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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북부 대공의 집사로 사는 법-151화 (151/198)

그 대답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대공은 전부터 마음속에 간직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무엇이 말입니까?”

“임신 때문에 에드의 몸에 무리가 가거나…… 출산의 고통으로 괴롭거나 하지는 않을지 말이야.”

대공의 눈에 어린 근심을 읽은 옌이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몸에 전혀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순 없으나 그래도 큰 위험 부담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어째서지?”

“이미 몸이 배 안에서 자라는 태아에 맞춰서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또한, 대신관님께서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신비로운 이야기가 없는지 살펴보고 계십니다. 저 또한 연구를 지속하며 전하의 심려를 덜어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옌은 에드에게 대신관도 관심을 쏟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도우리라는 것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는 제 말에 귀를 기울이는 대공을 힐끗 올려다보다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제가 봤던 젤다족 남성은 비교적 수월하게 출산을 했었습니다. 특별한 출산 후유증도 없었고요. 물론, 에드 님은 그들과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제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출산 후까지 걱정하시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보살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가.”

“네, 그리고…….”

대공이 팔짱을 끼며 자신을 내려다보자 옌은 자신이 느꼈던 바를 솔직하게 말했다.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에드 님과 대화를 해 보니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를 지니고 있으시더군요. 그리고 전하께서는 심지가 매우 굳은 분이시니 혹여 두 분 사이에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금세 이겨 내실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옌이 입을 다물자 방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마법 등이 희미하게 내뿜는 빛줄기에 음영이 진 대공의 모습을 응시하던 옌은 그제야 자신이 너무 주제넘은 말을 한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내가 너무 나불거린 걸까.’

옌은 포용적인 태도로 경청하는 대공의 모습에 긴장이 풀린 나머지 말을 너무 많이 한 것을 후회했다. 조용한 방 안에 그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그렇게 말하니 약한 소리를 할 수가 없군.”

얼마 지나지 않아 적막을 깨는 목소리에 대공이 혹시 저를 질책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던 옌이 고개를 들었다.

“또한 자네가 보기에도 에드가 곰살맞은 구석이 있지?”

“네?”

대공의 엉뚱한 물음에 옌이 반문했다. 하지만 대공은 이를 듣지 못한 듯 한동안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생각에 잠겼다가 옌의 빈 찻잔에 차를 따랐다.

“그럼 내가 에드에게 더 신경 써야 할 점은 없나?”

“전하께서 이미 그에게 충분히 신경 쓰고 계신 상태라 계속해서 이 환경을 유지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외엔?”

“앞으로는 업무를 볼 때 빼고는 되도록 그의 곁에 있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에드 님과 태아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데에 그것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요.”

“명심하도록 하겠네.”

작게 고개를 끄덕인 대공이 아, 하며 질문을 이어갔다.

“혹시 에드가 마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가는 것도 괜찮은가?”

* * *

다음 날 오전, 잠결에 손으로 옆자리를 더듬거리며 온기를 찾던 에드는 침대 아래에서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는 기척을 느꼈다.

어째 자도 자도 끝없이 밀려드는 졸음에 세상에 다시 없을 게으름뱅이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킨 그가 침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보았다.

“……뭐 하세요, 도련님?”

낮은 포복 자세로 방 안으로 들어오던 로넨을.

머리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흠칫, 굳었다가 고개를 빠끔 든 로넨이 에드에게 시무룩하게 물었다.

“나 때문에 깬 거야?”

“아뇨, 충분히 자고 일어난 참입니다. 그런데 왜 그러고 계세요?”

“정말? 내가 에드의 잠을 방해한 거 아니지?”

“그럼요.”

얼굴이 환해진 로넨이 벌떡 일어나 침대 곁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의자를 끌고 와 앉은 그가 불룩한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펠트 인형들을 꺼내 침대에 올려놓았다.

“어제 만들던 인형들을 완성했는데, 에드가 자고 있기에 조용히 책상에 놔두고 나오려고 했거든. 그런데 깼으니까 지금 보여 줄게.”

눈사람과 늑대, 고양이 등 각양각색의 인형들이 매트리스 위에 착착 놓이기 시작했다.

이를 내려놓으며 자신을 힐끗, 올려다보는 로넨의 시선에 약간의 설렘과 긴장이 교차해 있었다.

인형들을 찬찬히 살펴본 에드가 진심을 다 해 말했다.

“정말 귀엽고 예쁩니다, 도련님. 어제도 생각한 것이지만 손재주가 정말 뛰어나신 것 같아요.”

“아, 아냐. 텐스와 지오가 거의 다 만든 거라서 내가 한 건 별로 없어.”

“그래도 인형들의 모양을 생각하신 건 도련님이시잖아요. 이런 설계도를 구상하는 것도 재능이니 자신감을 가지세요.”

