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32)화 (32/60)

그 뒤로는 곧바로 숙소로 향했다. 교원은 구토를 했다 했으니, 디너로는 속이 편한 것을 숙소로 가져다 달라고 하고 올라왔다.

임도영은 어물거리다가, 조 팀장이 부르자 후딱 식당 로비로 뛰어갔다.

교원은 혼자 숙소에 들어가 식사를 기다리다가, 직원이 가져온 것을 거실 식탁에서 먹었다.

탁자에는 버섯 스튜와 고기를 부드럽게 으깨 크림소스를 얹은 요리, 그리고 따뜻한 차가 올라왔다.

「차가 식은 경우, 다시 불러 주시면 데워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직원은 금세 숙소를 나갔다.

교원은 권 대표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임도영과 잡은 2인실에서 식사를 했다.

꽤 넓은 방이 칙칙한 고요함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거실에는 수저와 그릇이 조금씩 부딪치는 소리, 따뜻한 차로 목을 축이는 잔잔한 소리가 침묵 가운데 가라앉았다.

이렇게 자주 일이 터지면 오메가라는 걸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오메가로 사는 건 생각보다 더, 아주 많이 제 생활을 뒤집어 놓았다. 매일 아침 조절제를 챙겨 먹어야 했고, 열이라도 오르면 갑작스러운 히트 싸이클이나 그 비슷한 증상이라도 올까 긴장해야 했다.

자신은 언제까지 권 대표에게 이러한 사실을 숨길 수 있을까.

‘그날의 베타’를 찾고 있는 권 대표에게 어느 날 오메가로 발현했고,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는 걸 들키면 그는 어떤 반응을 할까.

거짓말을 가장 싫어하는 권 대표가, 과연 제게 화를 내지 않을까.

그는 그간 제 옆에 오메가가 있었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제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화를 낼 것이다.

생각보다 정이 많은 사내인 만큼, 다른 곳으로 전근을 보내거나 다시 비서 1팀으로 보내는 것에서 그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자신은?

스튜를 비워 가던 손이 허공에 멈추었다. 교원은 수저를 내려놓고 건너편 빈 의자를 쳐다보았다.

아마 그 후로는 권 대표를 볼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어쩌다 마주친다 해도 인사 하나 주고받지 못할 사이가 될 수도 있었다.

그에게 경멸 어린 시선을 받는다면 교원은, 자신은 어떤 기분일까.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그의 시선을 떠올려 보았음에도 감은 오지 않았다. 어쩌면 교원의 마음이 거기까지인 걸 수도 있었다.

권 대표는 계속해서 그날의 베타를 찾을 것이고, 결국엔 그게 자신이라는 걸 알아챌 것이다. 깊게 파고들면 거짓은 진실보다 또렷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교원은 회사를 관두는 쪽을 생각해 보았다. 자연스레 차의겸이 떠올랐다.

그날 이후로 온 연락은 비행기에서의 한 번이 다였다.

퇴사하고 나면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조금 가닥이 잡혔다. 어쩌면 강제로 그러한 일을 시킬지도 몰랐다.

아마, 오메가로 발현했다는 얘기에 차 회장이 생각을 바꾸었나 보지. 타이밍이 딱 그러했다.

차의겸은 이전부터 저를 갖고 놀기를 원했고, 차 회장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꼬박꼬박 돈을 보내 주는 병신을 그렇게 쉽게 내어 주겠는가. 하지만 오메가라면 말이 달랐다. 그가 자신을 어떻게 이용해 먹을지, 어떻게 구렁텅이에 빠트릴지.

그 생각을 하니 머리가 욱신거렸다.

“하아…….”

아직은 들키지 않고 버티고 싶었다.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태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연봉이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버티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다른 곳도 연차를 쌓으면 이 정도는 금방 벌 수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이곳에 남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외면하고 싶은 감정. 어차피 오래가지 않아 사그라들 감정.

교원은 직원에게 그릇을 치워 달라고 연락하고, 소파에 앉아 바깥 전경을 쳐다보았다.

심혈을 기울여 예약한 곳답게 커다란 창에서 노을빛이 쏟아지며 들어오고 있었다.

노을 아래로는 야경이 기대되는 건물들이 높게 솟아 있었고, 벽지와 커튼, 인테리어 하나하나가 세심하게 고르고 고른 티가 났다.

소파는 매끄러운 가죽으로 되어 있어 몸을 부드럽게 감싸 주었다.

저 같은 사람이 이런 곳에 올 수 있는 것도,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은 것도 모두 권 대표와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교원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청승맞은 생각은 그만하고 싶었다.

들키면 들키겠지. 쫓겨나든, 전근을 나가든, 스스로 퇴사를 하든. 그때가 되면 결정하게 되겠지.

저답지 않은 생각들이었다. 곧 찾아올 미래의 일, 그 결정을 미루는 것들.

교원은 주머니를 뒤적이다 아, 하고 몸을 일으켰다. 핸드폰을 아직 돌려받지 못한 까닭이다. 조 팀장에게 연락해 내려가야 할지 물어야 했는데.

결국 몸을 일으켰다. 내려가 보면 알지 않을까, 하고.

신발을 고쳐 신고 현관 문고리를 잡았다. 아래로 내리는 순간, 건너편에서 카드를 인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임도영 씨인가.

“아…… 대표님?”

“너, 여기 있을 줄 알았다. 짐도 다 여기로 옮겼어?”

“……네.”

권 대표의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아, 짐도 이쪽 방으로 옮겼다. 교원이 눈을 내리깔자 권 대표가 한숨을 쉬더니 방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는 금세 방 안쪽에서 교원의 짐과 코트를 챙겨 나왔다.

