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이들을 빼고는 알파들이었다. 그들은 첫 히트 싸이클로 본래보다 더 넓게 퍼지는 달큼한 향기에 시선을 놓지 못했다.
교원은 재빨리 걸음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골목으로, 또 골목으로 도망쳤다.
후미진 골목은 낮임에도 불구하고 건물들의 그림자로 어두컴컴하고 습하고 쓴 냄새가 났다.
좁은 곳에서 목발로 짚으려니 걸음이 여의치 않았다. 그럼에도 자꾸만 다가오는 알파 페로몬들이 두려워, 교원은 미친 듯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결국 다시 큰길로 빠졌다. 교원은 다시 골목길로 들어서려다가, 한 알파에게 붙잡혔다.
“저기, 괜찮으세요?”
다정한 목소리. 그러나 핏발이 선 눈은 저를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 분명 저보다 키도 작고, 마른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이 일었다.
꼭 육식 동물에게 붙잡힌 초식 동물과 같은.
“괘, 괜찮습니다.”
교원은 차분함을 유지하기 위해 마른 입술을 훑었다.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도망갈 곳을 찾았으나 큰길가에 그런 곳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지나치는 오메가들, 도움을 주려 경찰에 신고하는 오메가와 알파들, 저를 호기롭게 쳐다보고 있는 알파, 또 다가오는 사람들의 모든 것이 징그럽고 역겹게만 느껴졌다.
권 대표의 페로몬과는 달랐다. 달콤하게까지 느껴지던, 더욱더 다가가고 싶던 그 향이 이토록 구역질이 날 줄 몰랐다.
“제가 경찰서로 데려다드릴게요, 응?”
남성이 교원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거침없는 손길이었다. 눈이 쭉 찢어진 남자는 손에 힘을 줘 교원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괜찮, 괜찮습니다. 만날 사람이, 있어서. 그니까…… 그만…….”
“집까지 데려다드릴까요? 저랑 조금 있다가, 같이 가는 건.”
“그, 그만. 싫, 하지 마세요.”
평소라면 주먹부터 나갔을 터다. 그런데 왜, 저는 두려움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을까. 교원은 아랫입술을 질끈 물고 남자를 힘없는 손으로 밀어냈다.
그러다 목발을 놓쳐 휘청이자, 남자가 허리까지 휘어잡고는 귓가에 속삭이며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집까지 데려다드릴게요. 조금만 저랑 있어요.”
“놔……주세요.”
이런 일이 생긴다면, 아니, 이런 일이 생길 거란 상상을 해 본 적도 없었다.
그간 저는 베타였기에, 적당한 추근덕거림은 강하게 밀쳐 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제 몸을 감싸는 알파의 페로몬이 몸을 옭아매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교원의 팔을 세게 붙잡아 당겼다.
“……양주호?”
“…….”
분명, 양주호였다.
권 대표에게 ‘그날 밤 함께 있던 베타’인 척했던 양주호. 고등학교 시절, 알파라며 그렇게도 허세를 부리던 놈.
권 대표를 데리고 카페에서 나갈 땐 죽일 듯이 쳐다보던…… 그 양주호.
“허억, 헉, 헉!”
“……헉, 흡, 씨발…….”
그 탓에 목발을 놓쳤다. 교원은 절뚝이며 한쪽 발에 의지해 그를 쫓다가 몇 번이고 넘어질 뻔했다.
그러다 두 갈래 길이 드러나자 양주호가 멈춰 섰다. 그는 망설이듯 오른편을 보다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징징징, 누군가로부터 전화인지 문자인지 모를 것이 오고 있었다.
“야, 이교원.”
교원은 대답하지 않고 헐떡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허리를 잔뜩 굽히고, 벌겋게 물든 얼굴로 올려다보자 양주호가 확, 붉어진 얼굴로 입술을 물어뜯었다.
“……이해가 안 돼.”
“……무슨, 흑…….”
“네가 뭐라고, 왜…… 이러는지.”
