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매그넘 니들
시야가 흐릿했다. 원재는 지금 자신이 꿈속을 헤매는 중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선 10년 전에 죽은 형이 제 앞에 살아 있을 리가 없으니까.
교복을 입은 앳된 얼굴의 원재는 입을 딱 다문 채였다. 그 시선 끝엔 원재의 형이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다. 환자복 차림의 형은 손목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얼굴은 어디서 얻어맞고 온 듯 상처와 멍이 가득했다.
‘원재야, 이 개새끼야. 그동안 넌 편하게 살았잖아. 내 덕분에.’
‘…….’
남자는 다정한 음성을 냈다. 소름 끼치게 킥킥 웃을 때마다 입가에 터진 상처가 벌어져 피가 새어 나왔다.
‘왜 자꾸 형을 괴롭혀? 응?’
원재는 형을 괴롭힌 적이 없다. 다만 손목을 그어 자해를 시도하는 걸 발견해 말렸을 뿐이다. 이번에도 커터 칼을 들고 발악을 하던 형 때문에, 원재의 허벅지엔 길게 베인 상처가 생겼다.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원재가 감당하기엔 무거운 것들이었다.
그걸 알고나 있는지, 형은 관자놀이에 힘줄이 설 정도로 웃어 댄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과 기괴하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핏물이 번졌다. 원재는 찢어진 허벅지가 아렸지만, 아픈 티를 낼 수 없었다.
‘형 좀 편하게 살자.’
‘…….’
‘애비 피 받아서 깡패 같은 건 넌데. 왜 나한테…….’
일곱 살 터울의 형은 미술을 했다. 대회에 나가면 꼭 입상을 했고, 본인도 그림에 대한 애착이 컸다. 원재는 그런 형이 자랑스러웠다.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버지가 이끄는 성탁 건설이 뒷골목 일까지 시작하면서, 모든 게 틀어졌다. 장남이라는 이유로 형은 더러운 일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마약을 유통해 회사 뒷주머니를 채우고, 술장사로 터를 잡아 구역을 늘려 갔다. 기업의 비리를 캐는 사람들을 찾아 소리 소문 없이 해결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형이 다쳤다. 말이 다친다지, 사실은 정신을 잃을 때까지 두들겨 맞았다. 붓을 쥐고 물감을 묻히던 손이 어느새 칼을 더 자주 쥐고, 피를 묻혔다.
형은 억지로 아버지가 떠넘기는 일들에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말보다 손이 빠른 아버지가 무서웠을 거다. 그때까지도 형은 원재의 방패막이였고, 아버지의 착실한 장기말이었다.
몇 년을 그렇게 숨죽여 버텨 왔지만 결국 형의 상처가 터졌다. 죽겠다고 목을 매려던 걸 열여덟 살의 원재가 끌어 내렸다. 마약을 해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자해한 뒤 남은 핏자국을 원재가 지웠다. 몇 번이고 그었던 손목에서 솟구쳤던 피를 틀어막은 것도 원재였다. 형은 그런 일들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뒤져 줄 테니까, 좆같은 깡패 그거 네가 하라고.’
잦은 싸움과 마약, 술 등으로 형은 손을 떨었다. 손목을 긋고 나서는 손을 세밀하게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다신 그림을 그리지 못할 손이 된 거였다.
형은 아버지에게 밀리고 밀려 삶의 끄트머리에 내몰렸다. 그리고 애먼 원재를 잡아끌었다.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순간까지. 원재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그 소름 끼치는 웃음을 흘렸다.
‘……형.’
어린 원재는 겁에 질렸었다.
자신에게 유일하게 애정을 주던 사람이었다. 형의 죽음으로 원재는 마음을 비우는 법을 배웠다. 어느 것도 품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지킬 수 없다면 애초에 갖지 않는 법을.
“아…….”
몇 년 만이었다. 형이 죽는 날을 꿈에서 본 건. 원재는 저릿한 손으로 식은땀이 흥건한 이마를 쓸어 넘겼다. 그러다 문득 서늘함을 느꼈다. 품에 있어야 할 체온이 닿아 오지 않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급하게 몸을 일으켜 보니 옆자리의 이불은 헝클어진 채였다. 원재는 낯을 굳히고 침대 아래로 발을 내렸다. 어두운 공간 사이를 뛰듯이 가로질렀다. 원재의 발길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가운이 펄럭였다.
방을 벗어난 원재의 시야로 사월이 보였다. 소파에 몸을 구기고 누운 인영.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
소파 앞 테이블에는 빈 생수병이 올라와 있었다. 목이 말라 잠에서 깼다가, 다시 침대로 올라오지 않은 듯했다. 왜? 내가 있어서? 다시 내 품에 들어오기 싫어서?
원재가 머리를 헝클었다. 그럼에도 그가 자신을 두고 가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에 마음이 붕 떴다. 미친놈같이.
여전히 비가 오는지, 유리창 너머로 빗방울이 세차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원재는 사월이 누워 있는 소파 앞으로 가 머리맡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람 휘두르는 데 선수네, 진짜.”
긴 속눈썹, 단정한 눈썹과 쭉 뻗은 콧대. 살짝 찌푸린 미간과 쌍꺼풀의 자욱이 눈두덩 위에 자리 잡고 있다. 헝클어진 머리는 정리되지 않은 채 이마를 타고 흐른다. 붉은 뺨과 입술은 어울리지 않게 생기 있었다. 원재는 소름 끼칠 만큼 아름다운 광경을 한참이나 넋을 빼고 관찰했다.
사월 사장에게 자꾸 미친놈처럼 매달리게 되는 스스로가 낯설었다. 눈길 한 번, 목소리 한 번 듣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형이 죽고 난 뒤로는 삭막하게 비어 있던 마음이었다. 그곳에 무방비하게 쳐들어온 사월 사장은 이성으로 이겨 내기 힘든 존재였다.
잠든 사월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던 원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옹송그리고 자는 마른 몸을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사월은 마른 체형이었지만 키는 작지 않았다. 오히려 보통 남자들에 비해 큰 편이었지. 원재가 안아 들자 마르고 긴 다리가 허공에서 힘없이 달랑였다. 발목과 종아리에는 자신이 새겨 넣었던 울혈이 여태 남아 있었다. 한숨이 터졌다.
사월이 잠결에 뒤척일 때면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숨까지 들이마셨다. 그래서 이불을 끌어 와 덮어 주는 그 작은 행동도 한참이 걸렸다. 그는 사월의 이마를 덮고 있는 머리칼을 넘겨 주려다 이내 뻗은 손을 다시 말아 쥐었다. 손톱자국이 날 만큼 꽉.
“…….”
지금 사월에게 손을 대면, 이제 되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단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게 사월을 향한 욕심이든 욕망이든.
“휘둘리는 거…… 좋지.”
머뭇대던 원재가 사월의 뺨을 살며시 쥐고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혀를 내었다가 살짝 벌어진 입술만 핥고 떨어졌다.
자신이 급하게 굴면 사월은 날카롭게 발톱을 세운다. 겁을 먹지 않도록 천천히 곁을 차지해야 한다. 바닥에 기고 몸을 낮춰서라도. 사월의 발아래가 진탕일지라도 그래야 한다. 이 입맞춤은 온전히 사월의 곁에 서겠다는 스스로를 향한 약속과 같은 행위였다.
***
사월은 오랜만에 푹 잠을 잤다. 나른한 몸은 두터운 이불에 푹 파묻혀 있었던 탓인지, 뜨끈뜨끈했다. 사월은 뻑뻑한 눈두덩을 꾹 눌렀다. 그러다 문득 느껴지는 기시감에 몸을 굳혔다.
분명 꿈속에 그가 나왔다. 정확히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확실히 원재였다. 꿈에 그가 나왔다는 사실도 당황스럽지만, 그것보다 사월을 당혹스럽게 한 건 따로 있었다.
다리 사이에 느껴지는 이물감. 단단히 선 채로 이불에 짓눌린 자신의 아래였다. 으레 자고 일어나면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지만. 이번엔 느껴지는 흥분이 달랐다.
여기가 작업실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원재의 품에서 잠들었다 새벽에 소파로 가서 눈을 붙였던 것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님을 인지하면서도 하체를 지배한 흥분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사월의 눈이 꽉 닫힌 문을 향한다. 가슴이 쿵쿵 뛰다 못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다리를 겹쳐 허벅지를 비볐다. 짓눌리는 성기에 엉덩이가 들썩인다. 아래가 온통 저릿했다.
“아…….”
자꾸만 아래로 향하는 손을 간신히 제지하곤 이불을 의식적으로 움켜쥐었다. 무릎을 굽혀 가슴께까지 끌어 올렸다. 좆 기둥이 짓눌린다.
아, 정신이 맑아지면 맑아질수록 흥분이 더욱 선명해졌다. 성기를 잡아채 흔들고 싶다. 그가 했던 것처럼 끄트머리를 누르고 비비고. 흥분을 끌어 올리고 싶다. 사정을 하고 싶다. 정신없이 머릿속으로 욕망이 피어올랐다.
너무 위험했다. 원재가 자신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 뻔히 알고 있었다. 그의 방에서 자위를 하는 건 너무 무방비한 짓이다. 사월은 뻐끔대는 아래를 조이며 몸을 일으켰다. 툭 떨어지는 실크 재질의 잠옷 위로 발기한 밑의 형태가 드러난다.
“미치겠네…….”
아래를 잠재우기도 자위를 하기도 애매했다. 사월은 문고리를 잡고 고민하다가 이내 벌컥 문을 열었다. 그러곤 어제 샤워를 했던 욕실로 곧장 걸음을 옮겼다. 거의 뜀박질을 하는 수준이었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주방에 서 있는 원재도 보지 못했다.
쾅, 거칠게 욕실 문이 닫혔다. 식탁 위로 접시를 옮기던 원재가 픽 웃음을 흘렸다.
“우리 사월 사장, 혈기 왕성하네.”
어쩌면 사월을 구워삶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씨발…….”
사월은 원재가 챙겨준 새 드로어즈 안으로 손을 넣어 발기한 좆을 꺼냈다. 퉁 튕겨 나온 성기 끝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손을 동그랗게 말아 기둥을 빠르게 쓸었다. 미간이 찌푸려지며 시선이 아래로 깔렸다.
“후우…….”
딱 다물린 턱에는 근육이 단단하게 섰다. 앙다문 이 사이로 숨을 크게 들이켰다. 핏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기둥을 손바닥으로 힘 있게 감쌌다. 압박감이 느껴지며 무릎이 휘청댄다.
벽을 짚고 선 사월이 아래를 흔드는 손길을 더 거세게 움직인다. 뜨끈한 몸이라 사정이 더 이를 것 같았다. 엄지로 귀두를 비볐다. 거칠게 비빌수록 엉덩이가 자꾸 뒤로 빠졌다.
“아아.”
자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성욕이 넘쳤던 건지. 다른 사람의 집에서 자위를 하다니. 잠그지 않은 문은 언제고 열릴 수도 있다. 그걸 알면서도 사월은 좆을 흔드는 행위를 멈추지 못했다.
탁탁 내려치는 손날에 고환이 닿아 흔들렸다. 달아오른 구멍은 벌름댔다. 그 안으로 무언가가 들어차는 상상을 했다. 다른 손으로 엉덩이를 진득하게 잡아 눌렀다.
“씹…….”
순간 똑똑, 욕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성기를 잡아 흔들던 손길이 문득 잦아들었다. 문 너머로 낮은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뭐 도와줄까.”
“…….”
사월은 눈을 질끈 감았다. 원재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벽으로 정액이 튀었다. 미친. 저 남자 목소리에 사정한 거야, 지금?
사월은 정액을 내보낸 좆을 몇 번 더 흔들었다. 그러곤 뜨끈해진 손을 펼쳤다. 끈적한 정액으로 범벅이 된 손바닥을 내려다보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씨발,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그대로 샤워기를 켰다. 그걸 대답으로 들었는지,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원재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갈아입을 옷 앞에 뒀어.”
찬물에 몸을 적셨다. 흥분이 서늘하게 씻겨 내려갔다. 미쳤어. 돌았어. 후끈하던 몸의 열기를 식히면서 사월은 연신 자책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엉덩이가 미약하게 얼얼하다는 것을. 나이트 사장이 노크를 하지 않았다면. 좆을 흔드는 걸로 그치지 않고 구멍을 쑤셨을 자신을.
***
사월은 제가 입었던 옷을 차곡차곡 개어 들고 나왔다. 옷 사이에 속옷을 끼워 넣었으리라. 원재는 힐끔 그 꼴을 보다 모른 척 고갯짓을 했다.
“빨래할 거 그 앞에 바구니에 넣어.”
“……세탁해서 줄게.”
“왜?”
달뜬 얼굴을 쓸어 올렸다. 부어오른 뺨이 얼얼했지만 내내 손을 치우지 않았다. 가라앉힌다고 찬물을 그렇게 맞았는데도, 볼은 여전히 뜨끈하기만 했다.
“……해 준다는데 말이 많아.”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사월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일갈했다. 원재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숨기지도 않았다. 대신 눈에 보이는 쇼핑백 하나를 건넸다.
한 박자 늦게 그것을 받아 든 사월이 옷을 구겨 넣었다. 정성스럽게 개어 놓은 것이 무색할 만큼 무지막지한 손길이었다.
“앉아. 간단하게 먹고 가.”
그제야 사월의 시선이 식탁 위로 떨어졌다. 노릇노릇한 토스트와 잼, 스크램블과 커피가 놓여 있었다. 단출하지만 꽤 신경 쓴 티가 났다. 먼저 식탁에 앉은 원재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켤 때까지, 사월은 멀뚱히 서 있었다.
“먹으면 데려다줄게. 사월 사장 가서 빨리 빨래 돌려야지.”
턱짓으로 사월이 들고 있는 쇼핑백을 가리켰다. 사월은 시선을 회피하며 백을 뒤로 쥐었다. 곧 주춤대며 원재의 맞은편 자리로 가 앉았다.
식사는 조용했다. 원래 별말이 없던 사월이긴 했지만, 지금 분위기에선 입을 뻥끗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사월이 잼을 발라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무는 과정을 내내 관찰하는 원재 때문이었다. 사람 먹는 거 처음 보나. 사월이 느릿하게 턱을 움직였다.
“사월 사장은 뭐든 느리네.”
원재는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김이 나는 커피를 살짝 들이켰다.
“아쉬운 사람이 맞춰야지.”
들으라는 말인지, 아닌 건지. 원재의 음성은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사월이 눈을 밀어 올려 그를 힐끔 살폈다. 원재는 잔을 빙빙 돌리며 커피를 식혔다. 한 모금씩 천천히 마시려는 듯했다. 먹는 속도를 말하는 거였나……. 사월이 조금 빨리 턱을 움직였다.
체할 것같이 숨 막히던 식사가 끝나고, 사월은 원재의 차에 다시 올랐다. 어젯밤에만 해도 축축했던 시트가 오늘은 말끔했다. 어제처럼 운전석의 원재는 화가 나지 않았고, 사월의 상처도 꽤 가라앉은 상태였다. 간밤과는 모든 게 달랐다. 차 안을 채운 공기마저도.
