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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17화 (17/805)

17화

유더는 이것저것 재보다 그냥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모른다는 건 답이 되지 않아. 키올레와 황궁기사단 기사들의 실력도 다 보지 않고 그리 당당히 판단하지 않았던가? 이를테면, 그래. 지금 내 뒤에 있는 나단은 어떻지?”

“그건…….”

유더는 무심코 키시아르의 등 뒤에 서 있는 나단을 향해 눈을 돌렸다. 지금 그는 나단이 소드마스터라는 것을 듣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나 남의 실력을 아주 잘 파악하는 눈을 가졌다고 여겨지고 있으니, 어떻게 대답을 해야 적절한 답이 될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단장님의 부관분께서는, 오늘 본 황궁기사단 기사를 모두 데려와도 아마 이길 수 없을 만큼 강한 실력을 가진 분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호오. 들었나 나단? 자네를 아주 높게 쳐 주는군.”

키시아르가 미소를 지었다. 나단 주커만의 시선도 유더의 얼굴에 와 닿았다.

“그리고 또? 자네와 비교한다면 어떻지?”

“저와 비교한다면.”

유더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이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달라질 것 같습니다.”

‘뻔히 보이는 걸 적당히 대답한다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나단 주커만은 분명 이 세계 최고 수준의 소드마스터 중 하나겠지만, 유더는 적수가 없다는 평을 받은 마병단장이었다.

지금은 능력을 다 발전시키지 못한 상태지만 이전과 같은 수준의 발전을 이룬다면 소드마스터 몇 명이 와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 수준까지 올라가는 데에 예전에는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지만, 이번에는 한 번 걸었던 길을 더 빨리 걸을 것이니, 훨씬 빠른 시간 내에 성장이 가능하리라.

“하하하. 황궁기사단의 내로라하는 실력자들보다 내 부관이 더 강한 것 같다고 하더니, 이제는 내 부관도 저보다는 약해질 것이라 장담하는 건가. 실로 대단한 자신감이 아닌가.”

키시아르는 아주 크게 웃었다. 유더는 예전에도 그가 그렇게 잘 웃었던가 생각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런데도 내 실력은 판단할 수 없다는 건가?”

“……네.”

유더는 그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흐음. 그래.”

다행히 키시아르는 그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 유더는 저를 보는 키시아르의 붉은 눈동자가 마치 흥미로운 사냥감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러면 자네의 눈에 비친 마병단은 어떤가. 그것도 말해줄 수 없나?”

이제 그만 가 보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키시아르는 또 다른 질문을 했다. 유더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개인에 대한 생각을 묻는 정도라면 답할 수 있겠지만 마병단 전체에 대한 답은 곧 단장 키시아르의 행적에 대한 평을 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일개 단원인 유더가 아니라 다른 중요한 이들에게 물어야 할 것 같은 사항을 갑자기 여기서 묻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건… 저보다 더 좋은 답을 해 줄 분이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물론 다른 이들에게도 묻고 있지. 하지만 자네가 눈이 좋아 보이니 묻는 거야. 별 의도는 없으니 편하게 답해 주게. 그동안 훈련하면서 느낀 점이든, 뭐든. 아쉬운 점을 말한다 해서 내쫓을 생각은 없으니 걱정 말고.”

“…….”

유더는 키시아르의 부관 나단 주커만을 향해 슬쩍 시선을 돌렸다. 혹시 그가 이 위험한 대화를 중지시켜주지 않을까 싶어 본 것이었으나 나단은 아무 말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듯 그저 앞만 보며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옛날 기억에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군. 그냥 대충 답하고 어서 빠져나가야겠어.’

“마병단은, 좋은… 곳입니다. 아직은 모두 제 힘을 완전히 깨닫지 못한 상태지만 단장님의 뜻대로 시간이 지나면 크게 발전하고 체계가 완성되어 제국의 안전에 이바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나?”

“…네.”

유더는 그렇게 될 미래를 이미 알고 있었다. 키시아르가 죽어도 마병단은 그가 말한 대로 발전하여 자리를 잡고 이전까지의 그 어떤 단체보다도 강한 힘을 가진 기관이 된다.

몇 년이 지나면 제국을, 그리고 세상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기사단이나 마법사들이 아닌 마병단과 각성자들뿐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답하는 것에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았다.

“재미있군. 다른 이들은 모두 반대로 말하는데 말이야.”

“예?”

생각지 못한 답에 눈을 깜박이며 반문했다. 키시아르가 어느새 다 마신 찻잔을 들어 옆으로 살짝 돌렸다. 그러자 곁으로 다가온 나단 주커만이 찻주전자를 양손으로 들어 안에 또다시 붉은 물을 채워주었다.

“다들 내가 실패할 것이라고 한다네. 글조차 모르는 이들을 데리고 아무런 체계도 없이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말하지. 다른 나라에서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일이니 전례도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규칙과 체계를 만들어 나가야만 해.”

찻물만큼 붉은 눈동자 안에 유더가 알 수 없는 깊은 상념이 스쳐 지나갔다.