에드의 다정한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로넨이 씨익 웃었다. 그러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달려갔다.

로넨을 시선으로 따른 에드는 그가 손에 들고 온 인형들에 의문을 느꼈다.

어제 에드가 만든 여우 인형이었다.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가 대공과의 밀회 과정에서 납작하게 눌리고 만.

그걸 에드가 저녁 내내 만지작거리며 손질하자 방에 들어오신 대공이 그 인형들을 다듬어 주었다.

어젯밤 일이 생각나자 입가가 살짝 풀어진 에드가 제 앞에 여우 인형들을 내려놓는 로넨을 바라보았다.

“에드가 만든 것도 정말 귀엽고 예뻐. 나도 이 말을 꼭 해 주고 싶었어.”

에드는 로넨이 되돌려 주는 진심이 담긴 칭찬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저야말로 텐스가 다 해 준 것이지만 그래도 도련님께 칭찬을 받아서 기뻐요. 이 뿌듯함을 가슴속에 잘 간직하겠습니다.”

로넨이 인형들을 손에 들고 움직이며 환하게 웃었다.

“응, 그리고 에드도 인형 만드는 거 재미있었지?”

“네.”

“어제 내가 용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그랬잖아? 그래서 텐스가 근사한 도안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거든. 어쩌면 오늘 완성해 올지도 모르는데, 그럼 같이 만들어 볼까?”

같이 용 인형을 만들 것을 제안한 로넨이 이내 아, 맞다 하면서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까 형이 에드는 일이 있어서 오늘 북부 성을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지, 참. 오늘은 안 되겠다.”

“저요?”

“응, 형과 함께 외출할 거래.”

듣지 못했던 이야기에 에드가 눈을 깜빡이이자 로넨이 의자에 앉아 발을 까딱거리며 답했다.

“에드가 몸이 안 좋아서 계속 고생했잖아. 음식도 잘 못 먹고. 그래서 형이 에드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서 밖에 나가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대.”

“저는 이제 괜찮은데요.”

로넨이 에드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조금 좋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이야. 오늘 바람을 쐬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더 좋아질 거야!”

로넨이 꼭 그렇게 될 거라는 듯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서 나도 따라가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이르텔 경과 검술 수업이 있거든. 빼먹고 나갈까 했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약속을 했는데 놀고 싶어서 취소하면 이르텔 경의 시간이 아깝잖아…… 그래서 엄청 놀고 싶은데 참으려고.”

“도련님의 마음이 그렇다면 이르텔 경에게 사정을 설명하면 어떨까요? 수업을 다음으로 미룰 수 있다면 함께 나가도 괜찮으니까요.”

로넨은 에드의 말에 혹했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머릿속에 아까 형이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로넨, 오늘 하루 북부 성을 지켜 줄 수 있을까?〉

〈형 대신 제가요?〉

〈응, 형이 오늘은 에드와 외출을 하려고 해.〉

〈에드와 둘이서만요?〉

〈에드가 계속 몸 상태가 좋지 않았잖아? 그래서 바람을 쐬면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형이 그에게 허락받고 싶은 일도 있고.〉

〈음…….〉

〈오늘은 로넨이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쉽겠지만, 다음에는 셋이 즐거운 자리를 갖자.〉

그렇게 말하는 형의 얼굴에 짙은 즐거움이 어려 있어 로넨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았어요. 형.〉

그렇기에 로넨은 그들을 따라 북부 성을 따라 나가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답했다.

“오늘 나는 북부 성을 지키고 있을게! 그러니까 에드는 밖에 나가서 즐겁게 놀다 와서 나한테 꼭 자랑해 줘. 어떤 재미있는 일을 겪었는지!”

* * *

로넨의 말대로 점심을 먹고 북부 성을 나서게 된 에드는 높은 산자락 입구에서 마차가 섰을 때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도착한 곳은 북부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놀러 왔었던, 퇴임한 전 부단장 부부의 식당이었다.

“대공 전하!”

“어서 오십시오.”

부부가 활짝 웃으며 대공과 에드를 가게 안으로 안내했다. 식당 내부는 예전과 다르게 여러 가지 꽃과 초로 꾸며져 있었다.

그를 신기한 눈으로 두리번거리던 에드는 대공이 이끄는 자리에 앉았다. 부부가 짧게 인사한 뒤 자리를 뜨자 맞은편에 앉은 대공에게 소곤거렸다.

“그런데 전하, 전 부단장 부부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걸까요?”

“그래 보여?”

“네, 식당을 꽃으로 이렇게나 잔뜩 꾸며 둔 걸 보니까요. 로넨 도련님의 생일 파티를 준비했을 때보다도 꽃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장식하느라 힘드셨을…….”

대공의 물음에 순순히 답하던 에드는 어? 하며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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