“집이랑 사월 사장 가게랑 엄청 가까워.”
“……그런데?”
“출퇴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출퇴근? 사월이 비스듬히 고개를 틀었다. 스토크로 출근 도장을 찍겠다는 말인가 싶다가도, 그 어감이 조금 묘했다. 마치…… 자신에게 집과 가게를 오가라는 것처럼.
“그딴 쓸데없는 소리를 왜 해.”
“지켜보지, 뭐.”
원재가 픽 웃었다. 검지가 핸들 위를 톡톡 두드린다. 제법 가볍고 경쾌한 움직임이었다. 사월은 창밖으로 고개를 고정했다. 빳빳한 목이 아파 올 때까지.
그의 말대로 가게까지는 정말 얼마 걸리지 않았다. 스토크 앞 골목에 차가 멈췄다. 벨트를 푸는 손 위로, 단단한 손이 겹쳤다. 사월이 손을 비틀어 빼려 했지만 원재는 물러서지 않았다.
“뭐 해. 놔.”
“저번에…….”
말끝을 흐린 원재가 상체를 기울였다. 고개를 틀어 사월의 목덜미에 입술을 내린다. 사월은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당황한 시야로 스토크 간판이 보였다. 사월의 목울대가 느릿하게 위로 올랐다 떨어졌다. 예전처럼 욕지기를 해서라도 밀어내야 하는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딱 이 자리에서 자위했었는데. 사월 사장 생각하면서.”
“……뭐?”
“정액 냄새나.”
원재가 사월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목덜미 위로 얼굴을 파묻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너른 어깨가 크게 부푼다.
사월의 손은 갈 곳을 잃고 바지를 그러쥐었다. 아래 내려 둔 쇼핑백이 발끝에 챈다. 제 발 저리듯 자꾸만 신경이 그쪽으로 쏠렸다.
“속옷 그냥 놓고 가.”
다시 한번 사월의 목울대가 울렁였다. 목젖에 입술을 꾹 누르고 있던 원재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허리를 은근한 손길로 문지르며 혀로 목젖을 핥았다.
축축한 소리가 차 안을 채웠다. 사월이 뒤늦게 목구멍에 힘을 줬다. 욕을 뱉는 것치고는 노기가 전혀 서리지 않았다.
“씨발, 뭐라는 거야. 비켜…….”
전기가 오른 것처럼 저린 손을 겨우 들어 올렸다. 온통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원재의 어깨를 밀었다. 꽤 순순히 물러나는 몸에 사월이 급하게 몸을 틀어 벨트를 풀었다. 그리고 발아래에 놓인 쇼핑백을 꾹 쥔 채 차에서 내렸다.
밖으로 나오자 꽤 신선한 바람이 폐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흡, 하아…….”
호흡을 꽤 일정하게 유지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내내 닫혀 있던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에 등을 기대고 숨을 골랐다. 거친 호흡을 쉬었다 뱉으며 안정을 찾기까지 한참 애를 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사월이 흔치 않게 놀라며 뒤를 돌았다. 기대고 있던 불투명한 유리문 밖으로 커다란 실루엣이 스쳤다. 사월은 그게 원재일 거라 생각했다.
인영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주저하다 문을 열었다. 그 사이로 찬바람이 불어닥쳤다.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기도 전에 바닥으로 시선이 떨어졌다.
그 끝에는 익숙한 캐리어가 보였다. 어제 나이트에서 작업을 하다 그대로 두고 온 자신의 물건이었다. 정신없이 원재에게 끌려가느라 챙길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 그리고.
“…….”
낡은 캐리어 위에는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자신의 목에 새겨진, 곧 원재의 허리에 새겨질. 사월에겐 너무도 익숙한 꽃이었다.
***
원재는 원래부터 사람을 다루는 데 능했다. 상대가 두려워하는 부분을 움켜쥐고 정신없이 흔들어 대면, 누구든 자신의 손아귀에서 구르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휘두를 줄만 알았지, 누군가에게 휩쓸리는 건 낯설었다. 하지만 그게 그리 불쾌한 것도 아니었다. 아니, 상대가 사월이라 그런 건가.
쇼핑백을 움켜쥐고 있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아른댔다. 원재가 혼자 웃음을 흘렸다. 천천히 핸들을 돌렸다.
지금쯤이면 집무실 완전 뒤집어졌겠군. 최 비서에게 다급하게 온 메시지가 떠올랐다. 사월에게 손댄 장 사장 따까리를 반은 죽여 놨으니. 이미 그 소문이 들어가고도 남았겠지.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억울한 쪽은 자신이 아닌가? 먼저 남의 구역에 들어와 난동을 피우고, 자신의 것에 손을 댔으니까. 잠깐, 내 것? ……사월 사장이 지금 내 거인가? 숨 쉬듯 자연스러운 지칭에 스스로도 놀랐다.
“누가 깡패 새끼 아니랄까 봐.”
제멋대로 구는 자신의 꼴이 영락없는 양아치 같다고 생각했다.
집무실은 딱 상상한 만큼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책상이며 소파, 테이블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부서진 상태였고, 온갖 서류들이 정신없이 땅바닥에 흩어져 있다. 집무실 앞을 지키던 애들 둘은 얻어터진 채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얼마나 두들겨 팬 거야. 원재가 볼 안을 혀로 훑었다.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피떡이 된 얼굴을 살폈다.
집무실 한가운데. 유일하게 멀쩡한 1인용 상석 소파에는 나이 지긋한 남자가 여유롭게 앉아 담배를 태우는 중이었다. 그 뒤로는 뒷짐을 진 험악한 인상의 사내 셋이 자리했다.
“장 사장님, 여기 금연입니다.”
“아아, 그래? 크게 써 붙여 두지. 몰랐어.”
반쯤 탄 담배가 무릎 꿇고 있는 남자의 허벅지 위로 비벼졌다. 까만 정장 바지에서 작게 연기가 피어오르며 탄내가 났다.
“크읍.”
남자가 이를 악물고 소리를 참는 게 보였다. 원재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그 꼴을 가만히 관망했다. 그러다 억지로 입꼬리를 밀어 올렸다. 서늘한 시선이 장 사장에게 꽂혔다.
“쟤 재떨이 아닌데.”
원재는 다 들리는 혼잣말을 뱉었다. 두들겨 맞아 피범벅이 된 남자의 어깨는 잘게 떨렸다. 목소리만 들어도 자신의 사장이 꼭지가 돌았다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그으래? 깡패 구실 못하기에 재떨인 줄 알았지.”
장 사장은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원재는 속이 울렁거렸다. 담배 쩐 냄새와 머리가 아플 만큼 진한 향수 냄새가 역겨웠다. 아까까지만 해도 사월의 향기가 코끝에 남아 있었는데, 이젠 모두 사라졌다. 씨팔, 그러니 짜증이 나겠어, 안 나겠어.
원재가 천천히 데스크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주머니에 꽂아 두었던 팔을 뻗어 망가진 데스크 위를 훑었다.
“장 사장님 벌써 노안이 오셨나. 그런 소문은 못 들었는데.”
“아직 그럴 나인 아니지, 내가.”
손끝에 단단한 것이 잡혔다. 굵직한 유리로 된 재떨이. 금연이라던 말이 무색하게 담뱃재가 드문드문 흩어져 있었다. 원재가 그것을 꽉 움켜쥐고 빠르게 몸을 돌렸다. 열린 재킷이 펄럭였다.
“근데 왜 좆같이 구실까?”
“큽! 으윽!”
장 사장 뒤에 선 가장 큰 덩치의 머리 위로 재떨이를 내려친다. 다시 위로 쳐들린 투명한 재떨이에는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쾅―! 다시 한번 재떨이가 남자의 머리 위로 꽂혔다. 퍽, 무언가 터지는 파열음이 들렸다.
금도 가지 않은 재떨이로 몇 번을 더 머리를 내려쳤다. 남자의 멱살을 쥐고 있는 손부터 가슴팍, 얼굴에까지 피가 난잡하게 튀었다.
장 사장은 가만히 앞만 응시했다. 그 뒤로 서 있는 장 사장 수하 둘은 지시가 떨어지지 않으니 몸을 움찔대기만 할 뿐이었다.
“하아.”
원재의 어깨가 거칠게 오르내렸다. 남자가 축 늘어졌다. 원재는 멱살을 움켜쥔 손을 놓았다. 발아래로 피 웅덩이가 고였다. 재떨이를 바닥에 툭 던지자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투명하던 재떨이는 붉은 막을 씌운 것처럼 보였다.
원재는 손을 탈탈 털었다. 그래도 손에 물든 피는 지워지지 않는다. 안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장 사장님.”
“…….”
“재떨이를 세 개나 끌고 다니시면서, 남의 걸 망가트리면 어떡합니까.”
담뱃불을 붙이며 여상히 하는 말이었다. 장 사장은 소파 팔걸이를 세게 붙들었다. 원재는 피가 묻은 중지와 검지 사이에 걸려 있는 담배를 들어 올려 보였다. 매캐한 연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거 다 태울 때까지 안 가시면, 장 사장님 대가리에 비벼 끄려고 하는데.”
“……핏덩어리 새끼가 오만방자하네. 무서운 줄 모르고.”
“면 세워 드릴 때 가시죠.”
후우― 제 아래에 있는 장 사장 머리꼭지를 보며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그 연기가 장 사장의 얼굴까지 훅 떨어졌다. 주름진 장 사장의 낯이 완전히 구겨진다. 잇새로 욕이 계속 흘러나왔다.
그러게 어디서 씨팔, 같잖게 협박을 한다고 설쳐, 설치기를. 원재가 눈을 가늘게 뜨고, 깊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다시 한번 후― 길게 숨을 뱉는다.
“하여튼, 성 회장 자식 농사 조져도 한참 조졌어. 한 새끼는 뒤져. 한 새끼는 안하무인―, 으윽!”
쾅―!
허리를 굽혀 재떨이를 주운 원재가 장 사장의 머리를 거세게 내리쳤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손짓에 무방비하던 장 사장은 그대로 타격을 입었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며 사방에 퍼졌다. 장 사장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곤 옆으로 고꾸라졌다. 원재는 잇새에 담배를 물고 손을 계속 휘둘렀다.
퍽, 퍽.
어느새 장 사장 머리에 꽂히는 재떨이에서 질퍽한 소리가 섞여들었다. 소파가 온통 피로 젖었다. 장 사장 뒤를 엄호하고 있던 수하 둘은 질겁한 표정으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이쯤에서 멈춰야 하는 걸 알고 있지만, 원재는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게 노인네 새끼, 왜 형 얘기를 꺼내. 노인네가 뒤지고 싶어서 자초한 거야.
그렇게 합리화하며 마지막으로 팔에 힘을 주어 휘둘렀다. 머리에 푹 꽂혔다 빠지는 재떨이에선 피가 흐른다. 꼭 금이 간 유리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는 듯했다.
쨍그랑.
바닥에 피범벅이 된 그것을 던지자 요란하게 깨지고 만다. 자기 힘에 못 이겨 비틀댄 원재가 숨을 크게 헐떡거렸다. 풀렸던 동공에 이제야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야. 동석아.”
“……예예, 사장님.”
원재가 얼굴에 튄 피를 손등으로 쓱 닦았다. 핏물이 닦이기는커녕 얼굴에 얕게 번졌다.
“최 비서 불러.”
“예예. 지금, 예…….”
시종일관 무릎을 꿇고 있던 남자 중 한 명이 벌벌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기도 전에 상대가 받은 건지, 다급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형님. 지금 사무실로 와 주십쇼, 빨리. 예? 아뇨. 애들은…….”
남자가 말끝을 흐렸다. 피바다가 된 집무실 바닥. 머리가 다 깨져 늘어진 두 남자, 그 곁에 얼어붙은 덩치 둘을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애들은 필요 없을 거 같습니다. 상황이 정리가…… 됐습니다. 예예. 예, 맞습니다. 서둘러 주십쇼.”
“뭐래?”
“올, 올라오고 계신답니다.”
원재가 젖은 셔츠 단추를 풀며 힐끔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는 장 사장의 수하 둘이 서 있었다. 원재는 무감한 시선으로 그들을 위아래로 훑었다.
허우대도 좋고 힘도 좀 쓸 거같이 생겼고. 인상도 좆같은 게, 딱 깡패 새끼처럼들 생겼네. 피식 웃는 입꼬리에도 피가 번진 채였다.
“거기 두 사람.”
낮은 목소리에 두 남자의 몸이 바싹 얼어붙는다.
“…….”
“순순히 따라가. 이 꼴 되고 싶지 않으면.”
원재가 바닥에 늘어진 장 사장 쪽으로 턱짓했다. 두 남자는 어깨를 잘게 떨었다. 타이밍 좋게 집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사장, 아…….”
최 비서의 낯이 하얗게 질렸다. 뒤따라 들어오던 십 수 명의 어깨들도 미간을 찌푸렸다. 온통 피비린내였다. 구토가 치미는 걸 겨우 막았다. 입을 틀어막은 최 비서가 원재를 쏘아보았다.
원재는 어깨를 으쓱이며 셔츠를 완전히 벗었다. 그러곤 집무실 구석에 떨어져 있는 새 셔츠를 주워 들었다. 옷걸이에 걸려 끄트머리만 살짝 구겨져 있었다. 이 정도면 입을 만하지, 뭐. 셔츠에 팔을 꿰고 단추를 잠그며 집무실을 가로질렀다.
“나 결백해, 최 비서.”
“……사장님.”
“이 새끼가 먼저 형 얘기 꺼냈어. 아가리를 찢고 싶었는데 참은 거야.”
최 비서가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다, 뒤에 선 어깨들에게 손짓했다. 일사분란하게 흩어져 축 쳐진 남자 둘을 일으키고, 장 사장의 수하들도 어디론가 이끌고 갔다. 다들 미간의 주름이 깊게 잡힌 채였다.
오직 일을 치른 원재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물론 속으로 제일 출혈이 심한 쪽은 원재였다.
꼬박 이틀이었다. 엉망이 된 집무실을 치우고, 시체 두 구를 처리한 뒤에 나머지 수하들까지 정리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그들을 처리하느라 피 묻은 몸을 씻고 새 셔츠를 끼워 입은 원재는 최 비서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 있다.
뒷정리하는데 뭘 그렇게 오래 걸려. 최 비서는 만날 혼자 바쁜 척은 다 하고 지랄이네. 원재는 애꿎은 담배만 뻑뻑 피워 댔다.
방 안에 매캐한 냄새가 스며들 즈음이었다. 데스크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전화에서 진동이 길게 울렸다. 원재의 시선이 힐끔 기기에 닿았지만, 받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창밖은 어두웠고 불도 켜지 않은 채라 핸드폰이 쏘아 대는 빛에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원재가 미간을 찌푸리며 전화를 당겨 왔다.
“……뭐야.”
순간 눈을 의심했다. 몇 번 눈을 깜빡이고는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사월 사장?”
―…….
