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 (100)화 (100/192)

#100

“어떤 거 같아요? 일단 저는 마음에 들어요.”

조금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태오가 자신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멤버들에게 물었다. 솔이 태오에게 보여 주었던 표정처럼 멤버들의 표정은 벙쪄 있었다. 태오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올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멤버들이 한 박자 늦은 반응을 쏟아 냈다.

“오…! 우와. 원래 버전이랑 완전 다른 느낌이에요. 형. 대박.”

“우리 솔이 천재잖아?”

늘 언제나 반응이 큰 편인 득용과 지호가 제일 먼저 큰 소리를 냈다. 득용은 자신도 모르게 비속어가 섞인 ‘멋있어요.’를 내뱉으려다 황급히 카메라를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지호는 솔을 목말을 태워 뛰쳐나갈 것처럼 굴었다. 태오에 이어 두 사람의 열렬한 반응에 솔은 뺨을 발그레하게 밝히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태오가 다 했어. 그냥 숟가락만 얹은 거야.”

부끄러운 듯 체면을 차리지만, 멤버들의 반응에 내심 안심했는지 어깨가 부드럽게 내려가는 것이 태오의 눈에 보였다. 오래도록 무용해서 그런지 조금 높이가 낮은 승모근이 눈에 들어왔다. 매끈하고 흰 목덜미에서 조금 낮은 어깨까지 이어지는 곡선이 그린 듯했다.

“솔, 완전 멋지다. 나도 너무 마음에 들어. 편곡 오늘 밤 안에 마무리할게!”

과한 칭찬에 일렁거리는 솔의 마음에 가람이 마침표를 찍었다. 꼬박 날밤을 새우고도 노트북을 끼고 앉아 피곤이 가득한 얼굴을 한 가람이 느른하게 웃었다. 무언가 해결되었다는 듯 편안한 그 미소를 보고 있자니 솔은 더는 수줍어할 수가 없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멤버들의 진심이 담긴 칭찬은 솔의 바닥 친 자존감을 정상 궤도로 끌어 올리기엔 더할 나위 없었다.

***

“후우….”

크게 숨을 들이마시자 그리 크지 못한 흉곽이 앞으로 크게 부풀어 올랐다. 마치 추운 겨울날 아침의 참새처럼 가슴팍을 내밀고 선 솔은 다시 한번 걱정을 넘어 간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영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마 저 심각한 표정에 대한 지분은 대부분 자신의 것일 게 분명했다.

맞잡은 손에 땀이 찼다. 솔의 땀이 아니라 가람의 것이었다. 점점 축축해지는 손바닥에 가람이 멋쩍게 웃으며 맞잡았던 손을 풀어 제 바지에 손바닥을 문질렀다. 가람의 그 행동에 ‘다들 똑같은 마음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솔은 긴장감이 어린 멤버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당당하게 턱을 올리고 정면을 응시한 멤버들의 옆모습에 각오가 엿보였다.

정신없이 흐른 열흘이 흐른 뒤 본격적인 시작까지 30초다. 분도 아니고 초 단위의 구체적인 숫자를 어찌 알았냐 하면, 지나쳐 나가야 할 통로 앞에 서 있는 스태프가 정확히 방금 ‘30초 남았습니다.’라고 외쳤기 때문이었다.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정신이 없었다. 연속해서 밤을 꼴딱 새워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사실 억지나 마찬가지인 늦은 합류를 한 탓에 다른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준비 시간이 촉박했다. 그런데 욕심까지 부렸으니 잠을 줄이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 잠이 많은 솔도 체력 회복 포션을 사용하며 태오가 저를 깨우기 전에 일어날 정도였다.

통로 앞으로 다 같이 손을 맞잡은 채 다가가자 ‘30초’라 외쳤던 스태프가 마지막으로 한차례 설명을 덧붙였다.

“쭉 걸어 나가셔서 바닥에 있는 흰 라인에 서시면 됩니다.”

