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병원비 결제를 마친 영호에게 솔이 비용에 관해 묻자 영호는 또 그 ‘악덕 소속사’를 들먹이며 도리어 화를 내었다. 그런 것은 신경 쓰지 말고 앞으로 조금만 몸이 안 좋아도 바로 말하라며 거듭 신신당부를 했다. 소속사 건물에서 큰길 하나 건너 병원. 이곳에 이런 병원이 있었는지 솔은 오늘에서야 알았다. 계속해서 걸을 수 있겠냐며 온갖 것을 걱정하는 가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던 솔이 ‘여기에 병원이 있었구나.’ 하고 혼잣말하자 매니저 영호가 쓰러진 자신을 태오가 안아 데려왔다는 말을 덧붙여 주었다.
솔이 고맙다고 인사말을 꺼내기도 전에 태오는 고개를 저으며 ‘됐다’라는 말부터 던졌다. 무척이나 무뚝뚝한 어조였다.
“혀엉!!”
쉬엄쉬엄 걸어 숙소로 돌아오니 제일 먼저 득용이 맨발로 뛰어나왔다. 숙소로 오는 내내 애들이 걱정한다, 걱정한다 그렇게 영호가 누차 말하더니 정말 심히 걱정했는지 득용의 안색이 파리했다. 어째 쓰러진 건 솔이었는데 득용이나 가람이 더 상태가 좋지 않았다.
“형, 괜찮아?”
“괜찮으니까 왔겠지. 그리고 김득용. 일단 솔이 앉히고 얘기해. 애 힘든데 서 있게 하지 말고.”
“아, 맞다. 그렇네. 형 어서 들어와.”
득용의 뒤로 팔짱을 낀 지호가 현관문 앞까지 맨발로 뛰쳐나온 득용을 말렸다. 사이가 제법 풀어지고 편해지긴 했지만, 이 정도의 반응을 받을 만큼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는 솔은 득용의 반응이 조금 불편했다. 그러니까, 싫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어색했다. 그간은 늘 상황이 이렇게 되기 전에 관계를 단절하고 도망쳤기에 이토록 걱정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거기에는 의찬과 주환도 포함되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걱정하는 일은 곧 동정과 연민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기에 솔은 늘 사전에 관계를 차단했었다. 물론 이렇게 끈기를 가지고 무엇을 하지도 않았지만. 득용은 꼭 솔의 경호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앞길에 놓인 물건들을 빠르게 치워 냈다. 혹여 발치에 휴지 조각이라도 치일까 봐 발을 휘휘 저어 밀어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호가 고개를 저었다.
“다들 놀랐지. 오늘은 일찍들 쉬어. 솔이는 안정을 취해야 하니까 너무 오래 붙잡고 있지 말고.”
“네.”
“감사합니다.”
“그래, 내일 보자. 솔아.”
솔이 득용의 손에 붙들리며 끌려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영호가 인사를 건넸다. 오롯이 숙소에 다섯만 남자 가람도 태오도, 모두가 소파에 축 늘어졌다. 사실 주말 평가는 솔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똑같이 긴장하는 행사였다.
“형, 머리나 이런 데는 괜찮아? 태오 형이 받긴 했는데….”
“괜찮아. 다들 놀랐죠…. 영호 형 말대로 며칠 너무 무리했나 봐요.”
“……미안.”
“맞아. 미안해. 형.”
“미안해요.”
“아니. 저야말로 평가 망쳐서 미안해요. 왜 사과하는 거예요…?”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하고 밀어붙였던 거 같아요. 미안해요.”
“아니. 아니에요. 그냥 제가 너무 긴장하고 힘들어서….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런 거니까요.”
“우리가 형한테 괜히 눈치 주고 그래서, 무리하게 만든 거 같아서 사과하고 싶었어.”
느닷없는 지호의 사과를 시작으로 득용과 태오가 연달아 솔에게 사과를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솔이 당황해 두 손을 내저었다. 특히나 태오는 퍽 심각한 표정이었다.
“사과하지 말아요. 그리고 다들 신경 써 줬잖아요. 남아서 연습한 건 제가 남겠다고, 더 잘하고 싶어서 그랬던 거예요.”
“그래도. 처음에 너무 못되게 군 거 같아서…. 으아아아. 아무튼 미안해요. 형.”