잘못 걸었나? 원재는 핸드폰을 귀에서 떼 화면을 내려다봤다. 2초, 3초, 4초……. 통화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내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맥박이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한다.
“사월 사장, 나한테 전화 건 거야?”
―……야.
숨소리만 들리던 건너편에서 희미한 음성이 흘러 들어왔다. 야. 고작 한 마디에도 가슴이 널을 뛰며 반응했다. 사월이 맞다. 내내 생각나던 그가 맞았다.
원재는 반가움과 들뜬 마음을 억눌렀다. 순간 불길함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나한테 전화를 할 이유……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데. 그래서 불안했다. 혹시 뭐 좋지 않은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해서.
“무슨 일 있어? 갑자기―.”
―……밖에 비 와.
그 말에 원재가 고개를 틀었다. 이틀 내내 지하에 있느라 몰랐는데, 언제부터 비가 온 건지 컴컴한 창밖엔 빗방울이 정신없이 흩어져 있었다. 순간 번개가 번쩍, 사무실을 밝혔다가 이내 사라졌다. 원재의 무거운 시선이 바깥을 느릿하게 훑었다.
“그러네.”
―…….
다시 말이 없다. 원재는 마른 입술을 축였다. 뭐지, 왜 이렇게 불안하지. 담배를 지져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 키를 어디에 뒀더라.
어깨와 귀 사이에 핸드폰을 끼고 옷을 다 뒤졌다. 잡히는 키가 없어, 벗어 둔 재킷을 끌어다 주머니를 뒤졌다. 찾고 있던 물건이 드디어 손끝에 걸렸다.
“나 지금 갈―.”
―잠이 안 와.
차 키를 쥐고 사무실을 나가려던 원재의 움직임이 일순 멈추었다. 멍청한 낯으로 눈을 깜빡인다.
“……뭐?”
―이런 날……. 잘 못 자.
하. 입술 새로 웃음이 터졌다. 입꼬리가 자꾸만 호선을 그렸다. 또다시 갈증이 일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키를 꾹 쥐었다. 손바닥이 파인 듯했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아, 이게 그런 기분인가. 도무지 곁을 내주지 않던 길고양이가 제 손에 얼굴을 부비는 그런 거.
발밑에서부터 타고 올라오는 쾌감에 원재는 몸을 잘게 떨었다. 거 봐. 오래 걸리지 않을 거 같다고 했잖아. 이건 휘둘리는 건가, 휘두르는 건가. 가만히 생각을 하다, 원재는 자신이 사월의 손에 놀아나고 있는 게 분명하단 결론을 내렸다.
***
딱 그날처럼 잘 수만 있으면 좋겠다.
하늘이 쪼개질 것같이 우렁찬 천둥에 사월은 어린 시절처럼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겁에 질린 눈을 질끈 감고, 귀를 막고. 그래도 공포는 작아지지 않았다. 이상했다. 그때는 분명 귀가 아프게 내려치는 천둥소리 따위 들리지 않았는데.
불을 켰다. 좁은 방이 금세 밝아졌다. 사월은 핸드폰을 들고 한참을 고민했었다. 원재의 번호를 띄워 놓고, 시계를 보고, 창밖을 살피고. 고민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이건 분명하게 욕심이란 걸 안다.
하지만 딱 그날처럼, 그만큼만 깊은 잠을 자고 싶다. 어깨를 어설프게 토닥이던 손길을 받으며 시종일관 어색함과 싸우던 밤.
결국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가는 내내 눈을 질끈 감았다. 꽤 오랜 시간 울리던 신호음이 끝나고, 기다리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의아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사월은 딱지가 앉은 아랫입술을 혀로 축였다.
너무 짐이 되지 않을 만큼. 거절해도 비참해지지 않을 만큼. 혹시나 알아듣지 못해도, 민망하지 않을 만큼. 딱 그 정도의 선을 긋고 말을 꺼냈다.
“밖에 비 와.”
유리창을 때리던 빗줄기가 더욱 거세졌다. 만약 이대로 전화를 끊게 된다면, 다시는 비 오는 밤에 혼자 잠들지 못할 것만 같았다.
원재의 집무실에서 사월이 있는 곳까지는 평소에도 10분 이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 거리를 5분도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원재는 신호등을 무시하고 묘기를 부리듯 골목 사이를 뚫었다.
막 4분이 조금 지났을 때, 좀처럼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원재의 차가 끼익 소리를 내며 멈췄다. 빗물이 바퀴에 짓이겨져 주변에 튀었지만 천둥소리에 전부 파묻혔다.
도착한 건 당연하게도 스토크 앞이었다. 원재는 벨트를 다급하게 풀고 막 운전석을 빠져나왔다. 그때 원재의 시선에 익숙한 실루엣이 들어찼다.
우산도 채 펴지 못해 머리 위로 비가 떨어졌다. 원재의 어깻죽지가 흠뻑 젖었을 무렵이 되어서야 인영이 고개를 든다. 마르고 긴 몸을 굽히고 앉아 담배를 태우던 사월이었다.
“…….”
“…….”
빗줄기를 뚫고 둘의 시선이 맞물린다. 깜빡, 사월이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며 연기를 뿜었다. 얽혀 있던 시야 사이로 희뿌연 연기가 스며들었다. 사월의 얼굴이 가려졌다.
원재는 그제야 현실로 돌아왔다. 몸에 차갑게 내려앉는 빗방울. 차체와 바닥 위로 거세게 떨어지는 빗줄기. 번쩍이며 어두운 골목을 밝히는 번개.
나를 기다린 거야? 원재는 들끓는 욕망과 소유욕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실실 웃으면서 우산을 꺼내 펼쳤다. 이미 흠뻑 젖은 원재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우산을 펼치고 걸음을 옮겼다.
“후우.”
두어 걸음쯤 남았을 때, 사월이 마지막으로 길게 연기를 뿜으며 담배를 지져 껐다. 나른하면서도 색정적인 모습에 원재가 걸음을 멈췄다. 사월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봤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존나 밟고 왔는데. 늦진 않았지?”
“…….”
사월은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움직임에도 원재는 웃음을 지었다. 우산을 사월 쪽으로 기울였다.
“이리 와. 비 안 오는 데로 가자.”
“……그런 곳이 있어?”
“있지.”
원재는 희미하게 미소를 만들었다. 사월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다, 이내 몸을 일으켰다. 크고 검은 우산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이틀 내내 한숨도 자지 못해 뻑뻑한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정말이었다. 원재의 우산 아래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
“읍.”
문을 열자마자 밀어붙이는 거친 힘에 사월이 뒷걸음질 쳤다. 뒤통수가 벽에 닿기 전에, 커다란 손이 사이로 끼어들었다. 푹신한 손바닥이 뒤통수를 감싸 당긴다.
입이 더 크게 벌어지자, 혀가 거칠게 안을 들쑤셨다. 혀를 강하게 옭아매고 빨아 당기면서 정신없이 헤집는다. 가볍게 주먹을 쥔 사월의 손이 원재 허리춤 어딘가에 애매하게 닿았다. 노골적이지 않은 동의였다.
원재는 거기에서 미칠 듯한 쾌감을 느꼈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자신을 찾았다. 그래서 데리러 갔더니, 자신의 우산으로 뛰어들었다. 차에 태우고 집에 올라오는 일련의 과정 내내 의문도 불쾌함도 내비치지 않았다. 피부 아래로 혈관이 크게 부풀어 박동하는 듯했다.
흥분한 원재는 사월의 몸을 이곳저곳 더듬었다. 허리를 쓸다가도 엄지로 젖꼭지 위를 부벼 댔다. 엉덩이를 움켜쥐었다가 허벅지를 당겨 제 허리 옆으로 끌어왔다.
한쪽이 들린 사월의 다리 사이로 원재가 온전히 갇힌 모양새가 되었다. 원재는 허리를 밀어붙였다. 하체끼리 맞부딪히며 은근하게 자극이 됐다.
“읏.”
삽입을 하듯 아래를 툭툭 밀었다. 바지 위로 불룩 튀어나온 원재의 것이 사월의 하체를 노골적으로 자극했다. 사월이 밀려오는 쾌감에 허리를 비튼다. 으응. 그 사이로 옅은 신음이 새었다.
입술을 집어삼킬 듯 이어진 키스에 상처가 벌어졌다. 비린 피 맛에 원재가 입 안을 훑으면서 떨어져 나갔다. 타액이 길게 늘어져 입술 사이를 이었다. 원재가 엄지손가락으로 입술 아래를 살살 쓸었다.
“아쉽다.”
“…….”
숨을 고르느라 사월이 되물을 타이밍을 놓쳤다. 숨을 몰아쉬며 눈을 올려 뜨자, 흥분에 점철된 낯과 마주했다.
원재는 다급하게 사월의 옷을 벗겼다. 바지와 속옷이 한 번에 나동그라지고, 순식간에 셔츠와 반팔 티셔츠가 바닥에 떨어졌다. 신발만 겨우 벗은 두 사람의 발밑으로 옷이 하나씩 늘어 갔다.
“좆 빠는 건 못 시키겠네.”
그렇게 말하곤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웃었다. 자신의 셔츠까지 거칠게 벗어 던진 원재가 사월의 입 안으로 엄지를 밀어 넣었다. 손가락으로 혀를 누르고, 진득하게 문지른다.
침이 고이고 사월의 턱이 힘없이 벌어졌다. 원재는 그대로 고개를 비틀어 내려 혀를 내밀었다. 윗입술과 살짝 드러난 앞니를 톡톡 두드렸다. 혀끝에 닿는 뜨거운 온기에 정신이 다 어질했다.
사월의 손이 원재의 어깨 위에 닿았다. 자신의 것만큼 높은 체온이 손바닥에 느껴지자 온몸이 나른해졌다. 거짓말 같은 변화였다. 자꾸만 의식하게 되던 창밖의 천둥소리도, 음습한 어린 시절의 기억도. 아득하게 형태를 감춘다.
“네가 빨아, 그럼.”
무덤덤한 목소리였다. 그 말을 들은 원재는 잠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뒤늦게 머릿속에 입력된 말을 이해하곤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비튼다. 씨팔. 사월 사장이 저런 말 하니까 진짜 돌겠네, 나. 중얼대는 소리는 꽤 정확하게 사월의 귀에 닿았다.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아무 생각도 안 나게.”
잠 좀 자게 해 줘. 사월의 목소리는 퍼석하고 건조했다.
그에 대답하듯 단검이 그려진 마른 허벅지를 끌었다. 반쯤 선 성기가 원재의 아래를 쿡 찔렀다. 맞부딪히는 뜨거움이 좋아 원재는 허리를 뭉근하게 돌렸다.
이미 아랫배에 바짝 붙어 발기한 좆은 핏줄이 드러날 만큼 팽창된 상태였다. 두 개의 좆이 얽히며 체온을 나란히 한다.
“내가 열심히 해 볼게, 사월 사장.”
사월의 팔꿈치를 뒤로 밀어 목을 감게 했다. 그러고는 나머지 다리마저 끌어와 허리에 감았다. 사월이 원재에게 완전히 안긴 꼴이 되었다.
종아리에 힘을 주어 원재의 허리를 끌던 사월은 아랫배에 부딪히는 커다란 것을 느끼며 흥분감에 빠져들었다.
사월의 엉덩이를 받치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걷는 반동에 사월의 몸이 작게 들썩였다. 그럴 때마다 판판한 배에 사월의 성기 끝이 문질러졌다. 발기한 아래는 점점 더 뜨거워졌다.
“아, 사월 사장 좆 엄청 뜨겁네.”
“…….”
온몸이 녹아내린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단단한 근육도, 새살이 돋아 튀어나온 상처 자국도 자신의 몸에선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사월은 생경한 것들을 손바닥으로 꼼꼼히 매만졌다.
원재는 죽을 맛이었다. 현관에서 침실까지 가는 길이 왜 이렇게 먼 건지. 당장이라도 바닥에 눕히고 싶은 욕망을 꾸역꾸역 억누른다.
뛰듯이 방으로 들어와 사월은 푹신한 침대에 눕혔다. 제자리를 찾은 듯, 시트가 사월의 몸 굴곡을 따라 푹 꺼졌다. 사월의 팔은 여전히 그의 몸을 감고 있었다.
손으로 시트를 짚어 사월과 간격을 벌린 원재가 이마를 맞댔다. 두 시선이 가까운 거리에서 얽혔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단어도 개입하지 않는다.
한참을 그렇게 침묵만 유지했다. 고요함을 깨트린 건 원재였다.
“사람을 죽였어. 그 손으로 네 구멍 쑤시고 싶어서 안달 내는 중이고.”
“…….”
“이건 좀 미친놈 아닌가…….”
물음도 아니고, 통보도 아니었다. 생각만 하던 것을 무의식에 주절거리는 목소리였다. 한껏 자조적인 음성에 사월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럼 너도 못 잤겠네.”
사월에게 진득한 시선을 내리던 원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못 잤지, 한숨도. 옅은 웃음이 섞인 소리였다.
“아. 진짜 마음에 들어, 사월 사장.”
원재의 입술이 사월의 이마와 뺨, 입술에 닿았다. 쪽쪽, 잘게 입을 맞추던 원재가 고개를 틀어 쇄골 위를 진득하게 눌렀다. 뜨거운 숨을 뱉는 그의 입술이 천천히 젖꼭지를 머금었다. 혀로 돌기를 쓸고 힘을 주어 빨았다. 반대쪽 젖꼭지는 손가락으로 빙글 돌리며 유린했다.
“읏.”
그 짧은 애무에도 사월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정돈된 베개 위로 사월의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흩어졌다. 사월은 감싸고 있는 원재의 목덜미를 더 깊이 끌어안았다.
가슴팍에 온전히 안긴 원재가 젖꼭지를 다시 빨아 올린다. 머리칼 사이로 가느다란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사월은 원재의 허리를 감았던 다리를 바로 세웠다. 발바닥 아래로 푹신한 시트가 밀렸다.
“잘 느끼네.”
“아.”
원재가 젖꼭지를 이로 살짝 물었다. 사월의 마른 몸이 들썩였다. 돌기를 물고 혀로 짓누르는 촉감에 사월이 미간을 찌푸렸다.
“야…….”
“아팠어? 미안.”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가 짧게 사과를 건넸다. 세워진 사월의 무릎을 제 옆구리에 바짝 끌어당기고 허리를 위로 쳐올렸다.
읏. 원재의 아랫배에 눌려 비벼지는 아래와 엉덩이 밑을 쿡쿡 찌르는 단단한 좆이 느껴진다. 축축한 귀두가 음낭 위를 느릿하게 스쳤다.
원재가 허리를 움직이자, 검붉게 부풀어 단단히 선 것이 구멍을 파고들듯 입구를 배회했다. 사월의 엉덩이가 슬쩍 뒤로 빠졌다.
원재는 팔을 아래로 뻗어 음낭을 쓱 훑었다. 뻐끔대는 구멍 주변의 촘촘한 주름을 매만지다가 중지를 느릿하게 밀어 넣었다. 구멍이 움찔거리며 손가락을 끝까지 삼켰다. 원재가 손바닥 아래에 닿는 음낭을 슬쩍 압박하자, 사월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 씨발……. 뜨거워.”
