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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527화 (527/805)

527화

“유더. 그러면 이제… 더 부탁할 건 없는 거지?”

생각에 잠겨 있던 유더는 칸나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응. 없어.”

“그러면 이다음에 할 일은?”

“조금 이따가 가케인과 데브란을 만날 생각이긴 한데… 지금 당장 보러 갈 필요는 없어서. 왜?”

반문을 들은 칸나가 무언가 깨달은 듯 아 하는 소리를 흘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두 사람, 요즘 뭔가 하고 있는 것 맞지? 뭔가 조사하는 것 같던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해서 궁금했었어. 혹시 유더도 같이 하는 임무야?”

“비슷해. 어떻게 알았어?”

“역시 그랬구나. 너한테 그랬을 때처럼 능력이 갑자기 튀어서 알게 된 건 절대 아니고! 그냥 가케인이 요즘 좀 어두워 보여서 걱정되어 살피다 보니까 평소와 다른 점이 눈에 띄어 알게 된 거야. 유더까지 끼어 있는 건 지금 알았지만…….”

역시 칸나는 딱히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눈치가 빨랐다.

‘에버나 스티버는 아직까지 크게 눈치를 못 챈 것 같던데… 칸나까지 피하는 건 무리였군.’

마병단 내에 정보부서가 생겼단 사실도, 그들이 무슨 조사 임무를 진행하고 있는지도 사실 부단장급 정도 되는 이들에게까지 꼭 비밀로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칸나 같은 이조차도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정보부원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할 수 있는데도 안 숨기는 것과 하려고 했지만 못 숨긴 건 몹시 차이가 크니까.’

그래도 엘더 남매의 이름까지는 나오지 않았으니 처음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그 둘까지 엮였다면 서부에서 임무를 함께 한 칸나는 금세 그들이 무얼 하는 중인지 손쉽게 알아차렸을 터다.

유더는 칸나가 알아차렸다는 사실을 정보부원들에게 알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순순히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해 주었다.

“단장님이 주신 임무는 아니야. 개인적으로 조사하고 싶은 게 있어서 함께 하고 있어. 핀과 힌도 함께.”

“아… 서부에서 힌이랑 가케인이 엄청 기대 중이었던 그건가?”

“그래.”

“힌이랑 핀은 평소랑 별로 다른 게 없어서 몰랐네. 그걸 드디어 시작한 거였구나.”

칸나는 자신이 못 꼈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운 듯했지만 그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정과 부단장으로서 해야 할 업무들임을 잊지 않았다. 부단장의 업무에 지금 맡겨진 일만 더해도 몸이 세 개라도 부족할 터였다.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줘!”

“알겠어. 그런데… 아까는 왜 일이 있는지 물어본 거야?”

“아. 맞아. 내 정신 좀 봐.”

칸나가 퍼뜩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제 호산라가 깨어 있는 동안 가일과 두일을 만나볼 수 있을지 요청했거든. 내 생각에는 괜찮을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네가 같이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호산라가?”

“응. 깨어나는 시간이 거의 비슷한 편이라 아마 곧 깨어날 것 같아.”

호산라가 드디어 눈을 뜬 뒤, 유더는 그의 주변을 지킬 사람을 극도로 제한하고 칸나에게 말을 전달하여 그를 담당하게 했다. 칸나는 다른 이들이 파티 준비에 여념이 없는 동안 호산라와 가일, 두일 형제를 번갈아 살피며 그들에게서 정보를 읽는 작업을 병행했었다.

칸나나 다른 단원들에게 종종 뭔가 부탁을 한다던 가일, 두일 형제와 달리 호산라는 하루의 대부분을 아직 잠든 상태로 보내면서도 경계를 잃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런 말을 했다니. 칸나의 붙임성 좋은 성격이 이번에도 큰 효과를 발휘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세 사람에게 지금 수도에 있는 ’현자‘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없는지 떠볼 생각이었으니 잘 되었군.’

