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5)화 (5/60)

비서 1팀 팀장은 오늘도 한숨을 푹푹 쉬었다.

보통 권 대표와 관련된 일은 교원이 처리하는데, 이틀 전 대신 파티를 다녀온 후로 계속 이랬다.

“저 진짜 다시는…… 가기 싫어요.”

“저는 그걸 매일 합니다.”

“……진짜 고생 많으세요.”

어린 나이에 교원이 직속 비서이자 대리가 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능력뿐만 아니라, 모두가 어려워하는 권 대표를 수월하게 다루는 건 교원뿐이었다.

보통 주변의 시기를 받아야 함에도 모두가 약속한 듯 교원만은 인정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 대리님, 나중에 조련사 해 보시는 거 어때요…….”

“……일 잘리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교원은 제게 넘어온 서류들을 검토하고 그중 권 대표에게 넘길 것들을 골라 챙겼다. 아까 전부터 권 대표에게 업무 메신저가 아닌 개인 메시지로 줄기차게 연락이 오고 있었다.

[권새끼: 이비서모해지금]

[권새끼: 이비서언능와봐]

[권새끼: 이교원씨???? 자기야????]

글자인데도 귀가 따끔따끔한 듯한 착각이 든다. 분명 별거 아니겠지. 업무 관련일 때 급하게 구는 꼴을 한 번도 보질 못했다.

교원은 몸을 일으키며 비서실을 둘러보았다. 다들 일을 하는 건지, 하는 척을 하는지 모니터를 보느라 바빴다.

최근 느낀 것이 있다. 비서실에는 두 명의 ‘신 형질’―알파와 오메가―이 있는데, 오메가로 발현된 후로 일상생활에서도 페로몬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일부러 뿜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는 것은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에게서도 페로몬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걸까. 교원은 저도 모르게 제 소매를 들어 킁킁 냄새를 맡다가 말았다. 페로몬 조절제를 처방받은 걸 깜빡했다.

의사는 이제 막 발현해 조절하지 못할 것을 대비해 주는 것이라 했지만 교원은 앞으로도 쭉 조절제를 복용할 생각이다.

제가 오메가라는 사실을 알려서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고, 직속 비서에서 내려갈 생각이 없는 탓이다. 직속 비서는 ‘베타’만이 가능했으므로 어쩌다 보니 속이는 게 되겠지만 뒤늦게 발현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규칙에 깐깐한 편이지만 돈 앞에서는 교원도 어쩔 수 없었다.

“대표님, 이 비서입니다.”

“들어와.”

문을 두들기자마자 대답이 튀어나왔다. 성질 급한 양반 같으니. 교원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대표실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보인 것은 핸드폰을 붙들고 있는 권 대표의 심각한 얼굴.

“왜 이렇게 늦었어. 이리 와 봐.”

“여기 회사인 건 아시죠?”

“응.”

권 대표가 뻔뻔한 낯짝으로 눈을 맞추며 대답했다. 당장 한 대 치고 싶은 걸 꾹 참고, 교원은 성큼 다가가 책상 위에 서류철을 내려놓았다.

“이거, 3시까지 마무리해 주세요. 이거는 오전에 동우 대표님이랑 미팅하신 건이고, 이건 4시에 진행할 미팅 건입니다.”

“알겠어, 알겠어. 그거 내려놓고 이리로 와 봐.”

훅 다가온 커다란 손이 교원의 손목을 붙들어 당겼다. 순순히 끌려가 그가 가리킨 의자에 앉자, 권 대표가 제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그건, 누군가와 채팅을 주고받은 내역이었다.

“이 비서가 말한 대로, 집 근처 술집에서 만났어.”

“……네?”

순간 머리에 띵, 하고 종이 울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나 러트 때 만난 남자 말이야. 이틀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비슷한 베타를 만났거든.”

권 대표가 묘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점멸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가 앞에서 쫑알쫑알 떠드는데도 글자 하나 머리에 박히질 않았다.

“물어보니까 자기가 맞대. 이거 운명인 걸까?”

“…….”

“솔직히 말하면 아직 잘 모르겠어. 보자마자 반할 줄 알았는데 그런 느낌은 아니었거든.”

어질어질, 머리가 핑 돌았다. 교원은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그가 다른 사람을 저로 착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틀 만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아마 상대는 권 대표의 말에 적당히 맞춰 주었을 것이고, 권 대표는 기억이 흐릿하니 맞는구나 싶었겠지. 쉽게 사랑에 빠지고 금방 질리는 남자니까.

“그날 생각하면…… 그니까, 잠자리뿐만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너무 좋았거든. 좀 더 만나 볼까? 너무 갑작스러워서 좀 그런가?”

이상하게, 기뻐해야 할 소식인데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일어서면 휘청거릴 것만 같았다. 몸은 그대로인데, 반죽기에 들어간 반죽처럼 뇌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이 비서?”

“……아, 네.”

“말해 봐. 내가 러트라서 그렇게 느낀 걸까? 좀 더 만나 보는 게 나을까?”