“뭐 해, 안 나가고.”

“아, 네.”

상당히 화난 것 같은데, 왜 또 저를 들이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교원은 문을 열어 권 대표가 먼저 나갈 수 있게 한 뒤, 다시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까지 가는 길에도, 엘리베이터에 올라 위층으로 가는 순간에도 권 대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제 숙소의 문을 열어젖혔다.

확실히 권 대표의 숙소는 2인실보다 더 크고 넓었다. 전면에는 유리로 된 통창이 크게 펼쳐져 있어 노을빛이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구부터 벽지, 소품이나 주방 도구들까지 하나하나 고급스럽기 짝이 없었다. 교원은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권 대표는 안방에 교원의 짐을 내려놓고, 코트는 옷걸이에 걸고서 거실로 나왔다.

그의 얼굴은 아직도 굳어 있었다.

일정이 어그러지는 것에 이렇게 화를 내던 사람이었나. 오히려 일정을 몰라 제가 매번 알려 주어야 했던 사람이었는데.

아니, 스케줄을 빼먹고 놀러 가기 일쑤여서 일정 따윈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권 대표였다. 그래서 더 그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이 비서.”

“네, 대표님.”

교원은 늘 그렇듯 차분히 눈을 내리깔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권 대표는 창밖을 바라보며 팔짱을 낀 채로 서 있었다.

노을이 그를 피해 거실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권 대표는 소리 없이 상체를 움직여 정면으로 교원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굳은 얼굴이었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난 걸까. 권 대표의 생각은 모두 제 손안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중이 읽히지 않는 것은 처음이었다.

때마침이라고 해야 할까, 창밖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후두둑 떨어지는 장대비가 높은 층의 숙소를 지나쳐 바닥으로 끝없이 추락했다. 여러 물방울에 흐려진 LA 전경이 노랗게 물들었다.

“고민을 해 봤는데 말이야.”

“예.”

눈이 시렸다. 교원은 눈가를 살짝 비비며 대답했다.

“한 번 더 길을 잃으면, 미아 방지 목걸이를 거는 건 어때.”

“……예?”

퍽 진지한 얼굴로 뱉은 말이 하도 어처구니없어서, 교원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권 대표는 진심인지 기다란 다리를 움직여 소파에 앉았다. 긴 다리가 테이블을 건드리자, 다리를 꼬고 저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꼭 무릎이라도 꿇어야 할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면 요즘은 칩으로도…….”

“진심이세요?”

“응, 진심이야.”

무릎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올린 권 대표가 교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나 할 말 많아.”

“그렇게 보이십니다.”

“사적인 일로 많아.”

“들어는 드리겠습니다.”

한 발자국 다가서자,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제 무릎을 탁탁 소리 나게 쳤다.

그래서 좀 더 가까이 갔더니, 권 대표가 “아!” 하고 짜증을 내며 교원의 허리를 잡아 제 옆에 앉혔다.

“……굳이 이 자리에 앉아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슬쩍 째려보자 권 대표가 고개를 휙 돌렸다.

“진지한 얘기니까.”

“…….”

교원은 속으로 권 대표가 등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권 대표가 손을 내밀어 교원의 손을 꽉 붙잡았다.

“이렇게 손잡고, 눈도 마주치고.”

살짝 고개를 숙여 시선을 맞춰 준 권 대표가 교원의 까만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속삭여야 하니까.”

아주 자그맣게, 간지러울 정도로 조그마한 소리였다. 이 남자가 지금까지 어떻게 사람을 꼬셔왔을까. 이렇게? 귓가를 간지럽히면서, 눈을 맞추고, 손을 맞대면서…… 그러다 입도 맞추고?

교원은 권 대표를 가만히 보다가 두 손을 휙, 들어 올리고 몸을 돌렸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니 짜증이 팍 치솟았다.

그리고 정자세로 앉아, 제 무릎 위에 손을 올렸다.

“얘기하시죠.”

“낭만이 없어, 이 비서는.”

“…….”

곧바로 침묵이 감돌았다. 교원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떨궜다.

“화내서 미안해.”

“죄송합니다.”

둘이 동시에 말을 뱉었다. 당연하다는 듯 눈도 마주쳤다. 교원은 다시 고개를 저으며 “제 잘못이 맞아요. 피해 드린 거니까.” 하고 작게 속삭였다.

사실 지금은 모든 게 피곤했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기도 했고 제가 실수를 한 것이 믿기지 않기도 했다.

아마 그 ‘실수’ 때문에 모든 걸 관두고 싶어진 것일 터다.

“무슨 피해.”

“제가 몸이 안 좋아서 일정을 망쳤지 않습니까.”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로봇처럼 딱딱 대답하자, 권 대표가 미간을 설핏 찌푸렸다.

“그래서 방을 옮긴 거야? 내가 이 비서한테 화난 줄 알고?”

“예.”

“…….”

권 대표는 깍지를 낀 손에 턱을 괴더니, 약 3초간 벽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푸우욱,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교원의 허벅지에 몸을 뉘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교원이 손바닥으로 철썩, 철썩 어깨를 내리쳤지만 조금도 소용없었다.

“저기요? 이보세요? 뭐 하시는 거예요?”

“하아아…… 이 비서어.”

“미친, 변태 같으십니다. 좀, 놓으시죠!”

허벅지에 얼굴을 묻고 부비부비, 비벼 대던 권 대표가 고개를 번뜩 들었다. 그러곤 눈썹을 축 늘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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