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1. 워터라인 (2/16)

Chapter 1. 워터라인

그는 성이 없다. 그냥 사월이라고 불린다. 이름이 사월이라는 걸 알게 되면 십중팔구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어릴 때는 그래도 이름을 얻기까지의 스토리를 꽤 친절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그에게 그런 친절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4월에 버려져서.”

그렇게 대답을 하면, 역시 십중팔구 아차 싶은 표정을 한다. 사월은 그게 싫었다. 그런 표정을 지을 거면 돈이나 주고 동정을 하든가. 입 밖으로 내기도 귀찮은 말을 목구멍 뒤로 넘긴다. 결국 목을 뒤덮은 타투 위를 벅벅 긁으며 고개를 돌리고 만다.

일종의 버릇이었다.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면 목덜미에 그려진 타투를 확인하는 것. 왼쪽 귀 아래부터 쇄골 반절을 다 덮은 꽃은 어떤 역경도 밝게 이겨 내라는 뜻으로 김 사장이 새겨 준 타투였다. 하얀 피부 위에 새겨진 검은 잉크는 또 다른 꽃말처럼 변치 않고 피부 아래에 맺혀 있었다.

이 꽃은 김 사장이 특히 좋아하던 꽃이었는데, 얼마나 좋아했냐면 숍 이름을 ‘스토크’라고 바꿀 정도였다. 김 사장은 <스토크> 안에, 스토크 타투를 새긴 사월을 남겨 두었다. 사랑하는 모든 것을 한곳에 두고, 그는 얼마 전 눈을 감았다.

그래서 사월은 사는 게 너무도 피곤했다. 빨리 뒤져서 김 사장이나 만나고 싶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이나 같이 진탕 마셨음 좋겠다. 그게 사월의 꿈이자 하나 남은 욕심이었다. 하루빨리 꿈을 이루기 위해 사월은 열심히 일한다.

김 사장을 만났을 때,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위해. 가게 안 말아먹고 아주 잘 꾸려 갔다고. 정확히는 ‘김 사장이 나 살려 준 거 아깝지 않게 잘 살다 왔어’ 그렇게 말을 해 주고 싶어서.

“아아!”

“씨발, 자꾸 아가리 벌릴 거야?”

“지미, 아프다고! 살살 못 허냐? 이건 왜 마취도 안 해 가지고서는…….”

사월은 무감한 시선으로 남자의 어깨를 내려다봤다. 연꽃을 새기는 작업은 빨간 잉크를 채워 넣는 과정을 지나고 있는 중이었다. 라인을 그릴 때와 달리 면을 채우는 작업엔 보통 고통을 더 잘 느꼈다. 잉크 때문에 피인지 고름인지 분간도 되지 않는 이물질을 슥 닦아 내는 손길엔 군더더기가 없었다. 사월은 주저 없이 머신을 껐다.

“등신 새끼, 엄살은. 10분 있다 다시 해.”

여린 인상과 다르게 사월의 입은 무척 험했다. 모든 건 김 사장의 공이었다. 조폭들이 오가는 가게에서 살아가려면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사월이 가장 처음 배운 말도 욕이었다. 시―이발.

“씨발, 냉장고에 주스 꺼내 처먹어.”

내내 작업대에 엎드려 있던 남자는 아이고, 아이고, 앓는 소리를 내면서 몸을 일으켰다.

사월은 장갑을 벗고 훌렁 소파에 가서 앉았다. 오랜만에 받은 작업이라 그런지 눈이 뻐근했다. 눈두덩을 꾹꾹 두르는 팔뚝에는 단검을 휘감은 뱀이 새겨져 있었다. 팔 근육이 움직일 때마다 뱀이 꿈틀대는 모양새였다.

작업대에서 내려온 덩치 큰 남자는 사월이 시키는 대로 냉장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큰 몸을 구기고 앉아 고심을 하더니 꺼내 든 건, 초코우유였다. 음료수를 대량으로 주문했더니 서비스로 준 듯했다.

“……유통기한 보고 처먹어.”

“아.”

덩치 큰 남자는 박 터지는 소리를 내더니, 우유 갑 상단에 적힌 날짜를 슥 훑어보곤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유통기한이 남은 모양이다. 꼴딱꼴딱 시원하게도 초코우유를 마시는 소리를 들으며, 사월은 눈을 감았다. 담배가 말렸다. 테이블 위에 던져둔 담배와 라이터를 집어 들었다.

“담배 태우고 온다.”

입 안에 초코우유를 머금곤 고개를 끄덕이는 덩치를 확인한 사월이 가게를 나섰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반팔 티를 입은 채였다. 탁탁―, 녹이라도 슬었는지 까칠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라이터의 불을 켰다. 담배 끝에 빨간 불이 붙고, 깊게 빨아들인다. 그제야 숨을 쉬는 기분이 들었다.

“어이.”

니코틴이 몸 곳곳에 퍼져 가고 있을 때였다. 정적을 깬 탁한 목소리에 사월은 눈을 떴다. 끄트머리에 매달린 재를 바닥으로 툭 떨어냈다. 옆 건물 주차 공간에 세워진 차가 보였다. 그 옆으로 시커먼 정장을 입은 남자가 보였다. 사월은 한참 기억을 더듬고 나서야 남자가 누구인지 떠올랐다.

“또 간 보게?”

며칠 내내 간을 보던 남자였다. 견적은 얼마나 되냐, 도안은 어떻게 나오는지 대략적으로라도 보여 달라, 가진 현금이 이 만큼인데 이거에 맞추려면 어느 정도나 할 수 있냐……. 문턱이 닳도록 찾아와 귀찮게 질문을 하던 남자.

도대체 저 새끼는 문신을 할 마음이 있긴 한지 모르겠다. 사월은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우곤 엄지로 이마를 긁었다. 부스스한 머리칼이 아까부터 이마 위를 간지럽혔기 때문이다.

“썅, 너무 비싸. 디씨 없냐?”

한숨인지 담배연기인지 모를 것을 길게 내뿜는다. 하얀 연기가 작은 얼굴 앞에 모였다 이내 크게 흩어진다. 사월은 담배꽁초를 지져 불꽃을 죽였다. 그러곤 누군가 가져다 놓은 녹슨 깡통 위로 꽁초를 툭 던졌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작은 느릿했다.

“엿이나 처먹어.”

가운뎃손가락만 세워 남자를 향하게 들어 보였다. 기가 찬 표정을 한 남자를 보고도 매몰차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일련의 과정 내내 사월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싸가지 없는 새끼, 퉤.”

남자는 미간을 찌푸린 채 침을 탁 뱉었다. 사월이 사라진 가게를 잠시간 노려보다 차에 올랐다. 조수석에 올라 문을 닫자마자 질문이 날아들었다. 음성이 흘러나온 곳은 뒷좌석이었다.

“최 실장, 쟤 누구야?”

깡패 주제에 상사라는 말이 우습긴 하지만, 어쨌든 제가 모시는 형님이었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팔을 걸친 채,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 남자.

“아, 이 동네에서 문신 박는 걸로 꽤 유명한 놈입니다. 애들 문신은 대부분 저 놈이 그려서, 저도 하나 새겨 볼까 하는 중인데, 요즘 네임 지우는 거 하느라 눈이 높아졌는지 비싸기는 존나 비싸지 말입니다.”

“아. 네임도 지워?”

원재의 옆구리에 발현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네임이 근질댔다. 처치하기도 드러내기도 곤란했었는데. 원재는 혀로 볼 안을 훑는다. 눈이 찰나에 번뜩였다. 마치 먹잇감을 찾아낸 맹수의 그것처럼 말이다.

***

김 사장이 죽고 사월이 사장으로 있는 스토크에 오는 손님은 대부분 조폭이었다. 등허리와 허벅다리, 어깨 등에 이레즈미와 화려한 가쿠를 넣는 게 보통이었다.

사월이 조금 크고 김 사장에게 타투를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새로운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작업자가 둘이니 파이를 좀 넓혀 보자던 김 사장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일이었다. 스토크를 찾는 새로운 종류의 손님들은, 네임을 새기거나 몸에 생긴 걸 덮길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네임 발현은 흔히들 말하는 운명의 상대 이름이 몸에 새겨지는 현상이었다. 새겨지는 타이밍은 같지 않기도 했고, 평생 한쪽이 발현하지 않는 경우도 잦았다.

김 사장이 젊었을 시절만 해도 네임 발현이 되면 어떻게든 짝을 찾아 결혼했다고 한다. 지금은 발현은 발현, 사랑은 사랑. 이렇게 구분 짓고 있어서 그대로 따르는 일이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였다.

그럼에도 맹목적으로 네임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곧 스토크의 고객이 되었다. 네임을 마음대로 새기거나 발현된 네임을 가리는 행위는 엄연히 위법 행위였다. 하지만 절박한 사람들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알음알음 스토크를 찾아와 넉넉한 현금을 쥐여 주고 작업을 받았으니까 말이다.

그 이후에 그들이 행복하든 진정한 사랑을 찾았든, 뭐 사월은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냥 돈이 되는 작업일 뿐이었다. 딱히 더 까다롭다거나 하는 것도 없었다. 어쨌든 금기된 일을 요청하는 사람들이니, 사월에겐 조폭이나 진배없었다.

