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17)화 (17/60)

교원은 파들거리는 손을 들어 임도영을 밀어냈다. 어린 알파에게 제 페로몬은 무척 자극적일 것이다. ……물론, 페로몬이란 것을 접한 지 오래되지 않은 저 또한 그의 페로몬이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도……영 씨, 흑, 아…… 여기, 회사……예요…….”

“하, 하지만. 이 비서님, 저는…….”

“정신, 차려요. 흐윽, 잘리면…… 헉, 아깝, 잖아요.”

그제야 임도영이 입술을 꾹 다물며 뒷걸음질을 쳤다. 울 듯한 얼굴이다. 진짜 울 거 같은 게 누군데. 그에게서 쏟아지는 열기에 몸이 자꾸만 제 말을 듣질 않았다. 교원은 견갑골이 비죽 튀어나올 만큼 몸을 비틀며 고개를 숙였다. 좁혀진 어깨 사이로 더운 숨을 뱉었다.

“내, 내 자리에…… 가방, 가방에 약 있어요.”

“네, 네…… 네.”

“필요시, 라고 적힌 봉투가, 헉, 있을 거, 예요.”

“알, 알겠어요. 그, 근데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것, 좀 부탁, 해요.”

조금만 더 빨리 눈치를 챘다면 좋았을 것이다. 교원은 급히 휴게실을 나서는 임도영의 뒷모습을 보다 팔걸이에 이마를 박았다.

“하아, 흐, 흐윽…….”

임도영이 나가고 나서야 참고 있던 신음을 터트릴 수 있었다. 눈물마저 뜨겁다. 볼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 낼 정신도 없었다. 교원은 이미 터진 아랫입술을 계속해서 짓씹었다. 원치 않음에도 몸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 이 비서님!”

휴게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는 문을 잠그고, 교원이 말했던 약 봉투를 들고 달려왔다. 반대 손에는 물도 함께였다.

“감, 사…… 흐, 요…….”

“드세요.”

임도영은 교원의 앞에 종이컵과 약을 내려놓고 걸음을 뒤로 물렀다. 끄트머리까지 몸을 미뤄 놓고 손으로 입과 코를 막았다. 시선을 바깥으로 돌리려 애쓰고 있었다.

교원은 떨리는 손으로 물컵을 쥐고 물을 한 모금 머금었다. 그러다 손가락에 힘이 빠져 컵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탁, 타닥……. 종이컵이 바닥에 엎질러지는 소리에 임도영의 시선이 교원에게로 향했다.

교원은 약 봉투를 뜯어 약을 털었다. 안쪽 깊게 파묻힌 약 때문에, 힘이 없는 손가락 때문에 잘 나오질 않았다. 임도영이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동동거렸다.

“도와, 도와 드릴까요?”

“아뇨, 괜, 찮……아요.”

대답을 하다 물을 삼키고 말았다. 교원은 약 봉투를 양옆으로 힘을 줘 세차게 뜯었다. 그리고 굴러 나온 하얀 약 두 개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지독히 쓴맛이 혀 안쪽에 감돌았다. 교원은 침을 모아 억지로 삼키고, 소파에 바로 늘어졌다.

“고마, 워요. 도영 씨.”

“아뇨, 아니에요. ……조, 조금 전에는 죄, 죄송했어요.”

교원은 고개를 저었다.

열성이든 우성이든, 신형질이란 것 자체는 인간의 유전자에서 ‘열성’에 해당함이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짐승처럼 발정기가 오고, 그것을 주체하지 못해 서로 흘레붙는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 않은가.

평생을 베타로 살아온 교원에게 갑작스러운 이 상황은 몹시 충격적이었다. 우성 알파와의 잠자리를 한 일에 영향을 받아 오메가가 되어서, 형질이 불안정한 것일까. 교원은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저, 저 나가 볼까요?”

“아…… 그게, 편하겠죠. ……도영 씨도.”

“저, 저는 괜찮아요. 밖에선 문도 못 잠그고…… 제가 있어야, 도와 드릴 수 있으니까.”

임도영은 조그맣게 말을 덧붙였다.

“이 비서님은, 도와 드리고 싶어요…….”

교원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 대답했다.

“제가, 연봉 협상을…… 하지는 않아요.”

“네, 네?”

“이런다고, 도영 씨한테…… 좋은 건 없다는, 거예요.”

임도영이 나쁜 마음으로 도와준 게 아님을 알지만, 교원은 그렇게 말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금 전 제게 말하려 했던 것, 그리고 방금의 말까지.

저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불편하다. 교원은 고백을 받을 때에도, 누군가가 저에게 관심을 가질 때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저를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하고. 단순히 외면만을 보고 그러는 것은 아닌지, 그저 외로워서 제게 접근하는 것은 아닌지.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저……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저는…….”

“무슨 말인지…… 알아요. 괜찮아요.”

