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14)화 (14/60)

“박 전무.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설명해.”

권 대표가 조 팀장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가 권 대표의 앞으로 걸어가 박 전무의 어깨를 잡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박 전무는 여전히 교원이 짓이기듯 뭉갠 제 다리 사이를 감싸고 있었다.

그 꼴이 꽤 볼 만했다.

“지, 진짭니다. 저, 저 새끼가 먼저…… 악!”

퍽, 권 대표는 구두 굽으로 박 전무의 복부를 거칠게 걷어찼다. 타격음이 무척 커서, 교원도 놀라 권 대표를 올려다보았다.

“허억, 컥, 억……!”

박 전무의 눈이 큼지막하게 뜨였다. 그는 부들부들 어깨를 떨다 몸을 굽혔다. 설마 제게 손을 댈 거라곤 상상도 못 한 듯 헛숨을 몇 번이고 들이켰다.

“궈, 권 대표……님.”

“나가지. 여기선 민폐니까.”

그 와중에 교원은 이 상황이 당황스러워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권 대표가 이렇게 화가 난 모습은 처음 보았다. 해 봐야 계약 파기, 혹은 불공정한 계약을 제시할 줄 알았다.

그리고 점차 숨이 가빠 왔다. 권 대표에게서, 참을 수 없을 만큼 무겁고 짙은 페로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화장실 내부를 꽉 채울 만큼, 그 안에서 공기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묵직한 페로몬이었다.

심장이 쿵, 쿵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이 비서, 차에 가 있어.”

“네, 네?”

화들짝 놀라 되묻자, 권 대표가 다시 한번 뚝뚝, 말을 끊어 답했다.

“차에, 가 있어. 나오지 말고.”

조 팀장이 인 이어로 경호 1팀 팀원들을 호출하는 것이 들렸다. 교원은 아무리 그래도 제가 비서인데, 그의 옆을 비울 수 없단 생각에 머뭇거렸다. 그러나 살갗이 따끔거릴 정도의 페로몬에 저절로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이 비서?”

“아…… 아뇨, 그, 나가 보겠습니다.”

교원의 상태가 이상해 보였는지, 권 대표가 어깨를 붙잡았다. 열이 확 올랐다. 숨이 막힐 정도의 페로몬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교원은 그간 음란물을 단 한 번도 접하지 않았다. 그걸 볼 시간에 아르바이트 하나를 더 했고, 흥분을 느낄 시간에 전공 서적 한 줄이라도 더 외워야 했다.

그래서 지금, 허벅지부터 아랫배까지 지끈지끈하게 올라오는 쾌감이…… 너무나 낯설고 무섭기까지 했다. 원래 이런 걸까? 아니면, 페로몬 때문에?

“차, 차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교원은 문을 박차고 나왔다. 페로몬이 가득한 공간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숨이 트였다. 교원은 그대로 주저앉아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눈을 질끈 감고 숨을 골랐다.

“……하아, 하, ……흐읍.”

이게 뭐야.

다들 이러고 사는 거야? 아니, 오메가라서 이러는 건가?

이성으로도 제어할 수 없을 듯한 충동이 일었다. 다행인 건, 권 대표의 페로몬은 상대를 찍어 누르기 위한 무게로 실려 왔기에 쾌감보다는 더 컸다는 점이었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몇 분이고 그러고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꼭…… 굶주린 육식 동물 앞에서 다리를 접질린 먹이가 된 것만 같았다. 아주 어릴 적, 고모 집에 쳐들어왔던 빚쟁이들에게 둘러싸였던 때처럼.

“……아직…….”

천천히 정신이 돌아왔다. 나온다던 권 대표와 조 팀장은 따라 나오지 않았다.

교원은 신경 쓰지 않고, 가게 밖으로 뛰듯이 걸어 나왔다. 조금 전의 이상 증상은 미열처럼 남아 있을 뿐, 열기가 빠져나갔다.

가게 밖으로 나오자 조금 쌀쌀해진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왔다. 교원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다가, 박 전무의 비서를 발견했다.

그는 박 전무의 차 앞에 서서 가게 안쪽을 계속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교원을 보고는 아, 하며 다가왔다.

“저, 혹시 저희 전무님 못 보셨나요? 화장실 가신다고 하셨는데 오래 걸리셔서요.”

“박, 전무님이요?”

“네.”

교원은 난감함에 시선을 돌렸다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봤다고 말해 봤자 설명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뇨, 엇갈린 것 같습니다.”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박 전무에게는 아니지만, 그의 비서에게는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 아마 박 전무의 오후 스케줄은 모두 취소해야 할 것이다. 아니, 내일 업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교원은 조수석에 올라타 앉았다. 아직 조금, 심장이 쿵쾅거렸다. 고개를 숙이자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교원은 두 손을 마주 잡고 깊게 숨을 뱉었다.

그러자 운전기사가 슬그머니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아…… 좀, 네.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아요.”

“아까 경호 1팀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거 봤어요. 저쪽, 저쪽으로 돌아서 가던데.”

조 팀장뿐만 아니라, 경호원들은 권 대표의 주변에 상시 대기해야 했다. 대체로 낮에는 1팀이, 저녁부터는 2팀이 그의 곁을 지킨다.

