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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346화 (346/805)

346화

“잘 모릅니다.”

유더가 솔직하게 답하자 키시아르가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었다.

“마석을 태워 불을 붙일 수 있는 난로를 처음 만든 이는 마정석 광산 근처에 살고 있던 어느 수련 마법사야. 그때까지만 해도 판매할 수 없을 만큼 품질이 낮은 마정석은 모두 땅에 묻어서 버렸는데, 그는 가난한 이들이 그 쓰레기를 주워 땔감 대신 난로에 넣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지.”

아무리 등급이 낮은 마정석이라 해도 그 안에는 분명 희미한 마력이 존재했다. 마정석을 집어넣은 난로 불꽃은 나무를 넣었을 때처럼 뜨겁게 타오르지는 않아도 대신 훨씬 오랫동안 열기를 머금었다. 요리를 할 수 없는 수준의 열기라 해도 가난한 이들에게는 퍽 쓸모가 있었다.

수련 마법사는 쓰레기 취급을 받던 등급 낮은 마정석을 조금 더 쓸모 있게 사용할 방법을 찾았다고 여겨 기술자를 찾아가 최초의 마석 난로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스승을 비롯한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대단히 위험하고 쓸모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나무를 태우는 불에 익숙했던 이들은 마석 난로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했어. 난로를 만든 이는 마법사 협회에서 제명 당했지만 이후에도 계속해서 난로를 만들어 팔았지. 그 결과 지금은 어떠한가?”

“…….”

“서부처럼 전통을 병적으로 사랑하는 지역이나, 난로용 마정석을 구하기 번거로운 곳이 아닌 이상은 대부분 마석 난로를 사용해.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지.”

유더는 제가 마병단에 오기 전 살았던 산골 오두막집을 떠올렸다. 그 다 쓰러져가는 집 안에조차 마석 난로가 있었다. 물론 키시아르의 단장실에 있는 아름다운 난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작고 낡은 물건이었지만 겨울에 얼어 죽지 않을 만큼 집을 덥히기에는 적당했다.

“나는 그 난로를 좋아해. 한때는 쓸모없게 여겨졌던 것이 그 가치를 믿고 나아간 이들로 인해 세상에 꼭 필요한 물건이 되었다는 점이 몹시 마음에 들거든.”

“…그래서 단장실 중앙에도 난로를 두셨던 겁니까?”

“맞아. 내가 머무는 곳이라면 어디든 두지. 침실이든, 펠레타 성이든.”

가볍게 대답한 키시아르가 벗어서 의자 위에 걸쳐 두었던 망토를 가볍게 툭툭 건드렸다. 그 옷의 어깨 부분에 찔러 둔 핀과 단추에는 펠레타 공작의 문장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펠레타 공작이 되어 사용할 문장을 처음 정해야 했을 때 불꽃을 넣은 이유도 그래서라네.”

“그렇게까지… 좋아하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이전 생에도 키시아르가 있는 광경을 생각할 때마다 대개 난롯불이 타오르는 모습도 함께 떠오르고는 했었지만, 펠레타 공작의 문장으로 사용하는 불꽃에까지 그런 의미가 포함된 줄은 몰랐다. 처음 듣는 사실이 신기하고도 묘했다.

“마병단을 만들던 첫날, 나는 그곳이 마석 난로와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랐네. 당장은 쓸모없거나 미약해 보일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인정받게 될, 그런 존재 말이야.”

“…….”

“아까 타인 공자의 말을 듣는 순간 문득 그날의 기억이 나더군.”

유더는 타오르지 않는 벽난로를 향한 키시아르의 붉은 눈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각성자의 존재도 마법사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당연하게 인정받는 날이 오겠지. 하지만 그날은 결코 아무런 노력 없이 주어지지 않아.”

그리고 키시아르는 그날을 위하여 노력할 수 있는 토대의 첫발을 제 손으로 만들었다.

“나는 오늘의 일을 그날을 향하여 가는 또 하나의 큰 한 발짝으로 만들 거야. 너와 함께.”

“…….”

“당연히 함께해 주겠지?”

심장이 크게, 그리고 아주 빠르게 뛰었다.

진짜 미래를 알고 있는 유더 아일은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긍정적인 기분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러나 키시아르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그는 매번 가슴이 터질 듯한 기분을 느끼고는 했다.

그가 그리는 미래는 목이 멜 만큼 넓고 광활하며 아름다웠다.

유더 아일이 죽어도 그릴 수 없을 미래를 꿈꾸는 사내를 향해, 그는 고통스럽고도 확연한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래.”

키시아르가 기쁘게 웃었다. 그는 손을 내밀어 유더를 끌어당겼다. 단장과 보좌가 지켜야 할 적절한 거리를 넘어 그 안쪽까지 서슴없이 당기는 손길에 이끌리다 보니 어느새 그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들어 올려 소리 없이, 그러나 지나칠 만큼 길게 입술을 누른 사내가 달콤한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 답에 내가 얼마나 큰 기쁨을 얻는지 아마 모를 거야.”

“…….”

질척이며 머리를 아프게 했던 꿈이 그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 유더는 키시아르에게 붙잡힌 손을 내려다보다 충동적으로, 그러나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여 흰 손등에 입술을 눌렀다.

‘…당신도 아마 모르겠지.’

