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41)화 (41/60)

“아니, 그냥…… 상사로서 물어보는 거야.”

“예에.”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했던 교원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질문을 조금이나마 들었던 조 팀장만이 긴장이 서린 얼굴로 거울을 힐끔거렸다.

“관심 있어?”

“뭐 한테요?”

교원은 제가 창 너머로 뭐라도 주의 깊게 봤나, 싶어서 머리를 굴렸다. 아니면 뭐, 다른 업계라거나…….

“임 비서한테.”

그때 훅, 다가온 입술이 귀에 맞대다시피 하고는 속삭였다. 간지러움에 소름이 끼치기보다, 그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 표정이 굳었다.

늘 그렇듯 권 대표를 혐오하는 듯한 그 표정 말이다.

“하…… 미치셨습니까?”

“아니, 너…… 막 웃고, 나한텐 웃어 준 적 없는데.”

소곤소곤, 작게 한다고 해 봤자 앞쪽까지 다 들릴 게 뻔하다. 권 대표는 성량 자체가 커서 작게 말해도 크고, 크게 말하면 귀가 터질 만큼 컸다.

이렇게 티 나게 질투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아예 애인이라면 모를까, 저 혼자 좋아하는 상황에서 ‘나 질투 중이다.’를 대놓고 홍보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런 거 아니니 미팅에나 집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진짜?”

“예.”

“그럼 나한테도 웃어 줘?”

“…….”

이건 질투를 넘어선…… 뭐랄까, 애인의 땡깡 수준이 아닌가. 교원은 아예 고개를 돌리고 창문을 내렸다.

차가운 바깥바람이 순식간에 히터로 뜨뜻해진 차 안을 휘돌았다. 교원은 바깥을 보며 말을 이었다.

“가끔 환기를 시켜 줘야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고 산소가 들어옵니다. 권 대표님은 산소가 부족하시면 조금 헛소리를 하는 경향이 있으시니, 미팅 들어가기 전에도 산소를 충분히 마시고 들어가십시오.”

“…….”

차 안이 고요해졌다. 그러나 곧, 교원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권새끼: 그래서 임도영 좋아하는 거 아닌 거 맞지?]

[미팅에 집중하세요.]

[권새끼: 이거 때문에 집중이 안 돼서 그래.]

[왜 직장 부하의 연애 사정에 그리 신경을 쓰십니까?]

[권새끼: 내가 사내 연애는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런 분이 그렇게 해대셨습니까?]

답장이 없다. 핸드폰을 집어넣으려 하자, 권 대표가 교원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그러고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표정으로, 두 눈동자를 크게 뜨고 입술을 축 내리는 것이 아닌가.

교원은 한숨을 깊게 쉬고 메시지를 보냈다.

[아닙니다. 임도영 씨에게 그런 마음 없습니다. 저 또한 사내 연애는 죽어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

마지막 문장에 또다시 권 대표의 얼굴이 어두침침해졌지만 교원은 그것까지 처리해 주지는 않았다.

* * *

BM은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였다. 권 대표의 NM 그룹처럼 여러 계열사를 가지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자동차는 전 세계적으로 뻗어 나갔다.

NM리서치가 작은 회사라거나, 기술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으나 BM과의 미팅은 단연 가장 중요하고 특별한 미팅이었다.

이번 미팅이 성공적으로 성사된다면 BM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과의 기술적 도모를 노려볼 수 있었으며, 동시에 회사의 가치도 훨씬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권 대표가 NM 계열사의 회장에게 ‘사고뭉치 막내’라는 이미지는 벗겨 낼 기회가 될 것이 분명했다.

「어서 오세요, 권 대표님.」

「반갑습니다.」

거대한 건물에 들어서자 당연하다는 듯 키가 큰 알파 여성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경호원으로 보였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권 대표와 김 이사의 뒤로 교원과 임도영 그리고 경호원 여럿이 따라붙었다. 교원은 부디 무사히 끝나길 바라며 권 대표의 뒤를 따라 걸었다.

