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 (73)화 (73/192)

#73

“무슨 소리세요. 매일 거울에서 보는 얼굴이잖아요.”

“아 어…. 어, 제 거울에선 저렇게 안 보이는데.”

제 옆에서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솔은 카메라를 든 민주를 발견했다. 다만 이번에는 안정의 포션 효과 때문일까 제대로 카메라를 보며 대답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대답은 태오나 다른 멤버들처럼 매끄럽진 못했다. 얼이 빠진 솔은 횡설수설했다. 그 얼빠진 대답이 민주는 재미있었는지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숙소에 거울 새로 달아 줘야겠어요.”

“제가 진짜 저렇게 생겼어요?”

“아뇨.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실물이 훨씬 더 엄청나거든요.”

솔의 질문에 민주가 장난으로 정색을 했다. 그간 지독한 우울감과 무력함에 자신을 방치했었던 솔에게는 사진 속 자신이 그저 낯설기만 했다.

“맞아요. 형. 지금 이대로 밖에 나가면 다들 연예인인가 봐, 하고 주변에 모여들걸요.”

모니터가 뚫어지도록 솔의 사진을 쳐다보던 득용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이상한 표정으로 민주와 솔을 돌아보았다. 제 할 말만 내뱉고 얼빠진 솔을 한 번 쓱 돌아본 득용은 다시 솔의 사진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는 가끔, 저 형이 전기도 거울도 없는 원시 시대에서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 숙소에 거울 없나 봐.”

득용의 말에 옆에 있던 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태오 역시 모니터를 가득 채운 솔의 사진에서 쉽사리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확실히 평소랑 분위기가 다르긴 해.”

“그건 그래. 밖에서 지나가다 마주쳤으면 난 솔인 줄 몰랐을 거야.”

가람도 그 말에 공감한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순간 네 남자를 포함해 채민주까지, 그리고 정작 당사자인 솔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솔도 아침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두고 동일 인물이라 생각하지 못할 것 같았다.

단순히 얼굴을 드러내고의 차이가 아니었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피곤하고 우울한 인상의 창백한 남자가 거울 속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다른 인물처럼 두 눈이 반짝이고 스무 살 그 나이대의 빛나는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언젠가 TV에서 노숙자의 머리를 잘라 주는 봉사 영상을 본 적 있었다. 내적인 변화도 중요하지만, 외적인 변화도 그 변화에 영향을 준다. 달라진 자기 모습에서 자신감을 얻기도 하지만 새로운 출발과 새로운 자신이 될 수 있는 용기를 얻기도 한다. 안정의 포션 탓도 있지만 한결 밝아진 솔의 태도는 그 외모의 변화와 더불어 한층 더 솔을 새롭게 만들었다.

“우와! 저, 이 사진 받을 수 없나요?”

화면에 띄워진 솔의 사진이 바뀌자 득용이 스튜디오 안이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소리를 내뱉었다. 순간 멍하니 사진을 보던 스태프들도 그 우렁찬 득용의 목소리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사진을 보는 모든 이가 다들 같은 생각이었다.

솔이 몸을 움직인 듯, 조금 흔들린 사진이었다. 시선도 카메라를 보지 않았고 무엇이 그리 웃겼는지, 몸에 힘을 쭉 빼고 그저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아주 해맑게.

아마도 손짓, 발짓 하는 멤버들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던 때인 듯했다. 이를 드러내고 크게 웃는 그 모습이 마치 햇살이 가득한 해변에 와 있는 듯 따뜻했다.

전체적으로 선이 얇고 날카로워 아름답지만 차가운 느낌이 드는 솔이었는데, 이 사진에서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득용의 외침에 지호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뭐야. 못 나온 사진 받는다며.”

“대박이다.”

“저도, 저도요!”

