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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 (11/16)

외전 2.

1월은 늘 그렇듯 정신이 없었다. 올해는 유독 더 그랬다. 가게를 오픈하고 막 자리를 잡아 가는 과정이라 그런가. 새로 들인 직원인 지현이 SNS로 홍보를 한다던데, 그게 먹히고 있는 건지 손님이 꽤 많이 찾아왔다.

숍은 보통 예약이 주말 위주로 잡혀 있었다. 당연히 쉬는 날은 평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말 딱 하루, 쉬는 날을 정했다.

그게 오늘이었고. 토요일 느지막이 눈을 떴을 때, 원재는 대뜸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꺼냈다. 무슨 소리인지 몰라 사월은 한참 잠이 묻은 눈을 깜빡였다.

“오늘 사월이 태어난 날.”

사월에게 오늘은 그냥 쉴 수 있는 주말, 그뿐이었다. 밀린 잠을 좀 자고, 청소도 하고, 요즘 재미 붙인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보는 그냥 평범한 날. 원재가 생일이라는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그랬다.

“……생일?”

“응.”

사월은 생일이라는 단어가 제 삶에 끼어들 거란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평생을 없이 살아왔던 거니까. 그런데 원재가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자, 기분이 형용할 수 없이 묘해졌다.

“나한테 그런 것도 다 있네…….”

이불에 얼굴을 파묻으며 중얼댔다. 원재는 쓸쓸함과 벅찬 감정이 뒤섞인 목소리임을 알았다. 이불에 파묻힌 사월을 크게 끌어안았다.

“축하해. 첫 생일.”

눈가에 열이 몰리는 것 같아 사월은 눈을 질끈 감았다. 처음 맞는 생일 아침은 생경하고 또 서먹했다.

“네가 끓였어?”

“응.”

원재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월은 수저로 국그릇을 한번 휘저었다. 대충 미역국 형태를 지닌 거였다. 먹어도 되는 걸까, 머뭇대며 힐끔 눈치를 살폈다. 기대에 찬 눈빛이 빤히 바라보는 바람에 사월은 내키지 않는 손짓으로 국을 떴다.

“맛 어때?”

“……괜찮네.”

“그래?”

원재는 그제야 수저를 들었다. 사월에게 가장 먼저 맛보여 주고 싶어 간도 보지 않았다. 그래도 적힌 대로 착실히 넣었으니 맛은 꽤 괜찮지 않을까.

사월이 미역국을 착실히 퍼먹는 걸 흐뭇하게 본 뒤에야, 원재도 국물을 떠 올렸다. 그리고 입에 넣는 순간, 원재는 곧장 그것을 삼켜 버렸다.

“우리 사월이 입맛이 특이한 건가, 아니면 나를 엄청 사랑하는 건가.”

“…….”

“이왕이면 후자가 낫긴 한데.”

이걸 계속 떠먹는 걸 보면, 둘 중 뭐가 되었든 보통은 아니었다. 원재의 얼굴에 낭패감이 스쳤다. 이딴 걸 사월이에게 먹이다니. 그냥 사 올 걸 그랬나. 이건 미역국도 아니었다. 그냥 간장 소금국에 미역을 둥둥 띄운 거였다. 고기는 또 쓸데없이 비싼 걸 넣었어, 아깝게.

원재는 얼른 생수를 떠다 사월에게 건넸다. 어색하게 웃는 건 덤이었다.

“나가서 먹을까?”

“그냥 먹어. 먹다 보면 먹을 만해.”

사실 원재가 요리를 곧잘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간단한 브런치 정도가 끝이었나 보다. 평소엔 보통 사 먹거나 간단한 요리로 끼니를 때워서 몰랐던 사실이었다. 사월은 웃음을 감추고 국과 밥을 번갈아 가면서 씩씩하게 퍼먹었다. 생일이라고 아침부터 준비했을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이거 먹으면 없던 병도 걸리겠는데.”

“됐고, 다 먹고 뭐 할 거야. 내…… 생일이라며.”