손가락을 구부리며 점막을 꾹꾹 눌렀다. 세 마디를 넣어 비틀면서 마찰되는 면적을 늘렸다.
늘 결핍에 허덕이던 자신에 대한 연민. 원재를 만난 뒤 느껴지는 괴리에서 오는 피곤함에 찌들었던 사월의 머리가 점점 하얗게 물들어 간다.
손가락이 하나 더 파고들어, 이내 두 개가 스치고 어긋나며 구멍을 넓혔다. 흥분을 한 건지 안을 쑤시는 손가락이 거칠었다. 쇄골에 파묻힌 원재의 숨이 축축해졌다.
“넣어, 넣어 빨리.”
“잠깐, 잠깐만…….”
정신없이 흥분한 와중에도 구멍을 푸는 일에 공을 들였다. 손가락 하나를 더 쑤시고 안을 푹푹 찔렀다. 줄줄 흐르는 액체로 범벅이 된 손가락이 안을 파고들 때마다 질퍽대는 소리를 냈다. 사월의 허벅지가 달달 떨렸다.
팔로 상체를 딛고 선 원재가 사월의 얼굴을 샅샅이 살폈다. 축축해진 속눈썹, 이마에 달라붙은 부스스한 머리카락, 새빨간 입술. 달뜬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사정해 버릴 것 같았다. 어금니를 세게 물고 겨우 참아 낸다.
구멍을 쑤시던 세 손가락이 빠지면서 내벽이 질퍽하게 딸려 나왔다. 그걸 내려다보던 원재가 다급하게 좆 기둥을 훑었다. 구멍은 뻐끔대며 다시 조여지고 있었다.
원재가 젖은 귀두로 주름진 구멍을 느릿하고 부드럽게 문질렀다. 구멍이 완전히 조여지기 전에 틈 사이로 성기 끄트머리를 맞췄다.
“아, 씹…….”
“아, 아으.”
원재가 사월의 엉덩이를 잡아 벌리면서 아래를 꾹 밀었다. 사월이 숨을 멈추고 아래를 세게 조였다. 원재가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흐릿한 신음을 뱉었다. 구멍에 빠듯하게 들어찬 좆이 더 들어가지 못하고 중간에 걸려 있었다.
“안에 싸려면 하루 종일 걸리겠는데.”
“으읏.”
사월이 다급하게 원재의 목을 끌어안았다. 허리 뒤로 손을 넣은 그가 단단하게 사월의 상체를 받쳐 일으켰다. 구멍을 가득 채운 좆이 더 깊게 파고들었다. 빠듯하게 삽입된 좆이 꿈틀댔다. 내벽을 진득하게 누르면서 점점 더 넓게 공간을 차지했다.
“아, 으읏. 너무…….”
너무 깊게 들어오는 성기에 사월이 구멍을 조였다. 무릎을 꿇고 허벅지에 힘을 줘 몸을 세웠다. 뒤로 빠져나가는 좆에 안쪽이 진득하게 딸려 나왔다. 시뻘건 점막이 성기를 감싼 채였다. 순간적으로 원재가 허리를 휘감아 잡은 탓에 좆은 반밖에 빠지지 않았다.
“하읏.”
“나 말고 아무 생각 안 나게 해 줄게.”
힘 빼. 낮은 목소리를 끝으로 내벽 깊숙한 곳까지 좆이 처박혔다. 튀어나온 점막에 귀두가 처박힌 순간, 사월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이제야 창밖을 요란하게 울리던 천둥소리가 멀어졌다. 사월의 귀에는 오직, 원재의 거친 숨소리와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심장 박동만이 들렸다.
엉덩이를 움켜쥔 손등에는 힘줄이 불거졌다. 빠듯하게 들어찬 성기 때문에 자꾸 구멍이 조여졌다. 원재는 억지로 잡아 벌려 틈을 만들었다.
“사월 사장이, 내 거 좋아하는 거 알겠는데, 힘 좀.”
사월은 원재와 마주 보고 앉아 어깨를 끌어안은 채였다. 자꾸만 터지는 신음이 민망해 어깨와 목이 이어지는 부위에 이를 박았다. 잘근잘근 씹고 쭙쭙 빨아 댔다. 한참을 그렇게 사월에게 목덜미를 내어 준 바람에, 살은 붉게 부풀어 올랐다.
“좆은 못 빠니까 목이라도 잘 빨아.”
가벼운 웃음이 섞인 음성이었다. 사월이 무릎으로 자꾸 몸을 세우기에, 오금을 당겨 자신의 등 뒤로 넘겼다. 좆이 좁은 구멍 안으로 완전히 밀려들어 갔다.
“으읍.”
사월의 입술이 뭉그러지며 목덜미 위에 짓이겨진다. 원재는 사월의 등허리 부근을 손바닥으로 받치고 아래를 쳐올렸다.
“아, 아…….”
마른 사월의 몸이 들썩댔다. 원재는 탄식을 뱉어 냈다. 원재의 엉덩이에 보조개가 패며 힘이 잔뜩 들어간다. 빳빳하게 선 성기가 내벽의 가장 깊숙한 곳을 세게 찌른다. 사월이 목덜미를 으득 깨물었다.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이거, 아……. 이거 너무.”
“자꾸 허리 뒤로 빼지 마.”
너무 깊어 허리를 물리며 앓는 소리를 내는 사월을 단칼에 잘라 냈다. 오히려 엉덩이 한쪽을 잡아 바짝 당겼다.
발기한 사월의 좆이 판판한 아랫배 위에 비벼졌다. 빈틈없이 끌어안고 있는 탓에, 뜨거운 성기가 이리저리 짓눌렸다. 사월이 사정감을 느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 나와…….”
골반을 틀어쥐고 정신없이 아래를 쳐올리는 움직임에 사월의 머리칼이 흐트러졌다. 원재의 목덜미를 괴롭히던 사월의 입술 사이에선 이제 짧은 마디의 신음과 타액이 줄줄 흐른다. 새하얀 발바닥이 시트를 마구 밀어내지만, 몸은 뒤로 무를 수 없었다.
“한 발 빼면 빨아 줄게.”
“미친…….”
웃음 섞인 원재의 말에 사월이 눈을 질끈 감았다. 넘기지 못한 타액이 입가에 뜨끈하게 흘렀다.
점막을 정신없이 쑤셔 대는 성기가 어느 한 부분을 찌르자, 사월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동시에 뜨거운 정액이 솟구쳤다.
원재의 턱 아래와 가슴팍에 튄 정액은 끈덕지게 늘어지며 아래로 흘러내렸다. 원재가 성기를 잡고 몇 번 탈탈 털었다. 사정이 끝나자 접합부까지 정액이 얕게 고였다. 사월은 숨을 들이켰다 한 번에 크게 뱉어 냈다.
“하아.”
선정적인 호흡에 원재의 아래가 꿈틀거렸다. 늘어진 사월을 그대로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상체를 기울여 사월을 위에서 바라봤다.
마음 같아서는 사월의 얼굴을 자신 쪽에 고정시키고 아래가 다 찢어질 때까지 쑤셔 대고 싶었다. 가까스로 욕망을 억누르고 좆을 뒤로 슬쩍 빼냈다.
사월의 정액이 얇게 원재의 성기 위로 묻는다. 반쯤 좆을 잡아 뺀 원재가 사월의 늘어진 다리를 들어 반대편으로 돌렸다. 순식간에 침대에 엎어진 꼴이 되었다. 몸이 돌아가면서 좆이 구멍 주변을 마구 짓눌렀다.
“읍.”
사월이 참지 못하고 다시 신음을 터트렸다. 원재는 상체를 세우고 사월의 아랫배 사이로 단단한 팔을 집어넣었다. 불쑥 들어 올려 엉덩이만 위로 솟구친 자세를 만들었다. 사월은 베개에 짓눌린 시야로 엉망으로 흩어진 시트만 쳐다볼 뿐이었다.
“얼굴 보면, 너무 빨리 갈 거 같으니까.”
후배위를 선택한 이유는 나름 타당했다. 원재는 반 정도 빠진 좆을 잡아 구멍 안으로 꾸욱 밀어 넣었다. 좁은 구멍을 파고 들어가면서 질척한 소리가 났다.
“읍, 후우.”
상체를 세운 원재는 안으로 먹혀 가는 제 성기를 내려다봤다. 새하얀 엉덩이 사이에는 희뿌연 정액이 묻어 있다. 꽉 움켜쥔 탓에 피부 한쪽은 붉었다.
불그스름한 구멍이 움찔대며 좆을 조였다. 성기에서부터 아랫배까지 이어진 얇은 피부 위로 핏줄이 잔뜩 섰다.
온몸의 모든 피가 성기로 다 몰려가고 싶지만, 조인 구멍 탓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양새 같았다. 이러다 좆 터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원재가 아랫입술을 축이며 웃었다.
“다 못 넣겠는데, 지금.”
무릎으로 선 사월의 엉덩이를 잡아 벌리고 허리를 느릿하게 물렸다가 다시 박아 넣었다. 찰싹. 끈적한 피부끼리 닿을 때면 축축한 소리가 울렸다. 원재의 허릿짓이 조금씩 빨라지고, 사월의 몸은 힘없이 흔들린다.
“아, 아…….”
허리를 흔들 때마다 신음이 터졌다. 원재는 하얀 피부 위에 새겨진 검은 잉크들을 눈으로 천천히 쫓았다.
어깨와 목을 감싼 꽃. 시트를 움켜쥔 팔에는 뱀이 휘감겨 있고, 파들파들 떨리고 있는 허벅지에는 단검이 새겨져 있다. 그 위를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만졌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내려다보는 날이 오다니. 흥분되다 못해 머리가 터져 버릴 듯한 쾌감이 느껴졌다.
원재가 갑자기 아래를 거칠게 흔들어 댔다. 사월은 팔로 바닥을 짚어 일어나고 싶었지만,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내벽을 자극하는 좆은 아까부터 한곳만 찔러 댔다. 덕분에 방금 사정했던 성기는 다시 꿈틀대며 발기하기 시작했다.
“좀만, 뒤로. 아, 조금만.”
어렵게 팔을 들어 원재의 골반 쪽을 짚었다. 민다기보다는 살짝 손을 올린 미약한 터치가 이어졌다. 사월의 허벅지가 계속 파르르 떨렸다.
“여긴 이렇게 좋다는데.”
“아읏.”
원재가 상체를 숙여 사월의 등을 완전히 감싼다. 팔을 뻗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사월의 아래를 움켜쥐었다. 이미 정액이 묻어 미끌거렸다. 귀두를 문질문질 느릿하게 만지자 허리가 이리저리 뒤틀렸다. 원재는 타투가 그려진 목덜미 위로 입술을 내렸다.
“왜 자꾸 빼래?”
하얀 피부 위에 입술을 붙인 채로 말을 하느라 발음이 다 뭉개졌다. 성기를 쓸어 올리는 손길은 나른할 만큼 여유로웠지만, 구멍 안을 쑤시는 속도는 전혀 느려지지 않았다.
그나마 살집이 있는 엉덩이 위로 원재의 뼈가 세게 부딪혔다. 접합부는 이미 벌겋게 부어올랐다. 크고 단단한 좆이 빠졌다 처박히길 반복한 탓에 구멍 쪽이 쓰라리기까지 했다.
“힘 빠진다고, 미친…….”
사월의 무릎이 스르르 풀렸다. 침대 헤드로 기어가듯 몸을 움직였다. 쳐들렸던 엉덩이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고 다리가 쭉 펴졌다. 원재는 그 몸짓을 놓치지 않고 따라붙었다.
“윽, 씹…….”
“어, 욕 안 되는데.”
좆을 주물대는 원재의 팔을 그대로 깔고 누운 사월이 허리를 뒤챘다. 이불에 짓눌리면서도 기둥을 비비는 집요한 행위는 멈추지를 않았다.
원재는 완전히 뻗은 사월의 엉덩이 사이로 좆을 계속해서 쑤셔 박는다. 지금도 머리가 돌아 버릴 거 같은데, 욕까지 하면 큰일 나지.
“뭐가, 아 미친. 씨발…….”
터질 듯이 발기했던 좆이 기어코 안에서 크기를 더 키운다. 아, 진짜 구멍 찢어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사월이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뜨거운 내벽 안에서는 약간의 긴장이 흘렀다. 움직임을 멈췄던 성기가 다시 빠르게 속도를 올렸다.
“아, 읏으, 으읍!”
“…….”
“야, 으흥, 하아.”
사월의 다리가 절로 구부려졌다. 잠깐 딛고 있었다고 붉어진 무릎이 시트 위에 늘어졌다. 원재는 자꾸 꼼지락대는 사월을 꼼짝 못 하게 꽉 틀어 안았다.
강한 힘으로 마른 몸을 움켜쥔 원재는 이를 악물고 허리를 흔들었다. 완전히 겹쳐진 몸이 점점 헤드 쪽으로 밀려 올라간다. 사월은 금방이라도 사정할 듯 축축해진 귀두를 느꼈다.
“싸, 싸겠……, 아.”
원재의 손가락이 끄트머리를 틀어막았다. 사월이 급하게 숨을 들이켜며 몸을 움찔댔다.
“잠깐, 잠깐만…….”
흥분으로 점철된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꼭 짐승이 낮은 울음을 내는 것과 같은 소리였다. 사월은 눈을 감았다. 내벽을 온통 채운 좆이 점점 더 뜨거워졌다. 불거진 핏줄이 하나하나 느껴질 만큼 생경하게 와닿았다.
더는 들어갈 수 없는 곳까지 길을 내고 파고든 좆이 안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다 이내 뜨거운 것이 쏟아진다. 원재가 귀두 끄트머리를 막고 있던 손가락을 치웠다.
“아…….”
둘은 동시에 사정했다. 사월의 정액이 시트와 원재의 손을 흠뻑 적셨다. 두 번째 사정이라 그런지 아까보다 조금 더 묽은 형태였다.
하지만 원재는 아니었다. 뜨거운 것을 쏟아 내면서도 안을 찔러 댔다. 정액을 더 깊숙이 쑤셔 넣는 것처럼. 엉덩이에 근육이 잡힐 만큼 힘을 주어 안으로 밀어 넣었다. 울컥, 한 번 더 크게 정액이 쏟아졌다. 안이 꽉 차는 기분이었다.
원재가 사월의 등에 입을 맞췄다. 정신없이 이곳저곳 내려앉던 입술이 목덜미쯤에서는 여린 살을 빨아 올리기도 했다. 사월은 그런 것까지 밀어낼 여력이 없었다. 두 번이나 사정을 한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사월 사장.”
“……왜.”
한참이나 느린 대답이었다.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고 힘이 없었다. 원재는 시트를 짚고 상체를 세웠다. 느리게 깜빡이는 사월의 시야로 핏줄이 선 원재의 팔뚝이 보였다. 아래를 꽉 틀어막고 있던 커다란 것이 느릿하게 빠져나갔다. 가득 채운 정액이 쏟아지듯 밖으로 흘렀다. 뜨끈한 감각이 구멍에서 음낭을 타고 이어졌다.