스태프의 말에 태오가 차분히 대답하자 등교하는 유치원생들처럼 서로 맞잡았던 손을 하나씩 놓았다. 손에 온기가 계속 남아 있어 떨어졌음에도 계속 맞잡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20초’ 점점 줄어드는 카운트에 솔은 교복 재킷 단추를 다시 한번 잘 여며져 있는지 확인했다. 막 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처럼 제일 위의 단추까지 꽉 잠겨 단정하기 짝이 없었다. 몇 년 만에 입어 보는 교복이 어색했다.

어느 회사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지 비밀이라며 대기실에 있는 동안 화장실도 못 가게 했고 중간중간 준비하며 가지는 미팅도 개별적으로 했다. 늦은 참가 때문일까, 등장부터 맨 마지막 순서를 배정받았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멤버들은 무대 뒤편으로 넘어오는 사회자의 목소리에 경쟁 상대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지만, 앞서 등장을 한 그룹은 그들의 마지막 경쟁 상대가 자신들인지 모르고 있을 것이었다.

사회자의 목소리와 카운트하는 스태프의 목소리가 겹쳐 내용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회사에서 준비했을 팀에 대한 간략한 소개 멘트가 이어지는 듯했다. 통로로 강한 조명이 새어 들어오고 잘 들리지 않던 사회자의 목소리가 아주 우렁차게 들렸다.

‘7조!’

그 순간 앞에 서 있는 스태프가 멤버들의 어깨를 손으로 툭, 툭 밀며 ‘어서 나가세요!’라고 말했다. 아니,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이 그러했다. 태오를 선두로 강한 빛이 쏟아지는 통로를 지나 무대로 나아갔다.

첫 라운드인 대면식과 2차 미션까지는 별도의 팀명과 개인 활동명을 사용할 수 없었다. 대중들에게 팀의 이름을 각인시키고 싶다면 생방송 무대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룰이 있었다. 지난번 미팅에서 이미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7조’라는 임시 타이틀을 받았었다. 얼핏 듣기로 분명 YC 포함 다섯 팀이라고 들었었는데 두 팀이나 늘어 있었다. 그저 그렇게 되었다며 자세한 설명을 듣지는 못했다. 중간에 지호가 눈을 가늘게 접어 웃으며 ‘행운의 숫자 7이야.’라고 외친 바람에서였다.

순간 지호의 큰 리액션에 휩쓸린 솔은 그땐 그저 철없는 아이처럼 ‘와아’ 하며 손뼉을 치고 마냥 좋아했었다. 그런데 막상 무대에 서고 보니 그 숫자의 의미는 즉, 여섯 팀의 경쟁자가 있다는 말이었다. 말이 여섯 팀이지 아까 들으니 한 팀에 열 명으로 구성된 다인 팀도 있었다. 멤버들이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서자 그 여섯 팀의 시선이 한 번에 모여들었다.

정면에서 쏘아지는 조명 탓에 눈이 아팠지만, 수십 쌍의 눈동자가 무척 또렷하게 느껴졌다. 여섯 팀뿐만 아니라 심사 위원으로 자리하고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촬영, 진행을 위해 무대 아래에 서 있는 스태프들까지 그들에게 쏘아지는 눈이 족히 백 쌍은 될 것 같았다.

대기실에서 미리 연습했던 대로, 멤버들은 스태프가 말했던 대로 흰 선 앞에 멈춰서 대형을 유지했다. 따라오는 눈동자에 술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페널티 감소에 안정의 포션까지 복용했는데도 기가 질릴 정도였다. 만약 둘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이 무대에 서지도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통로를 나오다가 무수히 많은 페널티 효과가 중첩되는 걸 마지막으로 기절해 버리지 않을까? 다행히 시야에 아무런 시스템 창도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고 솔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안정의 포션을 최대한 많이 모아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자리를 잡고 서자, TV에서 이따금 보던 MC가 크고 강한 목소리로 ‘YC 엔터테인먼트’라고 회사명을 외쳤다. 순간 큰 배경음과 함께 무대 뒤편에 설치된 백 스크린에서 빛이 쏟아졌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솔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며칠 전 온뮤직넷 미팅 후에 촬영했던 멤버들의 사진이 나오고 상단에 회사명이 큼직하게 박혔다. 무대의 백 스크린이 어찌나 큰지, 솔은 멤버들의 사진을 보려 고개를 살짝 들어올려야 했다. 미팅 전날 눈물이 날 정도로 고통받으며 탈색한 은발 머리의 자신이 스크린에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었다.