양주호는 한참을 망설였다. 교원은 벽을 짚고서 한 발로 서서는 부들부들 떨었다.
점차 열기가 오르고 있었다. 뜨겁고, 더웠다. 심장이 미친 듯이 불타는 듯했다.
심장 부근부터 올라온 열기가 양 뺨과 목을 발갛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갈증이 일었다. 알파의 페로몬이 필요했다.
“내가 널…… 친구로 본 것도 아니지만.”
양주호는 계속해서 뜸을 들였다. 이제 교원은 손목만 붙들린 채로 꿇어앉은 채 헐떡이고 있었다.
몸 안의 열이 너무 뜨거워서, 바깥바람이 몹시도 추웠다. 약을 먹으면 좀 나을까, 주머니를 뒤져 약 봉투를 꺼냈으나 손이 벌벌 떨려 그것 하나 뜯질 못했다.
“……미안. 나도 살아야 돼.”
한 손으로 약 봉투를 세게 쥐는 순간, 양주호가 오른편으로 몸을 돌렸다.
그에 억지로 무릎에 힘을 주려던 참이었다. 소리도, 인기척도 없이 나타난 누군가가 교원의 팔목을 세게 잡아당겼다.
“아는 얼굴이네요. ……이런 거 진짜 싫은데.”
단단하고 커다란 가슴에 얼굴이 푹, 박혔다. 누구인지는 묻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권 대표. 아니, 권희수의 페로몬이 제게 덕지덕지 묻은 알파들의 페로몬을 씻어 내듯 온몸을 감쌌다.
“……끅!”
“양주호 씨. 지금은 급하니까…… 다음에 봅시다.”
보지 않아도 양주호의 얼굴이 누렇게 변하는 것이 상상되었다. 권 대표는 그 말을 끝으로 교원의 무릎 아래로 팔을 넣어 그대로 제 품에 끌어안았다.
“교원아, 이교원.”
“……대, 표님.”
교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힘겹게 대답했다. 뺨을 그의 어깨에 기대고,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두 손으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집으로 가자.”
“……화, 안 나셨어요?”
권 대표를 보자마자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거짓말을 가장 싫어하는 권 대표가, 제가 오메가임을 깨달았을 때 무슨 말을 할지.
아니, 어떤 행동을 할지. 그것이 가장 두려웠고, 가장 불안했다.
비참하게 버려져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권 대표는 제 재킷으로 교원의 머리까지 씌워 가린 뒤, 힘껏 끌어안았다.
“내가 말했잖아. 너는 믿는다고. 네가 무슨 거짓말을 해도, 이유가 있을 걸 알아서 믿는다고.”
“하, 지만…… 하…….”
“근데 나는 지금, 네가…… 나쁜 의도로 거짓말을 해도 화 안 나. 못된 짓을 할 생각으로, 애초부터 나를 노렸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래.”
한번은, 사소한 실수를 했다가 거짓말로 무마하려던 직원이 있었다. 교원은 넘어가고자 했으나 그를 알아챈 권 대표가 그를 즉시 해고했다.
또 한번은, 그의 연인이 권 대표를 위해 서프라이즈 파티를 하겠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그 호텔에서 그녀를 버리고 가 버리기도 했다.
그곳이 그녀의 집에서 멀다는 이유로 택시비를 준 것이 그의 마지막 자비였다.
그 정도로 권 대표는 거짓말을 싫어했다.
“다 상관없어. 지금 네 모습이 다 거짓이어도 괜찮아.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게 거짓이어도 좋아. 그냥, 네가 좋아.”
교원은 아예 권 대표, 아니 권희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숨을 몰아쉬었다.
권희수는 재빨리 걸음을 옮겨 준비해 두었던 차에 탔다. 집까지는 순식간이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차고 고요함이 느껴졌다. 셰프님의 흔적은 없었다. 교원은 권희수의 품에 안겨 안방까지 옮겨졌다.
“여기서 자기 싫어도 참아. 이 방이 제일 따뜻하니까.”
“감, 사합……니다.”