임도영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약은 효력이 빠른 편인지, 천천히 욱신거리던 몸이 안정되어 갔다.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히트 싸이클은 발현한 날로부터 두 달 뒤 즈음에 올 거라고 했다. 다만 갑작스럽게 형질이 변한 탓에 두 달이 지나기 전에 그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럴 때를 대비한 약이 ‘필요시’약이라고 했다. 그러나 특이한 경우인 만큼, 약을 먹어도 진정되지 않으면 히트 싸이클일 수도 있다고 했다. 다행히 그 경우는 아닌 듯싶었다.

“좀, 괜찮으세요?”

“……네. 덕분에요.”

차분해지면 말하려고 했는데.

교원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아직은 조금 힘에 겨웠다. 늘어지듯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뜨자, 임도영이 벌서는 사람처럼 꼿꼿하게 선 채로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임도영 씨.”

“아…… 네, 네!”

“지금, 내가 힘들어서…… 친절하게 말 못 해요. 미안해요.”

“아닙,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바짝 긴장한 얼굴을 보니 조금 죄책감이 일었다. 교원의 직급은 대리, 임도영은 평사원. 나이 차이는 크지 않지만 그로서는 압박감이 느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긴장하지 마세요. 별말 아니니까.”

“네, 네. 괜찮습니다.”

안 괜찮은 게 티 나는데, 뭐.

교원은 한숨을 푹 쉬며 흘러내린 앞머리를 뒤로 넘겼다.

회사에서만큼은 누군가에게 들키기 싫었다. 권 대표 직속 비서의 베이스 조건인 베타, 그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었다는 건 누구라도 힐난을 할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베타라고 말을 해도 제게 눈독을 들이던 사람들이 오메가라는 소식에 어떻게 대할지, 안 봐도 뻔했다.

“형질이 바뀐 건…… 얼마 안 됐어요. 2주인가, 3주 전쯤.”

“그, 럼 원래는 베타셨던 건가요?”

“네. 사고가 좀 있었고, 그 때문에 오메가로 발현했습니다.”

“아…….”

본래의 교원이라면, 권 대표에게 사실을 알리고 제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교원에게는 그리할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

“권 대표님 비서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는 거…… 알아요. 근데, 제가 빚이 좀 많거든요.”

“…….”

“제 연봉을 그대로 쏟아부어도, 이자도 못 갚아요. 그래서 이렇게 된 거 아무도 모릅니다. 권 대표님께도 말씀드리지 못했어요.”

임도영은 말이 없었다.

그가 이 사실을 퍼트려, 결국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제가 안일했던 탓이니까. 그렇게 되면 기존의 연봉보다는 덜하더라도 다른 회사를 찾아야 할 것이다.

“비밀로 해 줬으면 좋겠어요. 임도영 씨가 싫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부탁이에요.”

늘 당당하던 교원이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주름 하나 없던 정장은 구겨져 있고, 정갈하게 끝까지 채웠던 셔츠 단추는 세 개나 풀어져 안쪽 속살이 훤히 보였다.

조금 전 열감의 여운으로 눈가와 볼, 뼈마디와 선명히 드러난 쇄골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었고 손끝은 잘게 경련하고 있었다.

임도영은 고민도 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전…… 소문, 안 내요.”

고개를 들어 지그시 쳐다보자 임도영은 이 상황이 어색한지 시선을 한곳에 두지 못하고 있었다.

“제가, 어떻게 이 비서님께 그래요…….”

다행이다.

교원은 낮은 한숨을 뱉었다. 산처럼 늘어나는 빚은 아마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는 회사가 부도나기 직전,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렸다. 교원은 얼굴도 잊은 그 아버지는 처음엔 1억, 그다음엔 3억. 그렇게 빚을 늘려 나갔다.

아마 그즈음, 회사가 다시 자리를 잡아 갔던 탓일 것이다. 고모의 말로는 어느 순간 회사의 규모가 커졌다고 했다. 갚을 수 있을 거라 믿었는지 몰라도 아버지는 그렇게 원금만 5억을 빌렸다. 거기다 회사가 부도나며 생긴 빚까지 하면…….

“그럼, 비밀 지켜 주실 건가요?”

“당연하죠, 당연히…… 아무에게도 말 안 해요. 모르는 사람한테도 안 할 거고, 엄마한테도 안 할 거예요.”

엄마, 그 단어에 교원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풋풋한 냄새가 나는 단어였다. 저는 그것을 불러 본 기억도 없건만, 괜히 저도 그에게 동화되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감사해요. 제가 부주의했던 일인데, 난감한 상황에 처하고 도와주시기까지 하고.”

“아니에요, 도와 드릴 수 있어서 기뻤어요.”

“임도영 씨는 이만 자리로 돌아가요. 사수가 뭐라 할 거 같은데.”

교원의 말에 임도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잊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 그, 그렇죠.”

“혹시 뭐라 하면, 제가 불렀다고 해요.”

교원은 등받이에 등을 나른하게 기대며 웃었다. 허둥지둥 움직이는 임도영이 퍽 귀여운 탓이었다.

임도영은 평소 표정이 없다시피 하던 교원이 웃는 게 신기했는지, 멍하니 교원을 쳐다보다가 다시금 아! 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 비서님도 오늘은 무리하지 마시고, 편히 쉬세요!”

“네.”

벌컥 열린 휴게실 문 밖으로 임도영의 빠른 발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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