제 사진과 눈이 마주친 솔은 순간 지금 방송 촬영 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황급히 고개를 획 돌렸다. 어찌나 급하게 몸을 돌렸는지, 중심을 잃고 몸이 살짝 기울었다. 누군가 잡아 주지 않는다면 옆으로 두어 걸음 튀어 나갈 것이었다.

‘사고 쳤다!’ 그 생각이 뇌리를 가득 채운 순간. 단단한 팔이 솔의 허리에 둘렸다. 그의 허리를 반 바퀴 둘러, 반대편 옆구리에 닿은 손은 너무도 큼직해, 꼭 갈비뼈를 감싸 안은 듯했다. 덕분에 몸을 바로 세운 솔은 언제 실수했냐는 듯, 턱을 살짝 들고 정면을 응시했다. 강한 조명 사이로 새카만 지미집 카메라가 꼭 자신에게 따라붙는 눈동자들처럼 이리저리 움직였다.

인사를 끝마치고 무대를 내려갈 때까지 허리에 둘린 손은 그대로였다. 조명이 사라지자 그제야 맨 앞줄에 쭉 앉은 심사 위원들과 그 뒤로 앉아 있는 다른 팀들의 얼굴이 자세히 보였다.

“잘하고 있어. 집중하자.”

속삭이는 저음의 목소리가 귓바퀴를 타고 목덜미에 닿는 뜨거운 숨에 솔은 제 옆을 바라보았다. 제 허리에 팔을 두른 태오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태오였구나.’

정신이 반쯤 나가서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고 확인할 생각도 못 했다. 은겸을 따라 음악 방송 무대에 가긴 했지만, 그때와는 사뭇 느낌이 달라 눈이 팽팽 돌아갈 지경이었다. 솔이 태오를 올려다보자 태오는 그제야 솔의 허리에 두른 팔을 풀어 주었다.

“응. 고마워.”

태오 덕에 솔은 정신을 차렸다. 그의 도움과 배려에 감사 인사를 전한 솔은 자신들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리는 여섯 팀을 쭉 훑어보았다. 정말 제각각의 모습이었다. 공통점이라곤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들이라는 것뿐이었다. 팀별로 앉아 있는 자리 위엔 큼직한 모니터가 달려 있었는데 그 화면에 ‘조’와 ‘회사명’이 표기되어 있었다.

마지막 순서였다 보니, 유일하게 비어 있는 자리에 앉자 까맣던 모니터에 ‘7조 YC 엔터테인먼트’가 반짝 나타났다. 무대에서 내려와 자리에 앉으니 모든 것이 신기했다. 회사 사내 식당에서 마주치는 다른 연습생이나 데이블락, 멤버들을 제외하곤 ‘아이돌’스러운 사람을 처음 보는 솔이었고 이런 유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촬영은 물론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솔에게는 말 그대로 별세계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저도 화려하기 짝이 없는 은발을 하고 있었지만, 휘황찬란한 머리카락 색이 단풍 물이 든 것처럼 곳곳에 자리했고 다들 이를 갈고 나왔는지, 의상이 하나같이 번쩍거렸다. 솔은 자신이 입은 교복을 점검하듯 훑어보았다. 금색으로 번쩍거리던 카드인 것치고 너무 수수한 듯해 괜스레 위축되었다.

‘다른 걸 뽑았어야 했나.’

비닐 의상이나 꽃밭 사진을 그대로 인쇄한 듯한 정장을 골랐어야 했나 솔은 침음을 흘렸다. 다시금 그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린 솔은 진저리를 치듯 고개를 저었다. 두 번 생각해 봐도 그건 아닌 듯싶었다. 솔이 도리질하자 그의 무릎 위에 따뜻한 손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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