생일이라는 말을 할 때는 배 속이 간지러웠다. 생일……, 생일. 몇 번을 발음해도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사월이가 하고 싶은 거 해야지. 기억에 남을 만한 거.”

“음…….”

낮잠, 영화, 청소. 실컷 생각해 뒀던 계획들을 모두 지웠다. 생일이라고 하니까 왠지 더 특별한 일을 해야 할 거 같았다.

“너희 회사 구경.”

“회사?”

성 회장이 세상을 떠나던 날 깨달았던 게 있다. 자신은 원재에 대해 모르는 게 생각보다 너무 많다고. 꼭 뜻 깊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을 해야 하는 거라면, 원재에 대해 알고 싶었다.

“늘 출근하는 길로 가서, 네 자리도 구경하고. 점심도 먹고.”

“그게 하고 싶어?”

“알고 싶어서.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내가 없는 너의 하루가 궁금해.

원재는 수저를 그대로 내려놓았다. 오늘은 사월 사장 생일인데, 왜 내가 선물받는 느낌이지.

“그래. 그러자.”

사월은 그 말에 수저질을 더 열심히 했다.

국그릇이 거의 바닥을 보였을 때였다. 진동을 풀어 놓은 사월의 전화벨이 크게 울렸다. 원재는 손바닥을 들어 보이곤 침실로 들어갔다. 그러곤 대신 전화를 들고 와 사월의 앞에 건넨다.

“횟집이네.”

“웬일이지.”

사월이 물을 한 모금 들이켜고 전화를 받았다. 지난번 아들을 만나게 해 준 뒤로, 두 번째 통화였다. 울면서 고맙다는 말만 하는 게 왠지 마음이 불편해서, 사월은 먼저 전화를 걸지 않았었다. 내심 반가운 마음에 급하게 통화 버튼을 누른다.

“어, 나야.”

―사월이 오늘 생일이라며? 축하해. 같이 있었으면 미역국이라도 끓여 주는 건데.

건너편에서는 아주머니의 기운찬 목소리가 들렸다. 사월은 눈만 들어 맞은편에 앉은 원재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다.

또 언제 말을 해 둔 건지 모를 일이다. 원재가 아닌 사람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들으니, 약간 마음이 들뜨면서도 간지러웠다. 보통 사람들은 매년 같은 날에 이 기분을 느끼고 사는 걸까?

“……고마워. 미역국은 끓여 줘서 지금 먹고 있어.”

―누가. 그 총각이? 어머, 또 요리를 할 줄 아나 봐?

“할 줄 아는 것 같긴 해.”

말끝에 웃음이 맺혔다. 결국은 비죽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출 수 없어 웃음을 터트렸다. 입 안에 짠맛이 가득했다. 그래도 사월에겐 맛있기만 한 미역국이었다. 첫 생일에 먹는 첫 미역국. 코끝이 찡해졌다.

―다행이네. 날 풀리면 총각이랑 한번 놀러 와. 식사 한 끼 꼭 대접하고 싶어.

“그래, 알겠어.”

―잠깐, 잠깐만. 끊지 말아 봐.

전화 너머가 소란해졌다. 무어라 대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다른 반가운 목소리가 넘어왔다.

―사월아, 아저씨다. 생일인데 얼굴 보고 축하 못 해 줘서 어떡하냐.

“……괜찮아.”

축하한다는 말. 아니, 그냥 생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사월은 벅찬 마음이었다. 그릇 바닥이 거의 다 보이는 국을 수저로 휘휘 저었다. 초록빛을 띤 연한 국물을 마지막으로 퍼서 입 안에 넣었다.

―그래.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좋은 하루 보내, 아들.

“…….”

―조만간 놀러 와. 집사람이랑 기다릴게.

목이 콱 막혔다. 사월은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삼키느라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핸드폰을 귀에 댄 채로 고개를 푹 숙인다. 한없이 약해진 모습을 지켜보던 원재가 전화를 빼앗아 들었다.

“안녕하세요.”

뜨끈해진 눈을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손바닥 아래로 축축한 눈물이 배어 나왔다. 사월은 입술을 세게 물었다. 어린애처럼 터질 것 같은 눈물을 힘겹게 삼켰다.