하지만 당분간 네임 관련 작업은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입관 전 염을 받는 김 사장의 허벅다리 바깥쪽에 새겨진 네임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 상대는 누구일까? 김 사장이 7년을 함께 살았다던 부인일까? 아님…… 평생 한 번 스쳐보지도 못한 사람일까. 아니, 누구든지 그게 뭐가 중요해, 씨발. 어쨌든 네임이 있는 김 사장도 결국 혼자 뒤졌잖아.

네임이라는 거 자체가 부질없단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에 네임 작업은 최대한 미뤄 두고, 조폭들이 부르는 데로 가서 작업해 주는 출장을 시작했다. 김 사장이 없는 가게에 오래 머무르면 자꾸만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쯤 되면 그냥 김 사장의 환청을 듣는 게 나았을까? 나이트클럽 한편에 딸린 작은 방에서 뻣뻣한 목을 돌리던 사월은 생각했다. 장비를 챙기고 여기저기 병적으로 소독하는 것도 존나 힘든 거였다. 출장이 앞으로 몇 번이나 남았지. 머릿속으로 계산하던 사월은 머신을 끄고 상체를 세웠다. 소파에 늘어진 몸뚱어리가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계속해? 아님 좀 쉬어?”

“……담배 좀 태우자.”

사월은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민소매 아래로 보이는 팔뚝엔 채 완성되지 않은 권총이 있었다. 남자는 겉옷을 챙기려는 듯 행거를 뒤적였다.

“옷 입지 마.”

“이러고 나댕기라고?”

“어.”

남자는 단번에 눈을 찌푸렸다. 태어난 뒤로 사월이 마주한 사람들은 김 사장을 제외하면 거의 조폭들이었다. 어렸을 땐 무서웠겠지만, 머리가 큰 지금은 깡패라고 해서 쪼는 일도 없었다. 애초에 무서웠으면 반말 찍찍해 대는 말본새를 고쳤겠지. 사월은 남자가 누웠던 자리를 소독하며 쏘아붙였다.

“뭐, 인상 쓰면 어쩔 건데. 감염돼서 팔뚝 썩고 싶음 처입든가. 아―, 설마 밖에서 피우려는 건 아니지.”

“…….”

“저기로 가.”

부러 더 겁을 주는 단어만 골라서 말한다. 그게 사월의 말버릇이었다. 사월은 방 바로 옆에 있을 화장실을 가리켰다. 화장실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깨끗해 보였던 기억이 났다.

“담배 피면 윤 실장 지랄 나.”

“그럼 말아. 다시 누워.”

“……어린놈의 새끼가 아주 꽉 막혔네.”

저 좋자고 하는 말도 아니고, 본인 팔 감염될까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끝까지 툴툴댄다. 그러면서도 겉옷을 뒤져 담배와 라이터를 챙긴다. 그 모습을 꽤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던 중이었다. 문이 벌컥 열렸다.

“…….”

“어? 성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여긴 웬일이십니까.”

사월은 불쑥 나타난 얼굴을 멀뚱히 쳐다봤고, 덩치 큰 남자는 민소매 하나 달랑 걸친 상체를 숙여 깍듯이 인사를 했다.

각 잡힌 인사를 받은 사람은 반질반질한 낯을 하고 있었다. 왁스로 단정하게 넘긴 머리, 매서운 눈매. 그 아래로 보이는 눈동자는 잿빛에 가까웠다.

바닥에 주저앉은 사월의 시선이 한참 올라가는 걸 보니, 키도 꽤 컸다. 반쯤 열린 문 사이로는 어깨가 다 들어차지도 못했다. 상체를 앞으로 내민 채라, 단추가 금방이라도 열릴 듯 힘겹게 셔츠를 쥐고 있다.

“너, 네임도 지울 수 있다며.”

낮은 목소리는 퍽 친절했다. 회색빛의 시선은 정확하게 사월에게 떨어졌다. 사월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여상히 대답했다.

“어.”

“야, 인마! 여기…… 사장님이신데…….”

남자가 펄쩍 튀며 사월을 나무랐다. 이 남자가 불청객을 사장님이라고 불렀던 건, 사월도 똑똑히 들었다.

근데 그게 뭐? 이 가게 사장이고, 여기서 일하는 자기 상사겠지. 나랑은 상관없는 사람 아닌가? 내가 이 남자를 사장님이라고 불러야 할 의무도 없고.

사월은 무뚝뚝한 시선으로 덩치를 한 번, 사장님으로 불린 사람을 한 번 바라봤다. 그 시선에서 ‘어쩌라고’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원재는 픽 웃었다. 여유가 담긴 웃음이었다.

“나가던 길?”

“아―, 예예. 담배 좀 태우려고…….”

“그 꼴로?”

하하. 남자가 붉어진 낯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가라는 듯 몸을 비켜 준다. 그 틈으로 큰 덩치를 구겨 나가는 것까지 본 사월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네임 지우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월의 나른한 시선이 남자를 느릿하게 훑었다. 그는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담배를 태우러 간 남자보다는 덩치가 조금 작았다. 그 새끼가 전부 살이었다면 이 사람은 온몸이 근육으로 이뤄져 있을 거 같았다. 값비싸 보이는 슈트 밖으로도 몸이 탄탄한 게 느껴졌다.

“어디.”

“옆구리에.”

사월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가까이 오란 뜻이었다.

원재는 아까부터 화를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알아서 기기 때문에 딱히 호칭이라든가 태도에 대해 지적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눈앞의 이 남자는 달랐다. 저에게 위압감을 느끼거나 겁을 먹었다는 기색이 전해지지 않았다. 대화 내내 큰 동요 없는 얼굴을 하곤, 무례하게 던진 반말을 똑같이 맞받아친다. 심지어는 손가락 하나로 자신을 부른다. 어디까지 하나 보자. 그냥 내버려 두기로 결정한 원재는 꽤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걸음을 옮긴다.

“아…….”

원래 이렇게 거침없고 무서운 거 없는 성격인가? 아니면 내가 위압감이 없는 건가. 사월이 확 들춘 셔츠 밑단을 보면서 한 생각이었다.

원재는 기분이 묘했다. 셔츠에 시야가 가려진 탓도 있지만……. 꼿꼿이 서 있는 자신과 그 아래 털썩 앉아 가까이 고개를 들이민 사월. 얼핏 보면 허벅지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반질반질한 뒤통수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더 가관이었다.

“별로 안 크네.”

물론 네임의 크기를 말하는 거였지만, 원재는 오묘해지는 기분을 숨길 수가 없었다. 평소 같았다면 머리채를 휘어잡고 바닥에 처박아도 시원찮을 텐데. 이번엔 그렇게 무식한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뭐 새길 건지에 따라서 견적 달라지는데. 생각해 둔 거 있어?”

올려다보며 천천히 깜빡이는 속눈썹. 꽉 막힌 실내에서 조명을 켜 놓고 작업하느라 더운 건지 붉어진 볼. 하얀 피부 위에 새겨진 검은 잉크에 홀린 느낌이었다. 원재는 고개를 저었다. 따지자면 대답은 아니었고, 정신 차려야 한단 움직임에 가까웠다.

“글쎄.”

사월은 허리 옆에 새겨진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네임을 살폈다. ‘宇宙(우주)’. 획이 그렇게 많지 않아 커버업을 하는 게 까다롭지는 않을 듯했다. 이 위에는 뭘 덮는 게 좋을까. 서늘하고 위압감 있는 남자의 분위기를 봤을 땐, 블랙 워크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작업이 잘 어울릴 듯싶었다. 근육도 탄탄하고 피부도 약간 어두운 편이라 색을 넣는 작업보다는 발색이 예쁘게 빠질 것 같았다.

빠르게 작업을 떠올리는 사월의 머리통을 내려다보던 원재가 충동적으로 손을 뻗었다. 빳빳하게 주름진 셔츠가 사월의 뺨에 스쳤다.

“이거.”

원재의 크고 단단한 손바닥이 사월의 가느다란 목을 감쌌다. 악력이 실리지 않은 손길로 목 위를 휘감은 타투를 매만진다. 엄지로 꽃잎 부분을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김 사장이 새겨 준 스토크 타투였다. 이걸 새기고 싶다는 건가? 멀뚱히 생각하던 사월은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겉으로는 그게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이거랑 같은 걸로…….”

원재는 보드라운 사월의 살결을 손가락 하나로 진득하게 탐한다. 지금 이 방엔 아무도 없다. 원한다면 문을 쉽게 잠글 수도 있고, 뭔 일이 벌어져도 쉬쉬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이곳은 자신의 구역이니까.

목을 애무하듯 훑는 내내 멀뚱히 올려다보는 얼굴이 색스러웠다. 붉은 입술 사이로 쌔액대는 숨만 흘러나왔다. 배 속이 들끓는 감각이 차올랐다. 원재는 천천히 몸을 물렸다.

“하고 싶어.”

이 말도 어감이 조금 이상한가? 원재는 갸웃하며 뒷주머니에 꽂힌 명함 케이스를 꺼냈다. 온통 검은색 바탕에 청박으로 새겨진 이름 석 자가 뚜렷하게 보이는 명함을 내밀었다.

“일단 내일 여기로 연락 줘.”

“…….”

사월은 한참 명함을 내려 보다 받아 들었다. 원재는 사월이 끄집어낸 셔츠를 정리하며 몸을 돌렸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셔츠 안에 갇힌 등 근육이 꿈틀댔다.

저기에 크게 한 판 새기면 존나 멋있겠다. 아니다, 벌써 있을 수도 있지. 그런 생각을 하며 사월은 고개를 숙였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굳이 배웅하거나 인사말을 남기지는 않았다.