미팅은 꼭대기 층에서 이루어졌다. BM 대표는 상당히 호의적으로 권 대표의 일행을 맞이했다.

가벼운 이야기가 오가고, BM의 임원들과 권 대표, 김 이사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좀 더 전문가에 가까운 김 이사가 기술에 대해 설명을 했고, 이에 대해 자세히 듣기 위해 교원이 자료를 임원들에게 나누어 준 뒤 PPT를 띄웠다.

다행히 임도영은 실수 없이 보좌했다. 이전에 몇 번 비서 일을 해 본 적 있다지만, 들어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치고는 꽤나 자연스럽게 해냈다.

교원은 칭찬해 줘야지, 생각하며 미팅을 마무리하는 권 대표를 쳐다보았다.

이런 자리의 권 대표는 늘 낯설게 느껴졌다. 제 옆에 있을 때는 이제 막 중학교를 졸업한 고등학생처럼 굴다가도, 중요한 자리에서는 대표로서의 모습을 보이는 게 조금은 뭉클했다. 마치 철없는 아들이 사회인이 된 것을 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BM 대표는 NM리서치의 신기술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특히 중간에 거의 완성된 기술을 선보이는 영상을 볼 때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또한 김 이사가 전날 강조한 부분에서는 BM의 이사가 흥미로운 목소리로 관심을 보였다.

결론적으로 BM 대표가 권 대표의 제안에 응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미팅을 모두 마치고 나오는 김 이사의 얼굴은 막 피어난 꽃처럼 화사했다. 중년 아저씨에게 붙일 수사는 아니었지만.

“수고하셨습니다, 대표님. 이사님.”

“아니야, 이 비서가 가장 수고 많았네. 자료를 준비하고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 다 이 비서의 공 아닌가.”

“아닙니다, 이사님의 출중한 능력에 저는 숟가락만 얹은 것이죠.”

김 이사가 기분 좋게 웃었다.

“이 비서, 김 이사랑 잠깐 카페에 갔다 와도 될까?”

“예. 그렇게 하세요.”

김 이사와 권 대표의 경호 몇을 제외한 나머지는 차 안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차 안에 들어서자마자 임도영이 한숨을 쉬며 창가에 머리를 툭, 댔다.

“도영 씨, 수고 많았어요.”

“하아…… 저, 실수 없었죠?”

“네, 아주 잘했어요. 오늘은 이제 업무가 없으니 마음 놔도 괜찮아요.”

“흐아…… 저 진짜, 진짜 벌벌 떨었는데…… 티 났어요?”

교원은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 쪽으로 몸을 돌린 임도영이 차 시트에 매달려 간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조금도 티 안 났어요. BM사에서는 도영 씨가 직속 비서인 줄 알았을걸요.”

“그, 그렇게까지 안 띄워 주셔도 돼요!”

“진짜예요.”

교원은 임도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에 임도영의 양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정말 수고 많았어요. 오늘만 부탁한 거니까 이제 더 긴장할 것도 없고. ……음, 오히려 내가 미안하네.”

“예?”

생각해 보니 교원은 임도영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출장에 따라오라고 했다. 그냥 경험이 쌓이면 좋으니까 자리만 채우라고 말했었다.

“내가 미리 말 못 했잖아요. 도영 씨는 그냥 온 건데, 그것도 당일에 말했으니 많이 놀랐을 거 같아서요.”

“아, 아뇨! 아니에요. 이 비서님 덕분에 저, BM에서 대표님 보좌했다고 자랑거리도 생겼다구요!”

“자랑거리요?”

푸, 하고 바람 소리가 새어 나가듯 웃음을 흘리자 임도영이 귀까지 빨개져서는 팔딱거렸다.

“아니, 그니까…… 겨, 경험이요. 너무 좋은 경험이었어요.”

