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이의 목소리가 조금 울먹이는 듯도 했다. 아닌 척 냉정하게 답하지만, 코를 훌쩍이는 게 들렸다.
상사에게 혼이라도 났나 보지. 아니면 일하기 싫다든가.
그럼 나가서 울든가, 왜 회사 내 화장실에서 운단 말인가.
권 대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찝찝함에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입구에 등을 기댄 채로 미간만 찌푸렸다.
“입금……했잖아. 그게 지금 있는 거 다야.”
- 생활비 남긴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야, 교원아. 너 그거 다 입금해도 빚 계속 쌓여. 이자만 갚다가 죽을래?
교원.
권 대표는 그 이름에 입을 틀어막았다. 수화기 너머 사내의 목소리가 꽤나 컸다. 말 하나하나가 들릴 만큼.
“씹, 새기야. 생활비 없으면 회사는 어떻게 다니라고.”
- 최대한 줄여. 아니면 저번에 말한 거 할 거야? 내가 그게 더 빠르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 목소리 키우지 마라.
“그건…… 싫다고 했잖아. 평생, 일해서라도 갚겠다고, 했잖아.”
- 지금 네 연봉으로 못 갚는다고, 씨발아. 왜 말귀를 못 알아 처먹어?
“…….”
- 연말 협상 잘해라. 1년치 이자는 갚고 살아야 우리도 먹고살지 않겠냐?
그렇게 전화는 끊긴 듯했다. 교원은 아무 말이 없었고, 상대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권 대표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서서 벽을 쳐다보았다.
이래서 성과에 그리 집착했던 건가. 이래서, 작은 실수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걸까.
이런 이유로 비서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와 놓고도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매일같이 일에 매진했던 걸까.
어린 나이에 냉철하고, 칼같이 군다고 생각한 제가 부끄러웠다. 권 대표는 조용히 자리를 피하려 벽에서 등을 떼어 냈다.
그러나 이어진 소리에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흐…… 흐윽, 끄흐, 하아…… 하, 흐읍, 흑, 왜…… 흐으으, 흑, 흐윽, 흐, 끅!”
참아 내려던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 나이엔 꽤 받는, 그 연봉으로도 빚을 청산하기는커녕 이자만 겨우 내고 있으니 막막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홀로 버텨 왔을까. 대학생? 아니, 그보다 더 옛날일까.
권 대표가 알기로 교원의 호적에는 아버지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사망 상태였다. 꽤나 오래전에.
전화를 해 대는 꼴로 봐서는 분명 양아치 같은 놈들에게 빌린 게 분명했고, 빚은 아버지로 인한 것일 터다.
권 대표는 그 자리에서 교원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서 있었다. 누군가 화장실을 쓰려고 오기라도 하면 손을 저어 다른 곳으로 보냈다.
잊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비서, 교원은 겨우 스물일곱이었다. 군을 제대하고 대학을 다니다 이제 막 졸업한 나이와 비슷했다.
본래 그 나이 또래라면 아직 부모님과 사는 어린 나이. 돈에 목을 맬 나이는 한참 먼 것. 그러나 교원은 그것을 너무 일찍 깨닫고 말았다.
그리고 교원도, 힘들면 울 줄 아는 어린아이였다.
권 대표는 교원이 몸을 추스를 즈음에 자리에서 조용히 벗어났다. 화장실이고 뭐고,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싶어졌다. 오래전에 끊었음에도 불구하고.
권 대표는 옥상에 올라가 아무 사원에게 담배 한 대를 빌려 태웠다. 오랜만에 피우는 담배는 독하고 씁쓸했다. 다시 뱉고 싶을 만큼, 그리 달콤하지 않았다.
권 대표는 장초를 짓이겨 버리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때마침 돌아온 이 비서는 울었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은 채로 무뚝뚝하게 걸어와 권 대표의 테이블에 일거리를 올려 두었다.
“이거, 오늘까지 꼭 처리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응, 알겠어.”
순순한 대답에 교원이 한 번 뒤를 돌아보는 게 느껴졌다. 권 대표는 어쩐지 그날만큼은 교원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또 다음 날. 권 대표는 김세영과의 연락을 점차 끊었다. 그녀에 대한 감정이 사그라든 탓이었다.
그보다 이상하게 이 비서에게 눈이 갔다. 그는 평소와 같이 행동하려 굴었지만, 이 비서는 “요즘 어째 잠잠하십니다.” 하고 날카로운 한마디를 뱉곤 했다.
그리고 그 주 금요일, 권 대표는 교원과 조 팀장, 경호 2팀 팀장, 비서 1팀과 2팀 팀장을 불러 회식을 제안했다.
힘들 교원에게 술도 먹여 주고, 맛있는 것도 맛보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교원은 상당히 술이 셌고, 기억을 먼저 잃은 건 자신이었다.
그날, 교원과 잠을 자게 될 줄은 아마 신도 몰랐을 것이다.
거기까지 회상하던 권 대표는 한숨을 내뱉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그 후로 교원이 빚을 진 놈들에 대해 알아보았었다.
그리고 교원 몰래 그쪽과 접촉을 했고, 때마침 교원을 끌고 간 것을 알고 급히 연락을 취했다.
차 회장은 저들에게 접촉한 이유에 대해 그때 깨달은 듯 보였다. 권 대표는 상관없었다. 그들이 자신을 공격하려 든다 해도, 그 전투의 승리자는 자신일 테니까.
쾅!
턱을 괴며 진지한 얼굴을 하던 권 대표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대표님! 주무십니까?”
“어? 어어, 아니!”
“근데 왜 부르는데 답을 안 하십니까? ……하, 10분 남았습니다. 빨리 준비하고 나오세요.”
“응응, 미안. 금방 갈게!”