빛을 받아 짙은 청색으로 반짝이는 이름 위로 사월의 시선이 길게 머물렀다. 성원재. 사월이 명함을 받고 제일 먼저 한 생각은 하나였다.

“조폭 새끼가 꼴에 명함은.”

***

원재는 집무실에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평소 같으면 앉아 있는 게 더 곤욕이라고 현장을 들쑤시고 다녔을 텐데. 무언가를 기다리듯 전화기를 쏘아보는 게 어딘가 초조해 보이기까지 했다.

오늘따라 이상한 제 상사를 여상히 바라보던 최 비서는 손가락을 구부려 테이블 위를 똑똑 두드렸다.

“…….”

원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검지로 아랫입술을 진득하게 쓸기만 했다. 톡톡, 그의 단정한 손끝이 일정하게 테이블 위를 내려쳤다.

“사장님?”

“……어?”

몇 초의 간격을 두고 원재가 시선을 들었다. 막 잠에서 깬 사람처럼 얼떨떨한 표정과 목소리. 최 비서는 들리지 않을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현장 안 가십니까?”

“오늘은…….”

원재의 눈길이 전화기 위로 길게 떨어졌다. 최 비서는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였다. 웬만한 중요한 일정이 있으면 자신 편으로 먼저 연락이 온다. 사장님의 사적인 일이라면 개인 핸드폰으로 연락이 올 테고. 집무실에 거의 피규어처럼 놓인 전화기를 왜 저렇게 뚫어지게 보고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안 나가. 최 비서가 대신 둘러봐. 요즘에 장현동 쪽에서 시비가 자주 붙는 거 같던데. 잡음 안 나게 좀 정리해.”

“……예. 알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수고.”

손바닥을 간결하게 들어 보이곤 다시 자신의 세상에 빠진 원재다. 최 비서는 앞으로 굉장히 피곤한 일이 생기리란 직감이 들었다. 원재가 성인이 된 후부터 계속 보필해 온 비서이자 친한 형으로서 느낀 미세한 변화였다.

성탁 건설

성원재 02―XXX―XXXX

같은 시간, 사월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명함을 들여다봤다. 명함이라고 줘 놓고 사무실 번호만 덩그러니 적혀 있다. 받을까? 아니, 근데 이 깡패 새끼 정체가 뭐지.

세간 돌아가는 것도 잘 모르는 사월도 성탁 건설은 알고 있다. 사월이 지내는 장현동에서 멀지 않은 동네 재개발을 맡고 있는 회사. 출장을 나다니면서 재개발 반대 현수막을 수도 없이 봐 왔으니까 말이다.

“흠.”

사월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여 가슴팍 안에 매캐한 공기를 담았다. 코끝이 알싸해질 즈음 숨을 길게 뱉었다. 그러곤 이미 여기저기 그을린 깡통에 담배를 지져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벼운 동작이었다.

사월은 요즘엔 아마 팔지도 않을 법한 폴더 폰을 열어 번호를 꾹꾹 눌렀다. 아, 그러고 보니 네임 작업은 안 받으려고 했었는데. 뭐에 홀렸나. 왜 받았지. 사월은 머리를 긁적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는 사월이지만, 성원재라는 남자에겐 궁금한 게 여러 개 있었다. 정말 자신의 목에 새겨진 것과 똑같은 타투를 할 건지, 네임 커버업은 위법인데 괜찮은지, 일개 나이트 사장이 어떻게 성탁 건설 소속인지…….

―여보세요.

“재개발은 좆대로 하는 거야?”

―…….

제일 궁금하지 않았던 질문이 불쑥 나와 버렸다. 사월은 아랫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었다. 하필 물어봐도 이딴 걸…….

―목소리 들으니 어제 만난 사람 맞네. 그건 변동 없는데, 재개발하면 뭐 네임 안 지워 주나?

“……아니. 나도 변동 없어.”

사월은 어깨와 귀 사이에 전화기를 끼우고 노트를 펼쳤다. 아날로그하게 일일이 작업 내용을 써 둔 노트였다.

“오면 설명할 텐데, 대충 말하자면 네임 지우는 거 위법이야. 그건 알아? 걸리면 너나 나나 좆 돼.”

―난 위법 좋아하는 편인데. 그쪽은 어떨지 모르겠네.

작업이 빈 부분을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저녁에 작업 하나가 잡힌 거 말고는 없어서 적당하긴 한데. 오늘은 너무 급하겠지. 사월은 2주 후쯤의 일정을 살폈다.

“무서우면 그걸로 밥 벌어먹고 못 살지. 말일에 시간 비어. 29일쯤…….”

―잠깐.

“왜?”

―주소 불러.

주소? 사월의 단정한 눈썹이 비죽 올라갔다. 손가락으로 짚고 있던 날짜 위의 숫자를 내려 봤다. 29일. 2주는 더 있어야 할 날짜인데.

“…….”

―난 대면으로 설명 듣는 걸 추구해서.

“아.”

역시 사업하는 놈이라 깐깐하네. 사월은 대수롭지 않게 주소를 불렀다. 전화를 끊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원재를 보고 놀랄 뿐이었다. 오늘도 역시 슈트 차림이었다. 이제 곧 여름이라 후텁지근할 텐데. 더위를 많이 타는 사월은 이미 반팔 차림이었다.

원재는 숍 안을 둘러본다. 내부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작업용 베드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고, 그 위에는 키다리 조명이 딱 붙어 있다. 이곳저곳에 랩이나 키친타월 같은 게 세워진 채였고. 벽 한쪽에는 잉크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사월은 거울 아래 소파에 앉아 있었다. 불쑥 들어온 원재를 보고도 별다른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저 얼굴과 분위기로 ‘어서 오세요’ 따위의 말을 한다면 그게 더 소름 끼칠 거 같다고, 원재는 잠깐 생각했다.

“냉장고에 음료수 꺼내 처먹어.”

“하.”

원재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나름 사월 딴에는 더워 보여서 한 말이지만, 그걸 알 리가 없다. 진짜 제 아버지에게도 받아 보지 못한 푸대접이었다. 아마 제가 이끄는 애들이 보면 기함할 일이기도 했고.

손님이 직접 꺼내 먹는 희한한 시스템이네. 원재는 픽 웃으면서 키 작은 냉장고 앞에 가서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러곤 안에 정갈하게 줄 지어 서 있는 음료수를 보며 갈등을 했다.

사월은 조용히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봤다. 그의 덩치에 가려 냉장고가 보이지도 않았다. 등판이 존나 넓네. 하릴없이 생각하다가 냉장고에서 새어 나오는 찬기가 자신의 발치에 닿는 걸 느꼈다. 있는 새끼라 아낄 줄을 모르나.

“씨발, 빨리 고르고 닫아.”

원재는 그냥 제일 가까운 걸 꺼냈다. 연신 킥킥댔다. 캔 뚜껑을 따고 소파에 가서 앉자 사월은 클리어 파일에 정리된 타투 작업물을 보여 줬다.

“보고 마음에 드는 거 골라.”

“난 이거.”

단정한 손가락이 이번에도 거침없이 사월의 목덜미를 향했다. 위를 느슨하게 매만지는 촉감에 사월은 몸을 뒤로 물렸다.

“이거 남자들 잘 안 하는 디자인인데.”

“그게 뭐 중요해, 예쁘기만 한데. 똑같은 걸로 해 줘. 사이즈는 한…… 이 정도.”

원재는 사월의 목덜미에서 뗀 손가락으로, 자신의 옆구리에 크게 원을 그렸다. 옆구리 한 면을 다 채우는 큰 사이즈였다.

“네임은 좆만 하던데, 왜?”

“그냥.”

“하루 만에 다 못 해. 텀 두고 작업해야 돼서 몇 달 걸려.”

“그럼 더 좋지.”

그게 좋을 일이야? 사월의 미간이 설핏 구겨졌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지만, 원재는 잠들기 직전까지 타투에 대해 검색을 했었다. 보면 클럽 쪽방에서 2박씩 하면서 문신을 새기기도 하던데. 어떻게 하면 오래 할 수 있지.

몇 달, 몇 년이 걸리는 타투도 찾아봤다.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그냥. 생긴 건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을 것 같은 이 남자가 왜 그렇게 입이 걸걸하고, 매섭게 벽을 세우는지 알고 싶어서?

“……이거, 막 지우고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대충 결정하고 나중에 지랄할 생각 하지 마.”

“지랄할 거면 시작도 안 하지.”

“…….”

옆구리가 얼마나 아픈 줄 알고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한 판을 한다는 거야. 사월은 혀를 찼다. 가까이 있는 원재에게서 조금 떨어져 앉았다. 그러곤 볼펜을 들어 노트 뒷장을 펼쳤다.

“크게 넣을 거면 꽃만 하는 거보다 섞는 게 안 촌스러워. 뱀이나 총, 칼, 뭐 그런 거.”

“음, 뱀?”

그 말에 사월은 빠르게 펜을 움직인다. 진한 블랙이 들어갈 수 있는 블랙맘바를 그려 넣고 그 주변을 스토크로 채웠다. 뱀을 휘감고 있는 꽃. 꽤 그럴싸한 그림이 금방 완성되었다.

“디테일은 안 잡았고 도안은 대충 이런 느낌으로 나올 거야.”

“마음에 드네.”

“……날짜 잡아. 그 안에 도안 보내? 아니면 당일에 볼래.”

