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33)화 (33/60)

“얼마나, 내가 놀란 줄 알아?”

“예, 예?”

교원이 황당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권 대표를 놓쳐서, 그를 잃어버린 건 자신이었는데 왜 그가 놀랐단 말인가.

“아무래도 외국이니까…… 하, 처음엔 그냥 좀, 빨리 가길래 금방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

“이 비서 발이 그렇게 빠른 줄 내가 몰랐지.”

그제야 소파에 얹어진 한 손이 조금 떨고 있는 게 보였다. 교원은 눈을 깜빡이다가, 미아가 된 건 자신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왜 사람을 걱정시키냐고. 어?”

“아니, 그, 전…… 대표님 찾으려고.”

“핸드폰도 없고, 경호도 안 붙은 게 왜 날 찾아. 바보야?”

무릎에 뺨을 비비던 권 대표가 고개를 돌려 교원을 올려다보았다. 바보냐고 묻는 얼굴이 진심이다.

교원은 조금, 아니 조금 많이 타격을 입었다.

“바……보요?”

“미아 방송까지 했는데, 못 들었어?”

“……설마 이교원 어린이를 찾습니다, 그거요?”

교원은 어처구니가 없어 허,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런 식으로 하면 누가 찾아 줘요, 아니, 뭣보다 그런 게 돼요, 거기서?”

“내가 못 하는 게 어디 있어, 멍청아.”

“멍……청…….”

허탈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확실히 오늘은 제 실수가 컸다. 아무리 놀랐다 해도 핸드폰까지 주고서 그렇게 자리를 빠져나와서는 안 됐는데.

그리고 커다란 두 손이 양 뺨을 쥐어 당겼다.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입술이라도 닿을 기세라 교원의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이 비서는 아팠던 것뿐인데 내가 왜 화를 내. 내가 말했잖아. 난 이 비서 그냥 부하라고 생각 안 한다고. 무슨 일 있나 걱정만 했어. 내가 이 비서 핸드폰도 가져가고, 이 비서도 놓쳤잖아. 다 내 잘못이잖아. 근데 왜 그게 이 비서 잘못이야. 아니, 아니지. 이 비서가 그렇게 빠르게 도망갈 줄 내가 알았겠어? 무슨 술래잡기 하는 줄 알았어. 테라스 나갔더니 안 보이지, 내려갔더니 또 안 보여. 바깥에 나가도 조 팀장과 임도영만 눈을 깜빡이고 있지.”

후다닥 뱉어진 말끝에 익숙한 이름이 들렸다. 교원도 그들을 마지막에 본 장소에 분명, 분명 갔었다. 근데 저는 못 보고, 권 대표만 봤다고?

“조 팀장님과 임도영 씨, 그 자리에 계셨습니까?”

“어! 근데 너, 내가 한 말에 대한 대답이 그게 다야? 응? 나 속상하다고. 서럽고, 서운했다고. 엄청 걱정도 했다고.”

권 대표의 말은 한쪽 귀로 흘렸다.

“…….”

교원은 아무 말 없이 입술을 훑었다. 어릴 적부터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아는 길인 줄 알았는데 길을 잃어버렸고, 집 앞에서 잃은 적도 있었다.

분명, 나는 조 팀장과 임도영…… 못 봤는데.

교원은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자, 권 대표가 또 마구 쏟아 뱉었다.

“지금도 내 말 안 듣지! 역시 이 비서는 나보다 임도영이랑 있는 게 편해? 이제 막 들어온 신입이잖아? 나랑은 1년 동안 있었는데 상사라서 불편한 거야? 진짜? 나는 이 비서 도와주고 싶었는데, 이 비서가 딱 잘라서 난 안 된다고 하니까 기분이 상했어. 미아 방송도 했는데 그것도 못 듣고, 임도영이랑 오순도순 시간 보낸 거야?”

“오순도순…… 아니고, 아팠다니까요. 그리고 등 좀 두들기는 건데 굳이 사람을 오라 가라 해요.”

“그럼…… 그럼. 임도영이 먼저 도착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거야? 내가 먼저 도착했으면 임도영보다 내가 먼저였을 거다, 이 말이야?”