“아, 뜨거워…….”
혼잣말 같은 힘없는 사월의 목소리. 나른하던 음성에서 색스러움이 읽힌다. 원재의 사고는 멋대로 굴러갔다.
사월이 먼저 자신에게 연락을 했고, 안는 자신을 밀어내지도 않았다. 지난번처럼 마음대로 쑤시라는 둥 찢어져도 상관없다는 둥 헛소리도 꺼내지 않았고. 내내 흥분과 쾌감만 느껴졌던 관계였다.
심지어는 좆을 빨아도 된다고 했는데, 그가 두 번이나 싸는 동안 아직 한 번도 입에 넣지 못했다. 사월은 의식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여전히 비가 내리는 중이었다. 번쩍이는 번개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비 오는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밖에 아직 비 와.”
“……그게 뭐, 아. 잠깐.”
울컥 흘러내리는 정액을 손가락을 밀어 마구 쑤셔 넣었다. 반만 빠져나온 좆과 손가락 두 개가 구멍 안을 채웠다. 안쪽이 꽉 틀어막혔을 때 사월이 어깨를 움츠리며 시트를 쥐었다.
아래로 타고 흐르는 정액을 점막으로 밀어 넣는 손길은 몇 번 더 이어졌다. 정액이 입구 주변에 고이는 걸 계속 지켜보던 원재가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눈을 질끈 감은 사월은 알아채지 못했다.
“한 번만 더 싸고 빨아 줄게.”
“……아, 읍.”
좆질이 다시 시작됐다. 사월은 이를 악물었다. 비가 아직 온다는 원재의 말을 들었을 땐, 사고가 느리게 움직였다. 그제야 떠올랐다. 천둥소리에 벌벌 떨던 자신. 아무 생각도 나지 않게 해달라고 매달리던 나.
막무가내였던 자신의 부탁을 원재는 기꺼이 들어주었다. 정말 눈앞에 있는 원재 말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한 번은 무슨. 사월은 내내 원재에게 잡혀 끙끙댔다. 사정을 몇 번 한 건지도 모르겠고, 배 속에 얼마나 많은 정액이 들어차 있는지도 모르겠다.
좆이 빠르게 안을 들쑤실 때는 희뿌연 액체가 거품을 내며 입구를 따라 줄줄 흘렀다. 정액으로 만들어진 방울이 사타구니 여기저기에 튀기도 했다. 종국에는 천둥소리보다 철벅대며 아래를 쑤시는 소리가 더 무서웠다.
“그만, 그만 좀 해…….”
사정을 하도 해서 반밖에 서지 않은 성기는 몸이 흔들릴 때마다 욕실 벽에 부딪혔다. 원재는 욕조에 선 자신을 벽에 세워 두고 계속 박아 대기만 한다. 진짜 미친 사람같이.
샤워기를 틀어 두어 뜨끈한 물이 등을 때리며 몸을 적셨다. 찰박거리는 소리가 아래가 마찰되어 나는 것인지 물소리인지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아직 한 번 안 끝났는데, 왜.”
“아, 미친…….”
맞는 말이긴 했다. 구멍 안에 들어찬 좆은 몇 번이나 발기하고 사정하는 내내 온전히 빠지지 않았다. 반쯤 끄집어내 정액을 좀 흘려보내고 나면 바로 안을 틀어막듯 비집고 들어왔다.
허벅지 아래로는 말라붙은 정액과 아까 침대에서 들이 부었던 정체 모를 오일이 끈적하게 엉겨 붙었다.
“사월 사장이 오늘 아니면 언제 나를 찾아.”
“읍! 읏!”
“후회 안 하게 해 줘야, 또 나를 부르지.”
원재는 사월을 완전히 등 뒤에서 끌어안은 채였다. 목덜미에 입술을 파묻고 거친 숨을 쉴 때마다 사월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빗속을 뚫고 사월에게 달려가던 순간부터 원재는 줄곧 생각했다. 자신이 쏟는 관심과 애정은 모두 과분하다는 듯 밀어내던 사월이었다. 연락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주저를 하고 용기를 냈을까. 또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와 다음을 기약하려면 오늘이 중요했다. 내벽에 정액을 짓이기듯 쑤셔 넣는 것처럼 애정을 밀어 넣었다. 몸에 차고 빠지지 않을 만큼 깊숙이 그리고 뜨겁게.
“하……. 힘이, 힘이 안 들어가…….”
사월의 무릎이 풀썩 꺾인다. 벽을 짚고 버텨 보려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샤워기에서 떨어진 뜨끈한 물이 발바닥 아래에 고였다. 앞으로 주춤주춤 밀리던 사월의 발이 쓱 미끄러졌다.
“읏.”
허리를 껴안고 있는 원재가 손쓸 틈도 없이 사월은 무릎을 꿇었다. 원재는 좆이 빠지지 않게 몸을 낮춰 따라붙었다.
원재가 등 뒤에 바짝 붙은 바람에 사월은 오도가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가슴팍이 서늘한 욕실 벽에 짓눌리고 젖꼭지가 세차게 비벼졌다. 원재는 허리를 한 번 더 세게 밀어 올렸다.
사월의 신음이 욕실 안에 울렸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에 뒤섞여 곧 묻혀 버렸지만. 원재는 자유로워진 손으로 사월의 허벅지 한쪽을 들어 올렸다. 완전히 밀착된 자세였다. 아주 작은 틈도 없이 두 사람은 맞붙었다.
“비 올 때. 읏, 왜 못 자?”
“아……. 하아.”
“응?”
욕실 벽을 짚은 사월의 손등 위로 원재의 손이 겹쳐졌다. 온몸을 결박당한 사월은 꿈쩍도 할 수 없다.
딱딱한 성기는 정신없이 안을 쑤셔 댄다. 줄줄 흐르는 정액이 사타구니를 타고 흘러 무릎 아래에 고인다. 벌어진 입술을 타고 타액이 흘러내린다.
“후, 뭐 때문에 못 자는데.”
“……으응, 읏.”
“뭐가 무서워. 내가 다 없애 줄까?”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이는 목소리. 소름이 끼칠 만큼 낮은 저음에 사월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는 정신없는 머리를 굴려 생각을 해 봤다. 물음에 대답을 한다고 뭐가 달라질 게 있나. 냉소적인 생각을 하다가도 또 마음이 변덕을 부린다.
이 사람라면. 이 사람은…….
“……비 올, 때 버려, 져서.”
“…….”
“기억도 안 나면서. 흐읏, 비가 오면, 자꾸 보여. 길바닥에 버려진…….”
길바닥에 버려진 내가.
번개가 번쩍일 때면, 빗줄기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갓난아이가 보인다. 천둥이 치면 그보다 큰 아기의 울음이 환청처럼 들린다. 그간 사월이 비 오는 밤이면 이불 속을 파고들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순간 사월은 공포를 느꼈다.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할까. 불쌍한 새끼 이 정도면 많이 놀아 줬지, 하고 내칠까. 그럼 늘 그랬던 것처럼 다시 혼자가 되는 건가. 비 오는 밤이면 이불 속에 파묻혀서. 왜……. 곁에 있어 줄 것처럼 굴어 놓고 왜 아무 말이 없어?
사월의 상념에 대답하듯 원재의 손바닥이 허리를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안에 박힌 성기가 꿈틀, 작게 움직이자 울컥하고 뜨거운 것이 안을 채운다.
쏘아 대던 이전의 사정과 조금 달랐다. 느릿하고 뜨끈하게 배 속을 달궜다. 온몸이 점차 뜨거워진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 때문에 앞머리가 이마에 축축하게 달라붙었다.
쿵쾅대는 심장 박동이 등 뒤로 전해졌다. 긴 숨결에 덩달아 자신의 호흡도 일정한 간격을 찾아간다.
쿨럭, 질퍽. 끈적한 온갖 단어를 갖다 써도 모자랄 소리가 났다. 내벽을 채우고 있던 성기가 천천히 빠져나갔다. 안에 들어차 있던 정액이 왈칵 쏟아졌다. 욕조 바닥이 희뿌연 액체들로 범벅이 되었다.
하지만 곧 떨어지는 물줄기에 씻겨 내려갔다. 원재는 허벅지를 들고 있던 손을 아래로 가져다 댔다. 사월이 몸을 움찔대자, ‘쉬이―’ 괜찮다는 듯 달래 주기까지 한다.
“하려는 거 아니야.”
“읍.”
안을 쑤신 세 개의 손가락이 내벽 깊은 곳부터 긁어냈다. 손가락에 딸려 나오는 정액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깊숙한 곳에 사정을 한 탓에 한참이나 손가락으로 내벽을 쑤셨다. 구멍을 조이며 파들대던 사월의 몸 위로 원재는 조심스럽게 물줄기를 뿌렸다.
“아프니까 움직이지 말고 있어.”
바닥을 한번 헹구어 내고 욕조에 물을 채웠다. 사월은 그 과정 내내 욕조에 널브러지듯 앉아 있었다. 허벅지를 겨우 채우던 물이 허리를 지나 가슴팍까지 차올랐다.
원재는 투명한 물 안을 들여다봤다. 원재의 시선을 따라 사월이 고개를 내렸다. 종착지는 꿇어앉아 있느라 붉어진 사월의 무릎이었다.
원재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욕조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가득 찼던 물이 밖으로 콸콸 넘쳤다. 두 사람 부피만큼 밖으로 빠져나간 물이 마른 욕실 바닥을 축축하게 적셨다.
원재는 사월의 등 뒤에 앉아 그를 끌어안았다. 고개를 틀어 목덜미 위로 입을 맞춘다. 사월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원재는 연한 살을 강하게 빨았다.
문신이 새겨진 피부 위로 금세 울혈이 생겼다. 쪽쪽 입을 맞춘 원재가 상체를 뒤로 물렸다. 까만 선으로 그려진 잉크 사이사이. 붉은 울혈이 어우러지게 피었다.
“여기. 꽃 피었어.”
“……닥쳐.”
원재가 못 참겠다는 듯 사월을 세게 당겨 안았다. 단단한 팔에 힘이 들어갈 때면 욕조 안에 담긴 물 위로 물결이 일었다.
“아, 너무 예쁜데.”
“……입 다물어, 좀.”
사월은 완전히 늘어졌다. 원재의 어깨 위로 뒤통수를 기대고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원재가 짓씹듯 목덜미를 빨아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원재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거 내가 없애 줄게.”
“…….”
“이제 비 오면 오늘만 기억하는 거야.”
사월은 그제야 눈을 감았다.
몸에 부드러운 것이 닿는 감각에 눈을 떴을 땐 침대 위였다. 이불이 어깨 위까지 덮여 있었다. 가슴팍을 일정하게 두드리는 손길도 느껴졌다.
사월은 따뜻한 이불 속에서 손을 꺼냈다. 그러곤 가슴 위를 토닥이는 원재의 손가락을 슬며시 쥐었다. 그제야 움직임이 멈췄다. 새끼손가락을 잡힌 채로 원재가 가만히 사월을 내려다봤다.
“너도 못 잤다며. 안 해도 돼, 이거.”
그 말에 원재의 눈빛이 짙어진다. 다시 배 속이 울렁대기 시작하는 거였다. 사월은 이렇게 여상히도 제 마음을 휘저어 놓는다. 말없이 있자 사월은 제 새끼손톱을 느릿하게 매만지기까지 한다.
잠이 묻은 눈꺼풀 위에 입을 맞추고 싶다는 충동이 피어올랐다. 비가 오는 날이면 혼자 눈물로 지새웠을 두 눈 위에.
“나는 눈을 감으면 형이 보여.”
“…….”
같잖은 위로도 아니고, 동질감도 아니었다. 비 오는 밤, 사월에게 하는 고해성사였다.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했던 형의 이야기.
“좆같은 깡패 짓은 너나 하라고. 그 마지막 말이 자꾸 들려.”
원재에게도 잠들지 못하는 밤은 있었다. 집안도 좋고, 돈도 많고, 어디서든 우위에 설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내보이는 어두운 내면이 사월에겐 더 칠흑처럼 검게 느껴졌다.
“더 좆같이 살아야 형이 만족할 텐데.”
“…….”
“사월 사장만 보면 자꾸 이상하게…….”
사람답게 살고 싶다. 모두가 쓰레기라고, 자비 없는 깡패 새끼라고 손가락질해도. 주제넘게 사월에게만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말을 다 마치지 못한 원재는 사월의 어깨 위로 고개를 파묻었다.
사월은 가만히 생각했다. 핏덩이를 버리고, 동생에게 폭언을 퍼부은 사람들이 나쁜 거 아닌가. 벌을 받아야 하는 건 그들인데. 왜 잠들지 못하는 건 우리인가, 하고.
“…….”
사월은 누군가를 위로하는 데에 서툴렀다. 그렇다고 세세한 가족사를 캐묻는 일도 하지 못한다.
다만 지금 사월이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자신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있는 너른 등을 가볍게 두드리는 일. 원재가 해 주던 것처럼 토닥토닥, 일정하게.
조심스럽게 닿았다 떨어지는 감각에 원재가 고개를 든다. 웃는 것도 아니고 찡그린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을 한 채였다.
“사월 사장. 나 재워 주는 거야?”
대답 없이 손만 작게 토닥인다. 설핏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은 원재가 눈을 감았다.
한참이 지나고 고른 숨소리가 울려 퍼졌다. 원재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사월은 그제야 눈을 감았다. 언뜻 고개를 바라본 창문엔 여전히 빗줄기가 내리치고 있었다.
***
깊은 잠을 잤다는 걸 증명하듯 뜨끈한 몸이 원재의 품 안에서 꿈틀댔다. 졸음이 묻어 느릿하게 깜빡이는 속눈썹. 꿈을 헤매다 온전히 현실로 돌아오지 않은 듯했다.
원재는 그런 사월을 보며 작게 웃으면서 따뜻한 뺨을 가볍게 쥐었다. 손바닥 아래로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졌다.
“……몇 시야.”
“10시 조금 넘었는데.”
평소에 일어나는 것보다 늦은 시간이다. 스토크 청소를 하고, 환기까지 시키고 예약 정리를 하면 이 시간쯤 됐었는데. 오늘은 작업이 몇 시부터였지.
또다. 또 그의 품에서 불면을 느끼지도 못하고 잠들었다. 며칠 새 이렇게 푹 잔 건 오랜만이라 사월은 몽롱한 이 감각이 낯설었다.
“아…….”
그래서였다. 바짝 끌어안은 체온을 뒤늦게 의식한 건. 사월의 어깨가 반사적으로 굳는다. 새벽 내내 섹스한 걸로도 모자라 끌어안고 한 침대, 한 이불을 덮고 잠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건 좀, 너무 가깝지 않은가.
“……좀 떨어져.”
사월은 천장 어디쯤으로 어색한 시선을 고정했다. 부끄러움과 어색함에 사월이 허덕이고 있음을 원재가 모를 리 없었다. 조금 더 바짝 품에 안아 놀려 줄까 하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천천히 일어나. 아침은 먹어야지.”