득용은 지호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그저 솔의 사진과 솔을 번갈아 보며 ‘대박’이라 감탄사만 내뱉었다. 옆에서 조용히 넋을 놓고 있던 가람도 뒤늦게 솔의 사진을 받고 싶다고 아우성을 했다.

“안 되는 거 알고 있지 얘들아? 어서 옷 갈아입고 와.”

영호가 중간에 중재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한참이고 사진을 보고 있었을 것이었다. 득용은 필시 생떼라도 써서 활짝 웃는 솔의 사진을 받아 내고야 말았을 거다. 영호가 멤버들을 밀어내자, 그제야 다섯 사람은 스태프들과 함께 단체 촬영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분장실로 들어가며 지호가 뒤에서부터 와락, 솔을 끌어안았다.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솔은 별 거부감 없이 자기 어깨에 둘린 지호의 팔을 붙잡았다.

“뭐야. 솔이. 걱정시키더니 사진 너무 잘 나왔잖아.”

지호의 칭찬에 기분이 좋았다. 자신을 대신해 선뜻 순서를 바꿔 주었던 그가 고마웠다. 강한 조명을 뚫고 바통 터치하듯 자신에게 다가왔던 지호가 구세주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다행이다. 그렇지?”

“응. 고마워.”

가람이 고개를 살짝 숙여 솔과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발이 살짝 공중에 뜬 것처럼 기분이 좋아 솔은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 들뜬 감정을 즐기던 찰나, 다른 멤버들과 달리 별다른 반응이 없던 태오가 늘 그렇듯, 그답게 멤버들을 일깨웠다.

“어서 옷 갈아입어요. 빨리해야 다들 빨리 쉬죠.”

“네!”

기분이 좋고 들뜨는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이해져서는 안 됐다. 태오의 지적에 모두가 일제히 큰 소리로 대답했다. 늘 그간 대답도 힘없이 하며 묻어 갔던 솔도 오늘만큼은 득용처럼 큰 소리로 대답했다.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링이 된 상태에서 옷을 갈아입는 일은 사실 꽤 어려웠다. 셔츠였던 개인 프로필 의상과 달리 이번에는 몸에 알맞게 딱 맞는 검정 폴라티였는데, 입구가 좁다 보니 머리나 화장이 안 망가지게 입는 게 퍽 어려웠다. 거기에 전과 달리 아주 약간의 장신구가 더 얹어져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했다.

“귀 안 뚫었네.”

“네.”

스타일리스트의 말에 솔은 제 옆에 선 가람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간 액세서리를 착용한 걸 보지 못해 몰랐는데 가람의 귀에는 꽤나 많은 구멍이 있었다. 가람의 귀에 주렁주렁, 피어싱이 달리자 솔은 색다른 가람의 모습에 잠시 넋을 놓았다. 스타일리스트는 귀를 뚫지 않은 솔을 위해 이어 커프를 들고 왔다. 처음 착용해 보는 이어 커프가 귓바퀴를 눌러 귀가 화끈거렸다.

다시 한번 화장을 매만지는 사이, 영호가 보리차 음료를 두고 갔다. 살짝 보니, 스튜디오 안의 관계자들에게 커피를 돌린 듯했다. 보리차 음료병을 든 득용이 울상을 지으며 ‘초코우유….’ 하며 혼자 읊조리는 모습이 보여 솔은 웃음을 터뜨렸다. 어림도 없었다.

준비를 끝낸 멤버들은 짐짝처럼 이리저리 옮김을 당했다. 말 그대로 옮김이었다. 자리 배치가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일렬로 쭉 나란히 서 있던 다섯 명의 순서가 이리저리 계속 바뀌었다.

“왜들 그렇게 쳐다봐?”

자리가 바뀌는 와중에도 다들 한결같이 허리를 숙이고 솔을 쳐다보자 결국 솔이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신기해서?”

“솔이 옆에서 찍고 싶어서?”

“나는 아닌데. 솔이 형 옆에 있으면 오징어 된다고요.”