순간 멈칫, 했다. 교원은 권 대표를 올려다보았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권 대표의 표정이 상당히 표독스럽다. 이번에야말로 아들을 가진 후궁이 중전을 독살해 죽이겠다고 선포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교원은 그 상황을 떠올렸다. 아마 권 대표가 왔다면 자신은 입을 틀어막고 그가 나가길 기다렸을 터다. 절대 그에게 도움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하죠. 누구였는진 딱히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메가임을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

“네.”

조금 전 짧은 정적이 거슬렸는지 권 대표는 몇 번이고 물었고, 교원도 그에 맞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너무 당황한 마음에 어디까지 가는지도 모르고 미친 듯이 걸었던 기억만 났다. 교원은 살짝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려 권 대표의 머리통을 꾸욱, 밀어냈다.

“주접부리지 말고 비켜요, 무거우니까.”

“나 무거워?”

“예. 요즘 대표님 운동 안 하시죠? 살찌신 거 같은데 관리 좀 하세요.”

머리에 든 것도 없는데 무겁다. 허벅지가 이제야 가벼워졌다. 몸을 일으켰다. 교원은 거실 테이블에 올려진 제 핸드폰을 발견하고 집어 들었다. 연락이 잔뜩 밀려 있을 것이다.

“뭐, 주변 구경은 좀 하고 오셨어요?”

원래라면 쇼핑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교원은 손목의 시간을 확인하며 핸드폰을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었다.

“네가 그러고 있는데 뭔 구경이야.”

“생각보다 따뜻한 분이셨네요.”

전원은 켜져 있었다. 한데 부재중 전화라거나,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다.

전화 목록을 보니 제가 잠이 든 시간 동안 몇 차례 주고받은 기록이 있었다. 메시지도 마찬가지였다.

[비서2팀팀장: 파일 보내드립니다. 시안 확인해 주세요.]

[알아서 해.]

[비서2팀팀장: ?]

“뭐야.”

교원은 급하게 다른 메시지도 확인했다.

[인사팀팀장: 다음 달 회의 아이템 한번 봐 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니]

죄다 그 모양이었다.

교원이 반드시 체크해야 하는 것들은 진행해, 라거나 수정사항을 체크한 답이 가 있었고, 그 외의 것들은 한결같이 싸가지 없는 거절 멘트로 점철돼 있었다.

“이, 아니, 대표님. 이거 대표님이 하셨어요?”

“어? 뭐?”

“이거, 저한테 연락 온 거요.”

[비서2팀팀장: 공주 공장에서 품목 하나가 빠졌다고 하는데요.]

[그걸왜나한테말해]

교원은 오간 메시지 창을 켜서 권 대표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권 대표가 눈썹을 씰룩이더니 어깨를 과장되게 으쓱였다.

“난 모르는 일.”

“누가 봐도 대표님 말투인데요.”

“이 비서가 한 거 아냐? 보니까 어, 대답 잘했네. 이 비서한테 물을 것도 아니잖아.”

눈을 못 마주친다. 이 인간, 아예 고개를 돌려서 피하고 있었다.

교원은 몇 번 헛숨을 뱉다가 이마를 짚었다. 이걸 어떻게 해명해야 한단 말인가. 대표가 했다고? 다른 사람도 아닌 상사를 탓하란 말인가.

“이…… 씹 ……하아.”

속 깊은 곳부터 한숨이 우러나왔다. 테이블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자, 권 대표가 슬그머니 건너편에 앉았다.

“뭘! 뭘 잘했다고 내 앞에 앉아요?”

“앉, 앉지 마?”

“바닥에 앉아요.”

다시 권 대표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교원은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가,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교원은 뭐든 깔끔하게, 완벽하게 처리하는 성격이었으나 본인에게 좋지 않은 단점이 존재했다.

큰일이 아니면 거절을 못 한다는 점, 떠안으려고 하는 점, 아는 척 굴면서도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신경을 많이 쓴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래서 이렇게 필요치 않은 연락을 모두 받고 있었고, 이전에도 권 대표에게 무어라 들었듯 다른 사람의 일을 떠맡아 하기도 했다.