“아니요. 네, 알겠습니다. 한번 들르겠습니다. 네.”

원재는 통화가 끊어진 전화를 식탁 위에 조심스레 내려 두었다. 그러곤 작게 어깨를 들썩이는 사월의 옆으로 가 앉았다. 무슨 얘기를 했기에 애써 웃으며 통화하던 사월이 이렇게 무너진 걸까. 원재는 아린 마음을 숨기며 사월을 품에 안았다.

“울지 마, 사월아.”

훌쩍이는 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사월은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정말 스스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 맞는 생일은 정말 특별했다. 생전 가져 본 적 없던 부모가 생긴 기분마저 들게 하니 말이다.

***

둘은 나란히 출근을 했다. 주말이라 조금 더 막히는 길을 지나, 원재가 일하는 건물에 들어섰다. 사월은 내내 창밖을 보며 길을 외웠다. 나중에 혹시라도 그를 찾아야 할 일이 생긴다면. 이 길을 그대로 오면 되니까.

1층 로비에 들어서자 데스크를 지키고 있던 직원이 깜짝 놀라며 일어서 인사를 했다. 사월은 어색함에 원재의 등 뒤로 모습을 감췄다.

모든 게 어색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주는 것도, 닫히는 문 사이로 깍듯이 인사를 건네는 것도. 익숙하단 듯 옆에 선 원재가 내심 대단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나 여기서 일해.”

원재를 따라 집무실에 발을 내디뎠다. 내부는 깔끔했다. 바닥에는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었고, 전면이 유리로 된 창문 너머로는 따사로운 햇빛이 들어왔다. 데스크 위에는 철된 서류가 한 뼘이 넘게 쌓여 있고, 펜과 서류 낱장이 질서 없이 흐트러진 상태였다.

“좀 정신없지.”

“아니.”

원재는 데스크 바로 앞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두꺼운 가죽 소파에 체중을 실자 한쪽이 푹신하게 가라앉았다.

사월은 그저 신기했다. 원재가 하루 종일 머무는 공간이라 그런지, 온통 그에게서 나는 향기가 풍겼다. 소파를 툭툭 치며 앉으라 권하는 원재의 말에도 계속 집무실을 둘러보며 내부를 눈에 담았다.

“신기하다.”

회사를 다녀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이런 사무실 풍경은 낯설 수밖에 없었다. 내내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원재는 또 그런 사월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날을 세우고 선을 긋는 것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저렇게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는 꼴은 그저 귀엽기만 했다.

“최 비서 온대.”

데스크에 앉아 서류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사월이 고개를 들었다.

“여기로? 주말인데?”

“내가 엄청 부려 먹는 거 같은데……. 자진해서 온다고 한 거야.”

원재는 곧 가겠다고 써진 문자를 흔들어 보였다. 그러곤 시계를 한번 확인했다. 형 집이 여기서 멀지 않으니, 오는데 20분도 채 걸리지 않을 터였다. 형이 오면 또 못 만지게 할 테니까.

데스크 위를 손가락 끝으로 만지고 있는 사월의 옆에 가서 선다. 의자 헤드를 붙잡고 빙글 돌렸다. 몸보다 늦게 돌아 자신을 마주하는 고개를 가볍게 잡았다. 허리를 깊게 숙여 입을 맞췄다.

사월의 손이 당황한 듯 허공을 헤매다 원재의 목에 감긴다. 두 사람의 고개가 엇갈리고 한동안은 대화 대신 질척한 소리만 들렸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없이 밀어붙이는 원재의 어깨를 손으로 작게 밀었다. 아깐 분명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어느새 데스크 위의 서류를 깔고 앉은 꼴이었다. 상체는 반쯤 뒤로 넘어가 있고.

똑똑. 다시 한번 노크 소리가 들렸다. 타액에 젖어 번들대는 입술을 손등으로 가렸다. 데스크에서 내려가려고 팔을 짚자, 원재가 허리를 잡아 내려가는 것을 도왔다. 사월이 완전히 바닥을 딛고,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는 것까지 보고 난 뒤, 원재가 입을 열었다.

