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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와 거리두기-71화 (71/119)

71화

‘그게 어떻게 네 잘못이야? 잘해준 게 어떻게 잘못이 돼.’

‘내가 잘해줘서 걔가 그런 마음을 먹은 거니까…….’

‘이지후. 잘해줘서 좋아하는 건 그 사람 마음이야. 네가 너 좋아하라고 명령이라도 했어?’

‘…….’

‘그리고 난 지금 유은호가 널 좋아하는 게 잘못이라고 말하는 거 아냐. 그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지. 넌 걔가 널 좋아한 방식이 옳았다고 생각해?’

‘…….’

‘한우람이랑 이간질하고, 팀워크 망쳐 놓고. 걔가 널 좋아하면…… 널 정말로 아끼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

지후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가 떨리는 것을 본 대현은 지후가 이 얘기에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해준 사람이 없었으리란 것도. 어쩌면 그건 당연한 거일 터다. 직접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지후가 이 이야기를 꺼내놓은 건 자신이 처음일 거라는 건 눈치로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속상했다. 몸이 바뀐 후 멤버들은 잊어버린 척 굴던 지후는 그들의 이야기만 나와도 동요했다. 티내고 싶지 않은지 부러 무뚝뚝한 목소리를 내고 시선을 돌리긴 했지만 대현은 알 수 있었다. 지후는 제게 다가오는 사람을 밀어낼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고슴도치처럼 잔뜩 가시를 세운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만지려 하는 순간 가시의 힘을 죽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몸을 잔뜩 움츠리기까지 할 사람이었다.

식이야 다소 까칠한 면이 있다고 해도, 우람과 윤성은 기본적인 성질 자체가 순했다. 비록 처음엔 어색할 수 있었대도 몇 년 동안 그룹 활동을 이어가다 보면 셋은 친한 동료 관계 정도는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지후가 잔뜩 떠안은 상처들은 없었겠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모든 관계에 흠집을 낸 건 은호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지후가 말하길, 그를 좋아해서였다고. 그제야 대현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은호가 우람과 이간질 시켰다는 이야기를 지후에게 했던 순간, 충격받은 게 보이는 얼굴로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꾹 다물던 그를.

“정대현.”

“뭐야. 깼어?”

“……뭐 해?”

새벽의 대화를 곱씹던 대현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지후가 걸어오고 있었다. 곤히 자길래 안 깨우려 했는데.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든 대현이 서둘러 싱크대의 수도꼭지를 돌려 잠갔다.

“밥이랑 국 좀 했어.”

“…….”

“따뜻할 때 먹어. 알았냐.”

부엌을 나가 소파에 걸쳐 놓았던 후드를 반팔티 위로 겹쳐 입던 대현이 당부했다. 따라 나온 지후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한 그가 문으로 걸어가다 멈칫했다. 소파 옆 탁자위에 올려져 있는 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망설이던 대현이 노트를 집어 들었다.

“노트 가져갈게. 혹시 모르니까.”

“……어.”

프로듀서와의 일이 마음에 걸린 탓이었다. 지후가 별다른 동요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비록 목소리는 작았지만 분명한 발음이었다. 나 간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대현은 얼마 가지 못해 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

작게 나온 소리였지만 못 들을 수 없었다. 특히나 그 대상이 지후일 때는 더더욱. 츄리닝 바지를 꼭 움켜쥔 손이 보인다. 대현의 시선을 비껴 엉뚱한 곳을 응시하는 옆모습은 한눈에 보일 정도로 어색했다. 대현이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빼고 지후에게 다가섰다. 평소라면 멈춰 섰을 거리에서 그치지 않고 좀 더 다가오는 대현의 인기척에 지후가 당황한 듯한 시선을 던졌다. 대현이 지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지후.”

“…….”

“너 좋아하는 사람 많아. 나도 그중 하나고.”

“…….”

“또 삽질할까 봐 말하는데, 이거 동정 아니다. 오해하기만 해봐.”

부러 엄하게 마지막 말까지 마친 대현이 뻣뻣하게 긴장한 지후의 뒷목을 두어 번 부드럽게 쓸었다.

“나 진짜 간다. 연락할게.”

일방적인 포옹이었기에, 대현이 몸을 떼자마자 둘의 사이가 벌어졌다.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지후에게 씩 웃어 보인 대현이 성큼성큼 문으로 걸어갔다. 집 안 곳곳 온기를 불어넣었던 뒷모습이 곧 문 뒤로 사라졌다.

