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Prologue.(1권) (1/16)

Prologue.

1992년. 4월의 어느 날.

그날은 이상하게도 작업이 많았다. 아침부터 늦은 저녁 시간까지. 김 사장은 겨우 짬을 내 김밥 두 줄을 샀다. 검은 봉다리를 달랑달랑 들고 시끄러운 골목을 지났다. 김밥으로 대충 끼니를 떼우고 나면, 커피 마실 시간은 있나.

곧이어 있는 작업을 떠올렸다. 피곤했다. 3월엔 학생들이 입학하느라 길거리에 많이 보이던데. 4월은 깡패 새끼들 입학식이라도 있는 건가.

웃기지도 않은 생각을 하며 김 사장은 숍이 있는 골목으로 향했다. 유흥가 바로 뒤편이라 왁자지껄한 소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 번쩍대는 조명의 잔여물이 어두운 골목에까지 죽 늘어섰다.

봄비가 내린 뒤라 땅은 축축했다. 그 위에 빛이 떨어진 모습은, 물감이 번진 듯이 경계가 희미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들리는 희미한 소리.

“……으, 앵…….”

고양이인가? 밥과 물을 챙겨 줬더니 그새 이곳에 정이라도 붙였나. 김 사장은 숍 앞에 다다라서도 골목 구석구석을 힐끔댔다. 고양이는 김밥 못 먹겠지. 검지로 덥수룩한 머리칼을 긁는 행동에 갈등이 스쳤다.

“으앙…….”

“어허.”

사람들이 왜 고양이 울음과 아기 울음소리가 비슷하다고 하는 건지, 김 사장은 그때서야 깨달았다. 이건 정말 갓난아기의 울음 같았다. 이 녀석이 어디서 울고 있는 거지.

김 사장은 상체를 기울여 큰 트럭과 승용차 아래를 확인했다. 어둠 속에서도 기민하게 움직여야 할 실루엣이 보이지 않는다. 에이, 모르겠다. 작업도 밀렸는데 얼른 먹고 준비나 해야지. 김 사장이 빠른 포기를 하고 등을 돌린 순간.

“으아앙!”

우렁찬 울음이었다. 이건 고양이의 울음이 아니었다.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애초에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가 왜 여기서……?

이 골목에서 숍을 꾸린 지도 꽤 되었음에도 주변에 아기가 산다는 말을 듣거나, 아기를 데려오는 일은 본 적도 없다. 술집과 모텔, 당구장 따위가 즐비한 곳이니까. 김 사장은 검은 봉다리를 손목에 걸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유심히 귀를 기울였다.

소리의 원천지는 트럭과 영업 택시 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의류 수거함 앞이었다. 광고에도 몇 번 나온 아이스크림 이름이 적힌 박스. 아랫단은 빗물을 머금고 짙은 갈색을 띠고 있었다.

닫히지 않은 상자 안에는 우주선이 그려진 가재 수건이 엉성하게 덮인 채였다. 굳은살이 가득하고 투박한 손끝으로 그것을 집어 올렸다.

“아이고야. 이게 무슨…….”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작은 아기였다. 짙고 검은 눈동자가 잠깐 김 사장에게 닿았다. 담요에 푹 쌓인 아기는 찬 기운을 느꼈는지, 낯선 김 사장을 보고 놀란 건지, 울음을 빼액 터트린다. 얼굴이 시뻘게지고 콧잔등에 주름이 질 만큼 힘차게도 울었다.

“으앵! 으아앙!”

“누가 아를 여다가…….”

김 사장은 검은 봉다리가 끼워진 팔을 뻗다가, 멈칫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아이를 놓고 간 누군가가 도망치고 있을지도 몰랐다. 몸을 뒤로 길게 뺀 김 사장은 골목 양쪽을 살폈다. 어두운 뒷골목엔 아무도 없었다.

결국 김 사장은 빗물이 고인 골목 위를 뛰었다. 혹시 어디 건물에 숨어서 지켜볼지도 모를 일이니까.

땀에 푹 젖을 때까지 골목을 탈탈 털었지만, 그 누구도 없었다. 골목에는 오직 서러운 아기의 울음소리만이 가득했다.

“염병. 이걸 어째…….”

안절부절못하던 김 사장은 결국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박스 안에 담긴 아기를 품에 안는다.

“오야, 오야.”

