대 앞에 고정되어 달린 캠코더 안으로 웃는 하진의 얼굴이 담겼다. 집 안에는 맛있는 냄새가 가득 퍼졌고, 각각 자신의 캠코더를 든 멤버들이 하진과 정우 옆으로 와 시끄럽게 촬영을 하고 있었다.

“세팅은 나한테 맡겨! 자고로 파티의 완성은 완벽한 세팅이지.”

“파티라는 이름 붙일 정도로 요리가 막 완벽하지는 않아요, 형.”

“무슨 소리야. 해주는 걸로 이미 게임 끝. 하진이 형 존경합니다.”

해성의 캠코더가 같이 인사를 해서 요동쳤다. 하진은 그런 해성을 보며 웃었다. 이제 웃는 것도 버릇이 된 것 같았다. 웃고 싶지 않아도 웃을 수 있는 자신이 신기했다.

“이제 뭐 할까요?”

“양파도 까 주고, 밥물도 맞춰 주고 다 해 줘서 이제 더 안 해도 돼. 난 한 게 없어서 방송 나가기가 좀 그런데.”

“에이, 형이 다 했잖아요. 샐러드도 하고, 양념 만들고, 스테이크도 굽고. 맛있겠다. 배고파요.”

“그럼 맛 좀 봐줄래?”

“어, 제가 처음으로 맛보는 건가요? 영광입니다. 강 셰프님.”

부드럽게 웃는 정우를 본 하진이 고슬고슬 잘 지어진 밥과 양념, 스테이크를 한 숟가락 잘 떠서 그 입 앞으로 가져갔다.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숟가락 밑에 손을 받친 하진이 조심스럽게 정우의 입으로 스테이크 덮밥을 넣어 주었다.

“뜨겁지 않아?”

“괜찮아요.”

입안 가득 들어온 음식을 씹느라 불분명한 발음으로 대답한 정우가 웃었다. 하진은 순간 녹화가 되고 있는 것도 잊은 채 웃는 그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우가 그런 넋이 나간 것 같은 하진을 보며 얼른 엄지를 치켜세웠다.

“형, 진짜 이거 가게 차려야 해. 진짜 맛있어요.”

“…….”

“형.”

울 것 같기도 하고, 간절해 보이기도 하는 얼굴이었다. 요리를 하는 내내 웃고 있던 그 표정과는 너무나도 다른 얼굴에 정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정우는 카메라에 잡히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로 하진을 불렀다.

“강하진.”

“…어?”

“진짜 맛있어요. 뭘 그렇게 긴장해요. 맛없을까 봐?”

“아, 진짜 맛있어? 아니 너무 걱정돼서……. 형들 다 기다리고 있는데 맛없으면 안 되잖아. 다행이다.”

“진짜 팔아야 한다니까요. 제가 투자할게요.”

정우의 말을 들은 해성과 영우가 얼른 캠을 들고 가까이 다가왔다. 정우는 형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며 그제야 안도했다. 적어도 하진이 저를 보며 넋을 놓을 일은 없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뭘 투자하는데? 나도 할래!”

“스테이크 덮밥이요. 제가 먼저 한 번 먹어봤는데 예술이에요.”

“그래? 그럼 투자해야지. 강 셰프의 얼굴보다 맛있는 스테이크 덮밥 어때?”

해성의 말에 영우가 크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줌을 확 당겨 해성의 얼굴을 적나라하게 가득 채워 찍기 시작했다.

“무슨 식인종이냐? 얼굴보다 맛있는 덮밥이 뭐야? 무섭잖아.”

“아니, 셰프 얼굴이 완전 최고라는 거잖아. 맨밥 한 번 먹고 하진이 얼굴 한 번 보면 그냥 육성급 호텔 뷔페 되는 건데.”

“이름 때문에 망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식당 될 듯.”

“와, 대놓고 무시하네. 네가 지어 봐. 지어 봐, 못 짓기만 해라.”

“이런 건 단순해야 돼. 강하진의 스테이크 덮밥. 간결하고, 하진이 이름 자체가 브랜드니까 효과 좋고.”

