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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77화 (77/198)

그리고 대공은 에드가 손을 잡자 차갑던 손끝에 따스한 기운이 퍼지는 게 느껴졌다. 어쩐지 손을 물들인 검은 부분들이 느리지만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대공은 시선을 들어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자신의 손을 주무르는 에드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에드도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냥 대공의 손끝을 살살 주무를 뿐인데 그의 손끝에 머물렀던 검은 흔적이 분명히 옅어지고 있었다.

“어…… 대공 전하, 보이십니까? 손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말하는 에드를 바라보던 대공이 손끝을 가볍게 움직여보았다.

“음, 이건 에드가 손을 주물러 줘서 그런 거 아닐까?”

“아, 이게 정말 저 때문에 그런 걸까요? 그냥 대공 전하의 몸이 회복 상태에 이른 게 아닐지요?”

이마를 긁적이며 답하는 에드를 보며 대공은 말했다.

“그럼 에드, 오늘 나와 손을 잡고 자 보지 않을래?”

“……네?”

“사실 아까 에드가 내 손을 잡아 줬더니 한결 몸이 편해졌거든. 그러니까 혹시 시험 삼아서 같이 손을 잡고 자 보는 건 어떨까 해서.”

그렇게 말하며 옅게 웃는 대공의 모습에 에드는 눈을 깜빡였다.

* * *

에드가 눈을 뜬 건 이른 아침이었다. 침대를 빙 둘러 쳐진 캐노피 사이로 옅은 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린 에드는 밝은 햇살이 대공의 얼굴을 가로지르고 있는 걸 보았다. 졸음기가 덜 가신 눈으로 봐도 정말로 근사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시선을 내리자 대공의 오른손과 자신의 왼손이 서로 꽉 맞물려 깍지를 낀 상태였다.

“…….”

에드는 지난밤 대공이 손을 잡고 자 보자는 말을 했을 때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이 높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아주 혹시라도 정말로 자신이 가진 치유의 힘이 대공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완전히 잠에서 깬 에드는 대공의 손 상태를 확인했다가 “어?” 하고 놀랐다. 혹여 잘못 본 것일까 싶어 눈을 연신 깜빡이고 비벼 본 뒤 다시 시선을 내렸다.

대공의 오른손이 완전히 말끔해져 있었다. 에드는 신기하면서도 믿기지 않아 고개를 숙여 더 자세히 보려고 했다.

그 순간, 대공의 눈썹이 살짝 움직이며 눈꺼풀이 스르륵 올라갔다.

“안녕, 에드.”

한결 맑고 기분이 좋아진 대공의 목소리였다.

“아, 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대공 전하.”

그리고 에드의 대답에 대공이 옅게 웃으며 그의 손을 더 잡아끌었다. 살짝 올라갔던 대공의 눈꺼풀이 금세 가라앉았다.

“응. 좋은 아침이야, 에드. 그런데 우리 조금만 더 이대로 있자.”

“응, 좋은 아침이야. 에드, 그런데 우리 조금만 더 이대로 있자.”

대공의 목소리가 정수리에 닿는 느낌에 에드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시선을 들어 올리자 어느새 다시 잠에 빠진 대공이 보였다.

감은 눈꺼풀 아래 드리워진 대공의 속눈썹이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피로로 물든 것이 아니라 편안함과 나른함에 잠긴 단잠에 그의 얼굴이 더없이 좋아 보였다.

에드는 가만히 숨을 죽이다 그의 붉은 입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대공의 입술에 손을 대 보려다가 간신히 멈췄다.

“…….”

헉, 나 지, 지금 뭐 하려고 했지?

고개를 살짝 저은 에드는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대공의 가슴이 보였다. 대공과 붙은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살짝만 움직여도 대공의 가슴에 귀를 대고 두근두근 뛰는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로 보는 대공의 무방비한 모습에 마른침을 삼킨 에드는 대공이 잡은 손에 시선이 닿았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깍지를 낀 채 대공의 배 위에 올려진 손이 간질거려 꼼지락거리고 싶었지만 혹 그가 깰까 봐 참았다.

‘확실히 대공의 오른손은 완벽하게 깨끗해졌고.’

이번에 에드는 대공의 왼손을 살펴보았다. 왼손도 말끔해져 있었다. 손을 물들였던 검은 기운이 가신 걸 보면 대공의 몸 상태가 지난밤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의미였기에 에드는 생각했다.

‘정말로 내가 대공에게 도움이 된 걸까?’

대공에게 잡히지 않은 오른손을 들어 물끄러미 바라본 에드는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펴 보았다.

‘치유의 힘이 그리 크지 않아서 기대도 안 했는데.’

확신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대공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된 것 같아 에드는 소리 죽여 웃었다. 뿌듯했다.

균열의 틈에 처음 들어갔다 나온 날에도 대공과 함께 같은 침대에서 자고 일어났다. 하지만 그때는 경황이 없어 그의 모습을 이렇게 살필 수 없어서 몰랐는데 이렇게 대공의 잠든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때보다 한결 더 편해진 모습인 것 같아서.’

그래서 다행이었다.

“으음.”

그때 대공이 살짝 뒤척이며 에드를 그쪽으로 끌어당겼다. 마음을 푹 놓고 있던 에드는 어쩐지 이런 제 모습을 대공에게 보이면 안 될 것 같아 입매를 끌어 내렸다.