결혼은 했었어도, 슬하에 자식은 없었다. 품에 이렇게 작은 생명체를 안아 보는 일도 어렸을 때를 제외하곤 없다. 김 사장은 어설프게 안은 아기를 들고, 진땀을 흘렸다. 그때였다.

“어이― 김 사장. 차 뒤에 숨어서 뭐 해? 오줌이라도 갈겨?”

걸걸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다음 작업을 하기로 했던 망치였다. 지난번에 등짝에 호랑이를 새기다가 아파 죽겠다고 난리를 치는 통에 라인만 따고 그냥 보냈었다.

뭐, 하루 만에 다 하는 애들이 독한 거였지만, 문신 가게에 오는 깡패 중에서는 참을성이 없는 편이었다. 기력이 많이 소비되는 명암과 디테일 작업을 하기로 한 참이었는데. 김밥은커녕 김 사장은 진퇴양난에 빠져 버렸다.

“웬 애? 아― 설마…….”

김 사장의 어깨 너머로 품에 안긴 아기를 내려다보던 투박한 시선이 의류 수거함 앞에 있는 젖은 박스로 향했다. 안 그래도 험악한 인상이 더욱 사납게 구겨졌다.

“씨발, 누가 이 핏덩이를 버렸어?”

“……일단 가게 들어가.”

김 사장은 아기를 안은 채 가게로 향했다. 그 발길을 막아선 건 망치였다.

“어딜 들어가? 애새끼 경찰서에 갖다줘.”

“…….”

“데리고 가서 뭐 어쩌려고. 김 사장이 키우려고?”

자신이 키울 자신은 없지만, 아기를 경찰서에 보낸다는 건 더욱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보내면? 부모가 얼씨구나 ‘아기를 잃어버렸었는데 감사합니다’ 하고 찾으러 올까? 그럴 일은 아마 세상이 두 쪽 나도 없을 거였다.

그럼 아기는 어떻게 될까. 보육원을 전전하면서 살겠지, 제대로 된 보살핌도 받지 못해서 삐쩍 곯은 몸에 헝클어진 머리와 단정하지 못한 차림으로.

밥은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경험에 미루어 보아, 그건 어려운 일이다. 보육원엔 원장이 보살펴야 할 애들이 한둘이 아니다. 누가 밥을 잘 먹나 일일이 체크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고. 또 그들끼리도 텃세와 서열이 존재했다. 뒤로 밀리면 빵 조각 하나 먹기도 어렵다.

김 사장은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아기의 미래가 눈앞에 그려졌다. 이렇게 생생하게 상상 할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이 보육원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부모한테 버림받은 이 불쌍한 것을 보육원에 보내기는…….

“뭐, 정 안 되면 키우지. 들어가 얼른.”

마뜩찮은 표정의 망치를 지나친 김 사장은 가게 <스토크> 앞에 걸린 자물쇠를 풀었다. 퀴퀴한 냄새가 났지만 제법 깔끔한 내부였다. 아까까지 작업을 하던 터라 머신과 잉크가 늘어져 있었다.

작업대에 아기를 눕힐 수는 없어 소파로 향했다. 낡아 빠진 소파 위에 핏덩이를 조심스럽게 올려 두었다. 김 사장은 목구멍이 콱 막힌 기분이었다. 등 뒤에서 망치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아기는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물기 어린 눈동자로 낯선 남자 둘을 멀뚱히 바라본다. 어른 손가락의 두 마디도 채 되지 않을 작은 손을 입가로 가져가 어설프게 씹어 댄다. 쪽쪽이를 빨듯 쫍쫍거리면서.

김 사장은 작은 쪽지와 함께 버려졌었다.

김효동입니다. 잘 키워 주세요.

혹시 이 아이에게도 이름이 있을까 싶어, 꽤 새것의 티가 나는 담요를 뒤적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한숨이 길게 떨어졌다.

혀를 차던 망치는 내내 인상을 찌푸리고 있더니, 어디서 담요를 꺼내 가지고 왔다. 그러곤 거침없이 아기 몸 위에 덮었다. 투박한 손길을 받은 아기는 멀뚱히 눈을 깜빡인다. 짧은 팔다리가 의미 없이 바둥거린다.

살굿빛 담요에 쌓여 아이스크림 박스에 담긴 채 버려진 아이. 우주선이 그려진 가재 수건 아래에서 울던 아이. 그 아이가 조폭들에게 문신을 해 주면서 밥을 벌어먹던 김 사장의 가게 <스토크>에 들어온 날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버려진 아이에게 가족이 생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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