“날짜는 아까 말한 29일로. 시간은 상관없는데, 미리 보내 줘. 여기로.”

사월이 쥐고 있던 펜을, 원재가 빼앗듯 잡아 들었다. 곧장 11자리 숫자를 도안 위에 써 내려갔다. 핏줄이 선 손등을 보며 사월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사람은 목적이 네임을 지우는 거야, 아님 그냥 타투를 하는 거야.

노트를 탁 닫은 사월은 책꽂이로 향했다. 등 뒤에서 불쑥 질문이 넘어온다.

“이름이 뭐야.”

“씨발, 그건 알아서 뭐 하게.”

예민한 반응에 굴하지 않은 원재는 재차 물었다.

“작업 몇 달은 걸린다며. 매번 저기, 야, 너, 하고 싶지는 않는데.”

여기 오는 대부분의 고객이 그렇게 부른다는 건 알고나 있나. 자신도 그렇게 불리는 쪽이 편했고. 그래도 이렇게까지 이름을 물어보는데, 굳이 숨길 건 없다 싶어 사월은 나직하게 입술을 뗐다.

“……사월.”

“사월? 특이하네.”

“어. 나 키워 준 사람이 4월에 주워 와서, 사월.”

퉁명스런 목소리였다. 대부분은 이 대목에서 할 말을 잃는다. 개중 생각이 있는 애들은 사과를 하고, 그렇지 않은 애들은 못 들은 척을 한다. 자신을 동정하는 얼굴로 본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말이다. 예약도 잡았으니까 그냥 입 다물고 나갔음 좋겠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생일 4월이겠네.”

낮은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사월은 고개를 돌렸다.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원재와 오래 시선을 마주했다. 뜨거운 눈길을 오롯이 받아 낸 원재는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사월은 배 속이 뜨겁게 들끓는 것을 느꼈다.

“나 그딴 거 없어.”

제 인생에 한 번도 없었던 ‘생일’이라는 단어에 놀란 것뿐이라고. 사월은 그렇게 자위했다. 부러 대답에 더 단호한 마침표를 찍었다. 더는 대화를 이어 가고 싶지 않다는 명백한 의지였다. 사월의 냉랭한 태도에도 원재는 개의치 않았다. 나른한 몸짓으로 소파에 기대 팔짱을 낄 뿐이었다.

“생일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 같은 새끼도 있는데.”

여상한 말에는 얼핏 쓸쓸함이 스쳤다.

사월은 생각했다. 너 같은 새끼가 나랑 같아? 돈 많고, 사장이면 지위도 있고, 허우대도 멀쩡해 보이는데. 잘난 척하는 거야 뭐야. 사월의 찌푸려진 미간은 원재 쪽에선 보이지 않았다.

“……이제 꺼져. 도안은 완성되면 보내 줄 테니까.”

“…….”

“다음 작업 있으니까 방해하지 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냉랭하게 던지는 말이다. 아까와 다름없는 톤이었지만, 원재는 미묘하게 달라진 분위기를 캐치했다. 말의 무게가 한층 묵직해졌음을 말이다. 더 버티고 있다간 괜히 성질을 긁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바닥에 두 발을 탁, 디뎠다.

“나이 물어봤다간 배를 쑤실 기세네.”

“쑤셔 줄까, 씨발?”

원재는 어깨를 으쓱였다. 공격적인 말에도 별 타격을 받지 않는 표정이었다. 죽여 버린다, 배를 쑤신다, 팔다리를 부숴 버린다…… 뭐, 그런 살벌한 말을 하기도 전에 칼이 꽂히는 게 원재가 사는 세상이니까.

“오래 살고 싶으니까, 이만 갑니다. 사월 사장.”

원재는 들어올 때만큼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게를 빠져나갔다.

사월은 저 재수 없는 나이트 사장 새끼를 몇 개월이나 봐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귀찮아졌다. 시계를 보니 아직 6시도 되지 않았다. 원재를 내쫓기 위해 했던 말일 뿐, 다음 작업은 몇 시간 뒤에 있었다. 또 불청객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을 걸어 잠글까도 했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커피를 내리고 아까 앉아 있던 테이블로 향했다. 손에는 크로키 북도 들려 있었다. 꽃과 뱀. 남자의 옆구리에 새겨질 타투였다. 상상을 해 보니 꽤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했다. 사월은 커피가 몽땅 식어 빠질 때까지 도안에 열중했다.

앉은 자리에서 도안을 완성해 놓고서 원재에겐 보내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사월도 알 수 없었다.

***

그날 이후, 원재는 핸드폰을 쥐고 살았다. 손님을 푸대접하고 내쫓기까지 하는 타투 숍 사장이 자꾸 생각났다. 살갑지도 않고 전혀 호감을 보이지도 않는데, 왜 자꾸 무감한 그 얼굴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웃으면 참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원재는 거기까지 생각하곤 화들짝 놀랐다. 아니, 몇 번이나 봤다고 별생각을 다 하네. 아프지 않게 양 뺨을 짝 내려쳤다. 이내 책상에 쌓여 있는 서류에 억지로 눈을 돌렸다. 마찰음에 깜짝 놀란 건 오로지 소파에 앉아 있던 최 비서뿐이었다.

“아―, 씨발.”

서류를 두 장도 채 훑지 않았을 때였다. 만년필을 탁, 소리 나게 던진 원재는 상체를 의자에 파묻었다. 눈을 덮은 손등 위로 핏줄이 불거졌다. 최 비서는 오랜만에 써서 어색한 안경테를 추켜올렸다.

“왜 그러십니까?”

“……안경 나 좀 줘 봐.”

눈도 좋으면서 안경은 왜 찾는 거야. 의아했지만 원재의 명령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모서리가 비스듬히 각이 진 안경을 내밀자, 원재가 불쑥 잡아채곤 곧장 썼다. 역시나 시력이 맞지 않아 뿌옇게 보이고 시야가 어지러웠다. 그 틈에 보이는 익숙한 실루엣…….

“……그래도 보이네.”

“네?”

“아냐.”

원재는 거칠게 안경을 벗어 다시 건넸다. 얘, 도대체 왜 이래? 최 비서는 이제 제 상사가 걱정되기까지 했다.

“하아…….”

원재는 거칠게 마른세수를 했다. 목이 뜨겁게 타올랐다. 자꾸 감흥 없는 눈동자가 앞에 어른댄다. 활자를 눈에 담기가 어려웠다. ‘씨발’ 허스키한 목소리로 욕을 하는 환청마저 들리는 듯했다.

혹시나 해서 써 본 안경도 효과를 못 봤다. 어지러운 시야 속에서도 타투 숍 사장 얼굴이 보인다. 이 정도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당사자를 보면 이런 현상이 안 생길까?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경쾌하게 내린 결론이었다.

결국 원재는 사무실에 들어앉고 한 시간도 채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벌떡 일어나 재킷을 집어 들었다. 걷어 올린 셔츠 소매를 다급하게 내리면서 집무실을 가로질렀다. 안경을 든 채 얼이 빠진 최 비서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행동이었다.

“급한 일은 연락 줘.”

“…….”

제 대답은 듣지도 않고 닫히는 문에, 최 비서는 그저 한숨만 푹 쉬었다.

어렵지 않게 찾아간 스토크. 원재는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리자 사월이 고개를 들었다.

내내 자신을 괴롭힌 무감한 눈빛의 주인공인 사월은 작업 중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머신을 쥔 사월 위로 전등 빛이 떨어졌다. 속눈썹이 그림자 져서 눈 아래에 길게 늘어져 있다. 원재는 우뚝 서서 그 모습을 잠시간 바라봤다. 숨이 얼핏 멎었다는 건 인지하지 못한 채로.

사월 역시 몇 초간 얼어 있었다. 작은 머리를 굴려 상황 파악을 했다. 오늘이 작업인가? 도안도 아직 안 보내 줬는데? 따로 약속을 잡지도 않았고, 오늘은 설명해 줄 것도 없는데. 왜 온 거지? 아무리 기억 속을 뒤져도 원재가 스토크를 찾아올 이유는 없었다.

“오늘 작업 아닌데.”

지금 하고 있던 작업은 거의 정리 단계였다. 가쿠 하나만 마무리하면 끝이었다. 피에 섞인 잉크를 닦아 내고 원재를 다시 올려다봤다. 왜 왔냐는 물음이 담긴 시선이었다.

“목이 좀 말라서.”

“뭐?”

“오늘따라 목이 타네.”

“……씨발, 거지도 아니고.”

웃기는 소리였다. 곧장 골목만 돌아 나가도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고, 편의점도 보인다. 나이트 사장이라면서 마실 거 사 먹을 돈 몇 천원도 없는 건 아닐 테고. 구태여 골목 안쪽 스토크까지 찾아온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텐데.

능구렁이 같은 새끼는 큰 덩치로 작은 냉장고 앞에 무릎을 굽혀 앉는다. 그 모습에 사월은 결국 혀를 쯧, 차고 작업에 열중했다.

“어? 혹시 성 사장님 아니신가…….”

매실 음료를 따서 마시던 원재가 힐끔 고개를 돌렸다. 확신 없는 목소리의 주인은 사월의 손 아래 깔린 남자였다. 남자는 납작 엎드린 채로 머리를 꾸역꾸역 돌렸다. 사월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머신을 살짝 들었다. 바늘에 찔리면 지랄할 거면서 존나 움직이네, 진짜.

