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 알파가 만든 오메가 비서 (57)화 (57/60)

3일.

정확히 3일이 지난 후였다. 교원이 히트 싸이클을 겪고 제정신을 차린 아침은.

다리 한쪽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침대에서 이리저리 끙끙대며 뒹굴고 도망가는 권희수를 붙잡은 기억들이 느릿하게 지나갔다.

순식간에 지나가기에는 너무 많은 짓을 해서, 교원은 멍하니 색색대며 잠든 권희수의 얼굴을 보며 기억을 복기시켰다.

몇 번이나 거절하고, 참으려 노력하는 권희수에게 이런 다리로 질질 기어 허리를 끌어안았었다.

권희수는 첫날에도, 둘째 날과 셋째 날에도 ‘선’을 넘지 않으려 굴었다. 하지만 교원을 세게 밀치거나 도망가지는 않았다.

그건 아침부터 밤, 그리고 새벽에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하나였다.

“지가 아픈 것도 아니면서 3일이나 회사를 안 가셨겠다…….”

물론 붙잡은 제 잘못도 있지만 출근은 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김 팀장이 3일의 스케줄을 어떻게 했을지를 생각하자 벌써 속이 턱 막혔다.

교원은 그러면서도 권희수를 깨우지 않고 가만히 쳐다보았다.

〈왜…… 후, 페로몬 좀, 더…….〉

〈교원아, 제발. ……일단 옷 좀 갈아입자.〉

상의를 벗겼더니 온몸이 새빨갛게 물드는 게 보였었다. 교원은 계속해서 애절하게 저를 힐끔거렸다. 몸이 땀에 젖어 있어, 감기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갈아입힐 필요가 있었다.

〈왜 자꾸 싫다고 하십니까?〉

〈그게 아니라…….〉

숨을 쉴 때마다 열기가 뿜어지는 듯했다. 권희수는 교원에게 새 잠옷을 입히고, 입술을 물어뜯느라 바빴다.

그에 반해 교원은 권희수의 팔뚝을 붙잡고 그에게 눈을 맞추려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너, 지금 히트잖아. 지금은 싫어.〉

〈……처음도 아닌게, 왜 이렇게…… 튕, 겨요.〉

교원은 멋대로 움직이는 제 입을 막았다가 그냥 축 늘어져서 권희수를 올려다보았다. 셔츠 안쪽으로도 단단한 어깨와 두꺼운 광배근, 터질 듯한 가슴이 훤히 보였다.

〈손, 손부터 시작하고 싶어. ……보통 연애하는 것처럼. 그니까, 그니까…… 손잡고, 연애하고, 거, 건전하게…….〉

〈후우…… 원래…… 안 그러시잖, 아요.〉

〈너니까 다르게 하고 싶, 은 거야. 너랑 연애하고 싶다니…… 아, 제발, 교원아…….〉

권희수의 말에도 교원은 눈을 가늘게 떴다가 아, 하며 히죽 웃었었다.

〈그럼 싫은 건 아닌 거죠?〉

그렇게 또 한 번 그날 일을 반복했다. 저번에는 권희수가 러트, 이번에는 교원 자신이 히트.

교원은 회상에서 벗어나 권희수를 내려다 보았다. 새근새근 잠에 든 것이 아이처럼 순진무구해 보였다.

3일간 제 수발을 드느라 이래저래 고생했을 텐데, 이상하게 얼굴이 더 반지르르한 것이 보양식이라도 먹은 듯하다.

교원은 아예 턱을 제 손에 기대고, 반대 손으로 권희수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이러면 이제 무슨 사이가 되는 거지? 저번에도 한 번 했는데?

아니, 우선 직속 비서 자리에서는 잘리겠고…… 이번 히트 싸이클을 함께해 준 것이 고맙다고 하면 되는 건가.

문득 임도영이 한 말이 떠올랐다. 히트가 오면 도와준다는 게 이런 뜻이었구나, 싶었다.