“알겠어. 같이 갈게. 그런데… 아까 줄 수 있다던 도움, 혹시 지금 하나 부탁해도 될까.”

“응? 뭔데?”

칸나가 조심스럽고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유더를 보았다.

마병단 식당 뒤편에서 과일을 먹고 있던 형제는 갑자기 들이닥친 유더를 보고 기절할 듯 놀랐으나, 함께 온 칸나의 설명을 듣고는 겨우 진정했다.

“호, 호산라가 정말 우릴 불렀다고……?”

“진짜… 만나도 괜찮은겨?”

“유더가 괜찮다고 했으니 괜찮아. 호산라는 아직 몸이 안 좋다는 것만 잊지 말아 줘.”

“어어, 물론이지!”

형제는 재빨리 과일 물이 든 손을 씻고 두 사람을 따라왔다.

“안에 있는 사람, 깨어났어?”

호산라가 머무는 방에 도착한 칸나가 앞을 지키는 단원에게 물었다. 그는 얼마 전 유더에게 호산라를 맡기고 내려가 간식을 먹고 왔다가, 그 사이 호산라가 깨어나는 바람에 앞으로 영영 감시 업무에서 탈출하기 어려워진 이였다.

그가 유더를 잠시 슬프게 올려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방금 깨어난 것 같더라……. 루산 사제님이 와 계셔.”

“알겠어. 나 먼저 들어가서 설명하고 올 테니까, 다들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그가 왜 그러는지 알고 있을 칸나가 위로차 어깨를 두드리고는 문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유더는 중간중간 자신을 흘끔대는 형제의 시선을 느꼈지만 그냥 모른 척했다.

잠시 후 칸나가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호산라의 상태는 괜찮아. 들어와.”

호산라의 손목에는 여전히 부드러운 천을 감은 끈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의 곁에서 상태를 살피고 있던 루산이 들어오는 이들을 보고는 싱긋 웃었다. 유더는 그에게 잠시 밖에 나가 있어 달라고 요청했다.

젊은 사제가 나가자마자 가일과 두일이 곧장 호산라가 누워 있는 침대 쪽으로 달려갔다.

“호산라!”

“이게 무슨 꼴이여. 어딜 다쳐서 이래?”

“…….”

호산라의 얼굴은 막 깨어났을 때보다는 나았지만 그래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초췌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 것도 겨우 하니, 걸을 정도까지 회복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깡마른 남국인 청년이 죄책감 어린 눈으로 두 형제를 훑다가는 가느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건강했구나. 다행, 이다.”

“그려, 건강하구 말구. 우린 여기서 잘 지낸다고 그때두…… 아!”

눈치 없이 또 예전 일을 언급하려 하는 가일의 옆구리를 두일이 쳤다.

“아프잖어. 왜 때려?”

환자를 보러 왔다는 사실조차 잊고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던 형제는 유더와 눈이 마주치고서야 겨우 조용해졌다. 마병단원의 앞에서 안부 이상의 사항을 묻기는 어려웠는지 쭈뼛대는 기색들이었지만 그래도 살아 있다는 걸 확실히 확인하여서인지 표정은 한결 밝았다.

유더는 형제를 만나고 싶다고 먼저 요청한 것치고는 상당히 조용한 호산라를 향하여 입을 열었다.

“호산라. 가일과 두일을 만나 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 게 아니었나?”

“……잘 지내고 있는 걸 확인하려던, 것뿐입니다.”

호산라가 시선을 피한 채 중얼거렸다. 희미하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명확히 힘이 실려 알아듣기 쉬워진 목소리였다. 그는 제국어 억양이 조금 서툰 편이었다.

“그래. 보다시피 잘 지내고 있었지. 너와 나한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마병단 내부가 아니라 외부로 내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게 되었지만.”

“…….”

호산라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놀란 건 가일과 두일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어?”

“우릴 내보내 주려고 했다고?”

“조사할 건 이미 다 조사했고, 너희가 직접적으로 죄를 저지른 건 아니라는 걸 확인했으니까 여기에 더 둘 이유는 없지.”