남자가 완전히 원재 쪽으로 고개를 움직이곤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소리를 들으며, 사월은 다시 살덩이를 옆으로 늘려 텐션을 줬다. 지잉―, 바늘이 살을 파고들었다.

“누구.”

“아, 접때 제주도 골프 치러 같이 갔던 박 대리입니다. 윤 실장이랑 같이 갔잖습니까.”

“아아―.”

원재는 말을 길게 늘였다. 시원한 음료수가 목구멍 뒤로 꿀떡 넘어갔다. 타들어 가던 뜨거움이 조금 잠잠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집무실에서 내내 물을 삼켜도 가라앉지 않던 열기였는데.

“여긴 웬일이십니까? 문신 박으러 오셨습니까?”

“어. 뭐.”

달갑지도, 그렇다고 경계심을 보이는 말투도 아니었다. 그냥 딱, 질문에 대답하는 역할에 열중한 사람 같았다. 남자는 원재의 등장에 긴장했는지, 자꾸만 숨을 크게 들이쉬고 몸을 움찔댔다. 사월이 참다못해 머신을 떼고 등짝을 세게 갈겼다.

“그만 좀 움직여. 씹새끼야.”

“아! 씨발, 이게 또 그러네. 진짜 뒤지고 싶나.”

“저기―.”

금방이라도 팔을 치켜올릴 듯 들썩대는 남자를 저지한 건 원재였다. 남자는 원재의 부름에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을 돌렸다.

“……예?”

“그때 골프. 재밌었던 기억이 나네.”

“예?”

남자는 멍청히 눈을 깜빡였다. 시큰둥하게 던진 말에도 금방 화색이 돌았다.

사월은 이상한 대화 흐름을 목도하고 있다. 성 사장이라는 저 사람 정체가 뭐지? 이 양아치 같은 새끼도 쉽게 휘두르는 걸 보면 보통은 아닌 듯한데. 사월은 원치 않게 둘의 대화를 계속 듣게 되었다.

“사장님 실력이 좋아서 그런 거죠. 제가 오히려 많이 배웠습니다. 나중에 또 자리 한번 마련하겠습니다, 성 사장님.”

“그래, 뭐.”

물꼬를 튼 사람답지 않은 떨떠름한 대답이다. 원재는 남은 음료를 입으로 털어 넣고, 캔을 따로 모아 놓은 박스에 빈 캔을 버렸다. 그러곤 익숙하게 소파로 가 털썩 앉았다. 몸을 기대고 다리를 꼰 모양새가 꼭 제 집마냥 편안해 보였다.

남자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연신 다음 골프 약속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일정 빼실 수 있으면 가오슝이나 치앙마이 쪽은 어떠십니까? 바람 좀 쐬면서 라운딩 돌면 스트레스가 쏵― 가십니다.”

“하.”

사월이 미간을 찌푸리고 한숨을 쉬었다. 머릿속으로는 진짜 진지하게 갈등했다. 이 새끼 그냥 바늘로 찍어 버릴까……. 피부의 텐션을 유지해야 잉크가 제대로 들어가는데. 자꾸 꿈지럭대는 탓에 바늘을 넣기가 어려웠다.

순간 원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야.”

“예예? 저 말입니까?”

“그래 너. 이제 아가리 좀 다물자. 사장님이 너 갈구고 있는 거 안 보이냐?”

“…….”

사월은 검지를 구부려 끝으로 지끈대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자기가 보기엔 둘이 거기서 거기인데. 원재의 말에 또 입을 싹 다무는 꼴이 재수 없게 느껴졌다.

“사월 사장 무서워. 내 배도 쑤신다고 했어.”

“……예? 야야, 대가리에 총 맞았냐? 저분이 누군 줄 알고……!”

“씨발, 둘 다 닥쳐. 바늘로 살 뚫어 버리기 전에.”

지잉― 머신이 위협적으로 큰 소리를 냈다. 남자는 눈썹을 들썩이며 다시 철퍼덕 엎드렸다.

원재는 흥미로운 그림을 살피듯 사월을 관찰했다. 사월이 눈을 감고 숨을 고르더니, 엄지와 검지로 피부를 팽팽하게 만들고 바늘을 박는다. 지잉― 지잉― 바늘이 들어가자 무섭게 집중하기 시작한다. 또다시 목이 타들어 가는 갈증을 느끼며 원재는 마른 입술을 축였다.

“성 사장님, 이 치가 원래 이럽니다. 나도 여기 몇 번이나 왔는데, 인사는커녕 욕이나 처싸지르고. 통 살갑게 하는 법도 모르고…….”

남자가 쯧쯧 혀를 차며 퉁명스레 말했다. 사월은 기가 찼다. 지가 나를 보면 얼마나 봤다고. 고작 두세 번 봐 놓고선. 하지만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사람에게 살갑게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니까? 태어나서부터 한 번도 그런 걸 배워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거야. 씨발, 뭘 알고나 지껄이지. 여기저기 튄 잉크를 닦아 내며 생각했다.

“보기 좋은데 왜.”

“……아, 그러십니―.”

“사월 사장이 너한테 살가울 필요는 없잖아.”

“…….”

“안 그래?”

아, 예예. 뭐 그렇죠. 남자는 미묘하게 달라진 원재의 분위기를 캐치했다. 더는 대화를 이어 나가면 안 될 것 같다는 동물적 감각이었다. 곧이어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작업대 위로 얼굴을 파묻었다. 이제 사월과 원재가 오롯이 시선을 마주했다.

“난 사월 사장 마음에 들어.”

“…….”

“쭉 그렇게 살아. 좆대로.”

어깨를 으쓱이며 웃는 원재의 얼굴을 마주했다. 사월은 토기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아 냈다.

***

지잉―, 지잉―.

스토크에는 머신 소리만 남았다.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가쿠에 검은 잉크를 마저 채워 넣은 사월이 몇 번 그 위를 닦아 냈다. 티 나지는 않지만 꽤나 만족스런 눈빛이었다.

한참 누워 있어 어깨가 뻐근했는지, 덩치가 몸을 일으켜 작업대 위에 앉았다. 슬슬 어깨를 돌리다가 뒤를 힐끔댔다. 시선의 끝에 닿는 건 원재였다. 원재는 벽에 걸린 그림에 몰두한 듯했다. 더 친한 척을 하기도 난감한 상황이라, 남자는 헛기침만 했다.

“뒤돌아.”

사월이 큰 랩을 들고 왔다. 그러곤 팔뚝을 랩으로 칭칭 감았다. 팔뚝 뒤에 새겨진 타투가 투명한 막에 몇 겹 쌓여 흐릿하게 보였다.

“랩은 두 시간 있다 떼고, 바세린 사서 발라. 술 좀 처먹지 말고.”

“그 맛있는 걸 어떻게 끊어. 술 처먹어도 아물건 다 아물어.”

“무식하면 시키는 대로나 잘해. 팔뚝 뒤쪽이니까 잘 때 패드 같은 거 깔고 자. 피고름으로 이불 지랄 나고 싶지 않으면.”

랩이 감긴 팔로 어정쩡하게 셔츠를 껴입던 남자가 미간을 구겼다.

“패드? 개새끼들이 쓰는 거 말하는 거냐? 뭔 놈의…….”

등치는 산만 한 데다 팔뚝에서 등허리까지 이어지는 문신까지 새겼으니, 패드 따위 사러 가는 게 가오 죽고 쪽팔리고 그런 건가. 사월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기엔 지금까지 살 비비면서 존나게 잘 누워 있던데.

“등신아, 계속 깔고 누워 있던 건 이불이냐? 그냥 깔라면 깔아. 무식한 게 고집은 존나 세네.”

“……지미.”

남자의 시선이 흘깃, 여태 누워 있던 작업대로 향했다. 가슴팍과 어깨 아래에 내내 깔려 있던 게 그 ‘개새끼들’이 쓰던 패드였다.

“개만도 못한 게 가오 잡긴.”

라텍스 장갑을 벗어 던지며 하는 말에 남자가 멋쩍게 눈을 깜빡였다. 사월은 작업대 아래로 몸을 잠깐 숙였다 곧 일어섰다. 손에는 큰 패드가 두 장 들려 있었다.

새끼가 꼴에 자존심은. 구석에 처박혀 있는 노란 서류봉투를 가져와 그 안에 배변 패드를 욱여넣었다. 서류 봉투 위로 패드의 흰 부분이 불퉁 튀어나왔다. 사월은 봉투를 남자의 가슴팍에 던지듯 밀어 넣었다.

“이거 가져가든가.”

“참나…….”

원재는 아까까지만 해도 눈길을 사로잡던 그림에서 시선을 뗐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게 생긴 탓이었다. 남자는 혼잣말처럼 자꾸 구시렁대고 사월은 이제 아예 대꾸도 하지 않고 있는 풍경이었다.

“흠.”

사월은 볼수록 신기했다. 입은 저렇게 험하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욕이 빠지지를 않으면서도 그 내용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다정하다. 바짝 세운 가시로 다정한 언어를 돌돌 말아 둔 것 같았다. 원재는 그게 싫지 않았다. 긁히고 피가 날 만큼 날이 벼려 있어도, 나쁘거나 아프지도 않았다.

“간다. ……사장님, 담에 라운딩 때 뵙겠습니다.”

원재는 주머니에 꽂아 두었던 손을 꺼내 살짝 들어 보였다.