지후가 움직일 수 있게 된 건 한참이 지나서였다. 멍한 표정의 그가 제일 먼저 걸음을 옮긴 건 부엌이었다. 사 먹어봤자 인스턴트 음식이 다였던 그이기에 대현의 집에서도 전자레인지와 커피머신 말고는 이용해 본 적이 없었다. 어색하게 스토브 쪽으로 다가선 그가 냄비 뚜껑을 열었다. 열자마자 올라오는 김에 슬쩍 인상을 찌푸린 지후가 고개를 기울여 내용물을 확인했다. 미역국이었다.

대현의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돌아온 날, 집에 먼저 와 있던 대현이 먹고 있었던 국도 미역국이었음을 떠올린 지후가 고개를 갸웃했다. 미역국을 좋아하나 보다. 멍하니 생각하던 지후가 곧 고개를 돌려 국자를 찾았다. 몇 번 사용해 보지 않은 것 같은 그릇을 찾아 국을 퍼 담은 그가 흰 쌀밥까지 함께 식탁에 올려놓았다. 수저를 찾아 자리에 앉은 그가 앞에 놓인 쌀밥과 미역국을 멍하니 응시했다.

‘따뜻할 때 먹어. 알았냐.’

방금 전 대현이 남기고 간 말이 귀에서 되풀이되는 듯했다. 단호하게 눈을 맞추던 그를 떠올린 지후가 어색하게 수저를 들었다. 밥을 한 숟갈 퍼 입에 넣은 그가 천천히 입안에 든 것을 씹어 넘겼다. 쌍꺼풀 없는 눈이 두어 번 깜빡거렸다.

누가 자신을 위해 밥을 차려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은 늘 그에게 무심했고, 그들의 공백을 돈이나 물건으로 채우려 했다. 어렸을 때는 돌봐주는 이모님이 계시기라도 했지만 조금 크고 나니 그분마저 없어지고 지후에게 남은 건 식탁 위에 남겨진 지폐들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연습생 시절 지후가 제일 좋아하던 것도 다른 연습생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하던 식사시간이었다.

비록 친한 사람도, 말 붙일 사람도 없었지만 식탁에 누군가 같이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정이 될 때가 있었다. 그때의 버릇이 남아서인지 지후는 데뷔 후에도 그것만은 포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매니저 형들이 배달해 주는 식사를 꼭 부엌의 식탁에 앉아 먹었다. 누가 있든 없든.

그러고 있다 보면 언젠가 한 명쯤은 옆에 앉아서 같이 먹어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했었다. 가끔은 윤성과 우람이 함께할 때가 있기도 했다. 그들과 어색하게라도 둘러앉아 있다 보면 지후의 마음속에서 작은 희망이 꿈틀거리기도 했다.

그러다 우람과의 사건이 있었고, 윤성도 어느 순간부터 그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한참을 더 지후는 혼자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던 그의 눈에 닫힌 문들이 보였다. 그게 어쩌면 제가 식탁에 앉아 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 순간, 더는 식탁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지후도 방으로 도피했다. 멤버들의 외면으로부터.

그러니까, 누구와 같이 앉아 밥을 먹은 기억도 잘 없는 지후에게 밥을 차려주고 따뜻할 때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었을 리 없다. 그랬기에 그가 별 생각 없이 건넸을 말은 실은 지후를 뒤흔들 수 있는 중량을 가진 거였다.

“……흐으…….”

미역국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손등으로 급하게 닦아냈지만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어느새 지후의 머릿속에는 새벽, 대현이 한 이야기가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가끔 넌…….’

‘…….’

‘스스로를 미워하기로 마음먹고 덤비는 사람 같아.’

제가 다 울 것 같은 눈빛을 하던 대현이 뱉은 말이 그의 마음 속 어딘가를 할퀴었다. 그의 마음 속 깊이 가라앉은 무언가를 흠집 내고 마구 눌렀다. 결국 풍선처럼 쪼그라든 그것 때문에 지후는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숨을 쉬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아니었다는 걸. 대현이 뚫어준 그곳을 통해 지후는 비로소 호흡했다.

이 일이 아니었다면 알지도 못했을 사람이었다. 근데도 그 사람은 지후를 살렸고, 살고 싶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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