“별생각 없어.”
“왜. 아직도 안이 꽉 찬 거 같아서 그래? 다 뺀다고 뺐는데.”
“아니, 아…….”
원재의 손바닥이 아랫배를 가볍게 누르고 떨어졌다. 사월이 질색하는 표정으로 원재를 올려다봤다. 이내 너무 거리가 가깝다고 느끼곤 이불을 끌어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제 품 안에 있는 이불 덩어리를 내려 보던 원재는 먼저 몸을 일으켰다. 그렇지 않으면 사월은 하루 종일 이불 안에서 나오지 않을지 몰랐다.
원재는 아침 대신 우유를 따뜻하게 데웠다. 씻고 나와 묘하게 달뜬 얼굴을 한 사월에게 손짓했다.
“이건 먹고 가.”
주저하던 사월은 한참의 텀을 두고, 식탁 의자를 끌어 앉았다. 김이 나는 머그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컵을 내리자 사월의 입술 끝에 티 나지 않을 만큼 묻은 우유가 보였다. 사월의 얼굴을 속속들이 살피고 있는 원재가 그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여기 묻었어.”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입가에 닿는다. 사월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원재의 손가락이 허공에 멀뚱히 떠 버렸다.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정적을 깬 쪽은 의외로 사월이었다.
“……말로 해.”
“말로 하면 정 없어 보이는데. 우리가 이런 거 닦아 줄 사이는 되잖아?”
원재의 웃음 섞인 목소리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긴 속눈썹이 그림자 질 정도로 시선을 내리까는 것밖에는. 원재가 고개를 비뚜름히 틀었다.
“아닌가 봐?”
“…….”
“그럼 무슨 사이지.”
사월도 내심 궁금했다. 우리는 어떤 사이일까. 처음은 손님과 사장이었고, 말도 안 되는 관심을 보이며 그가 일방적으로 거리를 좁혀 왔다.
곁을 내준 적은 없지만 원재는 어느새 큰 부분의 자리를 차지했다. 마음을 터놓은 적도, 호감을 드러낸 적도 없지만 키스도 했고, 섹스도 했다.
그와 체온을 부대끼며 누워 있으면 지긋지긋하던 불면도 사라진다. 겁에 질린 밤에 자신이 찾은 것도 원재였다. 이불 속을 파고드는 대신 원재의 품에 온전히 안겼다. 생각이라는 것 자체를 할 수 없던 진득한 지난밤이 떠오른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사이라고 명명해야 할까.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의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해 부유한다.
“그냥…….”
친구? 그러기엔 간밤의 섹스가 너무도 뜨거웠던 거 아닌가. 연인. 그건 사월에게 너무 무겁고 어려운 단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라기엔 자신을 보는 원재의 눈빛이 지나치게 끈적거렸고 깊었다. 물론 사월 스스로의 마음도…….
“그래. 당분간은 ‘그냥’이라고 하지.”
원재는 여유 있게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어떤 것도 욕심낼 수 없고, 감정을 드러낼 줄도 모르고, 좋고 싫음을 표현 못 하는 사월 대신 원재가 그 관계를 명명했다. ‘그냥’. 사월은 자신이 뱉어 놓고도 그 보잘것없는 단어에 입 안이 씁쓸해졌다.
“그러다 애인 되는 거지, 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온전히 듣기 어려운 음성이었다. 원재가 기지개를 켜며 흘리듯 던진 말에 사월이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뭐랬어.”
원재는 대답 없이 어깨를 으쓱댔다. 그러곤 제 앞에 놓인 커피 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질거리고 유치한 그 단어에 목덜미부터 열이 확 올랐다. 개수대에 컵을 넣는 너른 어깨를 보며 사월은 그가 오랫동안 뒤를 돌지 않기를 바랐다.
두 번째다. 원재의 차를 타고 가게로 돌아가는 건.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조금은 편해진 분위기라는 것. 별다른 대화는 없지만 공기가 그랬다.
익숙한 골목에 접어들었을 때, 사월의 눈빛에 의아함이 서렸다. 날카로운 시선이 가게 앞에 낯선 이들에게 향한다.
차는 막 골목 안으로 진입했다. 그러자 낯선 이들이 더 자세히 보였다. 뒷모습만 봐도 한가닥하는 깡패 새끼들임이 분명했다.
낯선 남자들은 눈썹 위에 손을 올려 그늘을 만든 뒤, 스토크의 불투명한 유리문 안을 들여다봤다. 또 하나는 굳게 잠긴 문을 세게 잡아 흔들기까지 했다. 사월은 이마를 짚었다. 쟤넨 또 뭔데 가게 앞에서 기웃대는 거야?
“손님이 와 있네.”
그 꼴을 본 게 아마 사월만은 아닌 듯했다. 핸들을 쥔 원재의 손등에 힘줄이 불거졌다. 고개를 비뚜름히 기울인 원재가 속력을 높였다.
“야. 너무 빨라.”
“나 운전 잘해, 사월 사장.”
“……그 말이 아니라.”
여기가 서킷도 아니고. 미친 거 아니야? 같이 뒤지자는 거야 뭐야. 사월이 쏘아붙이려던 입술을 딱 다물고 미간을 구기며 벨트를 잡았다.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괜한 말을 했다간 사달이 날 분위기였다. 정작 원재는 여상한 표정으로 액셀을 꾹 밟을 뿐이었다.
“속도 좀 줄여.”
핸들이 향하는 방향은 스토크 앞에 껄떡대고 있는 두 남자. 엔진이 거세게 돌며 골목을 가로질렀다. 기척을 느꼈는지 깡패들이 뒤를 돌아봤다. 자신들에게 들이닥치는 차를 발견하고는 경악했다.
원재는 속력을 더했다. 금방이라도 깡패들을 치고, 가게로 차가 처박힐 것 같았다.
“선팅이 진하긴 한데…….”
이 와중에 태평하게도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거다. 사월은 눈을 질끈 감았다.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아, 너무 빠르고 너무 가까워.
끼익―!
바퀴가 땅바닥을 긁어 대며 급정거를 했다. 원재의 손이 사월의 어깨를 단단하게 감싸 뒤로 물렸다. 때문에 반동에도 몸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사람 없이 조용한 골목에 찢어질 듯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
비명이나 무언가가 치인 둔탁한 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사월은 눈을 천천히 떴다. 보닛과 20센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가게 벽면이 있었다. 깡패들은 어디로 갔지? 사월이 눈동자를 굴렸다.
그들은 차를 피해 아래로 몸을 날린 듯,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다. 당연히 험악하게 인상을 쓴 채였다. 원재는 덤덤하게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사월의 머리 위에 씌웠다. 꼭 얼굴을 가리려는 것처럼.
“씨팔, 뭔 놈의 운전을 이렇게 좆같이 하냐? 어?”
“내려! 어떤 또라이 새낀지 면상 좀 보자.”
시야가 차단되자 오직 청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쾅쾅. 거칠게 운전석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쏟아지는 욕설. 원재가 운전석 문을 벌컥 열었다. 탁, 문이 닫히면서 채 차단되지 못한 서늘한 음성이 흘러 들어왔다.
“좆같이 구는 게 누군지 시비 좀 가려 볼까?”
원재의 말을 마지막으로 대화 소리는 조금 먼 거리에서 들려왔다. 그의 향이 가득 벤 재킷 사이로 언뜻 보이는 건 깡패들의 뒷모습이었다. 기세 좋게 욕을 지껄이던 조금 전과는 달리 땅바닥 어디쯤으로 시선을 내리깐 볼품없는 모양새였다.
“…….”
바깥에서 무슨 말이 오가는 건지. 얼마간 대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조수석 문이 확 열렸다. 그러곤 곧장 머리 위에 덮여 있던 재킷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원재의 얼굴이 보였다.
“읍.”
얼굴을 인식했다. 다음으로는 곧바로 혀가 입술을 가르고 들어온다. 재킷이 덮인 머리를 그대로 움켜쥔 채 키스가 이어진다. 갑작스럽고, 또 불같은 키스였다.
혀를 옭아매고 입천장의 물결을 하나하나 훑는 질척하고 야릇한 행위였다. 사월의 몸이 자꾸만 운전석 쪽으로 밀려났다. 허리를 수그리고 불편한 자세로 입을 맞추던 원재 또한 조수석 안으로 몸을 더 깊이 들이밀었다.
딸깍.
원재가 벨트를 풀자 사월의 몸이 옆으로 확 기울었다. 옆으로 넘어지는 것보다 원재의 단단한 손길이 더 빨랐다. 똑같이 타액으로 번들대는 입술을 하고, 둘은 시선을 마주했다. 원재의 뜨거운 눈길이 사월의 얼굴을 샅샅이 애무했다. 눈빛만으로 낯이 뜨거워질까 봐 사월은 시선을 비꼈다.
“진상 손님은 내가 잘 돌려보냈어.”
“아…….”
사월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말에 잊고 있던 두 남자가 떠오른 거였다. 키스하는 사이 그들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여기가 가게 앞 골목이라는 것도, 조수석 문이 열린 채라는 것도, 아직 밝은 대낮이라는 것도 모두, 까맣게.
그러면서 키스에는 또 열렬히 화답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입 안을 훑는 혀를 따라다니며 체온을 나눴다. 미쳤지, 미쳤어. 입의 여린 살을 깨물었다.
원재는 여전히 머리 위에 덮인 재킷을 거둬 내고, 헝클어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살 빗어 낸다.
“예쁘네.”
흘리듯 건넨 말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신없어 보이는 사월은 그 소리까진 듣지 못했다. 원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간을 찌푸린 사월을 조수석에서 꺼냈다. 문을 닫고, 가게 앞까지 함께 걸었다. 여전히 사념에 빠져 있는 건지, 사월의 표정은 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원재는 사월의 변화 하나하나를 기민하게 관찰하게 됐다. 지금쯤은 아마 홀리듯 키스를 나눴던 것에 대한 자책 또는 후회겠지. 원재는 작게 웃으며 사월의 옆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자신의 생각으로 골머리를 앓는 사월을 보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갈증 나. 시원한 것 좀 줘.”
무턱대고 던져진 말에 사월이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 스토크 문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꺼냈다. 요즘에는 잘 볼 수도 없는 싸구려 문이었다. 열쇠가 철컹 돌아가는 소리마저 요란했다.
“……들어와.”
사월이 안으로 휙 들어가 버린다. 원재는 느릿하게 뒤를 따르다가도, 문을 두어 번 열었다 닫으며 확인을 한다. 이건 뭐, 사람 안 불러도 발길질 몇 번이면 그냥 열리겠는데. 원재가 미간을 찌푸리며 혀로 볼 안을 훑었다. 아무래도 사월이 지내기에 이곳은 너무도 위험한 장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주는 대로 먹어.”
사월은 키 작은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를 꺼냈다.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유리병을 소파 앞 테이블 위에 올려 뒀다. 원재는 입꼬리를 올리곤 소파에 앉았다. 처음엔 알아서 꺼내 처먹으라고 냉대를 하더니. 이젠 손수 꺼내 주기까지 하네.
그래 놓고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려 등을 돌린 사월이다. 원재는 불쑥 튀어나오려는 욕망을 꾹 삼켰다. 턱에 근육이 단단하게 설 만큼 이를 악물었다.
“다 맛있지, 사월 사장 거는. 아, 근데 어제 못 빨아 줘서 그건 못 먹었네. 난 그게 더 좋은데.”
“……빨리 마시고 꺼져.”
여느 때와 다름없는 욕에 원재가 웃음을 터트렸다. 탁탁. 꽤 신경질적으로 정리하는 사월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렌지 주스를 뜯어 벌컥 마셨다.
갈증이 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혀뿌리부터 좆 끄트머리까지 온통 갈증이 났다. 차가운 액체가 넘어가도 뜨겁게 달구어진 것은 쉬이 식지 않는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주스를 마시는 것 같지만, 원재는 가게 구석구석을 살피는 중이었다. 뒷골목 쪽으로 난 창문이 너무 허술했다. 문 옆에 붙어 있는 창문은 그마저도 창살이 없다.
난감하네, 여기. 원재가 주스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병을 따로 모아 놓는 박스로 몸을 돌렸다.
원재의 시야에 벽에 붙여 둔 큰 달력이 보였다. 빠르게 눈으로 날짜들을 훑었다. 그러다 한 달 뒤로 미룬 자신의 예약 시간을 찾았다.
네임 작업 4시
“와. 정이 없어도 너무 없는데, 이건.”
내심 서운함이 섞인 목소리에 사월이 뒤돌아봤다. 원재가 손가락으로 노란 포스트잇을 가리켰다.
“이름도 안 써 있어, 심지어?”
“…….”
“사월 사장, 내 이름은 아는 거야?”
씨발. 그럼 이름도 모르는 새끼랑 섹스를 했겠어, 내가? 사월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삼켰다. 팔 할은 섹스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성원재.”
“아, 미친.”
원재의 큰 손은 자신의 눈가를 다 덮고도 남았다. 작업실 한가운데 선 원재는 앓는 듯 긴 한숨을 뱉는다. 야릇하기까지 한 소리에 사월이 그를 응시했다.
“문 잠그고 해도 소리 다 들리겠지.”
고작 돌아오는 말은 저거다. 사월이 쯧, 혀를 짧게 찼다. 내내 짐짓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원재에게서 고개를 휙 돌린다.
“가. 작업 있어.”
“무드도 없고, 분위기도 잘 깨고.”
“…….”
“근데 왜 너만 보면 안달이 나는지 모르겠네.”
진득한 시선이 사월에게 향했다. 사월은 묵묵부답이었다. 사월이라고 그 답을 알까. 원재 앞에서는 모든 잣대도 기준도 경계도 사라지고 마는 자신을 이해하기도 힘든데.
“…….”
대답 없는 사월을 세워 둔 채로 원재가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애초에 대답을 바라지도 않았지만, 더는 부담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까지 곁을 내어 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손목을 두어 번 털어 시계를 내린 원재가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집무실에 가기 이르긴 했지만,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으니 서두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더 있다간 문 걸어 잠글지도 모르겠다. 가 볼게, 사월 사장.”
원재가 가게를 벗어나는 내내 사월은 뒤를 돌지 않았다. 검정 라텍스 장갑을 끼고 랩을 벗기던 손길이 멈추었다. 내내 바쁘게 움직였던 것치고는 처음과 큰 변화는 없다. 온 신경이 뒤에 선 원재에게 쏠렸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성원재…….”
입에 한 번 담고 나니, 마음속이 울렁댄다. 성원재. 성원재……. 사월은 몇 번이고 되뇌었다. 발음을 할 때마다 아랫배가 찌르르해지는 감각이 내심 나쁘지 않았다. 사월은 그렇게 한참을 혼자 중얼대며 작업대 앞에 서 있었다.
이내 장갑을 벗고 달력 앞으로 걸어갔다. 무감한 손길로 포스트잇에 단정한 글씨를 새겨 넣는다. ‘네임 작업 4시’ 간결한 글자가 적힌 종이를 떼어 내고 그 자리에 새 종이를 붙였다.