무리해서 일하면 고맙다는 말이 돌아왔다. 걱정해 주는 사람은 없었고, 교원의 일 처리를 칭찬해 주는 게 다였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권 대표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싸가지 없게 반말을 툭툭 뱉었다는 게 문제겠지.

교원은 전화 목록을 확인했다. 보아하니 비서 2팀 팀장, 인사팀 팀장, 서 1팀 팀원 몇몇이었다.

“전화…… 대표님이 하셨어요?”

“아니. 임도영 씨한테 맡겼는데.”

“진짜 미치겠네.”

이렇게 되면 진짜 자신이 보낸 게 되지 않는가. 교원은 앞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리고 아으, 하고 짜증을 팍 냈다.

“나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

“계속. 계속이요.”

교원은 휙, 돌아앉아 여러 번 메시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불안감이 마음을 감돌았다.

어릴 적부터 그의 편은 없었다. 교원이 칭찬에 목말라하는 것은 그의 삶이 원인이었다. 물론, 조금도 티는 나지 않았지만.

“이 비서. 너 그거 알어?”

“뭐요.”

등 뒤에서 조그마한 목소리가 슬금슬금 기어 왔다. 퉁명스러운 대답도 대답이라고, 권 대표가 조금 전보다 힘을 줘 입을 열었다.

“너 그렇게 다 해 주는 거 말이야. 아래에선 뭐라고 소문나는 줄 알아?”

교원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교원은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권 대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때, 타이밍 더럽게도 누군가 벨을 눌렀다.

띵동, 띵동.

벨 소리에 교원이 몸을 일으켰다. 심란한 마음을 대변하듯 발걸음이 빨랐다.

“대표님, 조 팀장입니다.”

“대표님, 이 비서님! 저도 왔어요!”

조 팀장과 임도영이었다. 교원은 현관문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잠시만요.”

“식사는 좀 하셨어요? 속은 괜찮으시고요?”

임도영이 급하게 재촉했다. 교원은 아직 사회에 때 타지 않은 임도영이 귀여워 웃음을 흘렸다.

도어 록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권 대표가 낮은 음성이 끼어들었다. 조금 전, 그가 끝맺지 못한 말이었다.

“그렇게 하면, 호구라는 소리 들어. 써먹기 편한 호구 새끼.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살아. 네가 다 도와주고 헌신한다고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사람 없어.”

버튼 위에 올라간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맞는 말이고, 질리도록 저 스스로에게 말하고, 또 새기려고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스스로는 벗어날 수 없었던 것. 교원은 멍한 얼굴로 멈춰 섰다. 권 대표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선명하게 귀에 꽂혔다. 이상하게도.

“진짜 너한테 고마워할 사람한테만 그렇게 하라는 뜻이야. 너 이용하려는 사람들한테는 그러지 말고. ……어른 되면 다 그래, 다 이용하려고 해.”

바로 코앞, 현관문을 사이에 둔 임도영과 조 팀장이 재촉하는 목소리보다, 멀찍이서 조곤조곤 말을 뱉는 권 대표의 진지한 음성이 콕콕 심장을 찍었다.

“너 아직 스물일곱이잖아. ……내가 도와줄게. 호구 안 되게.”

교원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말이 끝나자마자, 꾹, 도어 록 버튼을 눌렀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와 저 사이, 이상한 침묵이 감돌 것 같아서. 저보다 아이처럼 보이던 권 대표의 말이 너무나 옳은 걸 알아서.

누르자마자 문이 벌컥 열렸다. 조 팀장과 임도영이 자연스레 숙소 안으로 들어섰다.

“우와, 대표님 방은 진짜…… 우와, 신기해요. 제 방도 놀랐는데, 여기는 진짜 진짜 다르네요.”

“요 방으로 와인이랑 안주 주문했습니다, 대표님. 대표님이 결제에! 해 주실 거죵?”

순식간에 숙소가 왁자지껄해졌다. 조 팀장이 작게 애교를 부리며 거실로 들어서고, 교원은 두 사람을 안으로 들이고 마지막으로 몸을 돌렸다.

이쪽을 바라보던 권 대표와 눈이 마주쳤다. 또렷한 눈동자가, 다물어진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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