눈에 띄게 함께 하는 것은 조 팀장뿐으로, 아주 가끔 필요할 때에만 조 팀장이 그들을 호출한다 들었다. 그래서 그의 직속 비서로 일한 1년 동안 단 한 번도 다른 경호 팀원들을 보지 못했었다.

“저, 기사님이 5년 일하셨다고 하셨죠?”

“아, 네. 그죠. 권 대표님이 대표직 맡으실 때부터 했습니다.”

“그럼 오늘처럼 경호팀을 부르시는 날도 있었습니까?”

운전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간혹 있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셨었는지는 모르시죠?”

대체 뭘 하려고 사람을 그리 부른단 말인가. 교원은 복부를 가격당해 컥컥대던 박 전무를 떠올렸다.

그가 뭐, 불쌍하거나 안타깝거나 하진 않았다. 엄연히 강간 미수범이지 않은가. 하지만 권 대표가 어떤 짓을 하는지가 궁금했다.

“보통은 밖에서 끝내셔서,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다만?”

“한번은 경호팀 차에 피떡이 된 사람을 태우신 적이 있는데요. 그대로 동해 쪽으로 갔고, 경호팀이 그 사람을 어딘가로 끌고 가는 것까지 본 게 다였어요.”

“아…….”

조금 예상이 갔다. 피떡이 될 박 전무를 상상하니 속이 시원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짓을 해도 경찰에 걸리지 않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처음도 아니니 괜찮은 걸까. 재벌 인생은 그렇게나 다른가.

솔직히 현실감이 없었다. 운전기사가 들려준 이야기는 꼭 조폭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지 않은가.

생각을 거듭하던 교원은 고개를 저어 쓸데없는 상념을 털어 내기로 했다. 어찌 됐든 해결이 되는 문제라면 상관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게 10분.

교원은 다음 스케줄을 미뤄야 했다. 그리고 20분이 더 지나고 나서야 권 대표가 가게 뒷마당에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설렁설렁, 평소처럼 걷지 않았다. 권 대표는 휘어짐 없는 자세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멀리서도 그의 페로몬이 느껴질 만큼, 사나운 기색이 역력했다.

교원은 조금 전처럼 페로몬에 의해 몸이 반응할까 싶어 어깨를 굳혔다.

똑똑.

그때, 다가온 권 대표가 차에 오르지 않고 조수석 창을 두드렸다. 교원은 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아래로 흔드는 손짓에 순순히 버튼을 눌러 창을 내렸다.

“이교원, 괜찮아?”

“……네?”

“아까 ……눈치채지 못해서 미안. 빨리 갔어야 했는데, 내가.”

퍽 진지한 낯이었다. 항상 장난스레 미소를 띠던 입술이 굳게 다물려 있고, 시선은 교원에게 똑바로 꽂혀 있었다. 교원은 그의 눈썹이 생각보다 두껍다는 걸 발견했다. 옅은 색이라 가늘고 부드럽게 보이던 인상이 조금은 무거워 보였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해 줬으면 좋겠어.”

“아…… 저는…….”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도, ……그랬다고 들었어. 박 전무한테.”

교원은 그에게 추행을 당했던 짧은 시간을 떠올렸다. 그에 수치심이나 분노는 느끼지 못했다. 미약한 불쾌감만이 감돌았을 뿐, 박 전무가 주는 손짓에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늘 그래 왔듯이.

“전, 괜찮습니다.”

“이전에도 이런 일 있었어?”

길고 두꺼운 손이 교원의 손등 위를 덮어 왔다.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이상하게 순간, 목이 막혔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거짓이었다. 그리 생각하려고 노력했을 뿐.

처음 이런 일을 당했을 때가 떠올랐다. 뭉게뭉게 떠오른 첫날의 기억이 하나둘씩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조수석 문이 열렸다. 창가에 기대고 있던 몸이 휘청이자, 권 대표가 재빨리 교원의 어깨를 붙잡았다.

“교원아, 나와 봐.”

축축한 게 자꾸만 볼 위로 떨어졌다. 교원은 인상을 찌푸리지도, 입술을 일그러트리지도 않았는데 비처럼 쏟아졌다. 혹시 비가 오나 해서 하늘을 올려다봤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울려면 소리 내서 울어.”

“저 괜찮습니다, 대표님.”

“퍽이나.”

기다란 팔이 어깨를 휙, 감아 왔다. 놀라 움칠거리자 권 대표가 진정하라는 듯 직각으로 떨어지는 둥근 어깨를 토닥였다.

“진짜, 괜찮습니다.”

“기사님, 퇴근하세요. 조 팀장은 비서팀에 다음 일정은 취소하라 전하고, 내 차 갖다 놔.”

진짜 괜찮은데, 권 대표가 자꾸만 위로하듯 어깨를 매만졌다. 조금 전까지는 무섭게 저를 짓누르던 페로몬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흘러나왔다.

찬 바람에 시려 오던 목덜미가 뜨뜻하게 달아올랐다. 교원은 제가 왜 이런 기분을 느끼는지 알지 못하고, 권 대표가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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