성원재
이름 없이 기록되었던 작업 하나가, 이름만 남기게 된 순간이었다.
***
이상한 일은 그날 밤부터 시작됐다. 수상한 기척이 스토크 주변을 맴돌았다. 아니, 정확히는 사월의 주변에.
불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기웃대는 실루엣이 보인다든가, 늦은 밤에 싸구려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손길, 시도 때도 없이 울렸다가 끊어지는 전화들. 사월은 직감적으로 자신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사이 비가 오면 당연하단 듯 원재가 찾아왔다. 그런 날이면 수상한 기척은 따라붙지 않았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그와 함께 잠들면 악몽도 꾸지 않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함도 사라진다. 사월은 그 안락함이 좋았다.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거라 조금 더 만끽하고 싶었다. 비록 금방 사라질지라도.
“으윽.”
“무릎 아파?”
엎드린 채로 아래를 받아 내느라 무릎이 이불 위에 밀렸다. 성기를 세게 쳐올리면 앞으로 밀리고, 골반을 틀어쥐어 아래로 끌어 내리면 그대로 또 주욱 미끄러졌다.
사월은 원재의 물음에 작게 고개를 저었다. 땀에 젖은 뒤통수와 목덜미 사이를 원재의 단단한 손바닥이 감싸 쥐었다. 그대로 고개를 틀어 당기자, 사월의 머리가 옆으로 기울었다.
이제야 원재의 시야에 사월의 얼굴이 비췄다. 원재가 허겁지겁 상체를 숙여 입을 맞췄다. 땀에 젖어 미끌대는 가슴과 등이 마찰되며 질척한 소리가 났다.
“읍.”
혀를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밀어 넣으며, 허리를 쳐올렸다. 바닥을 딛고 있던 사월의 팔이 힘없이 무너졌다. 정신없이 엉켜 있던 혀가 풀리며 타액이 길게 늘어졌다. 사월은 팔에 이마를 묻고 끙끙 앓는 소리를 뱉었다.
“아, 이 자세 힘들, 힘들어.”
원재가 상체를 세웠다. 제 것을 물고 있는 엉덩이를 꽉 움켜쥐고는 자신의 몸 쪽으로 강하게 당겼다. 거의 아래로 내리꽂는 것처럼 허리를 뒤로 물렸다가 앞으로 강하게 밀어붙였다.
찰박찰박, 음낭이 흔들릴 정도로 살덩이가 거세게 안으로 꽂혔다. 까슬한 음모가 사월의 엉덩이 주변에 짓눌렸다. 움직임마다 사월의 옅은 신음이 따라붙는다.
“세게 누르지, 마…….”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면 시간이 몇 시고, 원재는 스토크를 찾았다. 사월이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아니면 근처에 서성대며 괜히 허리나 뺨을 쓸기도 했다.
그리고 밤이 어둑해지면 둘은 자연스럽게 몸을 섞었다. 그게 작업실 한편에 있는 소파일 때도 있고, 작은 쪽방일 때도 있었다. 열렬한 섹스를 하고 나면 사월은 죽은 듯 잠에 빠졌다. 사월이 그토록 원했던 시간이었다. 아무 악몽도, 두려움도 없는 고요한 밤.
“비가 너무, 많이 와. 여기서 멈추면 우리 사월 사장 무서울 거야.”
그의 말처럼 밖에선 여전히 비가 내리는 중이었고, 방 안에도 비 냄새가 가득했다. 하지만 사월은 더 이상 무섭다거나 비참한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됐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붉어졌을 자신의 엉덩이를 쓸어 대는 손길 때문이었다. 소중한 것을 매만지듯 조심스러운 원재의 체온.
쾅쾅.
뜨겁게 달구어졌던 호흡이 일순 멈추었다. 사월이 가슴팍을 들썩이며 호흡을 골랐다. 지금 이 시간에 가게를 찾아올 사람은 없다. 자정이 넘었을 테니까. 이렇게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건……. 아마도 며칠 내내 사월을 쫓았던 수상한 기척임이 분명했다.
“분위기 깨는 방법을 바꿨어? 손님 부르는 걸로?”
끈적한 목소리가 귓속에 곧장 꽂혀 들었다. 원재의 뜨거운 혀가 귓바퀴를 쓱 쓸었다. 사월이 어깨를 움츠리며 팔을 뒤로 뻗었다. 빈틈없이 바짝 맞물린 원재의 골반을 뒤로 밀었다.
“잠, 잠깐…….”
“내 거 빼고 간다고? 진심이야?”
웃음 섞인 목소리였다.
쾅쾅. 문은 다시 거칠게 흔들렸다. 사월은 덜컥 겁이 났다. 원재가 신경 쓸 일을 만들고 싶지가 않았다. 자꾸 자신 때문에 귀찮아져 버리면…….
그럼 버리는 게 쉬울 테니까. 그가 떠날 어떠한 빌미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너무 달콤하고 따뜻한 이 체온이 떠나 버리면 사월은 조금 오래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원재를 밀어내는 손길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그가 천천히 몸을 뒤로 물렸다. 처음엔 콘돔을 끼고 했었는데, 두 번째부턴 그마저도 없었다. 아직 사정을 채 하지 못해 발기된 좆이 묵직하게 구멍에서 빠져나온다.
“와. 씹, 이렇게 멈추는 건 또 처음이네.”
기둥을 잡고 느릿하게 좆을 빼냈다. 시뻘건 점막이 성기에 달라붙어 끌려 나왔다가 오물오물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원재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좆이 터질 것 같아서였다.
후두둑. 좆과 함께 뿌연 정액이 딸려 나왔다. 사월의 구멍 주변과 사타구니에 엉망으로 달라붙었다.
엄지로 정액을 닦아 내던 원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사월이 평소와는 달리 조금 허둥지둥하는 기색이었다. 거기서 묘한 기시감을 느낀 원재는 옷을 쥐려고 뻗는 사월의 팔을 잡아끌었다.
“왜, 왜.”
“잠깐 손가락 좀 빌리자.”
사월의 검지와 중지를 잡고 엉덩이 사이로 끌어 내렸다. 그러곤 정액 범벅이 된 채 뻐끔대는 구멍에 손가락을 욱여넣었다. 사월의 몸이 크게 들썩댄다.
“야, 미친. 지금 뭐 하는 거야?”
“안 흐르게 잘 막고 있어.”
“내가, 내가 나간다고.”
“이따 다시 넣을 때 안 아프게.”
손가락 두 개를 먹은 구멍이 움찔움찔 입구를 좁혔다. 그 사이로 정액이 비죽 흘렀다. 이보다 더 색정적인 모습은 없을 거 같다.
스스로 구멍을 틀어막고 있는 사월 사정이라니. 원재는 당장이라도 구멍에 혀를 박아 쑤시고 싶었다. 입맛을 다시듯 입술을 혀로 진득하게 핥았다.
쾅!
원재의 욕망을 대신 억누르듯 큰 소음이 들렸다. 문을 발로 차는 소리 같았다. 원재가 바닥에 대충 던져 놓은 샤워 타월을 끌어 와 허리에 묶었다.
옴짝달싹 못 하는 사월의 뒷덜미는 이미 붉어진 채였다. 터질 듯한 기둥을 두어 번 쓸고 원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단하게 발기된 성기 탓에 타월이 볼록 튀어나온 채였다.
“섹스 끝나면 오라고 할까.”
“야, 씹…….”
킥킥 웃은 원재가 문을 열고 나갔다. 큰 걸음으로 작업실을 가로질렀다. 땀이 맺힌 가슴팍과 이마, 달뜬 눈빛과 거친 호흡. 지나가는 걸음마다 정액 냄새까지 풍겼다. 누가 봐도 섹스를 하다 나온 얼굴이었다.
사월 사장 무섭게 어떤 새끼가 이 시간에 찾아오는 거야. 원재는 머리카락을 거칠게 털었다. 사월의 앞에서는 보여 주지 않는 신경질적인 행동이었다. 표정을 무섭게 굳힌 그는 싸구려 문을 벌컥 열었다.
“…….”
언제 노크 소리가 들렸냐는 듯, 바깥은 고요했다. 가게 앞은 개미 한 마리 지나가지 않을 만큼 고요했고, 빗방울만 추적대며 떨어지는 중이었다.
눈을 가늘게 뜬 원재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부푼 가슴팍 위로 땀방울이 하나 길게 흘렀다.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어진다.
“아직도 본드 하는 새끼가 있나…….”
비릿한 빗물 사이로 느껴지는 기시감. 문가에선 희미하게 본드 냄새가 났다. 원재가 알기로 아직도 본드 하는 새끼는 딱 하나 있었다. 제 수족들한테도 본드 강요를 한다고 얼핏 들었는데. 그럼 방금 사월 사장을 겁먹게 하고, 섹스에 찬물을 끼얹은 게 혹시, 광 박사네 애들인가?
광 박사는 얼마 전 원재의 손에 무참히 죽은 장 사장의 오른팔이었다. 장 사장이 죽은 뒤, 거의 조직을 이끌다시피 하는 인물. 마약 배달로 일을 시작해 모르는 약이 없어 광 박사라고 불렸다.
장 사장 없애 준 거 고맙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사월 사장 가게는 왜 찾아오고 지랄이야, 씨팔놈이. 원재가 혀로 볼 안을 핥아 올렸다.
“장 사장 뒤따라가고 싶어서 발악을 하네, 아주”
날카로운 시선이 골목을 훑는다. 아마 멀리 가지는 못했겠지만, 굳이 따라나서지는 않았다. 타월로 간신히 가린 아래는 아직도 터질 듯했다. 일단은 아래 사정이 더 급했다. 다급하게 문을 닫고 걸어 잠갔다. 워낙 허술하고 구식이라 잠그는 행위에 큰 의미는 없어 보였지만 말이다.
“……누군데.”
등 뒤에서 넘어오는 소리에 원재의 좆이 빳빳하게 선다. 끄트머리가 축축해지고 금방이라도 사정할 듯, 묘한 기운이 아랫배에 고인다.
“왜 나왔어.”
“……씻고 오게.”
씻고 온다는 말에 원재가 고개를 돌렸다. 씻어? 이대로 끝낸다고? 하던 게 있는데? 어둑한 작업실에 멀뚱히 서 있는 인영이 보였다. 초점을 맞추자 사월이 눈에 박혀 왔다.
품이 큰 반팔 티셔츠만 걸친 마른 몸, 헝클어진 머리, 붉어진 눈가와 입술. 목덜미마저 울긋불긋한 색정적인 모습을 목도하자마자, 원재는 사정을 했다.
타월 한 부분이 질척하게 젖고 원재의 허벅지 사이로 정액이 흘렀다. 탁한 액체가 흘러내리는 길대로 사월의 시선이 따라 내려갔다.
“미친놈.”
서늘한 말을 툭 뱉은 사월은 몸을 돌렸다. 원재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었다. 손대지도 않았는데, 목소리로 가 버리네.
사월이 욕실로 들어가는 다급한 발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원재는 실실 웃으며 타월을 풀었다. 사정을 했음에도 딱딱하게 선 아래를 내려다봤다. 기둥을 몇 번 쓸어 남은 사정감을 털어 낸다.
그러곤 차분하게 가라앉은 머리로, 계획을 줄지어 세웠다. 광 박사 사업 먼지 좀 털고, 그 구역에 애들도 풀고, 그 다음엔 최 비서 시켜 광 박사 애들 뒤 좀 밟으라고 지시하고. 아, 그보다 사월을 제 집으로 들이는 게 더 먼저인가. 원재가 검지로 이마를 긁었다.
“그보다…….”
모든 계획을 뒤로하고 가장 선두에 오른 건, 씻은 사월을 껴안고 재우는 일이었다.
***
아침에 원재가 나가면서 신신당부한 말이 있었다. 또 이상한 손님이 오면 연락을 하라고. 일단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월에게 그럴 용기는 없었다. 원재에게 짐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 그게 사월을 움츠러들게 했다. 눈앞에 선 남자를 보면서도 생각했다. 나이트 사장한테는 들키지 말아야지.
“성 사장 눈 높은 줄 알았는데. 뭐, 별거 없네.”
“…….”
사월은 등 뒤에서 들리는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시원하게 욕이라도 했을 텐데. 원재의 이름이 언급된 후로는 아무 반응도 할 수가 없다.
“콧대 높은 성 사장을 어떻게 꼬셨어? 응?”
“그래도 볼 게 얼굴밖에 더 있겠습니까, 형님.”
저급하게 저들끼리 낄낄댄다. 사월은 작업등에 래핑하는 일에 열중했다. 잘게 떨리는 손이 보이지 않게 빠르게 랩을 감쌌다. 별, 씨발. 마스크 안으로 입술을 말아 물었다.
그때 작업용 앞치마 주머니에서 작게 진동이 울렸다. 원재의 문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랩을 뜯어 대충 마무리를 하고 마스크를 반쯤 내려 턱에 걸쳤다.
“영업 방해하지 말고 나가, 씨발 새끼들아.”
“와. 앙칼지네.”
소파에 홀로 앉아 있는 남자가 휘파람까지 불어 대며 저질스럽게 반응했다. 능글맞게 사월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는 시선. 사월은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역겨움을 느꼈다. 미간이 사정없이 찌푸려졌다.
“성 사장 취향이 이런 거구나?”
“하…….”
사월이 짝다리를 짚고 불쾌한 티를 내자, 소파에 앉은 남자가 빙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구경 좀 하러 온 거니까 인상 풀어, 사장님.”
“좆같은 소리 하지 말고 가라니까.”
신경질적인 대꾸를 해도 남자는 실실 웃으며 거리를 좁혔다. 그러더니 슬금슬금 다가와 사월의 마른 어깨 위에 팔을 걸쳤다. 사월은 매섭게 남자의 팔을 쳐 냈다.
“요즘 사월 사장님 때문에 성 사장이 여기저기 들쑤시느라 아주 바빠. 성 사장이 이렇게 움직이는 게 간만이라, 뭐 때문에 눈이 돈 건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뭐?”
남자가 고개를 기울여 사월의 귓가에 바싹 붙어 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리려다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빳빳하게 굳어 버렸다.
“사장님, 애인한테 잘 전해.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르고 날뛰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뒤진다고. 응? 씨팔, 어디 상도덕도 없이.”
“…….”
남자는 진득하게 사월의 얼굴을 훑고는 뒤를 돌았다. 그를 따르는 대여섯 명의 남자. 사월은 그들이 가게 밖으로 나갈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
나 때문에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다고? 나이트 사장이? 그동안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모두 알아 버린 거야? 가게에 이상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걸?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원재의 보호는. 일주일? 한 달?
그럼 얼마 만에 지칠까. 자신을 지키려고 여기저기 날을 세우는 일에.
장갑을 벗어 던지고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아까 전 온 문자는 역시나 나이트 사장이었다. 순간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거의 비슷했다. 대략 두세 시간에 한 번씩 오는 문자였다. 답장을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꾸준히 문자함에 쌓이고 있던 연락.