남자가 나가고 난 뒤, 스토크 안에는 둘만 남았다. 원재는 이제 소파에 앉아 진득하게 사월을 관찰했다. 턱까지 괴고 본격적으로 사월의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자신의 시선이 느껴지지도 않는지, 작업할 때 썼던 장비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던 사월이 불쑥 입을 열었다.

“할 말 있으면 해. 사채업자 새끼처럼 감시하지 말고.”

“풉.”

호기심 어린 자신의 눈길이 사채업자와 동일시됐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사월은 자신에게 쏘아붙이면서도 다 쓴 랩을 제자리에 놓고, 작업대 아래 쓰레기통을 비우는 손길은 멈추지 않는다.

사람이 경계를 허무는 데 선물과 칭찬만 한 게 없다. 눈앞의 남자는 선물을 줬다간 당장 쓰레기통에 처박을 성정 같고……. 원재는 곰곰이 생각하다 아까부터 계속 눈에 밟히던 행동을 내뱉었다.

“성격이 깔끔한가 봐.”

“…….”

사월은 모든 움직임을 멈추곤 고개를 틀다 만 지점에서 허공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선 별다른 감정이 읽히지 않았다. 원재의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

“그딴 씹 소리 지껄일 거면 가라.”

“……와.”

칭찬에 돌아온 대답은 꽤나 냉정했다.

하지만 이번엔 무심히 닿아 오던 시선이 없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게 혹시, 칭찬이 익숙하지 않은 건가? 아까까지만 해도 달달한 매실 맛이 남아 있던 입 안이 쓰게 느껴졌다.

“어, 깔끔해. 지금 너도 존나 쓰레기통에 처박아서 치우고 싶어.”

원재는 아랫배부터 저릿해지는 이 느낌을 무어라 정의해야 할까 고민했다. 사월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냥 대충 겉핥기식으로 말고. 원래 사람 뒷조사를 할 때처럼,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 전부를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받고 싶다.

저번에 듣기로는 누가 주워서 키워 줬다던데. 그 사람은 누구이고, 사월은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됐고, 어쩌다 이렇게 날을 세우게 됐는지. 또…….

“할 일 생겼네. 내일 또 올게.”

“오지 마.”

이렇게 무감정한 사월 사장에게도 특별한 사람이 있었는지. 있다면 그게 누구인지, 어떤 새끼인지, 지금은 뭘 하고 사는지, 아니― 만에 하나 지금도 곁에 있는 건지.

낱낱이 알아야 이 비이상적인 갈증이 해소될 것 같다.

***

오지 말라는 말을 귓등으로 들었나. 서슬 퍼런 경고에도 원재는 틈만 나면 스토크를 찾았다. ‘사월 사장, 잘 있었어?’라는 질문이 무색하게 하루에도 서너 번씩.

나이트 사장은 도대체 내가 점심으로 뭘 먹고, 아픈 데가 있는지, 남는 시간엔 뭘 하는지……. 그딴 게 도대체 왜 궁금하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란 걸 가져 본 적 없는 사월은 오히려 그게 궁금했다. 도대체 그 많은 질문은 언제 생각하는 거야?

마른손을 감싸고 있는 검정 장갑을 벗었다. 뽀득, 소리를 내며 장갑이 거꾸로 말렸다.

나이트 사장만 떠올리면 속이 울렁댔다. 굴곡 없이 가라앉은 삶에 끼어들고선, 제멋대로 휘저어 댄다. 이럴 때 술이라도 할 줄 알면 마실 텐데. 그건 또 좋아하지 않아서 담배만 늘고 있다.

사월은 작업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서랍을 열었다. 덩그러니 놓인 담배 갑을 들어 손바닥 위로 탁탁 쳤다. 하지만 텅 비어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되는 일이 없다, 되는 일이. 사월은 앞치마를 벗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담배를 사러 가야 하는데, 쉽사리 걸음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예약도 한참 남았으니 못 갈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사월은 가만히 서서 눈만 깜빡이다 고개를 돌린다. 벽에 걸린 시계로 향하는 시선. 사월은 편의점에 다녀올 시간을 가늠했다.

그러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올 시간이 지난 사람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아, 이제 진짜 그 새끼 상대 안 해, 진짜로. 사월은 부스스한 머리를 마구 헝클이며 다짐했다.

딸랑―.

그때 낡아 빠져 미약한 소리만 내는 종이 울렸다. 사월이 힐끔 고개를 움직였다. 열린 문틈으로는 처음 보는 남자가 들어서고 있었다.

“예약 안 했는데, 들어가도 되나?”

이미 들어와 놓고선. 사월은 빈 담배 갑을 구겨 휴지통으로 던졌다. 신경질적인 동작이었다. 문이 열리던 찰나에 느낀 감정은 뭐였을까.

“……뭐 할 건데?”

나이트 사장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작업을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하, 씹. 진짜 빡돌게 하네, 씨발.”

사월은 마스크를 턱 아래로 끌어 내렸다. 붉은 입술 사이로 된소리가 연신 새어 나왔다. 그냥 담배나 사러 갈걸. 갑자기 들어온 작업을 받는 게 아니었는데…….

소개를 받아 멀리서 찾아왔는데, 당장 오늘밖에 시간이 없다고 곤란한 티를 내기에 받아 줬는데. 이런 미친 새끼일 줄 알았겠냐고. 나이트 사장한테 신경 좀 끊어 볼까 했더니. 오히려 그 사장 새끼가 나은 듯하다.

“왜? 해 보지도 않고 그래?”

“등신 새끼야. 몇 번을 말해.”

눈이 양옆으로 길게 찢어진 남자가 음흉하게 웃었다. 치골 작업이라 성기만 겨우 가린 채였는데, 이젠 아예 드러내 놓고 팔을 뒤로 뻗어 상체를 기울였다. 씨발, 볼 것도 없는 게 뭔 자신감이야. 짜증이 치밀다 못해 머리가 욱신댈 만큼 빡이 쳤다.

“일단 난 그런 작업 안 하고, 네 거 너무 좆만 해서 바늘도 안 들어가. 씨발, 안 가려?”

“아니, 여긴 손님이 해 달라는데 왜 안 해 줘.”

능글맞던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성기 타투를 아예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말 그대로 ‘굳이’였다. 타투에서 중요한 건 텐션이다. 주름이 있으면 그림이 어그러지니까.

성기 타투를 하려면 발기를 시키고 작업을 해야 텐션이 생기는데……. 일단 그 과정이 좆같고, 난생 처음 보는 새끼 발기된 좆을 왜 내가 들여다봐야 하냐고. 사월은 장갑을 벗어다 작업대 위에 거칠게 던졌다.

“네 좆 세워도 제대로 된 그림 못 넣는다고, 미친 새끼야.”

“어어, 잠깐. 너 있어 봐 거기.”

사월이 깡패 새끼를 쏘아보던 참이었다. 남자는 작업대 위에 앉아 있었고, 사월은 그보다 시선이 낮은 작업 의자에 앉은 채였다. 동태 눈깔 같은 시선을 내린 남자가 자신을 깔아 봤다. 그러곤 금세 눈빛이 탁해졌다. 거기서 읽히는 건 시커먼 음욕이었다.

아무래도 깡패를 주 고객으로 받으니까 간혹 가다 제어 불가능한 경우가 종종 생겼다. 도안까지 확인해 놓고 마음에 안 든다고 난리를 치거나, 관리를 잘못해서 번져 놓곤 다시 지우라고 생지랄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기분을 좆같이 만드는 새끼는 처음이었다.

“이게 진짜 돌았나.”

남자는 사월에게 진득한 눈빛을 뿌리며 좆을 잡았다. 기가 찬 사월은 상체를 뒤로 무르고 팔짱을 꼈다. 그래 씨발 새끼야, 너 어디까지 하나 보자.

“얼굴 좀 빌려줘, 사장님.”

거무튀튀한 시선이 사월의 얼굴을 느릿하게 훑는다. 까만 머리칼 아래에 쌍꺼풀이 진 사월의 눈이 사납게 변했다. 그러곤 화를 삭이는 듯 천천히 감긴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부푼 가슴을 보고 남자가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었다.

“아흐……. 씹, 꼴리게, 생겨 가지고…….”

“…….”

아주 염병을 떨고 있다. 아무리 세워 봐라. 네 거엔 뱀 대가리도 못 그릴 텐데. 사월은 방금까지 짜증이 가득하던 얼굴을 숨기고 무감각한 낯을 했다. 이런 새끼한테 반응을 보였다간 이상한 데 꽂혀서 더 꼴린다고 염병을 떨지 모르니까 말이다.

“후……. 야. 빨아 봐. 어? 돈 더 쳐줄게.”

빨아 봐? 입술을 지그시 짓씹은 사월은 숨을 깊게 쉬었다. 속이 역했다. 이 새끼를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은 온통 폭력적인 생각으로 가득했다. 보고 듣고 자란 게 그런 거뿐이니까.

피로 범벅된 상상은 어렵지 않았다. 막말로 여기서 출입하는 인간들은, 사람 하나 죽여도 ‘처음치고 잘했다’며 박수쳐 줄 말종뿐이니까.

어차피 네임 작업 하는 것부터가 위법이었는데, 제대로 막 나가 볼까. 사월은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 김 사장의 얼굴을 겨우 떠올렸다. 처음부터 내 가게였다면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건 엄연히 김 사장 가게니까.

겨우 마음을 가라앉힌 사월은 던져둔 라텍스 장갑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에 끼웠다. 저 좆을 씨발, 잡아서 부러트려야지. 다신 같잖은 좆질 못 하게.