득용이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소란을 피우는 모습을 보아 하니, 이럴 때는 또 그 나이대의 평범한 소년 같았다. 득용의 그런 모습이 꽤 귀여워 솔은 웃으며 그의 어깨를 조심스레 두들겨 주었다. 모처럼 만에 먼저 시도한 접촉이 어색했다.
솔이 득용에게 그러했듯, 태오도 어깨를 떨구며 숨을 크게 내쉬고는 가람의 어깨를 두드렸다. 태오가 소파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자 가람도 털레털레 걸어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쩐지 두 사람 모두 어깨가 축 늘어져 신경 쓰였다.
“형, 진짜 괜찮은 거지?”
“응. 이제 진짜 괜찮아.”
“그럼 난 가람이 형한테 가 볼게.”
솔의 상태를 재차 확인한 득용은 그가 웃어 보이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는 듯, 웃으며 방으로 쪼르르 뛰어 들어갔다. 거실에 지호와 솔, 두 사람만 남자 잠깐 어색한 침묵이 돌았다. 먼저 침묵을 깬 건 솔이었다. 태오와 가람은 자신과 함께 병원에 온 듯하니 남아 있었던 지호에게 상황을 묻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 지호 형. 대표님이랑 트레이너 선생님들도 다들 많이 놀랐지?”
“그렇지. 뭐. 태오가 너 들쳐 업고 나가고 다들 놀라서 평가도 대충 마무리했지.”
“형, 사실…. 중간부터 기억이 없는데 안무 평가는 끝마쳤다고 해서….”
“뭐? 언제부터?”
“……중간쯤부터?”
사실은 시작하고부터 기억이 없었지만 그렇게 말했다간 괜히 걱정만 키울 것 같아 솔은 적당히 거짓말을 보태었다.
“…….”
솔의 말에 지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한 얼굴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솔아. 너,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처음 받는 평가라 너무 긴장했었나 봐.”
“……네가 괜찮다면 그런 거겠지.”
말은 그리하지만 지호의 표정은 영 찜찜함이 남은 표정이었다. 솔은 정말 괜찮다는 듯 활짝 웃어 보였다.
“그래서 평가가 어땠는지 기억 안 난다?”
“으응….”
“연습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제대로 마무리 동작까지 했어. 대표님이 고생했다고 해 주시고…. 시선 처리 미숙한 거랑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첫 평가고 노력한 게 보여서 더 열심히 하라고 B 주신다고 그랬는데.”
“그랬는데?”
소파에 느른하게 파묻힌 지호가 그때를 회상하듯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가다 멈췄다. 그가 말꼬리를 흐리자 솔은 재촉하듯 그가 했던 말을 똑같이 되풀이했다.
“그러고 있는데 네가 갑자기 뒤로 넘어갔지.”
“아….”
“태오가 바로 안고 병원으로 뛰어가고…. 득용이가 좀 놀라서. 나는 득용이 좀 달래 줬어.”
“많이 놀랐나 보네. 미안하게….”
“그. 애들 다 놀랐을 거야. 네가 진짜 무슨 통나무처럼 뒤로 넘어갔다고….”
“하하…. 통나무.”
“어색하니까 그렇게 웃지 마.”
“응….”
‘통나무’라는 비유에 대충 어떤 몰골이었을지 상상이 가 솔이 어물쩍 웃어넘겼으나 그의 어색한 웃음소리를 지호는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우리랑 처음이 썩 좋지 않았던 거 알고 편하지 않은 건 아는데. 그래도 몸에 이상이 있고 이런 거는 살짝이라도 말해 줘. 아픈 거까지 뭐라 할 정도로 내가 그렇게 못된 사람은 아니잖아?”
사뭇 진지한 지호의 말에 솔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다시금 어색하게 웃었다. 이런 대화가 솔은 그저 어색하기만 했다.
“뭐야. 그 웃음…. 설마 날 그 정도로 못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아니에요. 형.”
“반말.”
“아직 좀 적응이 안 돼서….”
“아, 불편하다 이거지.”
“아니…!”
지호는 예의 여우처럼 눈가를 접어 씩 웃으며 솔을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솔이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황급히 변명을 늘어놓는 솔의 모습에 지호는 어깨를 한번 들썩이고는 득용과 가람이 들어간 방문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여기 오기 전에 다른 소속사에서 연습생 했었거든.”
