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49)화 (49/60)

적어도 2주는 목발을 짚어야 한단다. 심하게 다친 건 아니어서 그 정도지, 조금만 더 문제가 생겼더라면 한 달은 목발을 짚어야 했을 거라고 했다.

교원은 침대에 앉아 권 대표가 건네준 책을 읽다가 졸음에 꾸벅, 고개를 숙였다. 급하게 고개를 들자 옆에 앉아 있던 권 대표가 입가를 씰룩이고 있었다.

“……뭘 그리 보십니까.”

“졸리면 자.”

“그렇게 보는데 잠이 올 것 같습니까?”

1시간째다. 권 대표가 옆에서 저를 지켜보기만 한 게.

“시간이 남아도시면 출근하시는 건…….”

“일정상 오늘은 입국하는 날이라 할 일 없는데?”

“회사에 일이 없을 리가요. 가면 뭐든 할 게 있습니다.”

“에이, 나도 쉬어야지.”

쉴 거면 다른 데에 가서 쉬어 주었으면 좋겠다. 교원은 눈을 흘기며 다시 책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러나 따끈따끈한 온기, 부드러운 침대와 적절한 햇빛이 스미는 창가. 잠이 올 수밖에 없는 환경 탓인지 글이 잘 읽히지 않았다.

……아니, 바로 옆, 남자의 시선 탓일지도 모른다. 사실 ‘시선’이란 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인데 왜 이리 볼이 뚫어질 것만 같은 걸까.

때마침 권 대표의 핸드폰이 징, 울렸다. 문자인 듯 진동은 한 번에서 멈췄다.

“아! 왔나 보다.”

“뭐 시키셨습니까?”

“응, 잠깐만!”

교원의 옆에서 한 발자국도 안 떼고 있던 권 대표가 드디어 몸을 일으켰다. 교원은 그가 안방에서 나가자마자 한숨을 쉬며 침대 머리에 몸을 축, 기댔다.

어찌나 뚫어져라 보는지, 심장이 두근대는 것도 멈출 지경이었다.

보고 싶지 않아도 시야가 넓어 자꾸만 보였다. 권 대표는 혼자 수줍은 얼굴로 입을 가리고 쳐다보다가, 갑자기 휴지로 코를 닦았다.

그러다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옆모습을 쳐다보며 꼭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 황홀한 얼굴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그걸 떠올리니 안 아프던 머리가 아팠다. 교원은 관자놀이를 꾹, 누르다가 열린 문 바깥을 힐끔거렸다.

“아, 네. 그거는 부엌 쪽에 설치해 주시고, 이건 안방…… 아, 이건 제가 설치할게요. 네, 네.”

조그마한 택배인 줄 알았더니 설치까지 해야 하는 건가 보다. 몇몇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굵은 남자 목소리, 중년 여성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교원은 멍하니 침대에 등을 기대고 있다가, 열린 문 너머에서 권 대표의 엉덩이를 발견했다.

“……뭐 사셨어요?”

“응? 키오스크.”

“그걸 왜…….”

덜컹, 네모난 화면 아래로 지지대가 달린 키오스크가 안방 안으로 들어섰다. 교원은 미묘한 얼굴로 그걸 쳐다보았다.

“앞으로 2주는 쉬어야 하니까.”

“제가 쉬는 거 아니에요?”

“응, 이 비서가 쉬는 거지.”

키오스크로 추정되는 물건을 감싸고 있는 검은 봉투를 권 대표가 착착, 벗겼다. 그리고 침대 옆으로 옮겨 전원을 켰다.

잠시 회사의 이름이 뜨더니, 곧이어 화면에 ‘대기 화면’이 꽉 찼다. 교원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이게…… 뭔.”

“어때? 맘에 들어?”

권 대표가 수줍게 웃으며 몸을 배배 꼬았다. 대기 화면에는 시발, 권 대표의 화보가 담겨 있었다. 몇 개월 전에 잡지 회사와 인터뷰를 하고 받았던 사진.

교원은 싸늘한 눈으로 물었다.

“대기 화면 못 바꿉니까?”

“대기 화면 바꿀 수 있어. 여기 네모난 칸 누르면…….”

바꿀 수 있다는 말에 조금의 희망을 가진 제 잘못이다. 교원은 ‘한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사진’들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언제 이런 걸 찍었지? 한두 개가 아니다. 변경이 가능한 사진은 총 24개였고, 모두 권 대표가 멋진 척을 하고 있었다.

구석에는 ‘화장실’ 버튼도 있었다. 부축해서 데려다줄 모양인가 보다.

