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490화 (490/805)

490화

“여기서 하나 더?”

“핀은 아마 보면 알 거야.”

유더는 종이를 뒤집어 뒷면에 그려진 문장을 보여주었다. 핀이 찾아냈었던 남국 부족의 문장이었다.

“어! 내가 찾아냈던 그거네.”

“뭔데?”

“타이누에 왔던 남국인 상인들 숙소 내부에 있던 문장! 내가 유더 부탁으로 몰래 들어갔다가 발견했었어!”

데브란의 질문에 자랑스럽게 대답한 핀이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그게 왜? 그땐 일이 다 끝나고 나서도 아무 말도 안 했었잖아. 그래서 별거 아니었나 보다 싶었는데…….”

“이후에 개인적으로 조사해 본 결과 이게 남국에 있는 어느 부족의 문장이라는 걸 알아냈거든.”

타이누에서 도망친 남국인 상인들은 현재 타이누 기사단에게 추적당하는 중이다. 그러나 마병단에서도 마병단만이 할 수 있는 조사를 더 하는 쪽이 좋다고 생각했다는 말을 하자 엘더 남매와 데브란의 눈이 부담스러울 만큼 반짝였다.

“그렇네! 그놈들도 각성자니까 이 일은 우리도 맡는 게 좋지!”

“첫 시작으로 정말 딱 좋겠어!”

“휴가 동안 유더 혼자서 그런 걸 하고 있었던 거야? 우리도 부르지!”

실제로 휴가 동안 한 건 다른 일이기에, 유더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너무 드러내 놓고 요란하게 조사하지 말라는 염려의 말과 이 일을 핑계로 훈련을 팽개쳐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덧붙였다.

“가능하면 조사를 할 때는 혼자서 움직이지 마. 이논은 예외지만, 나머지는 반드시 나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도록 해. 혹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혼자서 자리를 비워야 한다면, 훈련 시간에 배운 신호를 남겨.”

“와… 나 그거 배우기만 하고 써본 적은 아직 없는데. 너무 재미있겠다.”

“재미있게만 생각하면 안 돼. 실전이니까.”

“알아! 그냥 기대되어서 해본 말이에요 유더 선생님!”

힌이 손을 번쩍 들고 대답하며 씩 웃었다.

“첫 시작은 도서관부터 갈 테니까 걱정 말라구!”

어쩐지 조금 걱정되기는 했지만, 엘더 남매는 이전 생에도 까불대는 악동 같은 면모와 달리 임무 처리만은 정말 확실했던 이들이었다.

그게 이번 생이라 해서 그리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유더는 작게 숨을 내쉰 뒤 문장이 그려진 종이를 도로 뒤집었다. 디아카 공작의 쪽지 속 정보가 재차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면 이제 여기 적힌 부분에 대해 더 설명해 줄 테니까 다들 집중해.”

그는 한 줄밖에 안 되는 숫자와 문장을 가리켜 모두의 시선을 그곳에 모았다.

“숫자가 많아 복잡해 보이지만 의미를 알면 추측은 간단해. 이건 이번 달 수도 6벽 분수의 물을 바꾸는 날을 의미하고, 이건 시간. 그리고 이건 5벽 4번째 기사의 길에 위치한 148번째 건물 주소. 맨 마지막은 금액 50만이야. 그러니까 말하자면…….”

“알겠다. 거래 약속 내용이구나?”

“그래. 맞아.”

정답을 맞춘 데브란이 뿌듯하게 어깨를 폈다.

“그래서 이 거래는 누가 하는 건데?”

“이 거래 약속을 보낸 이는 디아카 공작이고, 받을 이는 요즘 몸이 좋지 않으신 황태자 전하를 치료하느라 바쁘다는 정체불명의 치료사들이야. 우리가 조사해야 할 건 바로 그 치료사들이고.”

상상 이상으로 정보의 출처가 대단했는지 단원들이 일제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디, 디아카 공작?”

“황태자?”

“6벽에 존재하는 12명의 현자 조각 분수대의 물을 가는 날은 내일이야. 즉 내일 여기 적힌 시간에 이 주소로 가면 그자들이 거래하는 모습을 확실히 볼 수 있다는 뜻이지.”

“우…우리도 그러면 거기에 가는 거야?”

“그래.”

“뭘 하면 돼? 거래 현장을 덮쳐서 잡아야 되나?”

“아니. 우리가 할 일은 그 현장을 지켜보고, 치료사들의 뒤를 쫓는 거야. 내 생각이 맞다면 그자들은 각성자일 테니 추적이 그리 쉽지 않을 가능성이 커. 쉽게 생각하지는 마.”

꿀꺽. 긴장된 침묵 속에서 누군가 침을 크게 삼켰다.

“모이는 건 내일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서 황궁기사단 지부 입구로 한다. 들키지 말고 적당히 알아서 잘 빠져나와. 도움이 될 만한 건 가져와도 좋지만 요란하게 하지는 말고.”

“옷은 당연히 사복이지?”

“그래.”

“좋아! 그럼 그때 보자!”

단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더는 신경이 쓰였던 문제를 재차 묻기 위해 가케인을 붙잡으려 했으나, 공교롭게도 그 순간 이논이 말을 걸었다.

“너, 나랑 할 말이 있지 않아?”

엘더 남매와 데브란이 잠시 호기심에 찬 눈빛을 보였으나, 그들은 이내 끼어들지 않고 눈치껏 사라져 주었다. 여전히 어두운 얼굴의 가케인 또한 함께였다.

‘이런… 때를 놓쳤군.’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이논이 혀를 차며 말을 걸었다.

“저 빨간 머리가 신경 쓰여서 그러는 거면 지금 말고 나중에 그놈이 혼자 있을 때 몰래 가서 말을 걸어. 저런 놈들은 다른 사람 시선을 부끄러워하니 지금 말 걸면 역효과라고.”

“…내가 가케인을 부르려고 한 건 어떻게 알았어?”

“너나 그 정도 되는 어린 녀석들 생각쯤이야 뻔히 다 들여다보인다.”

어리지 않다고 해 봤자 이논에게는 절대 통하지 않을 말이었다. 유더는 가케인을 붙잡는 건 일단 포기하기로 하고 도로 자리에 앉았다.

“알겠어.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고.”

“일단 손 좀 내놔 봐. 장갑은 벗고.”

자세를 바로 한 이논이 유더의 손을 살핀 뒤 이마의 체온을 재고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며 진지하게 들여다보았다. 유더는 한참이 지나 그가 손을 떼고 나서야 겨우 말을 걸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한 거라도 있어?”

“네 혼 말이야.”

이논이 눈썹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휴가 전하고 비교도 안 되게 상태가 좋아. 대체 뭘 하고 돌아다닌 거야?”

‘혼의 상태가 좋아졌다고?’

늘 혼이 불안정하다느니, 그대로 가다가는 죽는다느니 하는 무시무시한 말만 하던 이논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는 좋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휴가 전후로 그런 변화가 생겼다는 건…….

‘짚이는 원인은 하나뿐인데.’

유더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특이사항이라 할 만한 건 단장님과 함께 있었던 것뿐인데.”

“너네 단장? 하지만 휴가 동안 내내 같이 있지는 않았을 것 아냐.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서부에서는 방을 같이 썼어도… 이렇게까지는…….”

“…….”

침묵하는 유더의 얼굴을 보던 이논의 눈꺼풀이 무언가를 감지한 듯 움찔 떨렸다. 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유더를 새삼스레 다시 훑었다.

“잠깐. 설마… 너…….”

“…….”

이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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