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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를 뽑고 싶어-59화 (59/192)

#59

맞잡은 가람의 손에 떨림이 조금 줄어든 기분이었다. 솔은 그와 눈을 맞추며 일부러 웃어 보였다. 필시 어색하기 짝이 없는 웃음일 테지만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가람과 잠시 말없이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데, 영호와 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솔이랑 가람이는 일단 병원부터 가자. 지호랑 득용이는…. 아니다 너희도 같이 움직이자.”

“괜찮아요. 저희는 숙소에 있을게요.”

“괜찮겠어?”

“네. 순찰 계속 돌아 주신다니까 괜찮아요.”

“불안한데….”

지호와 득용보다도 영호의 표정이 더 불안해 보였다. 경찰과 거의 동시에 도착한 영호는 무척 당황했는지, 한겨울임에도 정말 땀을 비가 오듯이 흘렸다.

가람을 추슬러 솔과 함께 밴에 앉혀 두고 혹시나 한 그는 경찰과 함께 숙소 내부까지 둘러보고 막 나온 참이었다. 그와 함께 둘러보고 나온 지호도 말은 괜찮다고 했지만, 신경이 쓰이기는 하는지 영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점점 멀어졌던 사이렌 소리가 다시 점차 가까워졌다.

“찝찝해서 도어 록이랑 문부터 청소해야겠어요. 혹시 이상한 거 숨겨 두거나 그런 거 아니겠죠.”

“그러니까. 오늘은 일단 B조 숙소에서 잠깐 있자.”

“거기가 더 최악인 거 알죠?”

B조 숙소란, 일반 남자 연습생들이 부대껴 사용하는 숙소였다.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면 네 사람 모두 반응이 좋지 않았다. 태오는 말도 하기 싫다는 표정이었고 지호와 가람은 질색했다. 득용은 아예 대놓고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한참 영호와 상의하던 지호는 문득, 이 자리에 없는 한 명을 언급했다.

“태오는요?”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가람과 함께 숙소로 돌아간다던 그.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태오는 잠깐 동생이 상태가 안 좋아져서 병원에 있어.”

“괜찮대요?”

“진정되었대.”

“다행이다.”

영호의 말에 정작 대답은 솔이 했다. 안도의 한숨이 섞인 ‘다행’이라는 말에 지호와 득용, 영호가 그를 돌아보았다.

“영호 형, 일단 가람이랑 솔이 병원부터요.”

“잠깐, 기다려 봐. 너희를 어떻게 이렇게 두고 가.”

서로의 손을 붙잡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가람과 솔을 본 지호는 영호를 채근했다.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지호와 득용을 이렇게 숙소에 남겨 두고 갈 수 없는 영호는 손사래를 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짧은 통화가 끝나고 나자 영호는 다 큰 남자 둘을 돌봐 줄 보모를 구할 수 있었다.

“종석 매니저님이 같이 있어 주기로 하셨으니까, 지호랑 득용이 괜히 아무한테나 문 열어 주지 말고.”

“저희가 애예요?”

“너희 애야. 그리고 이상한 사람이 와도 막 너희끼리 잡으려고 하지도 말고.”

“네. 종석 매니저님 언제 오시는데요?”

“회사시래. 10분 안으로 오실 거야.”

“금방이네요. 이제 애들 병원부터 데려가 주세요.”

“그래그래. 혹시라도 다시 나타나면 절대 너희들끼리 해결하려 하지 말고 112 알았지?”

“네.”

연락받고 달려온 영호가 가장 경악한 것은 바로 득용과 지호가 스토커를 직접, 물리적으로 제압하려 했다는 점이었다.

“가람아, 솔아 괜찮니?”

“저는 괜찮아요. 가람이도… 괜찮은… 거 같아요.”

영호의 물음에 가람은 아무 답도 없었다. 그저 솔이 감싸 쥔 제 손을 침울한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어색한 침묵에 솔이 대신 가람의 몫까지 대답했다. 영호는 가람과 솔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밴의 문을 닫았다.

오늘 두 번이나 이 차를 타게 될 줄은 몰랐다. 밴이 출발하자 이번에는 솔의 손이 파르르 떨려 왔다. 낮에 외출하며 깎인 체력에 다시금 붉은 신호가 켜졌다. 솔의 손이 떨리자 이번에는 가람이 조금 전, 솔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엑스레이를 찍고 나온 솔은 침울하게 앉아 있는 가람의 옆자리에 앉았다. 사실 딱히 물리적 상해를 입지 않은 가람은 검사받을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그런 일을 당한 심리 상태로 마냥 놔둘 수는 없기에 간단한 진찰을 받았다. 솔은 가벼운 타박상 외에는 정말 천운이다 싶을 정도로 멀쩡했다. 다만 오히려 두 번이나 밴을 타며 깎인 체력 덕에 안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아야 했다.

영호의 표정도 심각해 살금살금 눈치를 보며 앉으니 오늘 벌어진 일에 관해 대화 중이었다. 솔은 함부로 끼어들 눈치가 아니라 데굴 눈동자만 굴리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차단기도 내리고 그래서 건물 CCTV는 찍히지도 않고 아주 전문범이야. 데뷔도 아직인데 경호원을 붙일 수도 없고… 난감하다, 난감해.”

영호의 말에 솔은 그래서 건물 센서 등도 들어오지 않고 그토록 깜깜했구나 싶었다. 차단기가 어디에 있는지, 정작 그 건물에 사는 솔은 몰랐다. 영호의 말대로라면 최소한 스토커는 지속해서 건물에 드나들고, 건물을 관찰했다는 말이었다. 뒤늦게 소름이 돋았다.