남자는 칙칙한 성기를 잡고 열심히도 흔든다. 존나게 애잔한 행동이다. 사월은 벌떡 일어나 남자에게 위협적으로 다가갔다. 좆을 쥐기 위해 장갑 낀 손을 뻗던 찰나, 스토크의 문이 벌컥 열렸다. 사월의 얼굴을 보며 딸을 치던 남자가 깜짝 놀라며 몸을 들썩였다.

입꼬리를 올린 채 들어오던 원재가 얼굴을 싸늘하게 굳혔다. 최 비서 닦달에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온 참이었다. 일을 다 마쳐야 사월의 뒷조사를 해 준다기에 미친 듯이 서류를 보고 전화를 하고, 현장을 들쑤셨다.

그렇게 겨우 짬을 내 찾은 스토크였다. 혼자 있거나, 아니면 어제처럼 작업을 하고 있겠거니 생각했지, 이딴 광경을 목도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눈이 풀린 채 하반신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좆을 흔드는 낯선 남자. 그 앞에 선 사월은 성기로 손을 뻗고 있는 타이밍이었다. 머리가 삽시간에 차갑게 식었다.

“이건 또 무슨 그림이야.”

“……뭐, 뭐야.”

쪽팔린 건 아는지, 남자는 허겁지겁 허벅지 위에 덮어 둔 천을 끌어다 좆을 가렸다. 사월은 그 꼴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그 사이로 음산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사월 사장, 떡 치는데 내가 방해한 거야?”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였지만, 재킷을 벗어젖히는 손길은 거칠었다. 겉옷을 어깨 뒤로 넘길 때는 셔츠 단추가 다 벌어져 안의 살갗이 보일 지경이었다.

“이딴 새끼랑 치고 싶냐, 너 같으면?”

미간을 찌푸린 사월의 얼굴에 꼭지가 도는 기분이 들었다. 불쾌해하는 그의 음성엔 화가 치밀어 오르고, 흐리멍덩한 눈깔을 가진 남자의 낯짝을 바닥에 갈아 버리고 싶었다. 원재는 손목을 갑갑하게 감싸고 있는 소맷단을 풀어 팔뚝 위로 걷어 올렸다.

“그니까. 우리 사월 사장 눈이 씨발, 발에 달렸나 했지.”

“……별.”

원재가 성큼 작업대로 가까이 다가왔다. 불같은 기세에 사월은 발을 뒤로 물렸다. 나이트 사장 새끼 눈빛이 이상했다. 원래도 이상하긴 했지만, 그 전하고는 달랐다. 핀트가 나가도 완전히 나간 모양새였다. 사월은 몸을 뒤로 무르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원재가 하는 양을 바라봤다.

“떡 안 칠 거면, 이 새끼 내가 좀 데려가도 될까.”

잇새로 거친 음성이 흘렀다. 사월은 그 목소리에 힐끔, 원재를 살펴봤다. 저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었던가. 하긴, 그러니까 나이트 사장까지 하고 있는 거겠지. 대충 그렇게 머릿속을 갈무리했다.

원재는 사월의 대답 따윈 애당초 들을 생각 없었다는 듯, 남자의 멱살을 끌어 올렸다. 하반신 가리기에 급급한 남자가 너무도 쉽게 딸려 올라갔다.

“별 씹새끼가 다 눈 돌게 하네.”

아무래도 나이트 사장이 단단히 핀트가 나간 것 같다. 평소 여유가 섞여 있던 목소리와는 전혀 딴판인 음성이었다. 행동 또한 몹시 거칠었다. 사월은 반라 상태로 스토크 밖으로 질질 끌려가는 남자를 애잔하게 응시했다.

그렇다고 말리거나 도와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원재에게 고마웠다. 물론 자신을 구해 줘서가 아니라, 살인자가 되기 전에 나타나 줘서.

“그러게 좆을 왜 들이밀어, 들이밀길.”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속삭임이었다. 사월은 서늘함이 느껴지는 뒷목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그리고 남자가 끌려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이쪽 구역 깡패 새끼들이 하나 같이 성 사장, 성 사장, 하며 벌벌 떨던 이유를 말이다.

“존나 짜릿하게 해 줄게. 사월 사장님보다 내가 나을걸.”

반라의 남자는 원재가 끌면 끌리는 대로 휩쓸렸다. 사월에게 강압적으로 굴던 언행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스토크 앞이 인적이 드문 골목이긴 해도, 차가 지나다니고 주변에 상가도 늘어져 있다. 무엇보다 가게 앞 전봇대에선 떡대 몇몇이 담배를 태우는 중이었다. 이미 유명할 대로 유명한 성 사장 손에 이끌려 나온 반라의 남자. 그들에게 더없이 흥미로운 존재였다. 뿜어 대는 연기 사이로 눈을 번쩍이며 구경하기 바빴다.

“아!”

원재는 길 한가운데에 남자를 던지다시피 내팽개쳤다. 발라당 추하게 엎어진 남자는 쪽팔리기는 한지, 꾸역꾸역 쥐고 온 담요로 아래를 가렸다. 마른 허벅다리가 파르르 떨렸다. 원재는 남자의 추한 꼴을 목도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짜증이 치밀었다.

“이 좆으로 어딜 비벼.”

잇새에 짓이겨진 혼잣말이었다. 원재는 구둣발을 높이 쳐들어 남자의 중심을 밟았다. 자비 없는 행동이었다. 가래가 들끓는 비명이 골목에 울렸다.

“으윽.”

전봇대 앞에 모여 있던 떡대들은 담배를 지져 껐다. 본격적으로 성 사장 폭주를 관망하기 시작할 셈이었다.

남자는 밟힌 성기를 감싼 채 데굴데굴 굴렀다. 원재는 목을 두어 번 꺾어 소리를 내곤 다시 그에게 다가갔다. 상체를 숙여 남자가 애처롭게 잡고 있는 담요를 손가락 집게로 주워 들었다. 얼굴이 시뻘게진 남자는 눈치채지 못했다. 하반신을 가리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는 사실을.

원재는 담요를 뒤로 던졌다. 풀썩, 담요가 가볍게 나풀대다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커헉…….”

강한 구둣발로 복부를 걷어찬다. 남자는 헛기침을 토했다. 아래를 감싸던 손이 이젠 복부를 움켜쥔다. 엄살이 존나 심하네, 이거. 원재는 검지로 이마를 긁었다. 남자가 땅바닥을 뒹구는 사이 빈틈을 노려 다시 한번 강한 발길질을 한다. 명치를 차인 남자가 숨을 홉 들이켰다. 그 와중에도 몸을 완전히 둥글게 말아 보호한다.

이렇게 머리가 차가워질 만큼 빡이 돈 건 오랜만이다. 웬만한 건 제 선에 오기 전에 정리가 됐고, 구역도 안정돼 가는 중이라 거슬리는 새끼도 없었다. 복병이 나타날 줄은 예상도 못 했다. 그것도 사월 사장이 있는 스토크에서. 원재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뜨거운 숨이 목구멍을 타고 입 안에서 흩어졌다.

“아……. 왜 이렇게 기분이 좆같지.”

“크윽…….”

“씨발아, 너 때문이잖아.”

순식간이었다. 원재는 거친 손길로 남자의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뚝― 목 관절이 다급하게 꺾이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고통스럽게 앓았다. 원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어깨를 천천히 돌리며 관절을 풀었다.

“컥!”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원재의 주먹이 내리꽂혔다. 부르튼 남자의 입술 사이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아아……. 희미하게 앓는 소리는 덤이었다. 꽉 틀어잡힌 머리채 때문에 남자의 고개가 미처 다 꺾이지 못했다. 머리칼을 거칠게 당겨 원래 자리로 끌어오는 원재의 손길엔 짜증이 그득했다.

“똑바로 들어.”

“으윽.”

순식간에 부어오른 뺨 위로 또다시 주먹이 꽂혔다. 구경하던 떡대들은 눈을 가늘게 뜨며 원재를 살폈다. 성 사장 몸 쓰는 거 오랜만에 보네. 간만에 목도한 광경을 말리기는커녕 저들끼리 속닥대기 여념이 없었다.

“인상을 쓰게 만들어, 왜.”

꽤 덤덤한 음성과 달리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말을 끝맺기도 전에 한 번 더 묵직한 파열음이 울렸다.

침에 섞인 피가 붉게 입가에 늘어졌다. 남자는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원재는 잡고 있던 머리채를 바닥에 매다 꽂듯 던진 뒤, 양 손바닥을 부딪쳐 탈탈 털어 냈다.

결국 남자가 축 늘어졌다. 아주 길바닥이 제 집인 양 대자로 뻗어 버렸다. 원재는 바닥에 나뒹구는 담요를 끌어다가 남자의 아래를 덮어 주었다. 그러곤 그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떡대들이 다시 쑥덕댔다. 가려 주는 거야, 지금? 대화가 두어마디 이어지기도 전이었다.

“으힉! 악!”

남자가 뭍으로 올라온 생선처럼 파닥거리며 발작했다. 원재가 담요에 싸인 좆을 단번에 틀어쥔 탓이었다. 손등에 핏줄이 불거질 만큼 거센 힘이었다. 남자는 원재가 두려운 것보다 고통이 더 컸는지, 팔다리를 휘적대며 단단한 어깨를 밀쳐 냈다.

“흥분돼? 더 조여 줄까?”