“다른 회사요?”
“응. 자랑 아니고 좀 더 큰 곳. 거긴 여기보다 훨씬 빡빡했지. 다치고 아파도 다들 아무 말도 못 하고 참으면서 하고…. 핸드폰 같은 것도 아예 금지였어.”
“…다른 데는 그렇구나.”
“다 그런 건 아니고. 거기 분위기가 좀 그랬어. 태오나 득용이, 가람이 같은 애들은 없었지. 그냥 각자 살아남기 바쁜 거야. 아픈 것도 아픈 건데 그럴 때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으니까 너무….”
갑자기 무거워지는 분위기에 솔은 제 집중력이 다해 감을 느꼈다. 점점 지호의 말보다 머릿속에 흘러 들어오는 생각이 많아져 대충 고개를 끄덕이던 찰나, 지호가 잠시 말을 끊고 뜸을 들였다.
“너무 비참하더라. 누구도 나의 변화에 관심이 없다는 게.”
문득, 지호의 그 한마디에 온몸이 훅 무거워졌다. 지금이야 타인의 관심과 걱정스러운 시선이 불편했지만 솔에게도 잠시 그랬던 시간이 있었다. 내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내 아픔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참 모순적이었다. 타인은 자신이 아닌데 우습게도 인간에겐 외로움과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어 제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서 누군가는 제 외로움을 알아주길 바란다.
지호의 말에 솔은 잠시 흐릿해졌던 집중력을 붙잡았다. 그간 지호가 조금 불편하고 꺼림직하게 느껴졌었는데 그 한마디에 조금은 그에게서 익숙함이 느껴졌다.
“아, 괜히 옛날 얘기해서…. 됐다. 피곤할 텐데 들어가서 쉬어.”
지호와 이야기를 끝내고 방에 들어오니 태오가 핸드폰을 들고 서 있었다.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하려던 찰나, 그의 핸드폰이 울려 타이밍을 빼앗겨 버렸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네, 어머니.’ 하며 방을 빠져나가는 태오를 보며 솔은 풀썩, 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병원 침대와 다르게 이젠 숙소 침대가 제법 포근하게 느껴졌다.
낮에 땀을 워낙 많이 흘려 씻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었지만, 막상 누우니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움직이기 대신 하루쯤 게으름을 택한 솔은 침대 위에서 꼬물거리다 아직 열이 남아 따끈따끈한 제 이마에 손을 올려 보았다. 순간 눈앞에 상태 창이 떠올랐다.
[상태 이상 : 고열, 근육통, 현기증]
[경고! 당신은 현재 트라우마 상태입니다. 안정의 포션을 사용을 권장합니다.]
‘아직도 남아 있네…. 이건 언제 사라지는 거지?’
늘 그렇듯, 상태 창은 솔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의 생각에 곧바로 다른 창을 하나 더 띄워 냈다.
[’안정의 포션‘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사용 가능한 안정의 포션 개수 : 2 ]
솔은 눈앞에 떠오른 창의 글씨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전부터 열심히 이런저런 창을 띄워 대더니 이건 또 뭔가 싶었다.
‘안정의 포션?’
[안정의 포션 : 사용 시, 1시간 동안 트라우마 저항 상태가 되며, 상태 이상을 해제합니다.]
차근차근 작은 글씨를 읽어 내려가던 솔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뭐야. 이런 게 있었어?”
게임에 익숙했던 사람이라면 그간 시스템 창이 연신 띄워 댄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었다. 퀘스트를 성공할 때마다, 매일 아침 받았던 보상에 대해 제일 먼저 알아봤을 테지만 솔은 아니었다.
게임에 그다지 관심도 없었고 문외한인 걸 떠나서 그는 그간 이 시스템이 쏟아 내는 말들이 버거웠다. 세세하게 신경을 써 관심을 들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솔은 그간 자신이 퀘스트를 성공했을 때나 아침에 마주했던 시스템 창들이 생각이 났다. 그러자 시스템은 정확하게 그가 궁금해할 내용을 눈앞에 펼쳐 주었다.
그리고 민트색 시스템 창에 떠오른 글자는 제법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