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80화 (80/198)

“네, 대공 전하.”

대공의 허락에 에드는 잽싸게 이동해 점원에게 가서 혹시 선물용 손수건도 취급하고 있는지 문의했다.

점원이 친절하게 답했다.

“네, 있습니다.”

에드는 점원이 보여 주는 손수건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그간 대공 전하께 도움도 많이 받았는데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드리고 싶어. 아직 돌려드리지 못한 장신구를 드릴 때 같이 전하면 좋을 것 같아.’

점원의 안내를 받아 대공에게 어울릴만한 손수건을 고른 뒤 야무지게 포장까지 마친 에드가 돌아왔을 때는 로넨의 고민도 끝나 있었다.

“이걸로 할까?”

“네!”

“다시 한번 확인해 보지 않아도 괜찮을까?”

“네, 확실하게 정했어요.”

씩씩한 로넨의 대답에 대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번에는 저쪽으로 가 보자.”

목검을 점원에게 맡긴 대공을 바라보며 에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 볼일을 다 마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목검을 손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니 그사이에 다른 물건을 구경할 생각인가 싶어 에드는 대공의 곁을 따랐다.

대공이 향한 곳은 보석 판매대 쪽이었다. 인사를 꾸벅하는 점원에게 대공은 말했다.

“회중시계와 나침반을 보고 싶은데, 보여 주게. 선물 받는 사람이 자주 뛰어다니니 장식용보다는 최대한 가볍고 작고 견고한 것으로.”

대공의 요청에 직원은 진열대 위로 여러 종류의 회중시계와 나침반을 내려놓았다.

대공은 그것들을 내려다보다가 로넨에게 말했다.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게 있을까?”

로넨은 불빛에 반지르르 빛나는 금과 은을 비롯해 여러 가지 보석으로 꾸며진 회중시계와 나침반을 내려다보며 고심했다.

에드는 그런 대공과 로넨의 뒤로 살짝 빠져서 그들이 오순도순 의견을 나누는 걸 감상할 생각이었다.

“…….”

하지만 그때 자신의 옷소매를 잡으며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시선을 내리자 보이는 것은 대공의 손이었다. 에드가 대공을 올려다보자 뒤로 고개를 돌린 그가 말했다.

“에드도 이리 와서 골라 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

“아, 아닙니다. 대공 전하.”

척 보기에도 광이 번쩍이며 비싼 몸값을 뽐내는 회중시계와 나침반에 에드는 주춤거렸다. 그러자 대공이 말했다.

“북부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회중시계와 나침반을 선물해 주는 문화가 있어. 북부는 해가 짧고 겨울이 기니 시간을 잘 살피라는 의미와 북부의 깊은 산에서 길을 잃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나침반으로 길을 잘 살펴 내려오라는 의미로 말이야.”

“…….”

“그러니 내가 에드에게도 할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에드는 아직 북부의 일원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그럼 이리 와서 골라 봐, 에드.”

대공의 말에 로넨도 뒤로 돌아 에드의 옷자락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래! 에드. 우리 똑같은 걸 골라서 같이 하고 다니자!”

그러더니 붉은 루비와 파란 사파이어로 세련되게 꾸며진 시계와 나침반을 골랐다.

“저는 이게 마음에 들어요! 에드는 어때?”

에드가 대답하기도 전에 로넨의 안목에 옅게 웃던 대공이 직원에게 말했다.

“그럼 이 물건들에 금줄을 달아 주게.”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직원이 빠르게 손을 움직여 회중시계와 나침반에 줄을 달아 내려놓자 대공은 그를 들어 로넨의 목에 걸어 줬다.

로넨이 가슴에서 달랑거리는 회중시계와 나침반을 신기하게 내려다보는 걸 확인한 대공은 에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에드.”

그리고 손을 내밀어 줄에 달린 시계를 에드의 목에 걸어 줬다. 대공의 손이 목 뒤에 닿자 에드는 목이 움츠러들었다. 그의 따뜻한 손길에 에드는 회중시계에서 울리는 초침 소리가 느려지는 기분이었다.

보석점 밖으로 나왔을 때 로넨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스넬 형! 우리 한 군데만 더 들르면 안 될까요?”

로넨의 말에 대공이 에드와 발을 맞추면서 답했다.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있어?”

“잠시만요!”

로넨은 주위를 둘레둘레 살펴보았다.

“분명히 이 근처에 있었는데.”

그러더니 다시 “잠시만요!” 하고는 뽀르르 뛰어갔다.

보석점 계단을 내려서던 대공은 에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에드, 어디 안 좋아?”

“아, 아닙니다. 대공 전하.”

에드는 만지작거리던 목에서 손을 떼며 앞을 보았다. 작은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을 기웃거리던 로넨이 대공을 향해 달려왔다.