“들어와, 형.”

문이 느릿하게 열린다. 그 사이로 캐주얼한 차림의 최 비서가 고개를 내밀었다. 안을 살피듯 고개만 넣고 슥슥 훑는다. 뭐 우려했던 상황은 아니긴 하지만, 분위기가 묘한 게 분명 뭘 하긴 한 듯했다.

“……노크하길 잘했지.”

“노크는 기본으로 하는 거지, 뭔 생색이야.”

웃음 섞인 목소리에는 대답도 하지 않는다. 붉어진 얼굴을 가라앉히지도 못한 사월이 몸을 돌렸다. 최 비서와 눈이 마주치자 작게 고개를 까딱인다.

“생일 축하해요.”

“……응.”

최 비서가 비죽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내렸다. 사월 사장은 처음부터 한결같았다. 존댓말을 쓰지 않는 태도도, 차가운 듯 보여도 사실은 부끄러움이 엄청 많은 것도.

자신이 존댓말을 할 때면, 어색한지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 게 내심 귀여웠다. 그래서 최 비서는 끝내 말을 놓지 않을 생각이었다.

“얘가 주말에도 일 시켜?”

“보통 안 하긴 하는데, 오늘은 사월 사장 생일이니까 왔죠.”

사월은 아까 원재가 있던 소파에 앉았다. 최 비서는 그 맞은편으로 가서 들고 있던 쇼핑백을 내밀었다.

“이건 선물.”

“…….”

사월은 눈을 껌뻑이며 쇼핑백을 내려다봤다. 재촉하듯 최 비서가 쇼핑백을 한 번 더 흔든다. 그걸 받아 들지 못하고, 원재에게 시선을 던졌다. 꼭 도움을 요청하듯이.

“뭔데? 확인해 봐.”

원재의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사월이 쇼핑백을 받아 든다. 고마워. 작게 인사를 덧붙이며.

“별건 아니고. 그냥 시계야, 시계.”

딱 봐도 값이 나가 보이는 시계였다. 사월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생일 선물을 받은 것도 처음이지만, 이렇게 비싼 걸 줄이야.

“부담 갖지 마요. 원재 잘 봐 달라는 뇌물이야, 뇌물.”

“최 비서 일 잘한다.”

원재가 큰 손바닥을 맞부딪쳐 소리를 두어 번 냈다. 뒤이어 멀뚱히 들고 있는 케이스를 가져와 시계를 꺼냈다. 그러곤 왼쪽 손목에 시계를 채웠다.

“잘 어울리네. 그치.”

“응. 내가 안목이 좋다니까.”

두 남자는 사월을 사이에 두고 장난스러운 말을 주고받았다. 사월이 눈가가 약간 붉어진 걸 눈치챈 참이었다. 분위기를 가볍게 바꾸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바, 밥 먹을까? 뭐 먹고 싶어요? 사월 사장 술 마셔요? 반주할까, 반주?”

차라리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최 비서가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

사월은 술을 잘 마시지 못했다. 김 사장이 부어라 마셔라 하는 걸 보고 자라서 그런지, 술이라면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어질했다.

그래도 최 비서가 생일이라고 자리를 마련해 줬는데, 분위기는 맞추고 싶었다.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몇 잔 받아먹었더니 땅이 울렁이는 것 같았다. 대리 기사를 부르고 원재와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로는 필름이 뚝 끊겼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욕조 안이었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원재의 손길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도 더워?”

원재는 손으로 온도를 다시 확인했다. 올라오는 내내 계속 덥다고 하더니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옷을 훌훌 벗어 대는 사월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내가……, 내가 할게.”

발가벗은 채로 욕조 안에 앉아 있는 자신과 반쯤 젖어 있는 원재. 찰박대는 소리까지 청각을 지배한 이 상황이 더없이 묘하게 느껴졌다.

괜찮다는 말에도 원재는 사월의 몸 구석구석을 지분댔다. 거품이 하얀 몸 위를 뒤덮었다.

