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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282화 (282/805)

282화

“그게 정말입니까?”

예상치 못한 말에 놀란 유더를 향해 미칼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마법이었다면 어려웠을 테지만 증폭진은 우리가 만든 것이라 훨씬 빨리 남은 정보를 읽어낼 수 있소. 그것도 일단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는 가정 하의 이야기지만… 그래도 확인만 한다면……. 자세한 건 좀 더 훑어봐야 알겠지만 허튼소린 아니게 될 거요.”

말을 하던 중간중간에도 계속 무언가 빠르게 생각하는 듯 짧게 침묵하던 미칼린이 마침내 무언가 결심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잠깐 이야기를 멈추거라!”

그가 둥글게 모여 열심히 무어라 역할을 나누던 마법사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자 소리가 잦아들고 시선이 일제히 움직였다. 미칼린은 손에 든 페투아멧의 혀를 들어 보이며 그것의 정체를 짤막하게 설명한 뒤, 몇몇 마법사의 이름을 지명했다.

“내가 너희들의 이름을 부른 까닭은 짐작했겠지.”

“설마… 그 안의 흔적을 찾으시려는 것입니까?”

“그래.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 몬스터가 흡수한 증폭의 힘이 지나치게 커지기 전에 빨리 알아내야 해.”

미칼린이 이름을 부른 마법사들은 그와 함께 증폭진의 개발에 깊이 참여했던 이들이었다. 미칼린의 뜻을 알아차린 마법사들의 표정이 일시에 다양하게 변화하며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수장님. 설령 정보를 읽어낸다 해도 그걸 해제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마력과 제어자가 필요합니다. 인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그걸 어떻게…….”

“대량의 마력은 걱정할 필요 없다. 그건 이미 우리 곁에 있지 않느냐.”

미칼린의 묵직한 대꾸에 마법사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깊은 충격이 그들의 사이를 번개처럼 꿰뚫고 지나갔다.

“설마, 샘을 이용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하지만 그러면 여태까지 증폭한 마력은……!”

참지 못하고 외친 어느 마법사를 향해 미칼린의 날카로운 시선이 꽂혔다.

“너희는 방금, 거대한 산불로 번질 불씨를 먼저 끄기 위해 죽을지도 모르는 자리에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서준 이들을 돕겠다고 나섰다. 그 마음은 거짓이었더냐?”

“…….”

“살아 있으면 기회는 언제고 다시 잡을 수 있지만, 명예와 목숨을 잃은 다음에 과연 우리가 무엇을 더 얻을 수 있을까.”

마법사들이 침묵을 지켰다. 멀리서 또다시 음울한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와 진동이 들려왔다.

“지금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눈앞에 닥친 상황을 해결하는 일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증폭진으로 인해 일어난 일을 남이 해결하게 둔다면, 설령 목숨을 구한다 해도 우리 서부 연합의 명예는 두 번 다시 회복할 수 없게 될 것임을 명심하도록 해라.”

마지막 말을 마친 뒤 미칼린은 그가 호명한 이들과 함께 위층으로 곧장 이동했다. 남은 마법사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 한쪽은 거점을 지키고, 남은 한쪽은 유더와 함께 이동하기로 했다.

“유더 님! 죄송합니다. 저도 함께 갈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밤의 숲 속에서는 제대로 움직일 자신이 없어서…….”

“괜찮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채비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향하는 문 앞에 선 유더를 뒤쫓아온 사제 루산이 걱정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걸 가져가세요.”

그가 마법사들 몰래 내민 물건은 천으로 된 작은 주머니였다.

“이논 님이 주신 약초로 만든 환과 제가 가지고 온 성수를 조금 나누어 넣어둔 거예요. 독과 외상에 효과가 좋은 것들이에요.”

그의 손에서 주머니를 받아들자 제법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유더는 그것을 묵묵히 상의 안쪽 주머니에 넣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뭘요. 이것밖에 못 드려서 죄송하죠… 유더 님의 안위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생각해 주시고 조심하셔야 합니다. 혹 상황이 어려워지더라도 다른 분들이 함께 계시니까요.”

루산의 말을 듣고 나자 긴급한 상황이라 떠오르지 않았던 동료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오늘 밤이 지나고 내일 해가 밝으면 키시아르가 돌아오기로 약속한 시간이었다.

그들은 지금쯤 에제인을 목적지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중일까.

중간에 적이나 몬스터를 만나지는 않았을까.

키시아르는 멀쩡할까.

“……예. 조심하겠습니다.”

유더는 그가 마지막으로 지었던 표정을 머릿속에서 지운 뒤 조용히 몸을 돌렸다. 그와 호흡을 맞추기로 한 마법사들이 비장한 얼굴로 뒤를 따랐다.

유더의 목표는 키시아르가 돌아오기 전까지 상황을 모두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상황이 늘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는 않는 법이었다.

***

유더는 거점을 감싼 보호 마법진을 빠져나가 마력의 샘 쪽으로 터놓은 길로 향했다. 얼마 되지 않아 아주 작은 페투아멧이 몇 마리 나타났지만 그 정도는 마법사들이 해치우도록 맡기고 지체 없이 계속해서 움직였다.