교원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안 좋은 걸까? 그가 알아챌까 마음 졸이던 것이 우습게 왜 이리도…… 배신감이 든단 말인가?

〈이……교원, 나랑 하자. 내가 책임질게.〉

저에게만 남은 2주 전의 기억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권 대표는 이미 휘발된 기억을, 교원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취해서…… 이러는 거 아니야. 싫다면 거절해도 돼. 집에, 약 있으니까…….〉

그 순간만큼은 권 대표의 말에 홀린 듯이 반응했다. 권 대표…… 아니, 권희수의 약속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모른다. 그는 진심처럼 보였다. 술기운에, 혹은 러트로 인해 이러는 것이 아니라 저를 좋아하는 것처럼 굴었었다.

〈교원아, 사귈래?〉

그저 한번 하고 싶어서 하는 말인 걸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이 비서? 어디 아파?”

“……조금, 네. 아파요.”

교원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고모네 집에서 나와 첫 자취를 시작하던 스무 살, 돈을 받으러 온 빚쟁이들에게 두들겨 맞았을 때에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동기들과 달리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다니던 때에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건 감정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라,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편이었던 탓이다.

“아침부터 아팠나? 아픈데 출근을 왜 했지?”

“……아뇨, 아침엔 괜찮았습니다.”

근데 왜, 지금. 이게 왜…….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울컥 치미는 감각이 낯설어서, 교원은 당장 제 뺨이라도 갈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심각하게 미간을 찌푸리던 권 대표가 어깨를 콱, 잡아 제 쪽으로 비틀었다.

“이 비서, 지금 바로 병원 가. 아니, 구급차를 부르도록 하지.”

……구급차?

미친 소리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교원은 저도 모르게 주춤, 했다가 권 대표를 한사코 말렸다.

“그 정도는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조 팀장! 아, 씨.”

평소답지 않게 무서운 목소리로 경호 팀장을 부르던 권 대표가 욕을 뱉었다. 그러곤 제 책상의 전화기를 쥐고자 손을 뻗었다. 교원은 다급히 권 대표의 팔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구급차를 부를 정도는 아닙니다, 대표님. 약 먹으면 돼요.”

“구급차가 싫으면 조 팀장 차 타고 병원 들렀다가 집에 가.”

“병원 갈 정도도 아니고, 그냥 그…….”

“그?”

아무 말이나 내뱉은 건데 권 대표가 이렇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 이 회사에 다니면서, 단 한 번도 병결로 인한 결근이나 조퇴를 한 적이 없어서 몰랐나? 원래 이렇게 직원 복지에 신경을 쓰던 상사였나?

“……빈혈이 있습니다, 제가.”

……비서는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재빨리 대처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도 직속 비서, 아니 ‘권 대표’의 직속 비서라면 필수적인 능력이었다.

교원은 처음으로 개 같은 권 대표의 성격에 감사했다.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거짓말을 술술 뱉어 내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빈혈? 빈혈이 있었어?”

“네, 평소에 철분제를 챙겨 먹습니다만, 오늘은 날이 더워서 그런지 어지러운 듯합니다.”

권 대표가 눈을 가늘게 뜨고 빤히 쳐다보았다. 교원도 지지 않고 눈을 맞췄다. 이런 상황에서도 참 예쁘게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비서, 진짜로?”

“네, 제가 거짓말해서 무슨 이득을 보겠습니까. 오히려 당장 아프다고 하고 퇴근하는 게 좋겠죠.”

“……그건 그런데.”

권 대표는 여전히 걱정과 의심을 담은 얼굴을 했다. 그러곤 사실이라는 대답을 다섯 번 듣고 나서야 포기한 것인지 의심을 지운 것인지 의미 모를 한숨을 쉬었다.

“내가 이 비서를 몇 년째 보는데…….”

철분제를 챙겨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간혹 빈혈이 올 때가 있긴 하다. 그러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그게 아니라, 아…… 아니야. ……후.”

깊게 한숨을 뱉은 권 대표는 잠시 제 이마를 짚더니, 미간을 엉망으로 찌푸리고서 다시 시선을 맞췄다.

“괜찮다고 하지만 내 기분이 별로야. 오늘은 조퇴하고, 내일 오후에 출근하도록 해.”

“그럴 필요는…….”

“필요고 뭐고, 내가 별로니까 그렇게 해. 이 비서 없으면 회사가 안 굴러가. 건강 챙겨야지.”

처음 보는 단호한 모습에 교원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쉬게 해 준다는데 거절할 필요는 없다. 물론 제 일을 비서 1팀이 도맡아 해야 하고, 그걸 다음 날 체크해 봐야 하겠지만 상사의 말을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알겠습니다. 하던 일만 마무리하고 퇴근하겠습니다.”

“하, 진짜…… 아니다. 4시까지 끝내. 10분 남았어.”

“……4시요? 왜…….”

“나 서류 처리하고 다음 스케줄 갈 때 데려다줄게.”

생각해 보니, 권 대표는 직원 복지에 신경 쓰기는 했으나 이 정도로 걱정해 준 적은 없었다.

교원은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이 인간, 잔소리 듣는 게 싫어서 집에 보내려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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