“대실망.”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며 가버리는 해성과 그 뒤를 따라가는 영우를 보고 웃은 하진이 오목한 그릇에 밥을 적당히 담았다. 그리고 위에 잘 구워진 스테이크를 듬뿍 올리고, 가늘게 썬 양배추를 잔뜩 올렸다.

“소스 비법이 뭐예요? 진짜 맛있던데.”

“사과를 갈아서 넣었어요. 인공적인 단맛이 아니라 천연 단맛이 섞여서 더 자연스럽게 맛있는 것 같습니다.”

“형 진짜 셰프 같았어요.”

“정말? 뭔가 좋은데.”

마지막으로 직접 만든 소스를 적당히 뿌린 하진이 카메라를 향해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 덮밥을 들어 올렸다.

“이렇게 강 셰프의 스테이크 덮밥이 완성되었습니다! 레시피는 여기에 나가고 있으니 보고 해주시면 됩니다.”

하진은 자막이 나올 것 같은 아래를 손으로 가리키며 웃었다. 그런 하진을 보던 정우가 따라 웃으며 완성된 덮밥을 식탁으로 옮겼다.

“다 됐어요.”

“와, 비주얼 봐. 하진이 대박이다. 잘 먹을게!”

멤버들이 카메라로 세팅된 식탁 위를 찍고, 또 앉아 감탄하고 맛있게 먹는 것을 본 하진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촬영을 끝낼 수 있었다. 무대는 짧게 끝나니 집중하기가 더 쉽고, 다른 스케줄도 저 혼자만 조명을 받는 게 아니라 견디기 쉬운데, 이런 리얼리티의 개인 시간은 멤버와 같이해도 오롯이 해내야 하는 시간이 길어 조금 더 힘들었다. 전이라면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조금 더 고된 시간이었다. 옆에 정우가 있어 더 그랬다.

싹 다 비우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무슨 맛인지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한 그릇을 비운 하진은 결국 화장실에 가 전부 비워내고야 말았다. 전부 토해낸 뒤에도 몇 번 더 이어진 헛구역질에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목과 가슴 그리고 얼굴 어디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진은 변기 물을 내리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서웠다. 몸까지 망가져 버린 것 같아 무서워서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아프고 무섭고 고통스러웠다.

“…흐윽…….”

가느다랗게 흘러나온 울음소리는 금세 차가운 물줄기 소리 사이로 섞여 사라졌다. 겨우 세면대를 짚고 일어난 하진은 몇 번이나 얼굴에 차가운 물을 끼얹고 양치했다. 혀가 얼얼해지고 얼굴이 차가워 마비된 것 같을 때까지 씻어낸 뒤에야 화장실을 나설 수 있었다.

거실에서는 인규와 해성, 그리고 영우의 2차 게임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진은 웃는 멤버들을 바라보다가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

자고 싶어. 잠들고 싶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제발 잠들고 싶어. 억지로 눈을 감고 밀려드는 피로를 마주했지만, 잠이 들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진은 온몸에서 힘을 뺀 채 늘어졌다. 다음 상담 시간이 되면 잠을 잘 수 없다는 말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요?”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정우의 목소리가 귓가를 데워왔다. 하진은 대답 대신 몸을 일으켜 정우를 바라보았다.

“전 지금 나가서 촬영할 것 같아요. 밴 타고 갈 거고, 한 열한 시쯤 형한테 전화할 거예요. 뭐 리얼리티니까 자연스럽게 하면 되고, 영화만 같이 보고, 같은 차 타고 숙소 오는 것까지 촬영할 것 같아요.”

“알았어. 준비 다 하고 기다릴게.”

“아직 시간 좀 있으니까 쉬어요. 피곤해 보이는데.”

“……자고 싶은데 잠이 안 와. 못 자겠어.”

돌아서는 등으로 지친 하진의 목소리가 닿아왔다. 정우는 처음 듣는 말에 다시 몸을 돌려 하진을 바라보았다.