원재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손아귀에 힘을 더했다. 피가 섞인 타액이 남자의 입가에 줄줄 흘렀다. 원재가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사월 사장 가게 앞이라 자제하는 중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씨팔, 이 씹새끼가 다시는 딸 못 치게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싶은데.

“놔! 놔, 이 씨발! 으윽!”

이제 뵈는 게 없는 남자는 시끄럽게 악을 써 댔다. 귀 한쪽을 틀어막고 인상을 쓴 원재가 혀를 쯧 찼다. 매를 버는 스타일이네, 이 새끼.

“남의 가게 앞에서 소란을 피우면 안 되지, 존나 못 배워먹은 새끼야.”

한 글자씩 눌러 발음한다. 서늘한 음성에 남자의 어깨가 작게 움찔댔다. 원재는 더러운 것을 만졌다는 듯, 손을 탁 떨어트렸다. 담요가 스륵, 마른 허벅지 위에서 흘러내렸다.

남자는 새된 숨을 골랐다. 몇 대 맞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정신이 몽롱했다. 타투 숍 사장이 입은 걸어도 곱상하기에 오랜만에 재미 좀 볼까 했더니, 웬걸. 어떤 덩치 큰 새끼가 들어오더니 자신을 두들겨 팼다.

주먹깨나 쓴다고 이름 날렸는데, 주먹을 뻗기는커녕 피하지도 못했다. 남자는 쪽팔려서 얼굴을 숨기고 싶었지만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버려진 인형처럼 늘어져 있는 것을 선택했다.

삐빅― 스토크 바로 앞에 세워진 원재의 차가 번뜩이며 눈을 떴다. 남자가 부은 눈을 힐끔 소리가 난 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무언가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시야를 가로막은 원재의 팔이 다시 머리를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윽.”

원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남자가 어정쩡하게 따라 일어섰다. 덜 고통스럽기 위해 단단한 팔이 이끄는 대로 따르는 꼴이 우스웠다. 원재는 차 뒷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남자를 욱여넣었다. 흡사 짐짝 같은 취급이었다.

“아아…….”

늘어진 몸뚱이는 반쯤 좌석에 눕혀졌다. 하반신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누운 남자가 약하게 앓는 소리를 흘렸다. 원재는 뒷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가장 위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새 어디 가셨어.

“최 비서, 어떤 씨발 새끼가 내 앞에 좆을 까 놓고 누워 있어.”

―……예? 어떤 정신 나간 놈이…….

미치지 않고 서야 그런 짓을 해요? 최 비서가 삼킨 뒷말에는 그런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몰라. 나 아주 기분이 개같아. 빨리 안 치우면 내가 치우고.”

―……어디신데요.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였지만, 느껴지는 감정은 달랐다. 최 비서는 한숨을 쉬며 차키를 집어 들었다. 또 누가 우리 성 사장 야마 돌게 했냐. 원재가 치운다고 난리를 쳤다간 일이 커진다.

원래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 애매한 문제에선 더 냉정했다. 만약 좆을 드러내 놓고 있다는 그놈을 원재 손에 맡겼다간……. 아마 어디 바다에서 떠오른 걸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최 비서는 욱신대는 관자놀이를 차 키로 꾹 눌렀다.

***

가게 안에 남겨진 사월은 소란한 바깥에 시선을 길게 두었다. 문을 열고 나가 볼까도 했지만……. 드문드문 문을 넘어 들리는 비명에 마음을 접었다. 알고 싶지 않다. 이게 그 변태 새끼의 비명이든, 아님 나이트 사장 새끼 거든.

짜증이 치밀었지만, 또 금세 사그라들었다. 사월은 원래 그랬다. 감정의 기복이 크지도 않았을뿐더러 쉽게 드러내지도 않았다. 자신을 숨기는 데 능했다. 감정을 표출해 봤자 알아줄 가족도 다독여 줄 친구도 없으니까.

그런 불필요한 과정은 사월에게 헛된 기대만 줄 뿐이다. 아무리 호소해도 사람들은 사월의 아픔에 관심이 없었다. 누군가 들어 주길 기대하고 바라고, 원하고. 그러고 나서 실망하는 건 사월을 갉아먹을 뿐이었다.

곁에서 같이 욕을 해 줄 김 사장도 없으니 오늘은 마음을 추스르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는 건, 사월만 알고 있는 일이었다.

사월이 작업대 위로 소독약을 붓듯이 뿌릴 때였다. 닫혀 있던 불투명 유리문이 벌컥 열렸다. 구겨진 셔츠 차림에 달아오른 눈 주변. 아직까지 핏줄이 선 손등으로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원재였다.

“원래 저런 새끼가 많아? 무슨 타투하는 데까지 변태 새끼가 굴러 들어와.”

“내 손님 90%는 다 또라이야.”

거긴 너도 포함이고. 사월은 뒷말은 삼킨 채 작업대 정리에 열중했다. 그 새끼를 어떻게 했는지, 어디에 내다 버리고 온 건지. 불필요한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남의 일처럼 관심을 딱 끊은 사월은 원재에게 내내 등을 돌린 채였다.

“좆을 까는 새끼가 있으면 전화를 하지 그랬어? 번호 적어 줬잖아.”

셔츠를 탁탁 털며 원재가 소파로 걸음을 옮겼다. 아주 지 집이지……. 사월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이 괜히 신경 쓰였다. 정리를 하는 동작이 부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올곧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눈길이, 더는 외면하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웠다.

“너를 왜? 지가 경찰이라도 되는 줄 아나.”

“아니, 사장님. 서운하게 그게 무슨 소리야.”

원재의 말투가 딱 전형적인 조폭 같았다. 사월이 픽 웃음을 흘렸다. 제 딴엔 비웃은 거지만,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 정도였다.

사월의 시선에서 본 원재는 다른 깡패 새끼들이랑 거리가 멀었다. 물론 큰 덩치와 서늘한 표정은 범접하기 어려운 것들이지만. 말투나 하는 짓을 보면, 오히려 자신이 더 깡패에 가까웠으니까. 성 사장, 성 사장, 하며 추켜세우는 꼴이 우습기도 했는데 저렇게 말하니까 이제야 좀 깡패 같이 보이네.

“하루 종일 전화 붙들고 있던 사람한테 그게 할 말이야?”

사월이 움직임을 멈추고 몸을 틀었다. 시선 끝에는 허리춤에 양손을 올리고 크게 숨을 쉬는 원재가 있었다. 뜨거운 호흡을 삼켰다 뱉을 때마다 널찍한 가슴팍이 크게 오르내렸다.

전화를 왜 붙들고 있었는데. 설마, 내가 연락할까 봐? 사월의 미간이 설핏 구겨진다. 머릿속에서는 경보음이 울렸다.

“…….”

저번부터 지나치게 선을 넘어 들어온다. 혼자 조용히, 외롭고 고독하게 살다 죽고 싶은데. 견고하게 쌓아 올려 그늘진 사월의 구역 안. 나이트 사장이 자꾸만 발을 들이며 침범한다.

깡패 새끼들은 원래 자기 영역에 누군가 침입하면 칼부림도 불사하고 지키는데. 남의 선을 짓밟고 쳐들어오는 짓은 너무도 쉽게 행한다.

“꼬라지 보니까 저장도 안 했네. 핸드폰 어디 있어.”

원재는 제 집이라도 되는 듯 작업실을 들쑤셨다. 사월은 한걸음 물러서서 팔짱을 꼈다. 그어 놓은 선 안으로 자꾸만 이 남자가 침범을 한다면? 자신이 선 밖으로 나가면 그만이다. 사월은 금세 방관자처럼 멀뚱히 원재를 바라봤다.

원재는 잉크를 줄지어 세워 놓은 수납장 위에서 오래된 구식 핸드폰을 발견했다. 폴더를 열곤 경악했다. 아니, 나이 70 먹은 거래처 주 사장도 톡으로 예약 잡는 세상인데…….

“허.”

원재의 한숨이 길게 늘어졌다. 사월 사장은 가시를 세워 자신을 보호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세상과 자신을 분리했다. 단절을 넘어선 외면이었다. 왜 이 남자의 삶은 이렇게 차가운 거지.

아무래도 최 비서를 더 닦달해야겠다. 사월을 향한 호기심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다. 몸을 틀자 멀찍이서 자신을 관찰하던 사월 사장과 눈이 마주친다. 원재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호흡을 고르고 덤덤하게 말을 꺼냈다.

“사월 사장 말처럼 내가 경찰도 아니고, 뭣도 아닌 깡패 새끼지만.”

“…….”

“오늘같이 도움 필요하면 불러, 나를.”

“……내가 왜.”

“원래 좆대로 사는 애들이 더 믿을 만한 법이야.”

거침없는 요구였다. 사월은 붉은 입술만 달싹인다. 그 틈으로 소리 없는 숨만 새어 나오다, 결국엔 미약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왜.”

왜 너한테 연락을 해야 하냐고 내가. 사월의 요지는 그거였다. 원재는 검지로 이마를 긁적였다. 어떻게 납득을 시켜야 하나……. 하지만 이내 포기해 버렸다. 성 사장은 누군가를 납득시키거나 이해시키는 일은 해 본 적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말했잖아.”

“…….”

원재가 입꼬리를 씩 올려 웃는다. 그 얼굴을 마주한 사월이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난 사월 사장 마음에 들어.”

원재는 너무도 손쉽게 사월을 끌어당긴다. 그어 놓은 선 밖으로 겨우겨우 몸을 피한 사월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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