이전 생과 지금이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도 달라지리라는 사실을 그가 알려줄 때마다 유더가 느끼는 마음을. 그리고 생각을.

그는 모를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몰랐으면 했다…….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할 마음이 입술 사이로 녹아 사라지고, 유더는 눈을 들어 조금 놀란 기색을 내보이는 붉은 눈을 마주 보았다. 그 이상의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눈을 감은 순간 꽉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며 입술 위로 뜨거운 온기가 겹쳤다.

“…단장님.”

“음?”

오랜 입맞춤 끝에 한숨과 함께 떨어진 뒤, 유더는 눈을 뜨며 작게 그를 불렀다.

“지금도 아래의 힘을 일부러 조절하고 계신 겁니까?”

“…….”

대답 대신 돌아온 미소가 조금 난감하게 변했다.

“왜 계속 그러시는 겁니까.”

“그러지 않으면 피차 곤란해지지 않겠나? 한 번 힘을 되돌린 것만으로도 나쁜 꿈을 꿀 정도인데, 두 번 그럴 필요는 없지.”

“그건 단장님 때문이 아니라……. 아무튼 한 번, 두 번의 문제가 아닙니다.”

유더는 올라앉은 무릎 아래를 받친 다리를 내려다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번에도 생각했습니다만, 그런 게 몸에 좋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저보다 훨씬 늦게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시는데 힘까지 억지로 계속 억제하는 건 지나치게 부담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

“잠깐. 혹시 제대로 주무시지 않는 것도 저 때문입니까?”

생각해 보니 키시아르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제 상태를 숨기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유난히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난 것도 그 이유일지 모른다 생각하자 갑자기 뒤통수가 조금 싸늘해졌다.

“나는 원래 잠이 적어.”

“하지만.”

“날 그리 걱정해 준 건 기쁘지만, 나도 그만큼 네가 걱정된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군. 눈도, 힘도 다 회복되지 않았으면서 대체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가?”

한마디만으로 유더의 입을 다물게 만든 사내가 웃으면서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뒤이어 눈가에도, 그리고 뺨에도 입맞춤이 이어졌다. 욕망이 아닌 기분 좋은 따뜻함을 띤 유쾌한 키스였다.

“……그래. 그러면 이렇게 하지. 이 눈이 다 낫고 나면, 그때부터는 억지로 눌러 참지는 않겠다고 약속하겠네. 잠은… 흠. 그리 신경이 쓰인다면 오늘부터는 같은 시간에 맞추어서 자면 되겠나?”

여전히 불만스러웠지만, 눈이 낫지 않은 건 사실이었기에 할 말이 없었다. 유더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키시아르가 웃으며 눈꺼풀 위에 깊이 키스했다.

그날 밤은 큰 침대에 나란히 누워 얼굴을 마주 보았다. 무언가 새삼스레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구태여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옆으로 누운 채 서로 마주 본다는 건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다. 키시아르는 베개에 머리칼과 얼굴이 살짝 짓눌린 상태로도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문득 초대 황제의 관과 자신의 관을 마주 본 채로 놓아 달라고 했다던 황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말을 한 심경을 알 것 같다 말했던 키시아르는 지금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그리 하나? 내 얼굴에 구멍이라도 뚫리겠는데.”

“……깜박 잊고 보고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는 게 생각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생각 중이었습니다.”

진짜 생각을 밝히기에는 무엇해 말을 돌리자 키시아르가 그게 무어냐고 물었다. 빌름 남작이 낮에 찾아와 타인 공작의 관심을 전했었다고 밝히자 키시아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음… 역시 혼자 두자마자 찾아왔군. 그 작자도 참 뻔한 사람이야.”

“네. 하는 말마다 뻔하시더군요.”

“그래서, 뭐라고 했지?”

“제게 연락을 하고 싶다면 단장님께 먼저 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잘했어.”

키시아르가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마저도 마주 누운 상태에서 보고 있으려니 평소와 달리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여기 있어 불편하지는 않나?”

“불편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정말입니다.”

“그래.”

미소 지은 키시아르가 손을 뻗어 유더의 머리칼을 쓸었다. 간질간질한 감각과 함께 앞 머리칼이 사정없이 흐트러졌다. 유더는 그가 마음대로 머리칼을 쓰다듬도록 내버려 두었다.

“내 보좌는 누군가와 이런 식으로 자 본 적이 있었나?”

없었다고 답하려 했지만 문득 아주 오래된 어린 시절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같이 잘 때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음. 그래. 조부와 함께 살았다고 했었지.”

키시아르가 유더의 지원서에 적혀 있었을 가족 관련 사항을 떠올리듯 중얼거렸다.

“많이 귀여움받으며 자란 모양이군.”

“많이…는 모르겠군요. 그냥 평범하셨습니다. 사고를 치면 혼도 나고, 가끔 싸우기도 하면서 지냈던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와 지냈던 기억은 이전 생에서 겪었던 수많은 풍파에 밀려 이제는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스무 살짜리 청년이라면 아직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아 있어야 하는 때가 맞을 테니, 최대한 머리를 짜내 답하려 노력했다.

그다지 웃긴 대답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키시아르는 어쩐지 묘한 얼굴로 웃음을 멈출 줄 몰랐다.

“왜 그리 웃으십니까.”

“알고 있나? 네가 스스로에 대해 그런 말을 해 준 건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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