“이 나라에는 이미 힘을 갖춘 마법사들과 기사단이 충분히 많이 있는데, 왜 굳이 위험한 자들을 수도 내로 끌어들이려 하느냐, 그런 원성 속에서 내가 가진 건 오로지 스스로의 힘과 황제 폐하의 지지뿐이야.”

거기까지 말한 뒤 키시아르는 갑자기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기껏 합격시킨 유망한 단원은 미련 따위 없이 언제 퇴단시키든 상관없다고 말하면서도, 내가 만든 마병단이 좋은 곳이고 성공할 것이라 유일하게 확신해 주는군. 재미있지 않나?”

“…….”

너무나 솔직한 말이었다. 이전의 기억까지 모두 통틀어도 그에게 들으리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말.

유더는 순간적으로 제가 들은 말이 진짜 키시아르의 입에서 나온 것이 맞는지 의심했다. 하지만 눈앞의 공작은 여전히 나른한 웃음을 띤 채 그대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자네가 꽤 흥미로웠어.”

유더는 그의 붉은 눈동자를 피해 고개를 내렸으나, 이번에는 제 앞에 놓인 찻잔 속의 식은 붉은 물을 정통으로 보게 되어버렸다. 어디서든 그 붉은색을 피할 수가 없었다.

“다른 이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저 허울 좋은 대답일 뿐이라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자네의 그 눈이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만은 확실한 듯하니, 나도 어쩐지 그 말을 믿고 싶어지는군.”

그렇게 말하며 키시아르는 유더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니 미련 없이 퇴단하겠다는 말 같은 건 다음에는 하지 말기를 바라네.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야.”

유더는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 키시아르의 숙소를 나섰다.

아주 이상한 기분이 찾아들었다. 그 키시아르 라 오르와 그런 대화를 나누게 될 줄이야. 이전의 그에 대해 남은 감상은, 마지막까지 속을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뿐이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키시아르 라 오르.’

이렇게나 의욕에 넘쳐 보이는 남자였었나. 아니면 제게서 뭔가 느낀 건가.

유더가 알고 있는,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남자와는 묘하게 달라서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좀 더 염세적이고… 짜증나고… 아무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인상이었는데.’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쪽의 키시아르가 유더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잘만 한다면 이전처럼 단장직을 물려받을 일은 없겠어.’

분명 잘된 일이다. 하지만 키시아르의 낯선 모습을 보고 느낀 이상한 감각은 잠들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유더의 머릿속에 깊이 남았다.

* * *

“나단.”

“네.”

유더가 나간 뒤, 키시아르는 맞은편에 놓인 식은 찻잔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키시아르의 것은 텅 비었지만 맞은편 쪽에 놓인 것은 처음부터 손댄 흔적 하나 없이 그대로였다.

“네가 보기에는 저 녀석이 어떤 것 같아?”

흔치 않은 질문이었다. 나단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출신을 미리 듣지 않았다면 평민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분명 평민에 고아 출신, 이제 겨우 스물이라고 들었는데 제 앞은 물론이고 하늘처럼 귀하신 공작 앞에서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다.

그뿐인가? 무표정한 눈빛으로 아주 당연한 일을 한다는 듯 상대를 가늠하기도 했다.

그것은 뭔가를 평가하는 데 익숙한 눈빛이었고, 동시에 누군가의 우위에 서는 것을 오랫동안 당연히 여겨왔던 자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아까 전 시선이 마주쳤을 때는 순간적이지만 어린 시절 가르침을 받았던 검술 스승이 짧게 떠올랐을 정도였다.

평민답게 예의를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 달랐다. 차를 마시지 않고 그냥 돌아간 것만 해도 그랬다.

보통은 저보다 대단한 이가 차를 주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렇게 편안히 무시하고 일어서지 못 한다.

능력을 각성했다고 해 봐야 이제 겨우 2년이다. 나단 주커만은 기어 다닐 때부터 검과 함께 온갖 험한 곳을 구르며 자라났다.

몇 배 이상의 세월을 수련하고 훨씬 많은 것들을 가진 이를 상대로 그런 태도를 보이는 이는 처음 보았다.

보통은 저를 만나거나 공작을 만났을 때 시선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움츠려 겁을 먹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고작 20살짜리 청년이 어떻게 그런 느낌을 지닐 수 있을까? 그 남자는… 아무튼 대범하다 못해 이상했다.

“뭔가를 속이고 들어온 사람일 수도 있으니 조사해 보는 쪽이 좋겠습니다.”

“사실 조사는 이미 해 봤어. 정말 별 것 없더군.”

키시아르가 피식 웃었다.

“훈련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성적도 우수해. 술과로 갔다면 아마 곧바로 부단장 자리를 제의했을지도 모르지.”

“제가 다시 한번 더 조사해 보면 뭔가 걸려 나올 수도 있습니다.”

“글쎄…….”

평소라면 철두철미하게 그렇게 하도록 지시했을 주인의 표정이 뭔가 미묘했다. 웃음을 참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묘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떠올랐다가는 사라졌다.

“어쩌면 이곳에는 그런 이가 더 필요할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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