이상한 손님 오면, ‘원재야’.
내가 보고 싶으면, ‘자기야’라고 보내.
사월은 떨리는 손으로 키패드를 꾹꾹 눌렀다. 다섯 개가 넘게 온 문자에 처음으로 하는 답장이다.
지금 당장 확인을 하고 싶다. 원재의 비호가, 관심이, 애정이 아직 자신을 향해 있다는 사실을. 이깟 문자로는 부족하지만, 지금은 이깟 거라도 필요한 순간이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사월은 소파에 주저앉았다. 답장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나 때문에 피곤한 일에 말렸다고 생각하면, 그럼 어떡하지. 섹스도 했겠다, 이제 내가 필요 없어진 거 아닐까. 그럼 나는? 아직 장마는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나는 그럼…….
사월은 한참이나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차마 내버려 두지 못하고, 손에 꼭 쥐었다.
같은 시간. 원재는 데스크 위에 서류를 던지다시피 했다. 그러곤 고개를 틀어 창밖 너머를 바라봤다. 버릇처럼 핸드폰을 집어 들어 날씨를 검색한다. 밤에 비 오네. 원재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듣고 계시냐고요, 사장님아.”
“1절만 해, 형. 귀에 딱지 않겠어.”
벌써 몇 십 분째였다. 최 비서는 답답한지 가슴을 콩콩 쳐 댔다. 그런 것 따위 안중에도 없는 원재는 핸드폰을 데스크에 올려두고 창밖으로 시선을 던질 뿐이다.
“광 박사네 애들이 심상치 않다니까. 아니, 그러게 장 사장 대가리는 왜 깨, 깨길?”
“말했지. 그 새끼가 먼저 형 얘기 꺼냈다고. 입 다물고 있었으면 죽이지도 않았어.”
“하.”
최 비서는 이마를 짚었다. 골치가 아픈 건 오롯이 저 혼자 같았다. 원재 아버지가 이끄는 성탁 건설 쪽 조직보다는 조금 규모가 작지만, 이 근방에선 꽤 뿌리내린 패거리들이었다.
워낙 원재가 나서지 않는 편이라 그사이에 장 사장과 광 박사가 활개를 치고 다닌 것도 있지만. 그래도 나름 주먹깨나 쓴다는 애들을 많이 데리고 있었다.
그런 장 사장의 대가리를 재떨이 하나로 박살내 버렸으니. 성 사장이 장 사장을 담갔다는 소문으로 근방이 떠들썩해지는 것도 삽시간이었다.
“걔네 등신 아니다. 사월 사장인지 뭔지……. 그 사람한테까지 손 뻗치는 거 그 새끼들한테는 일도 아니야. 모르진 않을 거 아냐.”
무식하게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고, 수가 틀리면 그냥 칼을 꽂아 버리는 깡패들 사이에서도 암묵적인 룰은 존재했다.
가장 윗대가리는 건들지 않는 것. 서로의 구역에 침범하지 않는 것. 시비가 붙어도 웬만하면 상대를 해하지 말 것. 생각보다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룰이다. 그걸 원재가 아무 망설임 없이 깨 버린 거다, 장 사장 대가리처럼. 그래서 이렇게 광 박사네가 이를 가는 거고.
깡패 새끼들이 아주 염병을 떨어. 코미디가 따로 없네. 원재는 한숨을 푹 쉬었다.
“왜 몰라. 그러니까 그냥 이참에 법무 팀에 넘겨서 설거지해. 그 새끼들 어차피 재개발에 방해된다니까.”
“……성 사장. 말이 쉽지 그게―.”
“투기에 상가 불법 증축에, 용역 써서 주민 연대 족치고 다니는 새끼들. 그냥 정리하는 게 깨끗하지 않겠어? 성탁 관할인데 더럽게 노는 애들 때문에 회사 이미지만 좆같아지잖아.”
물론 장 사장, 아니 지금은 광 박사 패거리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 몰랐다. 아무튼 그들이 쓰레기 같은 짓은 다 하고 다닐지언정 성탁 법무 팀까지 움직이게 하면…….
최 비서는 뻐근한 눈두덩을 꾹 눌렀다.
“……일 크게 벌리면 회장님 귀에 들어가는 거 시간문제야. 그럼, 네가 싸고도는 그 사월 사장. 너무 위험해진다고.”
한층 톤이 낮아져 진지한 목소리였다. 원재는 그제야 창밖으로 던져두었던 시선을 거뒀다. 두 남자의 시선이 부딪힌다. 한쪽은 침착했고, 한쪽은 불안함으로 점철된 채였다. 물론 침착을 유지하는 건 원재 쪽이었다.
말없이 마주하는 시선에 공기가 서늘해질 무렵, 데스크에 뒤집어 둔 원재의 핸드폰이 짧게 울어 댔다. 최 비서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기도 전에, 원재가 팔을 뻗어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액정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말문이 열린 건 한참 뒤였다.
“형 말이 다 맞아. 괜히 일 크게 벌렸다간 아버지가 냄새 맡겠지. 근데, 난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
“……야, 성 사장.”
“나한테 티 안 내려고 애쓰던 애가, 내 이름을 보냈잖아. 얼마나 무서우면.”
“뭐?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영문을 모르는 최 비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원재가 하는 말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원재야.
제 이름이 적힌 액정을 한 번 엄지로 쓸었다. 그리고 당연히 친절한 설명 따위는 생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챙겨 들었다. 최 비서는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봤다.
“뭐 해? 일어나. 사월 사장이 SOS 쳤잖아.”
하, 돌겠네 정말. 마지막 말까지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원재의 말에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했다. 재킷과 차 키를 챙긴 최 비서는 성큼성큼 집무실을 빠져나가는 원재의 뒤를 따랐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이젠 제 상사의 의중을 파악하는 일도 쉽지가 않았다.
***
핸드폰만 움켜쥐고 소파에 앉아 있던 사월은 벌컥 열리는 문에 움찔댔다. 아까와 같은 불청객이 아닌, 익숙한 두 얼굴이었다.
“손님은 벌써 갔어? 얼굴 보고 싶어서 존나게 밟고 왔는데.”
“…….”
사월은 여상히 말하는 원재를 뚫어지라 바라봤다. 최 비서가 둘 사이에서 고개를 두리번대며 의아해할 때까지, 집요한 시선은 떨어지질 않았다.
“아, 손님이 아니라 나 보고 싶어서 부른 거였어? 그럼 ‘자기야’라고 보내랬잖아.”
원재는 자신에게 달라붙는 시선을 하나도 피하지 않은 채 사월에게 다가갔다. 소파에 앉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사월에게 손을 뻗어 뺨을 가볍게 쥔다. 그러고는 최 비서가 소리를 지를 틈도 주지 않고 짧게 입을 맞춘다.
“……저, 미친놈이.”
반 박자 느린 욕이 튀어나왔다. 최 비서는 인상을 찡그리며 작업대 옆에 놓여 있는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렇게 쳐다보면 곤란해. 내가 저 형이랑 아무리 친해도, 사월 사장 물고 빠는 거까진 보여 주고 싶지 않아.”
“야……. 나도 보고 싶지 않거든? 됐고. 뭔 상황인데. SOS 친 거라며. 주변 조용한데?”
원재는 여전히 말이 없는 사월의 옆에 앉았다. 어깨에 팔을 두를까 하다, 보는 눈이 있을 때 이러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을 듯싶어 그냥 상체만 사월 쪽으로 틀어 앉았다.
그 일련의 과정을 사월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빤히 응시했다. 그토록 원했던 시선이다. 그런데 왜…… 기분이 이렇게 이상하지.
원재는 고개를 비뚜름히 기울였다. 잠깐을 텀을 두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어떻게 생겼어?”
“…….”
“혹시 본드 냄새는 안 났고?”
“……났어.”
들릴 듯 말 듯 가냘픈 대답에 원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또 광 박사였다. 원재는 고개를 틀어 최 비서에게 턱짓했다.
대화를 듣고 있던 최 비서 또한 본드 냄새라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광 박사는 제명을 스스로 단축시키는 중인 듯했다. 미리 애도를 표하며 최 비서가 핸드폰을 꺼내 들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최 비서가 나가고 나서야 사월의 어깨를 감쌌다. 힘들이지 않고 마른 몸을 품에 안았다.
“그 새끼가 뭐라고 했는데 이렇게 겁을 먹었지.”
사월은 내내 굳어 있던 몸에 힘을 풀었다. 그는 어제와 다르지 않다. 여전히 자신을 걱정하고, 살피고, 신경 쓴다. 그걸 피부로 느끼고 나니 비로소 안심이 되는 거다. 사월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별말 없었어.”
“그래?”
별로 믿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사월은 그렇게만 말하고 입을 딱 다물었다. 여기서 더 첨언하지 않는 편이 좋을 듯했다.
원재가 힐끔 시선을 들었다. 불투명한 가게 유리문 밖으로 왔다 갔다 움직이는 최 비서의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잠깐 고민하다, 뭔가를 하고 끝내기엔 촉박한 시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그 무언가는 사월의 살결과 숨결을 탐하는 일이었다.
“여기 너무 춥지 않아?”
“……별로 안 추워.”
난데없는 질문에도 사월은 착실히 대답했다. 원재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이제 제 말에 잘 대답해 주는 게 고맙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편한 대화를 나누기까지, 사월은 얼마나 많은 용기를 냈을까. 원재가 팔을 둘러 마른 등허리를 쓸어내린다.
“여기 여름엔 덥지?”
“에어컨 하루 종일 돌리는데 무슨 소리야.”
“음…… 그럼 무섭겠다. 문이 너무 낡아서.”
사월은 상체를 뒤로 물렸다. 거리가 벌어졌음에도 허리를 어루만지는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계속 요점을 숨긴 채 빙 돌린 질문을 건네고 있다. 사월이 불안한 낯으로 원재를 응시했다.
“안 무서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돌리지 말고 해.”
“오늘 아침에 침대 바꿨어. 시트도 넉넉하게 사 뒀고. 냉장고도 너무 비어 있어서 좀 채워 두려고.”
“…….”
이 남자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사월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원재의 행간을 읽기 위해 노력했다. 온정신을 곤두세우고 필사적으로.
“섹스하느라 제대로 못 봤겠지만, 우리 집 야경도 죽여. 내가 사월 사장 생각날 때마다 입욕제도 사 둬서 한가득이고.”
“…….”
“그리고 우리 집엔…….”
말끝을 흐린 원재가 사월의 허리를 당겼다. 다시 품 안에 안긴 꼴이 되었다. 둘 사이에 이제 불편함이라는 단어는 많이 사그라들었다. 물론 원재에겐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던 단어였지만. 쿵쿵.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나도 있고.”
“…….”
“아침저녁으로 태워 줄게. 비 오는 날엔 비 안 맞게, 더운 날엔 땀 한 방울도 안 흘리게. 내가 진짜 존나 귀하게 모실게, 우리 사월 사장.”
사월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야 다음에 나올 말이 무엇인지 알 거 같았다.
“우리 집에서 살자.”
“…….”
얼핏 공약처럼 내건 말 하나하나는 사월에게 전부 낯선 것들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물건을 채워 놓는다는 것도, 귀하게 대해 준다는 것도. 아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다.
그래서 기분이 이상했다. 내심 설레기도 하면서 덜컥 겁이 났다. 키워 준 김 사장을 제외하고 이렇게 깊은 관계를 가진 적이 없어 모든 게 낯설고 무서운 건 당연했다.
“……싫어.”
사월은 꽤 단호한 목소리를 했다. 그러곤 자신을 옭아맨 팔을 풀어냈다.
과분함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았다. 사월은 시선을 맞추지도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히 작업대로 향해 검은 라텍스 장갑을 손에 끼운다.
“악몽 안 꾸게 해 주고 싶어서 그래. 나랑 있으면 무서운 생각 안 나잖아.”
정확히 말하자면, 무서운 생각이 나지 않는 게 아니다. 온통 생각이 그로 시작해 그로 끝난다. 다른 상념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뿐이었다.
사월이 마음을 가다듬듯 깊게 호흡했다. 원재가 사월의 등 뒤에 바짝 붙어 몸을 끌어안는다. 애초에 거부할 생각이 없던 사월은 순순히 넓은 가슴에 등을 기댔다.
“진짜 잘할 수 있는데, 나.”
“…….”
사월도 알고 있다. 지금만 봐도 원재의 다정함은 자신을 정신 못 차리게 했으니까. 함께 지낸다면 눈을 뜰 때부터 감을 때까지 원재의 따뜻한 품 안에서 지낼 수 있겠지.
하지만 아직 스토크를 벗어나 산다는 것, 원재와 모든 시간을 함께하는 데까지 용기를 내기는 어려웠다. 작은 접촉에도 몸을 숨겨 버리는 달팽이처럼, 사월은 딱딱한 껍질 속으로 반쯤 몸을 숨겼다.
“……그래도. 그래도 싫어.”
“…….”
원재는 더 재촉하지 않았다. 함께 사는 거. 원재의 머릿속에서는 벌써 몇 백번이고 이뤄진 일이었지만, 사월에게는 갑작스러울지 몰랐다. 그래, 너무 급하면 사월 사장이 겁먹을 거야. 겨우 좁힌 거리를 다시 벌릴 수는 없잖아.
원재는 자꾸만 조급해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고개를 틀어 사월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 눈을 조용히 감은 채로. 생명이 있지도 않은 문신에서 꽃향기가 나는 듯했다.
“……대신 비 올 때만.”
웅얼대듯 작게 덧붙는 말에 원재가 눈을 번쩍 떴다. 사월이 다시 한번 작게 웅얼댄다.
“비 오는 날만.”
이건 사월이 낼 수 있는 최대치의 용기였다.
사월을 바투 끌어안은 원재가 다시 고개를 틀고 목덜미에 입술을 깊게 파묻었다. 뜨겁고 진득한 시선을 치켜들어 하얀 얼굴을 샅샅이 훑었다.
창백하고 상기된 옆모습에 속이 들끓기 시작했다. 겨우 잠재웠던 소유욕이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온다. 입을 열어 여린 살을 베어 문다. 마른 어깨가 움츠러드는 것에 미동도 하지 않고, 계속 잘근잘근 씹을 뿐이다.
“아, 아파…….”
아프다는 말에는 또 귀신같이 반응했다. 물었던 피부를 놓아주고, 혀 위로 그 위를 살살 핥는다.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는 듯. 하얀 피부 위에 새겨진 검은 잉크. 그 위를 또다시 붉게 물들인 울혈. 원재의 뜨거운 혀가 꼼꼼히 울혈을 핥아 댔다.
“자기, 오늘 밤에 비 오는 거 알고 하는 소리지.”
원재가 피식 웃자, 호흡이 스토크 타투 위로 흩어진다. 따뜻한 바람에 꽃이 피어나듯 목덜미 전체가 붉어졌다. 달아오른 체온을 느끼며 원재는 눈을 길게 감았다.
신기했다. 사월은 늘 말 한마디로 자신을 이렇게 정신없이 흔들어 댄다.
―<터치업>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