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3화
타닥이며 타오르는 난로 소리와 함께 몽롱했던 정신이 조금 명확해졌다.
유더는 땀으로 젖은 눈꺼풀을 들며 아직 배 속에 남은 쾌감의 잔여물을 숨결에 담아 깊이 뱉어냈다. 물론 그런다고 아직 맞붙어 있는 하반신의 감각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열기는 확실히 어느 정도 가라앉는 효과가 존재했다.
“목이 마르지는 않나?”
마주 보고 누운 채 유더를 끌어안고 있던 사내가 부드럽게 물었다.
“…네.”
대답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하반신에 힘이 들어갔다. 동시에 아직 연결되어 있던 부위에서부터 빠듯하고 저릿한 감각이 달렸다. 오자마자 수선한 옷이 든 가방을 집어던지고서 내리 세 번은 한 것 같은데도 다리 사이의 물건은 여전히 한순간도 숨이 죽은 적 없었던 것처럼 단단했다.
그 감각을 느낀 순간, 거짓말처럼 입술 안쪽이 또다시 젖어 들며 몸 안쪽 어딘가가 욕심 어린 간질거림을 피웠다. 바로 아까까지만 해도 정신없이 뒤흔들리며 갈증을 채우던 몸은 전신의 근육이 나른해진 지금까지도 해갈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유더가 그런 감각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아차린 듯이 키시아르가 등을 끌어안으며 몸을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뒤엉킨 부위가 온통 푹 젖어 버릴 정도로 격렬하지는 않으나 근지러운 곳을 적당히 긁어줄 수는 있을 정도로 느긋한 움직임이었다.
“하아…….”
유더는 그 움직임에 맞추어 느릿하게 허리를 흔들면서 새삼 며칠 만에 제 몸이 상당히 변한 듯하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처음 했을 때도 정신을 제대로 잡고 있기 힘들 만큼 대단한 감각을 맛보기는 했었는데, 하면 할수록 뭔가가 조금씩 더 농밀해져 갔다.
처음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감정이나 자극에 휩쓸려 다른 건 조금 부차적인 문제로 느껴졌다면, 이제는 내부가 벌어지는 그 낯선 감각 자체에 적응해 가는 느낌이었다. 그와 함께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도 이전보다 더 깊어져, 아까는 거의 끝까지 받아들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깊은 곳까지 결합이 이어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움직임이 느릿해 그 자극적이던 감각도 한결 부드럽고 잔잔하게 느껴졌다. 적당히 따뜻한 물 속에 잠긴 듯이 안온하고 기분 좋은 감각이 하체와 등줄기를 규칙적으로 자극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대로 잠이 든다 해도 썩 괜찮을 듯한 기분이었다.
“이제 곧 휴가가 끝나겠군.”
유더는 머리 위에서 들려온 말에 고개를 들었다. 키시아르가 조금 장난스레 이전보다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며 말을 걸었다.
“휴일의 끝이 싫어진 건… 태어나서 처음이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나면 이럴 수 있을 시간이 줄어든다는 이유만으로 그리 생각한 건 더더욱 처음이고.”
“…….”
유더라고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이전 생에 휴가나 휴일 따위를 아쉬워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지금은 저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이한 아쉬움을 느꼈다.
“휴가가 끝나고 나면, 이곳도 다시 소란스러워지겠지. 잠시 미루어 두었던 일들도 해야 할 테고, 또…….”
잠시 말을 멈추었던 키시아르가 붙였던 허리를 느리게 떨어트리며 이윽고 입을 열었다.
“우리가 쥔 새로운 변화의 열쇠를 가지고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도 알게 될 거야. 괜찮겠나?”
변화의 열쇠. 그 말이 뜻할 의미는 묻지 않아도 확고했다.
키시아르는 황제의 앞에서 추문을 잠재울 생각이 없다고 말했던 이유를 실행할 생각임을 유더에게 알린 것이다.
아직까지 사람들은 각성자에 대해서도, 그리고 2성 발현자에 대해서도 무엇 하나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끔찍한 실험을 저지른 벨트레일 샨 아페토의 연구일지 내용이 재판을 통해 널리 퍼지면서 그나마 이전 생보다는 2성 발현자에 대한 인지도가 늘기는 했다. 하지만 고작 그뿐이었다.
2성을 발현한 각성자들의 존재는 이전 생에서도 오랫동안 미묘하게 목에 걸린 가시처럼 취급받았다. 그들이 겪는 발정기나 향의 변화도, 관심을 지닌 상대도 무엇 하나 자연스럽게 드러내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2성 발현자들이 많이 있는 마병단 내에서는 그런 부분이 제법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으나 바깥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유더의 힘으로도 그것은 바꾸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아직 세태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변화를 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큰 영향력을 지닌 이들이 먼저 모습을 드러내고 스스로에 대해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키시아르 라 오르는 그가 바로 그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였다.
‘터무니없이 위험하지.’
키시아르를 아끼는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같은 각성자인 마병단 동료들조차도 그럴지 몰랐다.
서부에서의 애인 연극은 모두가 가짜임을 알았기에 즐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 된다면 그 누구라도 당혹할 터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 일을 전 제국민을, 나아가 전 대륙을 상대로 해야만 했다.
하지만 미래의 각성자들을 생각한다면, 결국 누군가는 지금이 아니라도 해야 할 일이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괜찮습니다.”
“이 관계를 둘만의 관계로 안전하게 남겨 둘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르는데도?”
“그런 건 바란 적도 없고, 휴가가 끝나자마자 당장 마병단 전부에게 공표하고 시작하신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애초에 가시는 길에 함께 따르겠다고 약속드렸으니……. 흣.”