“나 진짜… 미친 것 같아. 자려고 하면 머릿속에서 생각이 막 움직이는 소리가 나고… 잠이 들어도 삼십 분도 못 자. 한 번 다시 깨면 오 분씩 계속 잠들었다가 깼다가… 자꾸 그래.”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모르겠어. 나 자고 싶은데… 정말 자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정우는 침대에 걸터앉아 마른 몸을 축 늘어뜨린 하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마른 몸이 안쓰러울 정도로 더 말라보였다. 방 바깥으로 가는 대신 하진에게 다가온 정우가 몸을 구부려 하진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고개 들어봐요.”

오랜만에 듣는 걱정이 묻은 목소리에 하진은 천천히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정우와 눈을 맞췄다. 눈앞에 있는 정우를 보니 마음이 마구 요동쳤다.

“열은 없는 것 같은데.”

“…….”

하진의 얼굴이 그대로 기울었다. 물기 없는 입술이 그대로 정우의 입술 위에 마주 닿았다. 고개를 비틀어 정우가 입술을 떼어내자 울상이 된 얼굴이 다시 정우를 향해 다가왔다.

“…한 번만……. 잠깐만….”

열이 오른 두 손이 정우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 손에는 놀랍게도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정우는 제 얼굴을 쥔 채 다시 입술을 대고 오물대는 하진의 어깨를 아프게 잡아 밀어냈다. 정말 발정이라도 난 거냐고, 미친 거 자랑이라도 하는 거냐고 쏟아내고 싶은데 그런 말을 할 의지도 생기지 않는 힘없는 얼굴이었다. 정우는 그대로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

“…….”

입술에 하진의 입술이 닿아 움직이던 느낌이 살아 있었다. 무릎을 꿇은 채 제 성기를 입에 물고 서툴게 오물대던 그 움직임과 같아 숨이 열기를 머금었다.

힘도 그 어떤 의지도 없어 보이는 하진의 얼굴을 잡고 강제로 성기를 처박고 싶었다. 그게 어떤 구멍이든 상관없었다. 제 얼굴을 잡았던 손처럼 달아올랐을 몸에 얼굴을 묻고 여기저기 마구 빨아대고 싶었다. 헐떡일 그 얼굴을 비웃으며 몸 가장 깊은 곳에 사정하고 싶은 욕구가 정우의 마음을 당겼다.

“…씨발.”

결국 욕이 소리로 맺혀 흘러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내내 침과 정액으로 젖어 있던 하진을 떠올렸다. 눈도 뜨지 못한 채 제 것을 물고 목구멍이 찔리면서도 고통에 헐떡이던 그 얼굴이 자꾸만 정우의 감각을 찔러댔다.

“어, 정우 내려왔어? 타. 좋겠네. 영화 보러 가고.”

“…네. 오랜만이잖아요.”

“하진이는 따로 가기로 했지?”

“네. 이따 훈이 형 차로 오기로 했어요.”

“아, 들은 것 같다. 캠 안에 달아뒀으니까 늘 너 타는 거기 타면 돼. 피곤하겠지만 그래도 오늘 잘했으니까 마무리까지 힘내자.”

“네. 오늘 별로 안 피곤해서 괜찮아요.”

그런 정우를 기특하다는 듯 본 지창이 차에 탄 정우 앞에 달린 캠 각도를 잘 조정해 주었다. 정우는 제 앞에 달린 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영화를 보러 가는 자체는 피곤한 일이 아니지만, 가는 길까지 뭔가 이야기를 하고, 설레는 표현을 해야 한다는 건 조금 피곤한 일이었다.

「…한 번만……. 잠깐만….」

어둠 속에서 하진의 목소리가 머리를 흔들며 지났다. 자고 싶은데 잘 수가 없다는 목소리는 잔뜩 지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제 얼굴을 잡던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손과 떨어지는 순간 울 것처럼 변하던 그 눈이 자꾸만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

그래도 흔들리는 게 마음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정우는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캠 녹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완벽히 아포제 차정우로 웃음 지었다.

