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6화 (6/192)

#6

<‘성 솔’ 인물 정보>

은양 터널 3중 추돌 사고로 부모님과 무용수의 꿈을 잃게 된 당신. 병원에서 만난 YC 엔터테인먼트 최성효 실장과 대표 백의찬의 권유로 YC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이 되었습니다! YC 엔터 소속 연습생 중 가장 단기간에 데뷔조에 들어간 인물로 모두가 당신의 능력을 궁금해합니다.

*덕원 대학교 서양화과에 합격하였습니다. 진학 여부는 유저 자유입니다.

*인물 정보는 실시간 업데이트됩니다.

새롭게 떠오른 상태 창의 내용을 솔은 맹한 얼굴로 빠르게 읽어 내렸다. 아무래도 실제 자신의 삶과 다른 점이라고는 연습생 신분이 되었다는 것뿐인 듯했다. 거창하게 인물 정보라고 쓰여 있지만, 내용은 어쩐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빠르게 글자를 읽어 내려가던 솔은 맨 마지막 줄 ‘대학’이란 단어에서 멈칫했다. 대학. 솔은 사실 대학에 진학한 것을 후회했다. 미술 선생님이셨던 어머니의 흔적을 좇아 얼떨결에 들어가긴 했지만 끝내 졸업은 하지 못했다.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었다.

만약 지금 이 상황이 지극히 현실이고 자신에게 두 번째의 기회가 주어진 거라면 솔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에게 대학 생활은 간신히 버티는 삶을 조롱하는 듯한 시험대였다. 솔은 고개를 저어 알림 창을 눈앞에서 치워 버렸다.

거슬리는 알림 창이 사라지자 솔의 귀에 문 너머로 태오와 매니저 영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다툼이라도 인 것인지 언성이 점점 높아져 커지는 소리에 솔은 그제야 슬쩍 문에서 멀어져 연습실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슨 내용인지까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 무슨 내용이든 들어서 좋을 것이 하나 없었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기까지의 상황이 상황이었다 보니 이럴 땐 눈치껏 못 들은 척 피해 있는 게 상책이었다. 만약 자신에 관한 일로 싸우는 거라면 당사자가 직접 듣는 것만큼 민망한 일이 또 있을까.

예중이며 예고며 입시와 같이 제 경력을 내세울 글 한 줄이 필요할 때 한참 어린아이가 스포트라이트를 휩쓸어 가는 건 그야말로 시기를 달고 사는 일이었다. 이런 적대적인 환경에 놓이는 것이 솔은 익숙했다. 다만 익숙하다는 것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다. 솔이 구석진 자리로 이동하자 세 쌍의 눈알이 자연스레 그를 따라왔다.

그런 솔의 행동에 도지호는 여우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생글생글 웃었다. 문밖의 소란을 듣고 솔이 불편해 위치를 옮겼다는 사실을 눈치챈 그는 솔에게 말을 걸었다. 웃고 있는 지호였지만 솔은 그의 얼굴에서 환영을 읽을 수는 없었다. 정말 기분이 좋거나 웃겨서 웃는 것이 아니었다.

무어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지만 어쩐지 꺼림칙한 웃음이었다. 사실 태오나 다른 사람들처럼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내는 게 차라리 나았다. 솔은 생글생글 웃으며 저에게 다가오는 지호을 피해 딴청을 했다. 딴청이라 봐야 한정된 공간에서 보이지도 않는 먼 산을 보고 괜히 주머니를 뒤지는 것뿐이었다. 어느새 디케이는 가람의 옆으로 다가가 이쪽엔 관심도 없는 척 스트레칭에 한창이었다.

“우리가 따로 들은 게 없어서. 혹시 다른 회사에 있었어?”

어느새 옆에 다가온 지호의 물음에 솔은 눈알을 한 바퀴 데굴 굴린 뒤 답했다.

“아뇨.”

“아차, 실수. 내가 형이니까 말 편하게 해도 되지? 이거 먼저 물어봤어야 했는데.”