술이 어느 정도 깬 건지, 당황한 표정을 보니 아랫배가 묵직해졌다. 일부러 마른 허벅지 사이로 손을 깊게 밀어 넣었다. 사월이 어깨를 움츠리며 팔뚝을 잡았다.

“왜?”

“아니, 혼자 씻을게…….”

사월의 뺨이 붉어진다. 동공이 마구 흔들리면서도 욕조 안 사정은 바라보지 못한다. 원재의 눈이 음욕으로 번뜩였다. 핏줄이 곤두설 만큼 힘을 주어 사월의 허벅지 안을 쓸고 거머쥔다.

“아……, 읏, 아니.”

“그냥 씻겨 주는 건데. 느끼는 거야, 지금?”

고개를 마구 저었다. 적당히 술도 들어간 채로 흥분한 얼굴을 보니, 위험하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냐.”

원재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가슴이 부풀었다 가라앉는다. 입고 있는 셔츠를 거의 뜯어내듯 벗는다. 그러곤 반쯤은 축축해진 바지까지 내던지곤 욕조 안으로 들어온다.

두 사람의 부피를 받아 낸 욕조는 그만큼의 물을 뱉어 냈다. 출렁. 파도처럼 물결이 크게 친다. 사월은 욕조에 등을 기댔다. 최대한 거리를 벌리려고 했지만, 발목이 잡혀 끌려오는 바람에 소용없는 짓이 되어 버렸다.

“아니긴. 여기는 커졌는데.”

물살을 가로지른 원재의 손이 성기를 단단하게 쥔다. 사월이 몸을 들썩댔다. 술기운에 안 그래도 체온이 높은 몸이 더 뜨거워졌다. 작은 손길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됐다.

“읏!”

“신음은 또 왜 뱉어. 만져 주니까 기분 좋아?”

“아, 잠깐…….”

정신이 아득해졌다. 욕실 안이라 내뱉는 신음이 울렸고, 물이 찰박대는 소리도 야하게 느껴졌다. 아래를 은근하게 쥐고 문지르는 손길도 마찬가지였다.

“싫어? 하지 말까?”

사월은 등 뒤로 팔을 뻗어 욕조 바닥을 디뎠다. 하지만 힘없이 무너지는 팔 때문에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갈 듯했다. 아래엔 계속 자극이 오고, 힘은 빠지고……. 사월이 고를 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안아 줘?”

“……으응.”

팔을 뻗어 원재의 목을 끌어안는 것. 세운 무릎이 욕조 벽에 닿을 만큼 벌어졌다.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허겁지겁 매달렸다.

다리 사이엔 원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물기에 젖은 맨가슴이 이리저리 부대낀다. 원재는 연신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갈수록 밝혀, 응?”

원재가 사월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단숨에 들어 올렸다. 그대로 허벅지 위에 몸을 앉혔다. 반쯤 선 성기가 배 위에 비벼졌다. 사월은 팔에 힘을 주어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벌써 움찔거려.”

엉덩이를 타고 넘어간 손이 주름 주변을 꾹꾹 누른다. 구멍 근처를 누를 때마다 물살이 간지럽게 안을 스치고 지난다.

“빨리 달라고 보채는데. 어떡해?”

“아…….”

“사월아, 혼자 해 봐.”

사월이 어깨 위에 파묻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맨정신이 아니래도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였다. 원재는 고개를 틀어 달아오른 목덜미를 길게 핥았다. 연한 살을 살짝 물고 힘껏 빨았다.

“으.”

작게 앓는 소리와 함께 좆이 꺼떡였다. 입구에 걸친 손가락이 확 조여졌다. 벌어진 사월의 다리 사이로 단단하게 선 원재의 좆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여기 만져 줄까?”

“읏, 흐응…….”

대답을 듣지도 않고 좆을 겹쳐 잡았다. 뜨거운 것이 맞부딪히자 사월이 앓는 소리를 흘렸다. 허리가 훅 무너지며 원재의 목덜미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젖은 입술이 원재의 쇄골쯤에 닿았다.