알파와 오메가들은 이런 식으로 서로를 돕는 걸까. 교원은 권희수를 내려다보며 그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오메가를 도왔을지 상상했다가 저도 모르게 그의 머리채를 쥐었다.

“아, 아! 으으, 아파…….”

움찔거린 권희수가 몸을 비틀더니 다시 잠이 들었다.

교원은 움직임에 흘러내린 시트를 올려 주려다, 제 손자국이나 이 자국이 난 권희수의 옆구리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뭐랄까, 좀 흐뭇했다. 이래서 알파들이 오메가들에게 흔적을 남기려고 안달을 내는 거였나. 제 것이라고 도장이라도 찍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그걸 달고 있는 권희수가 귀엽기도 했다.

교원은 몸을 돌려 핸드폰을 쥐었다가, 배터리가 아주 소량이 남은 걸 보곤 충전기를 꽂았다.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10시.

3일간 전화 5통과 메시지 23개가 와 있었다. 비서 1팀, 2팀 팀장들과 임도영이었다. 오늘은 심지어 주말이었고, 권희수에게는 오후 2시에 미팅이 있었다.

“으응…… 흑, 교원아…… 안 돼…….”

그때 등 뒤에서 미적거리던 권희수가 잠꼬대를 하며 교원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아마 끝까지 가려는 저를 밀어내는 꿈을 꾸는 듯했다.

제대로 밀어내지도 않아 놓고, 이것도 남자라고.

“대표님, 일어나세요.”

교원은 상체를 일으켜 다리를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목발이 바로 침대 옆에 놓여 있었다.

“오늘 2시 미팅 있어요.”

“몰라…… 그런 거 없, 아야!”

교원은 가차 없이 권희수의 입술을 찰싹, 때렸다. 그제야 권희수가 반쯤 뜨인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제 두 팔을 후다닥 거둬 갔다.

“일어나셨습니까.”

“너, 너…….”

“도와주신 건 감사한데, 3일간 회사 아예 안 가셨습니까?”

후다닥 시트로 몸을 가리며 침대 구석에 몰린 권희수가 눈만 끔뻑거리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 우선 김 팀장한테 연락할 테니까, 씻고 나오세요. 그리고 침대는, 무슨 이런 데서 주무십니까. 차라리 손님방으로 가셨어야지.”

이전 밤의 흔적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옷가지, 마구 흐트러진 시트, 축축한 이불이나 머릿속을 스쳐 가는 여러 장면들.

교원은 권희수에게서 이불을 빠르게 빼앗았다.

“시간, 아직 많은데…….”

“안 많습니다. 2시 약속이고, 지금은 10시입니다. 아침 겸 점심도 드셔야 하고 3일간 회사를 나가지 않은 것도 체크해 봐야죠.”

이불을 모두 빼앗긴 권희수는 꼭…… 이런 표현은 쓰기 싫지만, 홍당무 같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빨간 것이 막 흙을 털어 낸 홍당무…….

교원은 흰 수건으로 겨우 아랫도리를 가리고 엉거주춤 욕실로 향하는 권희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 상큼하게 덧붙였다.

“3일간은 감사했습니다. 급할 때 서로 돕는 사이도 나쁘지 않네요.”

그러자 권희수가 퍼뜩 걸음을 멈춰 세웠다.

“어어……?”

“처음이라 잘 모르겠는데, 대표님께서는 충분히 훌륭하게 도와주신 것 같습니다. 덕분에 히트를 잘 넘겼습니다.”

권희수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나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건지, 아니면 감사 인사가 부끄러운지 ‘억’ 소리 하나 내질 못했다.

그동안 교원은 적당히 바닥에 널브러진 샤워 가운을 걸치고, 목발을 짚은 채로 안방을 나갔다.

권희수는 욕실 앞에 서서 열린 문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지금…… 그니까, 나 갖고 놀았다는 거지…….”

* * *

셰프님은 당연하게도 계시지 않았다. 교원은 거실 소파에 앉아 조금 충전된 핸드폰으로 김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나 급했는지, 김 팀장이 곧장 받았다.