“친구들한테 자랑 많이 해요.”

“……놀리지 마세요.”

고개를 푹 숙인 임도영이 또 한숨을 쉬더니, “아.” 하고는 다시 교원을 쳐다보았다.

“근데 이 비서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 어제 그러고 나서…… 그니까, 대표님이랑 계셨잖아요. 아무래도 대표님은 우성 알파시니까…….”

“괜찮아요. 아침에도 약 먹었고, 오늘도 비상시에 먹을 약 챙겨 왔구요.”

교원의 말에 임도영이 볼을 살짝 긁었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쩌면 권 대표님과 함께 계셔서, 자꾸 그……런 일이 생기는 것 같아서 걱정돼요.”

“아…… 음, 그럴 수 있겠네요. 근데 히트 싸이클이 오기 전까지만 이럴 거라고 의사가 말했으니 괜찮을 거예요.”

“아직 한 번도 안 오신 거죠?”

“네. 한 달 전쯤에 형질이 변한 거니까, 다음 주는 조금 조심하려고 해요.”

교원은 그렇게 대답하며 창가를 힐끔거렸다. 아직 카페에서 나올 기색이 없는지, 카페 주변 경호원들은 움직임이 없었다.

“이 비서님, 근데…….”

“네?”

다시 눈길을 돌려 임도영을 쳐다보자, 그가 새빨개진 얼굴로 머뭇거렸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벌렸다가, 닫았다가 반복하더니 결국 몸을 앞으로 돌렸다. 뒤에서도 보일 만큼 귀와 볼, 목덜미가 벌겠다.

“히트 때…… 괴로우시면, 부, 부르실 분 계세요?”

교원은 순간 무슨 말인가 싶어, 눈을 깜빡였다. 괴로울 때 부를 사람?

앞의 거울을 통해 임도영을 쳐다보자 그가 힐끔거리다 고개를 휙, 돌렸다. 그제야 교원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아…… 없어요.”

자신이 오메가임을 아는 건 회사 내에서 임도영뿐이었고, 제게는 애인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부를 사람은 없었다.

며칠 끙끙 앓거나 할 터다. 히트 싸이클을 겪어 보지 않았으니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너무, 힘드시면 연락하셔도 괜찮아요. 그니까, 그, 알파가 옆에 있으면 조금 나아요.”

“옆에 있기만 해도요?”

교원이 조금 놀란 목소리로 답하자, 임도영이 잠시 끙, 앓더니 답했다.

“그렇…… 아니, 음, 제가, 좀, 페로몬을 풀어 드리면…… 그니까, 손을 빌려 드리면.”

“손이요?”

교원의 언성이 더욱 높아졌다. 화가 나서가 아니라, 의아함이 담긴 음성이었다. 임도영은 아예 이마를 무릎에 박고는 온몸이 새빨개진 채로 꼼짝을 안 했다.

“손……? 손을 왜 빌려주려고 하는 겁니까?”

나도 손이 있는데? 발도 있는데.

교원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어서 앞좌석 시트를 잡고 살짝 흔들었다. 그러나 임도영은 커다란 몸을 웅크리고서 아무 말도 못 했다.

“……뭐, 음, 그래서 힘들면 연락드리면 된다는 거죠?”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도와준다니 나쁠 건 없다. 교원이 침착하게 되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타이밍 좋게 차 문이 벌컥 열린 탓이었다.

“뭘 연락해?”

“아, 대표님. 오셨습니까?”

“힘들면 임도영 씨한테 왜 연락을 하냐니까?”

임도영은 나름 상사가 왔다고, 꾸물꾸물 몸을 일으켜 앉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커다란 손까지 아주 빨갛게 물든 것이 훤히 드러났다.

“이 비서? 어? 임도영 씨?”

교원은 두 사람을 힐끔거리며 눈만 껌뻑거리고, 임도영은 무릎을 모으고 앉아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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