몇 번 두드렸던 모양인지 이 비서의 목소리에 날이 세워져 있었다. 권 대표는 다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정돈했다.
평소처럼 시간이 많지 않아 머리카락이 살짝 흘러내렸다. 권 대표는 그 상태로 방에서 뛰쳐나왔다.
“미, 미안! 잠깐 생각 좀 하느라.”
“주무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 문까지 잠가 놓으셔서 혹시 창문으로 도주라도 하셨나 하고…….”
“여기 13층인데.”
“대표님이라면 가능하실 거 같아서요.”
휙, 저를 지나쳐 현관으로 가는 걸음이 몹시 뽀짝하다. 걸을 때마다 뽁뽁, 아기 신발 소리가 날 것 같았다.
권 대표는 멍한 얼굴로 교원의 발을 보다가 다시 한번 그의 호통을 듣고 나서야 허겁지겁 구두를 신고 따라 나갔다.
* * *
“우선 오후 12시, BM사에서 미팅이 있습니다. 이후 6시에 컨퍼런스에 참여하실 예정입니다. 뭐, 여기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김 이사님께서 업계 동향을 살피실 테니, 대표님께서는 업계 분들과 적당히 네트워킹, 그니까 친목을 다지시면 됩니다.”
“응.”
“그리고 임도영 씨.”
“네, 이 비서님.”
앞좌석에 앉은 임도영이 거울을 통해 눈을 맞춰 왔다. 교원은 문득 그게 귀여워서 살짝 웃고, 다시 말을 이었다. 옆에서 따끔따끔한 시선이 느껴졌다.
“오늘 대표님께서 BM사와 미팅하실 건은 쉽게 말해 자율 주행 기술에 대한 제안입니다. 이미 BM사에서도 호의적으로 보고 있는 상태라 크게 어려운 미팅은 아닙니다만, 가능하시다면 대표님을 보좌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예? 제, 제가요?”
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얼굴이 무섭다는데 어쩌겠는가.
권 대표가 나오기 전까지 이리저리 저를 살펴봤으나 제 눈에는 그리 무서운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교원은 권 대표의 의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전에 상무님 미팅 가실 때 세 번 보좌해 드린 걸로 압니다. 똑같이 하시면 됩니다.”
“그, 그래도 중요한 건인데 제가 실……수를 하면.”
“괜찮습니다. 실수할 것도 없어요. 제가 도영 씨 옆에 있을 테니, 제가 하라는 대로 움직이시면 됩니다.”
“아…….”
임도영의 작은 침음에서 걱정과 불안이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다면 저도 비서 1팀 팀장이나, 경력이 긴 사람으로 데려왔겠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쉽게 설명드리자면, 저희가 내보이는 자율 주행 기술은 주행 중의 센서 기술입니다. 현재는 앞차와의 거리가 감지되면 자동으로 차가 멈춰 서지만, 다시 출발하기 위해서는 액셀을 눌러야 합니다. 하지만 이 기술은 신호등 색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앞의 차에 맞춰 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신호등 색이나 앞차와의 간격을 세밀하게 센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에 관해 기술을 연구 중이고 어느 정도 확보한 상태입니다.”
“네, 네엡.”
임도영이 급하게 수첩에 적는 것이 보였다. 교원은 차 시트를 두드렸다.
“적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적당히 알고만 있으면 되는 문제고, 어차피 저희에게 질문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라서요.”
“네엡.”
“하여튼 이 기술을 BM사의 상품에 적용하는 것에 대한 미팅입니다. 모든 건 대표님과 김 이사님께서 하실 테니, 임도영 씨, 아니 임 비서님은 옆에서 권 대표님이 불편하시지 않게만 보좌해 드리면 됩니다.”
“넵, 알겠습니다.”
교원은 말을 마친 뒤, 미팅에 사용할 자료를 정돈했다. 권 대표가 장담한 만큼 완벽하게 외웠겠지만, 혹시 모를 실수에 대비해 옆에서 자료를 함께 체크해 주는 것이 본래 교원이 하는 일이었다.
임도영이 하는 일은 PPT를 자료에 맞춰 넘기는 것이었으니, 그가 PPT에 대해 확실히 인식했다면 자료를 넘기는 것 또한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PPT와 함께 드린 자료 다시 체크해 보시면 좋을 겁니다. 딱 반대로 일을 하게 되신 거니까요.”
그렇게 임도영에게 일을 전달하고, 핸드폰을 확인하려는 찰나였다. 창가에 기대서 턱을 괴고 있던 남자, 아까부터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던 권 대표가 입을 열었다.
“이 비서.”
“예?”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추자 또 아침처럼 양 볼을 붉히더니, 거만한 자세를 고쳐 잡고 제 얼굴을 가렸다.
교원은 애써 한 메이크업이 무너진다며 권 대표의 손을 잡아 내렸다. 손이 크고 뜨거웠다.
“그, 너…….”
“예?”
교원은 손을 떼어 내려다가 도리어 잡힌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권 대표가 큼지막한 손으로 교원의 손을 꽉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임도…… 아니, 임 비서한테 관심 있나?”
끼이익!
부드럽게 잘 가던 차가 찢어지는 소음을 내며 정차했다. 운전하던 조 팀장이 사색이 된 얼굴로 급하게 다시 차를 움직였다. 다행히 사고는 없었다.
“조 팀장님, 괜찮으세요?”
“예, 예…….”
“근데, 대표님.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잡히지 않은 한 손으로 안전벨트가 잘 고정돼 있는지 확인하던 교원이 시선을 올렸다.
그러나 권 대표는 입을 꾹 다물고 다시 고개를 완전히 돌린 채였다. 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기에, 그 손을 잡아 내리니, 권 대표의 뺨과 귓가, 목덜미…… 아니, 얼굴 전체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