- 예! 이 비서님! 김 팀장입니다. 저, 오늘은 대표님 나오십니까?

“김 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미팅 나가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제가 건강이 좋지 않아 전화를 아예 받지 못했는데…… 3일간 대표님께서 출근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미팅에 간다는 말에 김 팀장이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제가 김 팀장의 입장이라 생각하면 진심으로 권희수를 사살할 것인지, 퇴사할 것인지를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 나오신다니 다행입니다…… 예, 3일간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셨습니다. 다행히 전무님께 따로 연락을 드렸었는지 전무님께서 대표님 업무를 할 수 있는 한 하시긴 했는데…… 대표님의 권한이 필요한 업무들은 아예 손대질 못했습니다.

“오늘 미팅 외에 스케줄 없죠? 미안하지만 미팅 전에 대표님 식사 좀 챙겨 주시고, 미팅 후에는 대표님 모시고 바로 회사로 가서 쌓인 일 좀 처리할 수 있게 보좌 부탁드립니다. 분량이 많을 테니 반 정도는 제 메일로 보내 주시고요. 할 수 있다면 제가 가고 싶은데…….”

- 아! 아닙, 아닙니다. 일은 쪼끔! 정말 쪼끔만 도와주시면 감사드리겠지만…… 오실 생각은 마셔요. 발목에 금이 가셨는데 적어도 2주는 꼼짝도 못 하고 4주차까지는 깁스를 하고 계셔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 비서님께서는 너무 걱정 마세요.

역시 제가 공동 직속 비서 자리에 넣으려고 눈여겨본 김 팀장이었다. 베타인 데다, 일 처리도 꼼꼼하고 섬세하다. 오메가임을 들켰으니 아마 차기 직속 비서는 김 팀장이 될 터였다.

“그럼 대표님, 잘 부탁드립니다.”

- 네, 감사합니다. 이 비서님 덕분에 한시름 놨습니다. 이상하게…… 일이 달라진 건 없는데 이 비서님이랑 연락이 되니 다 해결된 기분이네요.

김 팀장의 말에 교원이 가만히 바닥을 쳐다보다가 어설프게 웃으며 답했다. 양쪽 귓불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런 직설적인 칭찬은 너무, 대하기 힘들다.

“하하, 안전 불감증입니다. 어서 브리핑 준비부터 하고 계세요.”

- 푸흐흐…… 웃는 것도 힘이 없어서 웃질 못하겠네요. 알겠습니다.

“혹, 2팀 팀장이 출근했다면 제게 대표님 일 좀 넘겨줬으면 하는데…… 출근 안 하셨죠?”

- 그럼요, 당연하죠! 그분이 출근하셨을 리가요.

경쾌한 대답에 웃음이 터졌다. 그래, 그 사람이 주말 출근을 할 리가 없지.

“알겠습니다. 오늘 하루 힘내세요.”

- 넵.

전화 이후 임도영에게 온 걱정의 메시지에 답장하고, 여전히 연락 없는 차의겸의 번호를 보다가 핸드폰 화면을 껐다.

그날 차의겸이 했던 말은 모두 잊기로 했다. 녀석의 감정과 상관없이, 교원은 채무자였고 그는 채권자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이용해 어릴 적부터 쭉 저를 괴롭혀 왔고, 여러 언어폭력을 들었다.

이제 와서 친구처럼 행세한다고 친구로 느껴질까. 사실 말만 험했고 너와 친구로 지내고 싶었다, 라고 말한다고 해서 제 마음이 바뀔까.

그럴 리가 없었다. 교원은 소파에 등을 푹, 기대며 고개를 뒤로 넘겼다.

때마침 씻고 나온 권희수가 엉거주춤 옷을 입는 모습이 보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보통 제가 아파해야 할 텐데, 어째서 권희수가 근육통에 시달리는 것처럼 끙끙대고 있냔 말이다.

제가 그간 보았던 미디어에서는 분명 반대였다. 교원은 3일간 저를 돌본 사람치고는, 아니, 오히려 그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쌩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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