“그러면…….”

“안심해. 유더 말은 그러려고 했는데 지금 바로는 어렵다는 거야. 갑자기 쫓아낸다는 게 아니고, 여기서 계속 돈을 받고 일하고 싶다면 정식으로 그렇게 할 수 있어. 가일과 두일 입장에서도 그쪽이 낫잖아. 전에 그러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었어?”

칸나가 끼어들어 솜씨 좋게 달래자 불안과 의문으로 점철되어 있던 가일과 두일의 표정이 빠르게 밝아졌다.

“아… 그렇구나. 그야 물론 그렇기는 헌디…….”

“지금은 너희가 너무 위험한 상황이라 판단해서 보호 차원에서 여기 계속 머물게 하는 게 커.”

“호산라 때문에?”

“그것도 그렇고, 얼마 전에 수도 내에서 좀 수상한 움직임이 보고되었거든.”

“수상한… 움직임이란 게 뭔디? 또 나한이 오기라도 했대?”

“아니. 그는 행방을 찾을 수 없는 상태래. 서부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곳에 오기 전 유더의 예상대로 물어봐 주는 형제 덕분에 호산라가 드디어 한결 솔직한 반응을 내보였다.

“나, 나한…님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고, 요?”

“그래요.”

“…….”

호산라는 그게 정말이냐고 묻지 않았다. 그만큼 칸나에게 상당한 신뢰가 쌓였다는 뜻이었다. 유더는 그의 얼굴 위로 떠오른 감정들을 빠르게 읽어냈다.

안도, 걱정, 그 외의 몇몇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섞인 얼굴. 그는 나한을 상당히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이 일에 실패했다는 걸 알자마자 구하기는커녕 바로 뛰어내려 도망친 놈을 말이지.’

“그래서, 나한이 아니면 수상한 움직임이란 건 진짜 뭔디?”

“정체를 알 수 없는 각성자들이 다수 목격되었어. 우리는 그 사람들이 너희와 같은 곳에 있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뭐? 호산라랑 우릴 구하러 온 겨……?”

“그건 아마 아닐 거라 장담하지.”

유더가 끼어들자 형제가 동시에 어깨를 움찔 떨었다.

“왜냐하면 수도에 나타난 자들은 이쪽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귀족들과 접촉하고 있는 중이니까.”

“귀족……? 우리 중에 귀족이나 만나러 다니는 녀석들은 없는디…….”

형제의 눈빛이 혼란스러워졌다. 상대의 정체를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듯했다.

“그러면 호산라도 앞으로 우리처럼…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거여?”

“아니. 호산라 너는 이제 앞으로 계속 조사를 받아야 한다. 네 처분은 그 이후 단장님께서 결정하시게 될 거야.”

“…….”

호산라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후 그가 다시 잠들면서 대화는 끝이 났다. 가일과 두일은 기절하듯 잠든 호산라를 보며 조금 안타까운 눈빛을 지었다.

“얼굴이 반쪽이네. 예전부터 엄청 허약했었는디… 저러다 죽는 거 아녀?”

“상처는 없는 것 같은데 왜 저리 아픈 거여?”

“힘을 너무 많이 써서 그래.”

칸나의 대답을 들은 가일과 두일이 찌푸린 얼굴로 작게 몸서리를 쳤다. 모르긴 몰라도 나한 때문이라 여기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사실이기도 하지.’

“저, 저기, 혹시. 다음에도 또 호산라를 보러 와도… 괜찮…으려나?”

“원한다면 조사 시간 외에는 만나러 와도 좋아. 다만 오늘처럼 동행자가 있기는 하겠지만.”

“으응… 알겠어.”

“쓸데없는 말은 안 할게.”

마병단에 그간 제법 있었다고, 그래도 눈치가 조금 늘어 다행이었다. 유더는 칸나에게 눈짓을 한 뒤 밖으로 먼저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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