“범인… 그 사람이에요.”

“그 사람?”

가람의 나지막한 말에 영호가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솔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잡았던 애들 말하는 거야?”

“네.”

“얼굴 봤어?”

“…아뇨.”

“그런데 같은 사람인지 어떻게 알았어.”

“…말투랑 행동이요. 전화도 왔었어요. 목소리가 좀 다른 느낌이긴 했는데….”

“뭐? 가람아, 그걸 왜 이제야 말해.”

“…….”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고. 하아, 진짜 미치겠다. 요즘 은겸이네 쪽도 정보 줄줄이라 심각한데….”

가람에게 얼떨결에 눈을 얻어맞았던 날, 그날도 그는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고 영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던 지난 며칠간도 마찬가지였다. 전화 통화를 했다는 말에 솔은 벙찐 표정으로 가람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넋을 놓고 핸드폰만 쳐다보며 지냈던 게 다 그 스토커의 연락 때문이었던 것이다.

등골이 쭈뼛 섰다. 가람이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처음 겪는 일도 아닌 듯했다. 이전부터 지속해서 이런 일을 당했다는 듯 말하는 그를 보며 솔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느낌이 왔다.

“지금 SNS며 커뮤니티며 너희 사진 다 올라왔어. 득용이는 셀카까지 털렸고 나는 실장님한테 대차게 까였다.”

“…….”

“어디서 이렇게 줄줄 새는 거냐. 형이 검사 안 한다고 너희 별스타그램 같은 거 하는 거 아니지? 익명 게시판이나.”

“다른 애들 번호도 안다고 그랬어요. 이름도 다 알고 있고. 그 사람이 푼 거 맞을 거예요.”

“그러니까, 걔는 어떻게 알았냐고…!”

영호가 답답한 듯 감자 같은 주먹으로 제 가슴을 퉁퉁 두들겼다. 솔은 손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제 손을 꼭 말아 쥐고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제야 단단히 잘못된 무엇인가가 명확해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또렷하게 보였다.

“저…. 저인 거 같아요.”

가람과 영호가 주고받는 대화를 묵묵히 들으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솔은 이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듣다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달의 원인이 자신인 것 같았다.

잃어버린 핸드폰, 그 안에 남아 있을 메모와 전화번호, 그리고 이미 한 차례 충돌했던 범인. 누가 봐도 영락없지 않은가. 영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솔은 이내 사색이 되어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고해 성사 하듯 쏟아 냈다.

“며칠 전에 길에서 어떤 사람이랑 부딪혀서 넘어졌거든요. 그 뒤로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근데 오늘 보니까 같은 사람인 거 같아요.”

인생에서 지금처럼 말을 빠르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빠르게 쏘아 내듯 흘러나온 말소리는 점점 끝에 가선 불안한 작은 소리로 흩어졌다. 솔이 말이 끝나자 영호는 이마부터 짚었다.

“저번에 핸드폰 집에 두고 왔다고 그러지 않았어?”

“…죄송합니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원래 물건을 잘 깜빡해서….”

“아이고. 애들 핸드폰 번호 다 바꿔야겠네.”

“죄송합니다.”

정말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본래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것도 있었지만 자신이 잃어버린 그 핸드폰의 내용을 누군가가 악용할 거란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솔은 제 머릿속이 지나치게 꽃밭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탄식했다.

어쩜 이렇게 멍청하고 생각이 없을 수가 있을까. 하다못해 그날, 가람을 마주쳤을 때. 아니 다음 날 아침에라도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영호에게 말했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적어도 며칠간 가람이 스토커의 전화에 시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일로 멤버들 모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제야 와닿았다. 솔은 자신의 멍청함에 할 말을 잃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사과의 말만을 내뱉었다.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영호는 솔의 사과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세 사람 모두가 한참 말이 없었다. 영호가 푹푹 내뱉는 한숨 소리만 가득했다. 그가 한숨을 크게 내쉴 때마다 고개 숙인 솔은 조금씩 처져 아예 땅에 처박힐 것처럼 몸을 구겼다. 푹 숙인 목이 떨어질 것같이 뻐근했지만 고개를 들 자격이 없어 오히려 더욱 숙여 땅만 바라보았다.

“일단 너희 둘은 오늘 병원에 있어. 입원 수속하고 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

영호가 자리를 떠나자 두 사람 사이에 더욱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솔은 흘끔, 곁눈질했지만 차마 옆에 앉은 가람을 쳐다볼 자신은 없어 그의 발치만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완만해졌다고 생각했다. 멤버들과도 제법 이제 ‘팀’이라고 할 만큼 친해졌다 생각했는데, 또다시 기어이 자신이 모든 걸 망치고 말았다. 가람이 욕을 하고 화를 내도 할 말이 없었다. 욕을 먹더라도 심지어 얻어맞더라도 사과는 꼭 하고 싶었다. 설령 가람이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을 원망한다 해도 사과하고 싶었다.

비록 다른 종류의 공포이기는 했으나 공포감이 사람을 얼마나 피를 말리게 하고 불안한지, 다른 종류의 시선이지만 자신에게 따라붙는 시선이 얼마나 불편하고 매스꺼운지 솔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사과하고 싶었다.

진심이었다. 솔은 주먹을 다시 한번 꽉 말아 쥐었다. 하얀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가 더욱 하얗게 뼈 마디마디가 도드라졌다. 그러고는 꽉 깨문 입술을 비집고 침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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