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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의 시작 (1/7)

로망의 시작

이재영, 스무 살, 재수생. 현재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취미 생활 중.

단편만 늘어놓고 보면 그리 유별날 것 없는 사항들이었지만, 가장 독특한 부분은 표현되지 않았다.

재영은 일찌감치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은 진성 게이라는 점, 대학에 가면 마음 맞고 눈 맞는 파트너를 잔뜩 만나 신나는 캠퍼스 게이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수시고 정시고 와장창 다 떨어져 버려 강제 재수생으로 기나긴 금욕 생활 중이라는 점, 그런 재영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라는 취미는 여장이라는 점까지.

스트레스가 클수록 여장의 정도도 강해지는 재영은 오늘 특히 더 힘을 준 차림을 하고 있었다. 대담하게도, 자신이 졸업했던 모교의 여자 교복이었던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도무지 오르지 않는 모의고사 점수와 대학에 간 친구들과는 다르게 하루 종일 갇혀서 문제집이나 돌리는 지루한 생활 패턴, 잘생기고 멀끔한 놈들로 눈 호강을 하기는커녕 책상에 처박은 고개를 들지도 않는 시커먼 뒤통수나 보고 또 봐야 하는 욕구 불만이 겹치면 이성적인 생각은 훌쩍 날아갔다.

누군가 자신을 안아 줬으면 좋겠다.

자신이 겁먹어도, 울어도, 심지어는 처녀라고 살살 해 달라고 애원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차 없는 대물로 단숨에 꿰뚫고 흔들었으면 좋겠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멋대로 쳐올리고 거칠게 능욕해 줬으면 좋겠다.

치욕적인 말을 퍼부으며 엉덩이를 때리고, 동료들을 불러와 여러 명 앞에서 굴욕을 주면 좋겠다.

심지어 그 장소가 화장실이기까지 하면 더 좋겠다.

더럽고 축축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수많은 좆을 물고 빨고, 구멍은 하도 뚫려 대 다물리지 않고 질질 싸면-.

그런 생각만으로도 재영의 것은 곱게 차려입은 짙은 청색의 교복 스커트 아래에서 불끈불끈 힘을 더했다. 오늘따라 스트레스가 한계까지 몰린 탓에 속옷마저도 입지 않아서 그런지 휑한 다리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들어오는 감각이 짜릿했다.

가늘고 작은 로터 하나로 테두리 부분만 겨우 문지르는 정도의 자위만 몇 번 해 봤던 구멍이 절로 움찔거리고, 스스로 하도 만져 대는 바람에 여자처럼 동그랗게 부푼 모양이 되어 버린 유두도 바짝 일어섰다.

재영은 게이 중에서도 성향이 뚜렷한 쪽이었다. 바텀에, 서브 기질에, 약간의 마조 성향도 있는 데다 첫 경험에 대한 로망은 무려 강간플에 윤간플이기까지 했다.

고등학교까지는 다들 서로 아는 얼굴에다 집까지 가까워 부모님들마저 서로 친분이 있는 친구들뿐이라 재영은 자신의 취향은커녕 게이라는 얘기를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캠퍼스 데뷔만을 꿈꾸며 칙칙한 고교 생활을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랬다. 재영은 상상력이 풍부한 변태적 취향과는 다르게 몸만큼은 깨끗한 숫처녀였던 것이다.

대학만 가면 넓은 캠퍼스,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 자신을 끌어안아 줄 크고 단단한 남자의 가슴팍, 그리고 자신과 취향이 꼭 맞는 주인님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대학 문턱도 넘지 못하고 처녀 상실의 끈적한 로망이 좌절되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바였다. 자동으로 1년 더 늦춰지게 된 캠퍼스 데뷔는 이미 3년을 꾹꾹 참아 온 재영에게 있어 지나치게 가혹한 일이었다.

“……진짜, 너무했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말해 놓고서야 자신의 목소리가 주변에 들리지나 않았을지 흠칫해서 좌우를 휙휙 둘러보았다.

대학을 가지 못한 재영은 집 근처에서 재수를 준비 중이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와 여전히 같은 생활 반경만을 돌아다니고 있었으며, 지금은 무려 지하철 안이기까지 했다. 여자 교복에 가발까지 쓰고 있지만 목소리를 낸다면 누군가 알아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재영은 몹시 변태적인 취향과는 다르게 소심한 면도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능욕해 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으면서도, 자신이 아는 사람에게 알려지는 건 원하지 않았다.

지하철 좌석에 앉지 못하고 문 근처에 서 있던 재영이 조금 멍하게 고개를 숙였다. 스무 살이 되는 날을 얼마나 기대했는데 아직까지도 이렇게 초라한 금욕 생활 중이라니, 조금 서글퍼졌다.

아아, 누군가 자신을 강제로 거칠게 휘둘러 줬으면 좋겠다. 낮고 굵직한 목소리로, 여장에 노출증까지 있는 변태 자식은 크고 튼실한 남자의 좆으로 혼내 줘야 한다고 억지로 끌고 내렸으면…….

“야, 여장 노출증 변태, 다음 역에서 내려.”

그래, 그런 말로,

“안 내리면 네 콩알만 한 좆 사진을 뿌릴 거야.”

협박하면서,

“동창 톡에 노모로, 이름까지 써서. 이재영.”

……뭐라고?

아는 사람에게 알려지길 바란 적은 없는데? 그럼 지금 저 섹시한 목소리가 상상으로 들리는 환청이 아니란 말이야?

휙 돌아보려는 재영의 뒤통수를 커다란 손이 감싸 돌아보지 못하게 꽉 눌렀다.

“돌아보지 말고, 소리도 내지 말고, 조용히 내려.”

정말로 실제 상황이잖아!

기대감에 두근거리는 마음과, 자신을 아는 사람에게 들켰다는 수치가 동시에 차올랐다. 머릿속에서 피가 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두렵고 떨리는데도 빳빳해진 아랫도리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어쩌지? 어쩌면 좋지? 모른 척, 아닌 척 도망쳐 버릴까? 곧 열리게 될 문과 자신의 뒤에 선 남자를 가늠하던 재영이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눌렀다.

바로 그때, 휴대 전화의 진동이 울렸다. 반사적으로 확인하자 화면에 재영 자신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떠올랐다.

사진은 한 장이 아니었다. 여자 교복을 입고 있는 재영의 뒤태부터 시작해, 점차로 다가온 포커스가 치마 안을 향하는 것까지 이어졌다.

치마 안에는 속옷도 없이 맨질 하게 드러난 엉덩이며 꼭 붙이지 않고 있던 다리 사이로 발딱 일어난 물건까지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심지어 그리 크지 않은 좆이 발기하기까지 해 꿀물을 질질 흘려 대는 것도.

덜덜 떨리는 재영의 휴대 전화 화면을 넘겨다본 등 뒤의 상대가 가볍게 킥킥 웃었다. 그래, 역시 이재영 맞네.

자신이 누군지 아는 사람이 확인 사살로 휴대 전화로 사진을 보낸 것이었다. 재영이 생각 없이 확인까지 해 버리는 바람에 이제 발뺌도 불가능해졌다.

역에 도착한 지하철의 문이 열렸다. 재영은 소원하던 대로 남자의 손에 손목이 잡힌 채로 질질 끌려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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