“으읏, 으……. 이상, 이상해. 뜨거워.”

발기한 두 개의 검붉은 성기는 정신없이 마찰되며 원재의 손안에서 굴렀다. 기둥을 잡고 뒤흔들면서 서로의 주름이 다 느껴질 만큼 진득하게 맞닿았다.

사월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입술을 열었다. 그러곤 자꾸만 젖은 입술 위로 스치는 원재의 살결을 혀로 핥았다. 입술로 살을 물고 잘근 씹는다. 애무를 할수록 맞잡은 좆을 흔드는 손길은 더욱 거세졌다. 사월이 신음이 불그스름해진 쇄골 위로 흩어진다.

“아, 아……. 갈 거 같아. 지금, 지금…….”

엄지손가락으로 귀두를 문지르자 사월이 고개를 뒤로 젖힌다. 원재는 드러난 목덜미를 쪽쪽 빨며, 사월의 상체를 단단히 받친다.

“아, 흐응……. 읏.”

“후우…….”

술에 취해서 그런지 사정감이 더 이르게 몰려왔다. 원재의 팔엔 힘줄이 치솟았다. 입술을 세게 물고는 두 성기를 빠르게 부벼 댔다.

“아아, 아…….”

“하아, 하아.”

두 사람 사이의 물이 혼탁해진다. 사월은 완전히 늘어졌다. 뒤로 넘어가는 상체를 허겁지겁 끌어안은 원재가 등과 뒤통수를 받쳤다. 힘없이 꺾인 고개가 어깨 위로 툭 무너진다.

“하아…….”

원재의 호흡은 더 가팔라졌다. 좆을 탈탈 털어 마지막 정액까지 짜내고 나서야, 원재는 사월을 부둥켜안은 채 욕조에서 일어났다. 쏴아. 물이 두 사람을 따라 올라갔다 이내 다시 욕조로 추락한다.

반쯤은 줄어든 욕조의 물을 헤집고 나간다. 욕실을 나서면서 큰 베스 타월을 집어 들어 사월의 몸을 감쌌다. 두 사람이 가는 길에는 물줄기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으응, 천천히……, 천천―.”

침대 위에 엎드린 채 엉덩이만 들고 있는 사월이 희미한 목소리를 냈다. 허리를 세우고 아래를 탁탁 쳐올리는 힘에 몸이 자꾸만 위로 밀렸다. 손에 잡히는 베개를 움켜쥐고 사월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렇게 조이면, 천천히가 안 돼.”

뜨거운 음낭이 엉덩이에 닿을 만큼 깊은 삽입이 이어졌다. 사월은 후들거리는 무릎으로 겨우 버티고 섰다. 시트 위는 이미 흠뻑 젖어 있었고, 이불은 바닥으로 거의 떨어진 채였다. 사월은 덩그러니 남은 베개를 동아줄처럼 꾹 쥘 뿐이었다.

“아, 안 돼! 아…….”

자꾸 무너지는 사월이 마뜩찮은 건지, 원재가 사월의 골반을 가깝게 끌어왔다. 땀인지 물기인지, 아니면 정액인지 모를 축축한 것이 접합부 사이에서 질척댔다.

“여기.”

“읏!”

원재가 허리를 뒤로 물렸다 세게 찍어 넣는다. 사월이 바르작거리며 신음을 질러 댔다. 골반을 움켜쥐고 있던 원재의 손이 사월의 아랫배 쪽을 꾹 누른다. 좆을 쑤셔 넣을 때마다 여기가 가득 찬다는 사실 하나로 미쳐 버릴 듯했다.

“여기에, 내 좆이……. 읏―.”

“으응! 하읏.”

몇 번이나 사정을 했으면서도, 그 사실 하나로 다시 아래가 묵직해진다. 입구는 이미 하얀 거품이 일어 드나들 때마다 질척한 소리가 났다.

원재가 다른 한 팔을 마저 뻗으며 상체를 기울였다. 등 뒤에서 완전히 사월을 결박해 끌어안은 자세였다. 한 손으론 아랫배 부근을 힘껏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사월의 뺨을 눌러 고개를 돌렸다. 비스듬히 돌아선 얼굴 위로 입술을 가져다 댔다.

