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16)화 (16/60)

출장 전에는 할 일이 많았다. 해서 오늘은 교원이 아닌 비서 2팀의 여 팀장이 권 대표를 따라나섰다.

권 대표는 오늘 아침에도 새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와 교원을 수치스럽게 했지만, 누가 비서인지 모를 만큼 챙겨 주어서 그닥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 비서가 아니어도 일을 잘해야 멋진 상사겠지.〉

〈무슨 의도로 물으시는 겁니까?〉

〈이 비서 생각은 알 수가 없으니까 물어봐야지.〉

〈……진짜로 묻는 게 아닙니다. 책임감 있게 일을 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하아…… 가기 싫다.〉

오전 중에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자 조금 걱정이 들었다. 교원은 여 팀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업무는 잘 진행 중입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해 주세요.]

이동 중인지, 여 팀장에게서 바로 답장이 왔다. 여 팀장은 당연하다는 듯 삐뚤어진 말투였다.

[비서2팀팀장: 어련히 합니다.]

본래라면 베타인 김 팀장이 갔어야 했다. 우성 알파인 권 대표를 보좌하는 일에 베타를 쓰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혹시나 벌어질 불상사를 위함이다. 하나 하필 오늘 김 팀장이 외근을 가는 바람에 여 팀장이 가게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우성의 형질을 가지고 있는 터라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싶었다. 아주 적은 확률로 일어날 일이지만, 보통 그런 것은 꼭 이런 날에 터지지 않던가.

교원은 여 팀장에게 더 말을 걸어 보려다가 말았다. 제 코가 석 자다. 야근을 해도 모자랄 만큼 일이 많았다.

“이 비서님, 이거…… 승화 엔터 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 승화요.”

승화 엔터. 어제 박 전무의 일이 잠시 떠올랐다. 실수한 쪽이 그쪽이었으니, 오늘 내로 메일이 정중하게 도착할 터다. 물론, 결론은 권 대표가 어떻게 일을 처리할지에 달렸다.

“계약 파기, 혹은 이쪽에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이 수정될 겁니다.”

“그럼 우선 미뤄 둘까요?”

“예. 진행하지 말고 두세요.”

“넵, 알겠습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직원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키가 꽤 큰 직원은 올해 입사한 스물네 살의 임도영. 열성 알파로 입사하자마자 오메가들에게 한껏 주목을 받았다.

구김살 없는 눈매에 곧은 코. 오밀조밀 잘 짜인 이목구비에 운동도 열심히 하는지 어깨도 꽤나 넓다. 생긴 것도 번듯하고, 학력도 좋은 데다 일도 꼼꼼히 잘해 교원도 눈여겨보고 있는 직원이었다. 조금 시일이 지난 후에 큰일도 맡겨 보면서 키우면 제법 잘할 듯했다.

“아, 이 비서님.”

“네, 말씀하세요.”

돌아서던 임도영이 눈을 반짝이며 다시 교원을 바라보았다. 모니터를 보던 교원이 고개를 들자, 그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저, 커피 사다 드리려고 하는데 어떤 것 드세요?”

“커피? 도영 씨가 사는 겁니까?”

“네! 저 입사한 지 오늘로 6개월 차라서요. 기념으로 팀에 돌리고 싶어서.”

귀엽다. 사회초년생이었을 때의 저는 이렇게 풋풋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교원은 작게 웃으며 제 지갑에서 법인 카드를 꺼내 건넸다.

“신입이 돈 쓰는 거 아니에요. 이걸로 사 와요.”

“네? 하지만, 그래도…….”

“괜찮으니 이걸로 사 오고, 직원들에게는 도영 씨가 샀다고 하세요.”

임도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고 고민하는 듯 주저하더니, 교원에게서 법인 카드를 받았다.

“가, 감사합니다.”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3샷으로 부탁해요.”

“네, 감사합니다!”

활기차게 대답한 임도영이 한결 가벼운 걸음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물으며 제 핸드폰에 메모하는 것이 보였다.

교원은 다시 그에게서 시선을 떼어 내고, 업무에 집중했다. 출장 다녀오는 사이 직원들이 처리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출장 스케줄을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아야 했다.

우선 지난 일주일 일정을 정리해 따로 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박 전무의 승화 엔터 건은 한쪽에 치워 두고, 비서 2팀 여 팀장이 맡고 있던 진 상무를 중간중간 체크해야 했다.

그간 여 팀장이 어떻게 일을 했는지 몰라도, 그는 비서를 자주 호출하지 않았다. 교원은 적당히 차와 과일을 준비해 가져다주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아.”

“오셨어요? 자리에 안 계셔서…….”

임도영이 커피를 들고 서 있었다. 그냥 자리에 두면 될 텐데,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커피 고마워요.”

“아, 네……!”

“그리고 다음부터는 이렇게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아요. 커피 말고, 다른 일도 그냥 두고 가면 돼요. 메모를 붙여서 도영 씨라는 걸 알게만 하면.”

임도영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네, 네, 하고 열심히 답했다. 교원은 이만 가 보라며 손짓을 하고 욱신거리는 손목을 꾹꾹 누르며 기지개를 켰다.