“다른 데 있어도 어차피 오징어야.”

“아, 지호 형 진짜 너무해.”

솔의 변화가 낯선 건 솔뿐만이 아닌지, 가람과 지호, 득용 모두가 솔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물론 태오도 포함이었지만, 원래도 태오는 솔을 뚫어져라 관찰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다지 새로운 반응은 아니었다.

혼자 하는 촬영보다 모두 다 같이 모여 하는 촬영이 훨씬 좋았다. 다섯 사람을 세워 두고 카메라와 모니터 앞에 모인 스태프들이 분주했다. 연신 의견을 주고받고 위치를 바꿔 가며 계속해서 촬영했다.

“이 둘이 자리 바꿔 볼까?”

사진작가의 제안으로 솔을 가운데, 양옆에 가람과 태오를 두고 마지막 컷을 촬영했다. 상대적으로 마르고 선이 가는 솔을 가운데에 두고 왼편으로 태오와 지호, 오른편으로 가람과 득용이 서자 그 모습이 묘하게 균형이 맞았다.

“좋아요. 마지막 컷.”

“OK,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의 종료를 알리는 사진작가의 외침에 멤버들 모두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우렁차게 인사했다. 그러고는 단체 사진이 궁금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황급히 모니터 앞으로 모여들었다. 당연하게도 가장 우렁찬 감탄은 득용이었다.

“우리 이러니까 진짜 그룹 같아요.”

“디케이야, 우리 그룹이야.”

“맞아. 우리 그룹이죠.”

“우리 팀이야.”

모두가 어딘가 고장 난 사람들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모여 있는 사진을 보자니 기분이 남달랐다. 그간 팀이 아니었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 이렇게 옷을 맞춰 입고 사진을 찍으니 정말로 하나의 팀 같았다. 더불어 진짜 아이돌이 된 것 같았다.

“와아…. 이러니까 진짜 데뷔하는 거 같다.”

득용의 그 말에 순간 다섯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유달리 조용하던 태오가 침묵 끝에 입을 열 때까지 다들 그저 서로의 얼굴만 확인하며 만감을 교차했다.

“…이렇게 다섯 명이 꼭 데뷔하자.”

“이번엔 진짜로!”

어렵게 꺼낸 태오의 그 한마디가 무거웠다. 오래 고생했던 가람과 지호는 그 느낌이 남다른지 조금 울컥한 듯,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려 왔다. 너무 조용한 득용이 이상해 솔은 목을 길게 빼, 맨 끝에 서 있던 득용의 얼굴을 확인했다. 팀의 막내는 거의 눈물을 쏟아 내기 직전처럼 울먹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솔은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았다. 시스템의 말처럼 이런 게 소소한 행복이라면 더 큰 행복은 어떤지 난생 행복해 본 적 없는 사람처럼 새삼 궁금해졌다.

결국 울컥한 득용이 ‘힝’ 하며 눈가를 훔치자 지호가 ‘메이크업!!’이라고 외치며 이미 반쯤 지워져 버린 그의 눈가를 보고 탄식했다. 한쪽 눈의 화장만 지워져 짝눈이 되어 버린 득용을 보고 가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느른한 웃음이 보기 좋았다.

눈앞에 페널티 저항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 창이 떠올랐다. 이런 기분도 이제 끝인가 싶어 솔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모두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아무래도 이 포션에 중독되지 않을까 싶었다.

한 명, 한 명 모습을 눈에 담으며 지금의 기분을 오래도록 기억하려 되새기는 솔과 태오의 눈이 마주쳤다.

“도망가지 마.”

딱 그 한마디였는데 그 한마디에 많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경고 같은 것이 아니었다. 태오가 내뱉은 말에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앞으로 그 무슨 일이 있든 모두가 제 일처럼 도와줄 테니 도망치지 말라는 말이 담겨 있었다. 솔은 태오와 저들끼리 웃느라 바쁜 세 사람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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