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21화 (121/198)

‘아직 물을 줄 필요는 없을 것 같네.’

화분들의 상태를 찬찬히 살펴본 에드는 테이블 앞에 앉았다. 책을 펼쳐 약초들을 살펴보다가 만년필 끝으로 볼을 긁적였다.

“어린 레이시 버섯과 붉은사슴뿔 버섯의 구분이 쉽지 않다고 하는데.”

레이시 버섯은 호흡기와 불면증에 효과가 있는 것에 반해 붉은사슴뿔 버섯은 독버섯이었다.

제이논이 그 버섯들의 차이점을 혹시 잘 알까 싶어서 물어보려고 했는데 만나기가 어려웠다.

‘레이시 버섯이 호흡기에 좋다니 북부 사람들에게도 분명히 이로울 텐데.’

그러나 이를 오인해 잘못 먹으면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그러니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면 좋은데…… 에드는 책에 그려진 버섯의 형태들을 집중해 살폈다.

‘……하지만 버섯은 말려서 유통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그림으로 살펴본다고 해도 도중에 섞이는 일이 생길 것 같아.’

에드는 턱을 괸 채 이런 제 생각을 수첩 귀퉁이에 끄적였다. 어느새 집중력이 흐트러지나 했더니 하품이 찔끔 나왔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한 에드는 목을 가볍게 주물렀다. 밤이 늦었으니 오늘은 이제 그만 잠자리에 드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직 책을 반도 다 못 봤단 말이지…… 음.”

에드는 계획했던 대로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 않은 책을 촤르륵 넘겨 보다가 테이블에 이마를 기댔다.

‘10분 정도만 자고 일어난 다음에 조금 더 살펴봐야겠다.’

그러나 이런 에드의 다짐이 무색하게 스르륵 감긴 눈꺼풀은 10분이 지나고 1시간이 더 지나도 다시 올라가지 못했다.

그리고 조금 더 달이 기울었을 때 끼이익, 연구실 문이 열렸다.

곤히 잠든 에드는 문이 열리는 기척에도 눈을 뜨지 못했다. 연구실 안으로 들어온 대공은 에드의 모습을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텐스가 약초 책을 가득 든 에드를 만났다고 하기에 혹시나 싶어 들렀더니.’

그 순간 테이블에 엎드려 잠든 에드가 벽 틈새로 들어온 바람에 몸을 더 움츠렸다. 대공은 미리 챙겨 온 모포로 에드의 몸을 감싼 후 조심스레 그를 들어 품에 안았다.

“으응.”

에드가 작게 뒤척였으나 깨지는 않는 걸 보니 오늘 하루도 쉴 틈 없이 움직이고 공부했을 것이 눈에 선했다.

대공은 에드가 몸에서 떼지 않는 수첩도 빠지지 않고 챙기다가 그 안에 그가 쓴 내용들을 확인하곤 빙그레 웃었다.

처음엔 꽤나 의욕적이었는지 필체에 힘이 넘치고 반듯반듯했지만 점차 글씨가 휘늘어지는 것이…… 마지막에는 거의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 같았다.

‘많이 졸렸구나.’

대공은 자신의 품에서 축 늘어진 에드를 잘 받쳐 안으며 가볍게 등을 토닥였다.

“오늘도 정말 고생했어. 푹 자고 좋은 꿈 꿔, 에드.”

* * *

“흐아암.”

가볍게 하품하며 눈을 뜬 에드는 어? 하고 놀랐다.

‘아니, 어제 분명 연구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테이블에 엎드려 잠깐 잠들었는데.’

잠시 생각을 정리한 에드는 짧게 혀를 차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연구실에 널브러진 나를 누군가가 방에 데려다준 모양이구나.’

끄응,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세수를 한 에드는 얼굴을 수건으로 닦으며 생각했다.

‘그런데 누가 나를 방으로 옮겼을까?’

고개를 갸웃하며 옷을 입다가 떠오르는 대공의 얼굴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에드는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불룩함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에 만져지는 것은 수첩과 동그랗게 포장된 작은 사탕 두 개였다.

“……이건 대공 전하께서 로넨 도련님께 주시곤 하는 사탕인데.”

뽀스락뽀스락 소리가 나는 사탕을 꺼낸 에드는 볼을 긁적이며 수첩을 펼쳐 보았다.

그리고 제가 의식의 흐름에 따라 끄적인 낙서에 단정한 글씨체로 대공의 의견이 적혀 있었다.

레이시 버섯은 성장하면 콩팥 모양의 갓이 나오는 것에 비해 붉은사슴뿔 버섯은 뾰족한 고깔 모양의 갓이 생겨.

레이시 버섯의 갓은 갈색인 것에 반해 붉은사슴뿔 버섯은 밝은 적색을 띄지.

말렸을 때 레이시 버섯의 갓은 노란빛이 도는 갈색과 대는 적갈색이지만, 붉은사슴뿔 버섯은 갓과 대 모두 진한 갈색을 보여.

그러나 에드의 고민대로 어릴 때는 두 버섯을 혼동하기 쉽고 자라는 곳도 비슷해서 분류하기가 쉽지 않아.