“이건 내과에서 준 약이야. 히트 싸이클이 왔을 때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여 주는 약이라고 했고, ……억제제는 조금만 받아 왔어.”
권희수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교원은 시트를 붙잡고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눈을 질끈 감자 눈가에 고여 있던 뜨거운 눈물이 관자놀이로 흘러내렸다.
“힘들지. 미안해, 도와줄 게 이것밖에 없어.”
그리고 권희수가 급히 몸을 일으켰다. 방을 나가려는 움직임에 교원은 저도 모르게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가지, 가지 마세요…….”
스스로가 듣기에도 애절한 목소리였다. 교원은 울먹이며 소매를 꽉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그러자 등을 돌린 권희수가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더는 안 돼.”
“희……수 형.”
교원의 부름에, 정확히는 그 호칭에 권희수가 어깨를 뻣뻣하게 굳혔다.
“뭐가…… 더는, 안, 돼……?”
교원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권희수를 올려다보았다. 늘 무심하게 가라앉던 눈동자가 애절한 빛을 담고 동그랗게 뜨여 있었다.
권희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가, 찢겨 피가 나도록 아랫입술을 물어뜯었다.
“싫잖아. 나중에 후회해.”
“임, 도영이 그랬어요…….”
교원은 침을 한 번 삼켰다.
“옆에 있어 주면 도움이 된다고…… 자기가 도와준다고, 나한테, 그랬는데.”
그 말에 순간 권희수가 울컥한 얼굴로 몸을 완전히 돌려 교원의 어깨를 붙잡았다. 진득하게 새어 나오는 페로몬이, 억제해 놓은 본능을 터트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걔가 도와준다고 했어?”
“하아, 하……그럼, 나을 거라고…… 그니까, 도와주세, 요.”
교원은 더운지, 입고 있던 셔츠 단추를 두어 개 풀었다.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이 얼마나 급하게 움직이는지, 단추 하나를 풀지 못해 한참을 애먹었다.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알아?”
“몰……라.”
권희수에 비해 교원은 성에 대하여 무지한 사람이었다. 저처럼 여러 사람을 만난 이가 손을 대면 벌이라도 받을 것만 같을 만큼.
권희수는 최대한 인내하며 제 페로몬을 천천히 퍼트렸다. 억지로 묶어 두었던 끈이 확 풀리면서 그의 진득한 페로몬이 방 전체를 감싸고 돌기 시작했다.
“난 이 정도로만…… 도와주고 싶어.”
교원은 상체에 힘을 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두 팔로 권희수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그의 페로몬 향을 깊게 들이켰다.
“이상, 해요.”
“……교원아, 제발.”
“이상하게…… 다른 사람은 싫은데, 형 페로몬은, 자꾸 맡고 싶고…… 좋아서.”
권희수는 울 것 같은 얼굴로 교원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한계였다.
성인의 알파와 오메가가, 그것도 히트싸이클이 온 오메가 옆에서 참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권희수는 제 손이 꼼짝도 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참고 있었다.
“형…… 도와줘. 형이 여기 있어 줘야 살 것 같아.”
권희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주먹을 쥐고 무릎을 내리치면서, 또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잘근잘근 씹으면서 심호흡을 했다.
눈앞이 핑핑 돌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하지만, 후회할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교원은 열에 들떠 저를 꼭 껴안고 페로몬을 깊게 흡입하고 있었다. 권희수는 그에게서 나는 달달하고도 담백한, 부드러운 연유와 같은 향기에 주먹을 세게 쥐었다.
끝까지 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교원은 히트 싸이클이 왔고, 저는 교원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오메가들의, 심지어 이전 연인들의 히트 싸이클을 견뎌 내는 것보다 배로 노력이 필요했다.
교원은 상체를 숙이며 권희수의 손을 붙잡았다. 따뜻하고 달콤하다. 안정적이고, 완전했다. 그의 향기를 맡을수록 아슬아슬하던 자신의 길이 드디어 하나라도 된 것만 같았다.
“희수 형, 어서……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