***

하진은 정우에게 연락이 오기 전까지 내내 방에 머물렀다. 잠시 닿았다 떨어진 정우의 온기에 기대어 잠들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묵직한 피로와 아무 말도 없이 몸을 돌려 나가 버리던 정우의 얼굴에 자꾸만 머리가 지끈거렸다.

“똑똑.”

“네, 형. 들어오세요.”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동시에 입으로 똑똑 소리를 낸 영우가 슬쩍 문을 열었다. 하진은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문가로 다가갔다.

“영화 데이트하러 언제 가?”

“네? 아… 정우가 연락 주면 그때 가기로 했어요.”

“그럼 잠깐 시간 내줄 수 있어?”

“그럼요. 저 지금 아무것도 안 하는데요.”

문을 당겨 활짝 연 하진이 영우가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늘 유쾌한 영우지만, 이렇게 한 번씩 진지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 감이라도 잡히면 좋을 텐데 솔직히 짐작도 할 수가 없었다.

“앉아, 앉아.”

“네.”

정우의 침대에 걸터앉는 영우와 마주 앉은 하진이 가만히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하진을 보며 웃은 영우가 입을 열었다.

“요즘 많이 힘들지? 스케줄도 많고, 특히 너랑 정우한테 방송에서 바라는 것도 많고 하니까 더 힘들 거야. 부담도 될 거고.”

“아… 괜찮아요. 제가 다 좋아서 하는 건데요, 뭘.”

“전에는 그래 보였는데 요즘은 좀 힘들어 보여서 그래.”

“아……. 그래 보여요? 왜 그러지. 잠을 잘 못 자서 그런가…….”

“잠을 잘 못 잔다는 게 어떤 의미야? 잘 시간이 없어서 못 잔다는 거야, 아니면 잠이 잘 안 온다는 거야?”

솔직히 다 말해도 되는 건가 싶었다. 멤버 형한테 이런 말도 못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꼭 진짜 저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내색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생각이 좀 많아요. 잘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냥 여러 가지…….”

“우리가 데뷔한 지 막 4년, 5년 된 것도 아닌데 뭐 벌써 그런 생각을 해. 너 잘하고 있어. 어떻게 더 잘해. 사람들이 너 좋아하는 거 보면 몰라? 왜 너를 괴롭힐 만큼 고민을 해.”

정우를 좋아해요. 관둘 수 있는 지경도 아니고, 그럴 마음도 이제 없는 것 같아요. 형이 앉은 그 침대에서 잠드는 정우를 사랑해요. 몇 번이나 잤고, 지금도 자고 싶어요. 형은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있어요?

“…….”

한마디도 더 할 수 없었다. 솔직한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어서 하진은 영우와의 대화를 멈추기로 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마무리를 짓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걱정돼서 그래. 전이랑 좀 달라 보여서. 힘도 없고, 스케줄 없을 땐 멍하니 자주 있고. 그냥 누구나 한 번씩 겪는 인생 고민기라고 여기면 되는 거야?”

“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는데 그거 맞아요. 그냥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이렇게 계속하면 되나, 더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뭐 그런 생각 갑자기 들 때 있잖아요. 그냥 그런 거예요, 형. 잘하고 있다는 형 말 들으니까 그래도 안심이 돼요.”

“그래. 너 잘하고 있어. 하진아, 걱정하지 말고 네 기분, 건강부터 챙겨. 알았지?”

“네.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요, 형.”

웃으며 일어난 영우가 하진의 등을 부드럽게 몇 번 두드려주고 방을 나섰다. 하진은 그런 영우의 등을 바라보다가 다시 침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

티가 나기 시작했다. 폐허가 된 마음속 모래 먼지들이 공간을 벗어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어쩌지. 어쩌면 좋지. 영우가 나서서 저렇게 말했을 정도면 다른 형들도 어느 정도 저의 상태를 눈치채고 있을 것이었다. 하진은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고개를 마구 저었다. 또다시 폐허에서 불어온 모래바람이 눈앞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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