커피를 마시려고 보니, 그 옆에 자그마한 마카롱도 놓여 있었다. 법인 카드와 영수증도 함께. 영수증을 살펴보니 디저트는 임도영이 제 돈으로 따로 계산한 듯싶었다.

단 것을 싫어하는 편이지만, 굳이 챙겨 줬는데 먹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교원은 마카롱 비닐을 벗겨 아주 조금 깨물어 먹은 뒤, 다시 일에 집중했다.

그렇게 시간이 물처럼 흘렀다. 할 일이 많으니 시간이 빠르게 지났다.

할 일도 많은데 여 팀장을 대신해 진 상무의 비서 일도 해 주어야 했다. 진 상무는 “이 비서는 꼼꼼하네.”라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오후 3시, 점심도 먹지 않고 일에 집중하고 있었더니 머리가 살짝 어지러웠다.

어차피 야근할 것 같으니 잠깐 쉴까.

이런 상태에서는 일을 하려고 해 봤자 제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교원은 잠시 옆자리 직원에게 진 상무의 호출이 오면 연락해 달라 전하고, 휴게실로 향했다.

지끈지끈, 머리가 욱신거렸다. 어쩐지 열감도 느껴지는 듯했다. 교원은 성격이 무덤덤한 만큼, 제 몸에 대해서도 둔한 편이었다. 아픔을 모른다기보단 아픈가, 하고 의심하다 마는. 그러다가 무리해서 일을 하고 앓아눕기도 했다.

“음…….”

마침 휴게실이 텅 비어 있었다. 교원은 휴게실 소파에 몸을 길게 누이고 이마를 짚었다.

덥다. 더운 계절이 아닌데…… 이상하게 더웠다. 단추를 두 개쯤 푸르고 더운 숨을 뱉어냈다.

누웠더니 더 어지러운 것만 같았다. 교원은 끙, 소리를 내며 몸을 빙글 돌렸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거 같은데, 어쩐지 팔다리도 저리고…….

“앗, 이 비서님!”

흐리멍덩한 눈으로 천장을 보고 있을 때였다. 교원은 답지 않게 문이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휴게실로 들어온 임도영을 올려다보았다.

“쉬고 계셨는데 죄…….”

“아냐, 들어와.”

자세를 바로 하려는 무렵, 상체가 휘청거렸다. 그 순간 열기가 확 끓어올랐다. 100도에 이르러 마구 끓어오르는 물처럼 허리께부터 머리까지 뜨거운 무언가가 치솟았다.

“……으!”

“저, 저…… 괘, 괜찮으세요?”

임도영이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더듬더듬, 물었다. 교원은 소파 팔걸이에 팔꿈치를 대고, 제 이마를 짚었다. 확실히 뜨겁다.

몸 하나는 건강해 그간 흔한 감기에도 걸리지 않았건만, 이상했다. 교원은 비틀거리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때 임도영이 휴게실 문을 잠갔다.

“……도영 씨?”

고개를 들자 임도영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드러난 살결을 모두 빨갛게 물들이고 서 있었다. 그는 입을 틀어막은 채로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도영, 씨. 왜 그……럽니까?”

간신히 묻자, 임도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비서님, 그…… 오메가, 셨어요?”

“……예?”

“베타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이 비서님한테…….”

그제야 교원은 제 상태를 눈치챘다. 감기 따위가 아니다. 그래, 애초에 튼튼한 데다 아침마다 온갖 영양제를 챙겨 먹는 제가 감기에 걸릴 리가 없었다.

이건, 의사가 말했던 ‘긴급한 순간’이었다.

“자, 잠깐……만요, 도영 씨…… 헉, 흐으…….”

“어, 어, 어떡해요. 저, 알파라서…….”

교원에게서 짙은 페로몬이 흘러나왔다. 휴게실 안을 꽉 채울 만큼 강렬한 향기에 임도영이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가 고개를 쳐들었다.

임도영의 눈이 몽롱하게 흩어져 있었다. 흰자는 붉게 물들어 있고, 더운 숨을 몰아쉬었다. 본능적으로 임도영의 알파 페로몬이 흘러나왔다. 피부가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도, 도영 씨.”

“이…… 비서님. 저, 저요…….”

“정신, 차, 흐으, 으…….”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교원은 소파 팔걸이를 끌어안고 바들바들 떨었다. 아래가 축축하게 젖는 것이 느껴졌다. 이상했다. 임도영에게서 나는 페로몬 향에 온몸이 무너져 내렸다. 심장이 쿵, 쿵, 박음질을 해 댔다.

“저, 이 비서님…… 처, 처음부터…….”

“도영 씨. 정, 신 차려요.”

임도영의 손이 교원의 어깨에 닿기 직전, 교원은 최대한의 인내심을 끌어올렸다.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피부는 간지러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당장 눈앞의 알파를 끌어안고 그의 페로몬을 흡입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은 회사였고, 임도영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년생이다. 그런 그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다. 저 또한, 이럴 때가 아니었다. 고작 페로몬 때문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교원은 아랫입술을 질끈 물어뜯었다. 말랑한 속살이 터져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이 비서님, 저, 이 비서님을…….”

순수한 감정과 탐욕, 그 어딘가에 위치한 목소리가 경련했다. 올려다보자, 임도영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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