건물 안에 있을 때부터 들리던 몬스터의 울음소리와 폭음이 밖으로 나오자 계속해서 귀를 울렸다. 사라인 대삼림을 감싼 나무가 무서지고 지형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마법사들은 겁에 질린 듯 주춤댔으나 유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마법사들의 걸음을 재촉하며 근처 지형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었다. 그가 듣기를 원한 정보는 이 근처에서 가장 높은 지형의 위치였다.

“지금 여기서 북쪽으로 더 나아가면 높은 언덕이 나옵니다. 물론 그곳으로 올라가는 길도 나무가 얽혀 있어 쉽지는 않지만, 바위로 만들어진 지형 중에서는 가장 높은 곳이죠.”

“마력의 샘에서 꽤 가까울 것 같은 위치군요.”

“네. 가깝습니다. 하지만 지금 움직여서 유인할 수 있는 곳 중에 거기보다 더 높은 장소는 없습니다. 더 높은 지형을 찾으려면… 하루 정도 더 가야 할 겁니다.”

그건 확실히 너무 멀었다. 유더는 알겠다고 말한 뒤 멀지 않은 곳에서 또다시 들려오는 음울한 울음소리와 무언가 우지직 부서지고 깨지는 폭음에 귀를 기울였다. 위치가 그다지 멀지 않은 듯했다.

‘놈이 곧장 거점으로 쫓아올 줄 알았는데, 중간에 무슨 이유에선지 방향이 바뀐 것 같군. 생각보다 더 먼 곳까지 갔어.’

“저희가 마지막으로 그놈을 보았을 때는 작은 말 정도 되는 크기였습니다. 오는 동안 온갖 것을 다 집어삼켰을 테니 지금은 어느 정도로 커졌을지 모르겠군요…….”

미칼린, 로나와 함께 마법진을 살피러 갔었다던 마법사 한 사람이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페투아멧이 왕성한 식욕을 보이는 이유는 만물에 깃든 소량의 마력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는 추측을 오는 내내 폈던 사람이었다.

“불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 몬스터를 만나면 여러분께서는 아까 제가 말한 대로 움직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유더는 페투아멧을 만나는 즉시 공격을 퍼부을 예정이었다. 다른 몬스터들이 그러하듯, 페투아멧 또한 고등사고를 할 수 있는 생물이 아니었다. 오직 본능만을 따르는 몬스터들은 저를 공격하거나 거슬리게 만드는 존재를 우선적으로 쫓아가고는 했다.

때문에 유더는 자신 외의 다른 마법사들은 페투아멧을 공격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마법진을 흡수하지 않은 작은 페투아멧이나 다른 몬스터들은 몰라도 그놈은 제 손으로만 처리해야 했다.

물론 유더의 힘으로 직접적인 공격이 통하지는 않겠지만, 그에게는 검과 함께 대신 무기가 되어줄 숲의 지형지물도 많았다. 장애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덩치가 커져갈 페투아멧은 움직임이 묶일 테니 유더 쪽이 더욱 유리했다.

“저쪽 방향입니다. 계속해서 폭음이 들리는군요.”

그때, 조금 앞서 나가던 다른 마법사가 손을 움직여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런데 뭔가… 몬스터가 내는 소리라기에는 좀 지나치게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설마. 착각이겠지. 이 밤중에 누가 여기에…….”

“하지만 저건 불꽃… 아닌가?”

어느 마법사의 의심스러운 중얼거림과 함께, 숲 너머에서 갑자기 붉은 빛이 번쩍 빛났다. 그와 동시에 또다시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땅이 진동하면서 숲 전체가 파르르 떨리자 마법사들이 신음을 삼키며 나무를 붙잡고 버텼다.

“그 몬스터가 불꽃도 내뿜는다는 말은 없었잖아!”

‘아니야. 그건 페투아멧의 힘이 아니라…….’

유더는 그 빛을 바라보다 눈을 가늘게 떴다. 무언가 묘한 예감이 찾아들었다.

“어, 어딜 가시는 겁니까!”

“먼저 쫓아가 보겠습니다.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오십시오.”

“뭐라고요?”

유더는 마법사들을 뒤에 두고 바람을 밟으며 뛰기 시작했다. 손을 내저을 때마다 나무들이 힘겹게 몸을 휘어 그를 위한 빈 공간을 내어주었다. 손끝이 저릿저릿한 감각과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목적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더는 숨을 삼키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제일 먼저 보인 광경은 어느새 작은 집 정도로 커진 페투아멧이었다. 거대한 꼬리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주변 나무가 전부 녹아내리며 부서진 탓에 공터에 가까운 폐허가 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몇몇 사람들이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제기랄! 이런 지랄맞은 몬스터를 어떻게 쓰러트리란 거여!”

“디곤! 그 염병할 불꽃은 그만 쓰라고! 네놈 때문에 숲이 홀랑 타버리면 마을은 어떻게 하란 거냐!”

“내 말 못 들었어? 좀 다른 쪽으로 유인을 하라고, 멍청한 자식들아! 이쪽으로 보내지 마!”

서로를 향해 악을 쓰는 이들은 어디를 보아도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기사나 마법사로 보이지 않았다. 나이대도, 성별도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페투아멧이 체액을 내뿜으며 공격을 하자 그들은 순식간에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제각기 피해 물러섰다. 불꽃과 물로 된 방어벽이 번쩍거리며 빛을 냈다.

‘……각성자.’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각성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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