갑자기 이어진 부분이 훅 부풀어 오르는 바람에 말이 끊겼다.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가쁜 숨을 내쉬며 속눈썹을 떠는 사이 키시아르가 그의 다리 하나를 들어 올려 무릎 아래를 팔에 걸고 자세를 바꾸었다. 유더와 마찬가지로 쾌감을 참아내기 위해 웃음을 잃은 눈동자가 본연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말하던 도중 미안하지만, 이쪽에 조금만 집중해도 될까.”
다리 사이의 틈이 벌어지자 삽입이 일순간에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깊어지며 뒷목이 선득해졌다.
‘아…….’
유더는 고개를 젖힌 채 반사적으로 배에 힘을 주었다. 너무나 깊은 곳까지 들어온 바람에 숨이 막혔으나 거기에는 분명 다른 감각과 비교할 수 없는 쾌감이 있었다.
그는 기민한 사냥꾼처럼 반사적으로 움직여 그 쾌감의 궤적을 사납게 쫓았다. 키시아르의 어깨에서 미끄러진 손이 가슴을 긁어내리자 땀에 젖어 든 피부가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더욱 빨라졌다. 목줄기와 가슴 부근을 연신 머금는 입술이 뜨거워 눈가에 열이 올랐다. 저도 모르게 벌린 입술에서 소리가 새었다.
이윽고 커다란 손이 유더의 것을 붙잡아 민감한 부분을 강하게 문지르며 모든 생각이 멈추었다.
느끼고 있는 감각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탐욕스럽게 달라붙은 끝에, 얼마 후 다시 한 번 다리 사이가 질척하게 젖었다.
“…….”
간헐적으로 조금씩 떨리는 결합부 사이로 쾌감이 물처럼 번져 뚝뚝 떨어졌다. 몇 번을 겪은 파정임에도 이제는 앞과 뒤 중 어디의 자극이 더 큰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그저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숨이 찼고, 그런 와중에도 눈앞의 사내의 얼굴만은 놓치지 않고 보고 싶었다.
유더는 그를 조금의 틈도 없이 끌어안은 키시아르의 몸에서 강하게 피어오르는 향을 느꼈다. 전신을 감싼 사내의 향이 농염하게 몸을 뒤덮으며 유더의 향과 깊이 얽혔다. 오랜 시간 섞이기를 반복한 두 향은 어느덧 본연의 오롯함을 잃은 지 오래였다.
한 사람의 향처럼 엉킨 향이 제 몸을 뒤덮었는데도 조금도 불쾌하지 않았다.
그저 처음부터 이렇게 뒤섞이는 게 당연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하… 일주일만 더 쉬었으면 좋겠다.”
“욕심이 작네. 난 한 달 정도.”
황제와 마병단장이 내린 일주일간의 마병단 전체 휴가가 드디어 끝났다. 오랜만에 아침부터 훈련장에 모여든 단원들은 몸을 풀며 휴일의 여파에 몸부림치는 중이었다.
일주일간 내내 술에 빠져 산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는 초췌한 얼굴로 추가 휴일을 염원하는 몇몇 단원들의 곁에서, 맑게 빛나는 눈을 한 지미가 해맑게 소리쳤다.
“또 쉬는 건 절대 안 돼요! 전 훈련하고 싶어 죽을 뻔했는데!”
“너는 어려서 기운이 넘치니까 그런 거야.”
“그래. 나도 너만 했을 때는…….”
“누가 더 쉬고 싶다는 말을 한 것 같은데. 누구지?”
“유더 형!”
무어라 말을 하려던 단원이 갑자기 고개를 내민 유더 아일의 질문을 듣고는 재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한겨울 바람보다 더 서늘한 얼굴을 한 유더는 언제 휴가를 보내고 왔느냐는 듯 조금도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 모습 그대로였다.
‘저 앞에서 오늘 훈련이 귀찮다는 티를 냈다간 최소 3배 정도는 강화된다.’
쉬고 싶다면 마병단을 때려치우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할 듯한 어두운 눈을 본 단원들이 순식간에 벌떡 일어나 줄지어 뛰는 기적이 일어났다.
유더를 반가워한 이는 지미뿐이었다.
“형! 휴가 내내 대체 어디 갔었던 거예요? 방에 몇 번 찾아갔었는데 없는 것 같아서 우리끼리만 놀았잖아요!”
“미안. 일이 좀 있었어.”
“무슨 일요? 저도 데려가시지.”
“음… 다른 사람을 데려갈 만한 일은 아니라서.”
그 말 안에 숨겨진 뜻을 알아채지 못한 소년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유더와 친분이 깊은 동료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숙취의 여파를 은은하게 맞았는지 시든 장미 같은 몰골이 된 가케인,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듯 안색이 밝은 스티버, 그리고 사이좋게 함께 나타난 에버와 칸나도 유더를 발견하고는 인사를 건넸다.
“유더! 잘 쉬었어요?”
“어어, 유더. 아, 안녕.”
밝게 인사하는 에버와 달리, 칸나는 어쩐지 유더와 시선을 잘 맞추지 못했다. 어색하게 인사를 건넨 칸나가 서둘러 삐걱대면서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지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칸나 누나가 왜 저러죠? 어디 아픈가?”
“글쎄…….”
“헉, 설마 2성 발현은 아니겠죠?”
“그건 아닐 거야. 계속 저러면 내가 나중에 가서 물어볼 테니 걱정하지 마.”
“네…….”
“모두들 빠르게 나와 주어서 고맙군.”
그때,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키시아르가 입을 열며 모든 단원들의 시선을 한곳에 모았으므로 지미와 유더의 대화는 그쯤에서 끝이 났다.
“휴가는 다들 잘 보냈나?”
“네!”
“몇몇은 더 쉬고 싶었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듯한데.”
“하하하…….”
단원들 사이에서 멋쩍은 웃음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