“형! 이쪽이에요. 에드도 빨리 와!”

로넨이 대공과 에드의 손을 잡으며 이끌었다. 작은 강아지처럼 빠르고 부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어서 오세요.”

로넨이 들어선 곳은 털옷과 장갑을 파는 가게였다. 입구는 좁았지만, 안으로 들어설수록 넓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안락의자에 앉아 뜨개질은 하던 주인이 일어나 웃으며 말했다.

“편하게 둘러보세요.”

에드는 상품의 색깔과 종류 상관없이 진열된 가게 안을 살펴보았다.

로넨은 온갖 모양의 상품들이 쌓인 무더기 속에서 보물이라도 찾듯이 이곳저곳을 뒤적이며 눈을 빛냈다.

대공도 이런 아기자기한 가게가 마음에 드는지 흥미로워하는 얼굴로 턱을 쓸며 가게를 둘러보았다.

“북부에 가면 손과 발이 시릴 테니까.”

로넨은 장갑에 손을 대보며 즐거워했다.

에드도 양말과 털 장화를 구경하다가 다시 목에 걸린 시계를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좋은 선물을 받았는데 손수건과 함께 다른 것도 드려야 하지 않을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작게 포장된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던 에드가 고개를 기울이며 고민에 빠졌다.

그때, 대공과 로넨이 머리를 맞대며 뭔가를 속삭이다가 에드를 불렀다.

“에드!”

그에 정신을 번쩍 차린 에드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답했다.

“네, 로넨 도련님.”

“이거 한번 입어 봐.”

로넨이 벽 한쪽에 걸려 있던 망토를 들고 오며 말했다. 가게에 들어설 때부터 눈이 가던옷이었다. 하얀 토끼 모양으로 뜨개질한 망토였는데 후드의 토끼 귀 부분이 귀여워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걸 나보고 입으라는 걸까?’

오히려 로넨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에드가 물끄러미 옷을 바라보자 로넨이 망토를 에드에게 대보며 말했다.

“에드가 이거 입으면 정말 토끼 같을 것 같아.”

로넨이 손 빠르게 단추를 푼 망토를 에드에게 걸치려 하자 어느새 대공까지 합세해 착착 에드의 팔에 망토를 끼워 넣었다.

에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입혀지는 망토를 내려다보다가 제 앞으로 다가온 대공을 올려다보았다.

“에드, 잠깐만. 단추도 채워보자.”

대공은 어쩐지 즐거운 기색으로 망토에 달린 단추까지 꼼꼼히 채웠다.

에드는 마네킹이 된 기분으로 멍하게 있다가 대공이 목에 가까운 단추를 채울 때 닿은 손가락에 정신이 들었다. 대공의 손끝이 닿은 목에 열감이 퍼져 나가며 심장이 빠르게 뛰는 기분이었다.

에드는 속으로 숨을 후, 후 골랐다. 그사이에 대공이 망토를 가볍게 털어 정리하고는 뒤로 물러나자 로넨이 환하게 웃었다.

“아! 진짜 잘 어울린다, 에드!”

“에드, 후드도 써 볼까?”

다시 가까이 다가온 대공이 머리를 쓸어 넘겨 정리해 주고는 후드를 씌운 뒤 로넨을 보듯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에 에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 이게 뭐라고 둘이 이렇게 즐거워하는 거지?’

에드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로넨과 손에 장갑까지 끼워 줄 기세의 대공을 보며 눈을 끔뻑였다.

* * *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온 에드는 짐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소중하게 천으로 감싸 잘 넣어 둔 장신구를 가방 깊숙한 곳에서 꺼내 마법 등에 비쳐 보았다. 대공에게 받았던 장신구였다.

‘짐가방 속 물품에 긁히기라도 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에드는 다행히도 말끔한 장신구를 오늘 산 손수건에 감싸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늘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저곳 돌아다녔더니 피곤하긴 하지만…….’

소중한 물건이니 잃어버리기 전에 돌려드려야지.

에드는 장신구를 품에 안고 방을 나서려다가 옷걸이에 걸어 둔 토끼 망토에 시선이 닿았다.

“…….”

에드가 이 망토를 꼭 입어야 한다는 로넨의 주장에, 어딘지 모르게 즐거워 보이는 대공이 사서 건네준 망토였다.

에드는 자신도 모르게 부드러운 털로 만들어진 망토를 손으로 살살 비벼 보다가 정신을 번뜩 차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얼른 돌려드리고 오자.”

대공의 방은 숙소 가장 안쪽에 있었다. 에드는 대공의 방으로 빠르게 걸어가 흠흠, 목을 가볍게 가다듬은 후 방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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