“원, 원재……, 읏!”

“입 벌려 봐.”

사월은 정신이 없는지, 연신 원재의 이름만 불러 댔다. 원재는 붉어진 사월의 눈가 위로 입술을 묻고 물기를 빨았다. 그러곤 반쯤 좆을 뒤로 빼냈다가, 안으로 세게 짓쳐 넣었다.

“아!”

타액에 젖은 입술이 비명과 함께 벌어진다. 그 틈을 타 원재가 혀를 쑤셨다. 난폭하게 좆질을 해 대는 것처럼, 난잡하게 혀가 뒤엉킨다.

사월이 혀를 내밀자, 입술이 닿지도 않은 채로 혀가 얽혔다. 타액이 입가에 흐르고, 좆에서는 액이 줄줄 흘러 댔다. 본능만 남은 섹스였다.

아래를 세게 쳐올리자, 사월이 아래로 무너졌다. 뒤엉켰던 혀가 떨어지면서 끈적한 액이 길게 늘어졌다.

“하, 원재야…….”

사월의 손이 버둥대다 원재의 팔뚝에 감겼다. 제 몸을 움켜쥐고 있는 팔에 의지한 채로 안을 드나드는 좆을 느낀다.

“좋아……, 좋아.”

핏줄이 느껴질 만큼 발기한 좆이 안을 헤집는 감각. 아랫배를 뚫고 나올 만큼 거친 몸짓, 오돌토돌한 내벽을 쿡 찌르는 귀두, 안을 가득 채운 정액이 울컥대며 명치까지 치솟는 기분. 한꺼번에 맞물리며 사월의 이성을 뚝 끊는 듯했다.

“사월아. 아, 사월아…….”

원재가 아랫배를 누르고 있는 손바닥에 힘을 주었다. 그러곤 아래를 거세게 쳐올린다. 손바닥 아래로 연한 피부가 볼록해지는 게 느껴지는 듯했다.

고개를 틀어 사월의 목을 짓씹었다. 물고 빨아 하얀 피부 위에 울혈을 새겼다. 팔뚝에 감긴 사월의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세게 움켜쥐어 손끝이 붉어진 채였다. 원재가 눈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좆을 깊숙이 쑤셔 넣었다.

“나올 것……, 읏.”

사월의 몸이 바르작 떨린다. 아랫배를 움켜쥔 손등 위로 뜨거운 정액이 흩뿌려진다. 원재도 금세 사정을 했다. 이미 가득 찬 구멍을 비집고 정액을 욱여넣듯. 사정한 몸의 열이 가라앉기도 전에 쫍쫍, 사월의 목덜미를 연신 빨아 올렸다.

투둑. 베개 위에 액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원재가 흥분에 겨워 붉어진 눈을 내리깔았다. 사월의 좆에서는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원재는 이를 세워 목덜미를 세게 깨물었다.

“아!”

이로 문 곳을 혀로 진득하게 핥으며 원재는 액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월의 가슴팍과 배, 원재의 손등, 베개와 시트까지 적신 액체. 마지막으로 귀두 끝에 맺힌 방울이 툭 떨어진다.

“씨발…….”

원재는 품에 들어찬 몸을 부서져라 껴안았다. 아직 빼지도 않은 좆이 다시 발기하고 있었다.

“이, 이상해. 몸이…… 이상해.”

“괜찮아.”

“아…….”

“사월아, 사랑해. 알지, 응?”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는 건지, 젖은 입술이 연한 피부 위를 진득하게 핥았다. 말을 할 때마다 뜨거운 숨이 사월의 어깨 위로 흩어진다.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머리가 새하얘질 만큼 흥분한 것도, 온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갈 듯 이상한 기분도. 사월은 눈가에 열이 몰려 눈을 질끈 감았다.

처음부터 서먹했던 생일은 끝까지 사월에게 생경함을 안겨 주었다.

―<터치업> 외전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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