만약 이 순간에 눈을 뜬 대공과 시선이 마주치면 너무 멋쩍고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이럴 땐 그냥 모르쇠로 잠자는 척을 하는 게 최고였다. 그래서 에드는 눈을 질끈 감았다.

“…….”

그리고 다시 눈을 번쩍 떴을 때 ‘어?’ 하며 멍하니 눈꺼풀을 깜빡였다. 그러곤 허, 하고 낮은 한숨을 터뜨리며 침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주위가 아까 눈을 감을 때보다 훨씬 밝아져 있었고 침대를 빙 둘러쳐져 있던 캐노피는 말끔하게 치워진 채였다.

‘아니, 잠자는 척만 하려고 했던 건데 또 진짜 잠들어 버렸네.’

허탈함이 몰려왔다. 대공이 눈을 뜨면 잠든 척을 했다가 때를 봐서 잡힌 손을 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푹 자 버리다니……. 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침대는 폭신했고 대공의 손은 따뜻했으며 햇살은 너무 따사롭지 않았던가.

에드가 시선을 들자 앞에는 모로 누워 팔로 머리를 받친 대공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 잤어? 에드?”

“……네, 대공 전하. 대공 전하께서도 편히 주무셨습니까?”

“에드 덕분에 잘 잤어.”

에드는 멋쩍게 웃으며 물었다.

“그러면 몸 상태는 어떠십니까? 괜찮으십니까?”

대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주 좋아.”

아까 확인했지만, 대공의 입으로 몸이 괜찮다는 말을 듣자 에드는 마음이 한결 놓였다.

“정말로 다행입니다, 대공 전하.”

그러자 대공이 짓궂게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걸로 끝?”

“네?”

“말로 한다고 믿을 수 있겠어? 확인해 봐야지.”

눈가를 장난스레 찡그린 대공이 여전히 마주 잡고 있던 에드의 손을 풀었다. 그러더니 에드의 눈앞에서 자신의 손을 장난스레 앞뒤로 움직여 보였다. 빠르고 가벼운 손짓이었다.

그런 대공의 모습에 에드는 작게 웃었다. 말갛고 깨끗한 손이었다. 대공도 하룻밤 새에 싹 물러간 마력의 부작용에 기분 좋아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배도 봐.”

“……네?”

“근육도 안 느껴지고 완전히 밋밋하기 그지없지?”

얇은 티셔츠에 휩싸였지만, 어디로 봐도 식스팩이 살아 있는 탄탄하고 판판한 배였다. 그러나 대공은 엄살을 부리며 배를 손으로 살살 쓸면서 말했다.

“그만큼 소화가 다 되도록 푹 잤다는 거니까.”

대공의 무해한 웃음이 에드를 향해 날아왔다.

“식사를 하러 가자, 에드.”

* * *

후원 별채의 식당에 내려왔을 때까지만 해도 어젯밤에 있었던 일로 황제가 음식 대접도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렇게까지 치졸하지는 않았다.

“아스넬 형, 오늘은 식사를 마치고 바로 황궁을 떠나는 건가요?”

대공의 맞은편에 앉아서 빵에 잼을 바르던 로넨이 물었다.

“그래, 그러니 식사를 마치면 방에 올라가 챙기지 못한 물건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자. 로넨.”

“네, 형!”

로넨과 시선을 마주한 채 조곤조곤하게 말하던 대공은 활기찬 동생의 대답에 옅게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식당의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부하들에게 알렸다.

“황제 폐하를 알현한 후에 바로 출발할 테니 늦지 않게 준비하고,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제이논과 텐스에게 말하도록. 응급 상황이 생기면 일정이 지체되니 그냥 넘기려 하지 말고.”

“네!”

식당에 울려 퍼지는 대답이 크고 씩씩했다. 곧 이 따분하고 지루한 황궁을 벗어나 북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대공의 부하들은 신이 난 것 같았다.

어제 대연회장에서 있었던 일은 귀족들이 황제의 눈치를 보느라 빠르게 퍼져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입을 다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황제가 준비한 함정을 통해 대공이 되레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했으니 그가 얼마나 심통이 났을지 뻔한 일이었다.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준비해서 북부로 가는 게 좋을 터였다.

대공의 부하들은 로넨이 대공의 친동생이라고 밝혀지는 과정에서 황제가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주 속 시원함을 느꼈다.

더욱이 요 며칠 우울해하시던 도련님이 다시 웃음을 되찾으신 걸 보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에드는 떠들썩해진 식당을 둘러보다 로넨과 시선이 마주쳤다. 전보다 한결 밝아진 표정의 로넨은 머리를 뒤로 넘겨 이마를 한껏 드러낸 채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아 했는데.’

아마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이 대공과 똑같은 색으로 바뀌니 자신감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에드는 물을 마시며 작게 미소 지었다.

식사를 마치고 대공이 황제를 알현하러 간 사이에 에드는 로넨과 함께 방으로 올라왔다. 커다란 가방에 로넨의 짐을 챙기며 그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로넨은 그런 에드를 옆에서 도와주다가도 거울 앞으로 뽀르르 달려가 그 위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에드.”

“네, 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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