“네…, 네. 그러세요.”

“고마워. 그럼 우리 회사가 처음이야?”

“네. 처음인데요.”

“노래는 따로 배워 본 적 없고?”

“네.”

솔의 대답에 지호의 눈가가 더욱 활짝 휘었지만 어쩐지 조금 전보다 더욱 꺼림칙해졌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곡선으로 휜 눈꼬리가 귀여운 미남이었는데 솔은 그가 활짝 웃으면 웃을수록 어딘가 불편했다.

“춤은?”

“…….”

조사하듯 이어지는 질문에 솔은 꼬박꼬박 대답하다 입을 다물었다. 지호의 물음이 계속되자 어느새 제 할 일을 하던 가람과 디케이의 시선까지 솔에게로 집중되었다. 대답하다 보니 여기 모인 네 사람에겐 자신의 존재가 정말 골칫거리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연습생도 아니었고 따로 노래를 배워 본 것도 아니란다. 춤은 출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 밖에서 영호 매니저와 태오의 언성이 높아지는 이유는 필시 자신 때문일 게 분명했다. 이들 눈에 비친 자신은 어느 날 갑자기 메테오처럼 떨어진 폭탄이었다. 그것도 혼자 죽는 것이 아니라 팀 전체를 자멸시킬 핵폭탄.

“춤은…. 모르겠어요.”

“모르겠다고?”

“네.”

“정확히 말해 줄래. 실력이 형편이 없다는 거야? 아니면 춰 본 적이 없다는 거야?”

지호의 묘하게 압박적인 미소에 솔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긴장감 때문일까 가슴이 답답하고 이 자리를 이탈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지호의 질문에 솔은 대답 대신 불안하게 시선을 굴렸다. 지호는 웃고 있었지만 단단하게 튼 팔짱은 방어적이자 공격적이었고 거울을 통해 비치는 두 사람의 시선도 냉랭했다.

숨쉬기가 불편해진다고 느낄 무렵, 문이 열리고 한층 더 눈썹을 사납게 세운 태오가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영호와의 대화에서 오히려 기분이 더욱 상한 것 같은 그는 미간을 팍 구긴 채, 연습실 안을 한 바퀴 쓱 훑어보았다.

“무용했었대요. 꽤 오래.”

“뭐야. 그러면 그렇다고 말하면 되지. 난 또 진짜 아무것도 못하는 줄 알았네.”

태오의 목소리에 지호는 그제야 팔짱을 풀었다.

“제일 자신 있는 거 아무거나 한번 보여 주세요.”

“뭘요?”

“뭐긴요. 춤이요.”

“지금, 여기서요?”

“네. 음악은 원하는 거 있으면 틀어 줄게요. 불편하면 아무거나 기본 동작이라도 보여 줘요.”

“음…. 그게. 일단 무용을 하긴 했는데, 장르도 다르고….”

“상관없어요. 감안할 테니까. 그쪽이 어느 정도 하는지 알아야 우리도 뭐 대책을 세우죠.”

솔은 입을 떠억 벌렸다. 언짢은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린 태오는 이를 악문 목소리로 말을 했지만, 그 어조는 퍽 정중했다. 다만 그와 상관없이 이렇게 다짜고짜 춤부터 보자 할 줄은 몰랐던 솔은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차라리 노래해보라고 했다면 덜 당황했을지도 몰랐다.

태오가 머뭇거리는 솔의 팔을 잡아 끌어당겼다. 맥없이 연습실 한가운데로 끌려간 솔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았다. 바싹 마르고 행색이 추레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멤버들과 확연한 이질감이 들었다.

“무슨 대책이요? 왜, 대책이 필요해요?”

“어제 우리 주말 평가 날이었어요. 데뷔까지 우린 매주 주말마다 노래, 춤 평가를 해요.”

“그런데요?”

“….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우리만 하루 종일 봐주는 것도 아니고, 평가에서 좋은 점수 받지 못하면 당장에라도 데뷔조에서 퇴출당할 수 있어요.”