“이런…… 이런 건, 언제 다…… 찍으신 겁니까.”

“가끔 쉬는 날에? 흐흥, 이 비서도 알잖아. 외모가 좀 되니까 모델 제안이 와서, 흐흥.”

코로 웃음소리를 내며 수줍어하던 권 대표가 이번엔 메뉴 칸을 눌렀다.

“씨…….”

“씨?”

“…….”

모든 메뉴의 사진이 권 대표의 얼굴이다. 메뉴에는 여러 카테고리가 있었는데, 대체로 음식과 간식이었다. 근데 그 음식들 사진이 모두 권 대표 얼굴이다.

마치 아이돌이라도 된 듯, 찬란한 금발을 날리며 상큼하고 귀여운 표정의 권 대표가 잔뜩이었다.

이건 사랑으로도 못 참는다. 씨발.

교원은 욕지거리를 참으며 ‘기타’ 카테고리를 눌렀다.

“……씹, 진짜.”

“뭐라구?”

“……시발…… 시발이요.”

기타

1. 희수의 사랑

2. 희수의 뽀뽀

3. 희수의 포옹

4. 희수랑 코하기

기가 찬다. 고백은 그따위로 하더니, 하자던 대화도 없이 또 이렇게 대놓고 수작질이라니.

“이딴 건 왜 만드신 겁니까.”

“혹시 몰라서…… 흐흥, 교원이가 혹시 필요로 할까 봐.”

“필요 없습니다.”

“혹시 모르잖아.”

“혹시 모를 일도 없습니다.”

교원은 다른 카테고리도 눌러 보다가, 아이돌이 된 권 대표의 얼굴에 헛구역질이 나서 그만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무리 귀엽고 예쁘다고 생각했던 얼굴이라지만 저 스스로 이런 걸 만들어 온 것이 참 소름 끼쳤다.

“이 비서, 배 안 고파?”

“대표님이 만드신 건…….”

“아니, 아냐. 셰프님도 고용했어. 부엌에 계신다구.”

때마침 바깥에서 무언가를 설치하던 남자들이 안방 입구로 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그 뒤, ‘셰프’님으로 추정되는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AS는 언제나 무상으로 가능하니 연락 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예, 수고했어요. 셰프님은 부엌 옆방 쓰시면 됩니다.”

“네, 사장님.”

교원을 위한 것들인데, 교원의 의사 없이 모든 것이 행해지고 있었다.

곧 남자들이 현관 밖으로 걸음을 옮겼고, 셰프님도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교원은 가만히 키오스크를 노려보다가 ‘한식’ 카테고리에서 ‘된장찌개 정식’을 눌러 주문함에 담았다.

“그치, 그치! 잘 쓰네.”

“대표님은 안…… 드십니까?”

“응응. 난 교원 씨 먹는 것만 봐도 돼.”

아까부터 자꾸 코 주변을 티슈로 닦고 있었다. 교원은 시선을 티슈 쪽으로 옮겼다가, 콧물이 아닌 피인 걸 보고 안심했다.

“코피는 왜 자꾸 흘리십니까? 뭐가 피곤하다고?”

“……나 지금 쪼금 피곤한데.”

“대표님이 뭐가 피곤하다고.”

“지금 엄청 서운한데. 안아 주면 좋겠는데.”

교원이 혀를 찼다. 건강상의 문제는 없으니, 피로에 의한 것이리라. 그나저나 하루 이틀 일 조금 했다고 코피를 흘리나. 권 대표는 교원의 생각보다 연약한 사람인 듯싶었다.

교원은 키오스크로 된장찌개 정식을 주문하고,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러다 키오스크를 조금 더 살펴보니 영화나 드라마 보기, 게임하기 등의 메뉴도 있었다.

“대표님.”

“응?”

“전에 보려고 하셨던 영화, 보실래요?”

괜히 민망해서 손에 들린 책을 만지작거리자, 권 대표가 고개를 휙, 숙여 교원의 아래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진짜? 진짜로? 그런 것도 기억하고 있었어? 아니, 내가 보고 싶은 걸 기억하고 나랑 봐 줄 생각을 한 거야, 이 비서?”

“……그런 식으로 반응하시니까 좀 역겨워서 그만두고 싶어지는데…….”

“후식도 미리 골라 놓자. 밥 먹고, 후식 먹으면서 영화 보자. 어때?”

“모르겠네요…….”

교원은 경멸을 담은 눈빛으로 눈썹 사이를 좁혔다. 이 남자, 대놓고 악담을 퍼부어도 귀를 닫고 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악질이었다.