그래서 북부 주민들에게 식용 가능 여부가 정확히 판단 된 버섯 이외에는 채취하지 말라고 알리고, 의원들이나 약재를 공급하는 상인한테는 관리 및 취급에 특별히 주의하라고 할 생각이야.

그리고 되도록 잠은 침대에서 자, 에드.

너무 무리도 하지 말고.

작게 웃음 표시가 되어 있는 마지막 글귀에 에드는 어쩐지 가슴 언저리에서 간지러움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손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사탕 중 한 개를 까 입속에 넣자 순식간에 달콤한 맛이 입 안에 퍼져나갔다.

대공의 반듯한 글씨체를 손끝으로 살살 쓸어 본 에드는 수첩을 덮어 외투에 쏘옥 집어넣었다.

‘전하께서 나를 옮기는 동안 어떻게 눈 한 번을 안 떴나 모르겠네.’

손바닥으로 가볍게 탁, 탁 뺨을 두드린 에드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탁을 행주로 닦는 에린이 보이기에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 에린. 커피 한 잔 부탁해도 될까?”

“웬일이야, 에드? 커피는 잘 안 마시더니.”

매번 저녁쯤 되면 맥을 못 추는 것 같아서 오늘은 카페인의 힘을 빌릴 생각이었다.

에드가 말없이 웃자 어느새 에린의 뒤에 나타난 부주방장이 말했다.

“에드도 이젠 다 커서 쓴맛을 즐길 줄 알게 된 거구나?”

“그렇다고 하기엔 얼마 전에 텐스가 달인 약재를 먹기 싫다며 이리저리 도망치지 않았어요?”

“그건 약재가 아니라 극약 느낌이었지. 한 번 마시고 나면 다신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하하하, 그건 그래요.”

에린이 웃으며 눈짓했다. 앉아서 기다리라는 의미에 에드는 고마워, 하며 자리에 앉았다.

“아, 그런데 에드.”

“……응?”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머릿속으로 오늘 해야 할 일을 정리하던 에드는 에린의 부름에 조금 느리게 반응했다.

“이번 주에 식자재 상단이 들어온다고 하던데 에드는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제이논이나 텐스는 벌써 자기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한 차례 늘어놓고 갔는데.”

“아, 맞다. 상단이 들어오지?”

“응, 주방장님께서 에드에게도 뭔가 먹고 싶은 게 없는지 물어보라고 하셨거든.”

에드는 에린의 눈빛이 반짝 빛나는 걸 보았다. 백작 저에 있을 때와 다르게 다양한 요리법을 배울 수 있다 보니 요즘 더 활기가 넘치는 느낌이었다.

‘이것도 대공 전하와 내가 바꾼 미래 중에 하나겠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에드는 손끝에 걸리는 사탕 봉지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난 북부 성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이라면 어떤 것이든 좋아.”

* * *

빵과 커피로 가볍게 속을 채우고 식당을 나선 에드는 후원의 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녁 전까지 식물들의 특징을 직접 눈으로 살펴볼 생각이었다.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후원 근처에 도착하자 어디선가 로넨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잠깐만, 로아! 닭을 물면 안 돼!”

“도련님, 그 안쪽은 위험합니다. 제가 갈 테니 움직이지 마세요.”

“으악! 이르텔, 닭들이 이제 날 쫓아오는데? 도와줘!”

에드는 서둘러 소란의 근원지로 달려갔다가 우뚝 멈췄다.

꼬끼오오오.

처음 눈에 보인 것은 로아의 집 지붕 위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닭이었다.

그 옆으로는 로넨과 로아, 여기에 왜 있는지 모를 닭들이 뒤엉켜 있었고 제이논과 이르텔은 후원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무슨 놀이 같은 건가?’

에드는 뿌연 먼지가 이는 후원에 서 있다가 눈앞을 확 지나가는 검은 물체에 뒤로 살짝 물러났다.

눈앞에서 힘차게 날갯짓하며 날아간 닭을 시선으로 쫓은 에드는 제 바지를 잡아 오는 손에 정신을 차렸다.

“에드! 큰일 났어! 닭장에서 닭이 탈출했어!”

‘닭장은 분명 화원에서 조금 떨어진 창고 근처에 있는데…….’

거기서부터 자유를 찾아 나온 닭들이 다섯 마리…… 아니, 온실 안에도 한 마리가 들어간 듯하니 최소 여섯 마리인 건가.

일단 원인 파악보다는 이 사태를 수습하는 게 먼저인 것 같았다.

에드는 파다닥 뛰는 닭들과 그런 닭들을 쫓아 달리는 로아, 그리고 그런 로아를 뒤쫓는 제이논을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기 위해 먼저 제 발치로 뛰어드는 로아를 안아 들었다.

“아으, 힘들어.”

드디어 로아가 멈추자 무릎을 짚은 채 숨을 몰아쉬던 제이논이 에드를 보곤 순간 멈칫, 했다.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대면에 민망함을 느꼈지만 곧 제 옆을 쌩하니 지나가는 닭에 눈을 빛냈다. 에드와 제이논은 서로 시선을 마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잡자, 에드.”

“네, 제이논.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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