“제가 퇴출당하면, 그러면 잘된 거 아니에요?”

“뭐라고요?”

솔의 말에 태오의 미간이 한층 더 구겨졌다.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는 그의 표정에 솔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이런 자신이 솔도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솔은 겁먹은 자신의 얼굴을 투과하는 거울을 등지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태오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거울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도 달랐다. 솔은 길가에 버려진 유기견 같았고 태오는 위풍당당한 맹견 같았지만, 솔은 끝까지 맹렬한 태오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 여러분 다 저랑 팀 하는 거 원치 않으시잖아요. 제가 탈락하면 잘 된 거 아녜요?”

“…여기 왜 왔어요?”

“영호 매니저님이 데리고 와서….”

“아이돌 하고 싶긴 해요?”

“……별로 생각 없는데요.”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솔은 지금 솔이 원해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펼쳐진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그를 억지로 여기까지 이끌었고, 그의 의사와는 조금도 상관없이 윤태오의 앞에 서 있었다. 솔직하게 말을 내뱉긴 했지만, 솔은 그의 눈치를 살폈다. 목표를 위해 끝없는 연습을 하는 삶을 솔도 모르지 않았다.

지금이야 그 감각을 잊었지만 그렇다고 그때의 생각과 마음까지 잊은 건 아니었다. 여기 이 자리에 모인 네 사람이 그 누구보다 아이돌을 꿈꾸고 있다면 조금 전 솔의 대답은 모욕으로 다가올 것이었다. 한 대 얻어맞아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럼 애초에 오질 말고, 계약하지 말든가.”

“그러니까!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요.”

솔은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주먹으로 퍽퍽 내려쳤다. 그냥 미친 척 태오에게 ‘사실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 게임 속에 들어온 거 같은데, 정신을 차리니 갑자기 당신들과 데뷔를 하라고 한다.’라고 말해 버릴까 싶었다. 너무도 허황된 소리라 입 밖으로 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진짜 미친놈이 되기엔 아무리 꿈이래도 용기가 안 났다.

“강가람, 아무거나 틀어.”

두 사람의 대치를 말없이 지켜보던 가람이 핸드폰을 두들기자 음악이 바로 흘러나왔다. 솔이 오기 전까지 연습 중이었던 곡이었는지, 후렴구부터 흘러나왔다. 태오는 삐딱하고 반항적으로 서서 팔짱을 끼고 솔을 내려다보았다.

“춰요.”

“싫어요.”

“어쩔 수 없었든, 뭐든 여기까지 왔으면 책임은 다해요. 적어도 남한테 피해는 주지 말아야죠.”

“제가 떨어지는데 왜 그쪽이 피해예요.”

솔은 짜증을 가득 담아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그냥 지금 당장 이곳을 나서서 집에 돌아가 잠이나 자고 싶었다. 새벽쯤 일어나 의찬에게 전화해 징징거리고 주환에게 전화해 어리광이나 부리고 싶었다.

‘그 이상한 퀘스트도 없으니 잠깐 시간을 끌다 그만둔다거나…. 화장실 간다고 빠져나가 도망칠까?’

솔은 가벼운 마음으로 지금 상황을 모면할 방법을 떠올려 보았다. 그의 모든 감각이 이것이 현실이라 외치고 있었지만, 오히려 솔은 그럴수록 더욱이 이 상황을 단순히 꿈으로 취급했다.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별로 좋지도 않은 머리를 열심히 굴리던 솔에게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튜토리얼 : 댄스 신고식!>

갑작스레 팀에 합류한 당신을 대하는 팀원들의 태도가 적대적입니다. 소소한 위기를 극복하고 모두에게 당신의 춤 실력을 보여 주세요!

성공 시 튜토리얼 완료 보상 능력치 등급 상승권 1장 획득, 튜토리얼 완료 보상 상자.

실패 시 시스템 종료 (혹은 그에 상응하는 고통)

남은 시간 : 0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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