본래도 알고는 있었지만 사적인 장소에서 행하는 걸 보니 상당히 명치가 쓰렸다. 이러니 친구가 없지.

곧이어 나온 된장찌개 정식은 상당했다. 침대 위로 커다란 테이블이 놓이고, 살짝 얼큰하고 구수한 냄새가 나는 된장찌개와 고슬고슬한 밥, 다섯 가지의 반찬과 가지런한 수저까지 대령됐다.

“감사합니다.”

“예, 부족한 게 있으시면 바로 호출해 주세요.”

셰프님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안방에서 나가셨다. 음식의 냄새가 차림새, 가짓수에서부터 상당한 경력이 느껴졌다.

돌솥에 끓인 찌개는 속이 뻥 뚫릴 만큼 얼큰했고, 교원이 좋아하는 버섯이 잔뜩 들어 있었다.

찬으로 나온 고기도, 나물도 하나하나 집어 먹다 보니 어느새 밥그릇을 싹 비웠다. 싱겁게 먹는 편이라 찌개가 남은 것이 아까웠다. 그사이 권 대표가 ‘그릇 수거’라는 버튼을 눌렀고 셰프님이 남은 찌개와 그릇을 수거해 가셨다.

“저, 잘 먹었습니다.”

“네.”

“그…… 남긴 건, 제가 좀 싱겁게 먹어서 그렇습니다.”

“괜찮습니다. 많이 남기셔도 돼요.”

싱긋 눈웃음을 친 셰프님이 다시 안방을 나갔다.

“잘 먹었어? 울 애기, 볼 터지게 먹던데.”

너무 허겁지겁 먹었나, 하며 입맛을 다시는데 권 대표가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머, 머리는 왜 자꾸 만지세요.”

“어? ……서, 설마. 싫어?”

당황스러운 마음에 뭐라 짜증을 냈더니, 권 대표가 급하게 제 손을 수거해 갔다. 그러곤 양손을 가슴에 쥐고선 그렁그렁한 눈으로 교원을 쳐다보았다.

“교원아…… 싫어? 내가 만지는 게 싫어? 응?”

아니, 어떤 사람이든 상사가 머리를 쓰다듬으면 싫을 것이다. 그것도 같은 성별의 상사라면.

그 상사를 좋아하고 있기에 솔직히 ‘좋다.’ 쪽의 감정에 가까웠지만 교원은 권 대표와 이 이상 가까워질 마음이 없었다.

몸이 멀어져야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은 어쩔 수 없다지만, 원활한 회사 생활을 위해서는 제 감정도 빠르게 정리하는 것이 옳았다.

“그……야.”

근데, 동그란 눈이 반짝거리며 어찌나 애처롭게 내려다보는지…… 여기서 ‘싫다.’라고 말하는 순간 눈물이라도 뚝 떨어트릴 것 같았다.

교원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갑자기 하시면 놀라지 않습니까.”

고개를 돌린 탓에 보이지도 않는데, 권 대표가 환하게 웃는 게 머리에 선명히도 그려진다.

“갑자기 만져서 놀랐구나……! 미안, 내가 교원이 마음도 모르고!”

그러곤 덥석, 권 대표가 교원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교원은 귀까지 열이 오르는 걸 느끼며 목을 뻣뻣하게 들고 벽을 노려보았다.

자꾸 무의식중에 페로몬을 흘려 대는 권 대표 때문에 몹시, 아주 몹시 곤란했다. 특히 지금처럼 ‘좋아, 좋아.’라고 말하는 듯한 행복한 페로몬은 자극이 강했다.

이걸 말해 줄 수도 없고, 진짜.

“대표님, 근데 메뉴 중에 그게 없네요.”

“응? 뭐?”

교원에게서 아쉬운 얼굴로 떨어진 권 대표가 고개를 기울였다. 또 코피가 흘렀지만 그는 이제 익숙하게 티슈로 코를 틀어막았다. 상당히 신경 쓰인다, 저거.

“‘권희수가 방에서 나가 주기’요. 하나 추가해 주시면 안 됩니까?”

“어……?”

“절 위해 만든 키오스크니까, 제가 원하는 것도 하나는 추가해 주시는 게 어때요. 뭐, 나가셔도 대표님 얼굴은 여기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데.”

키오스크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이 정도면 권 대표가 옆에 없어도 그의 페로몬까지 맡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메뉴마다 다른 얼굴이 붙어 있으니 있지도 않은 시선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그니까 좀, 나가 주세요. 후식은 혼자 즐기고 싶습니다.”

교원은 조금 전 권 대표가 끌어안았던 어깨를 툭툭 털며 눈을 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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