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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557화 (557/805)

557화

칸나와 가케인, 그리고 나단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쥐를 추적해 잡아냈다. 마병단의 두 사람이야 훈련 때부터 계속 손발을 맞춰 왔기에 합이 잘 맞는 것도 당연했고, 거기에 손을 보탠 나단 주커만의 실력이 끝을 모를 만큼 월등하니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다.

복잡한 공간에서 칸나의 지시 하나만으로 작고 빠른 적을 죽이는 게 쉬울 리 없음에도 나단 주커만은 검 한 자루로 그것을 해냈다. 주변을 부수지 않고 정확하게 목표만 노려 꿰뚫는 움직임이 너무나 부드러워 그 모든 게 별것 아닌 듯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그는 이 궁의 호위 기사가 아님에도 내부 구조에 몹시 익숙했다. 그들이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반드시 지켜 내야 할 구역은 어디인지 분명히 알려 주는 목소리에서 더 이상 두 사람을 미숙하게 여기는 기색은 없었다.

그들은 대부분의 쥐를 처리한 뒤, 나단 주커만이 가장 중요한 구역이라 지목한 청동 사자상 뒤편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칸나가 남은 쥐들의 흔적을 읽는 사이 가케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더가 있는 곳은…… 괜찮겠죠?”

“공작님께 신호가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그럴 겁니다.”

나단 주커만은 그것이 키시아르 측에서 외부의 일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라 설명했다. 일을 그럭저럭 잘 해냈다 판정받았다고 생각하니 가케인은 부끄러우면서도 어깨가 한층 무거워졌다.

‘아마도 이 구역 뒤쪽 어딘가에 황제 폐하와 단장님, 유더가 있겠지…….’

제대로 된 상세 정보조차 주지 않고서 갑작스레 주어진 태양궁의 호위 임무. 그리고 그 임무에 전부터 더욱 깊게 관련되어 있었던 듯한 유더.

태양궁은 황제의 궁이다. 오늘의 임무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아도 그 뒤에 황제가 있으리란 건 당연히 짐작할 수 있었다. 적들이 바라는 것도 아마 황제가 있는 장소일 테고, 유더가 외부가 아닌 내부로 들어간 것도 아마 그곳이 더욱 중요하고 위험하다 판단해서일 터다.

오늘의 때를 맞추어 태양궁에 감히 이런 침입자들이 나타난 것만 보아도 황제와 단장이 내린 선택이 옳았음은 이미 확실하게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칸나. 남은 쥐를 쫓는 게 많이 어려워?”

“그 녀석들도 우리가 어딜 지키려고 하는지는 얼추 감을 잡은 것 같은데…… 이동 속도가 계속 빨라지고 있어서 그런지 잘 읽히지가 않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두 마리…… 정도인가.”

당연하지만 적도 놀고만 있지는 않을 터다. 쥐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추적을 피해 무언가를 찾아내려 애를 썼다. 다만 칸나가 읽어 내는 게 더 빨랐을 뿐이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

“으응.”

대답하면서도 내리깐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중얼거리는 칸나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면 다소 무서워했을 법한 모습이었지만 가케인은 오히려 기꺼웠다.

통하지 않던 능력이 한계를 꿰뚫고 마음껏 발휘되는 순간의 자유로움과 쾌감은 오직 같은 각성자만이 이해할 수 있다. 칸나가 지금 그 상태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단지 문제라면 능력을 발휘할 때마다 코를 틀어막은 손수건이 조금씩 더 붉어지고 있다는 사실인데, 정 문제가 될 만큼 힘들어 보인다면 그때는 그냥 기절시킬 생각이었다.

‘어차피 쥐 수색이야…… 칸나처럼 빠르게는 어렵겠지만 그림자를 가장 넓게 펼친 채로 훑으면 어떻게든 될 테니까.’

“이쪽으로 곧 올 거야!”

칸나가 고개를 들고 한쪽을 가리켰다. 가케인은 생각을 거두고 즉시 그림자를 펼쳤다. 나단 주커만이 눈 깜짝할 사이에 칸나가 가리킨 곳으로 다가가 막 어둠 속에서 기어 나오던 쥐를 꿰뚫었다. 쥐는 한 번 꿰뚫리고 나서도 도망치려 했으나, 가케인이 그림자로 막아 둔 틈새를 뚫지 못하고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발광하다 찢겼다.

“이어서 같은 방향으로 계속 뛰어! 틈을 주지 마! 한 마리 같지만 두 마리야!”

칸나가 일어나 달려 나갔다. 그들은 계단 아래에서 막 숨어 올라오려 했던 쥐를 찾아냈다. 얼마나 빠른지 그림자로 틈새를 막기 전에 빠져나가는 것이 지금을 위해 모든 힘을 아껴 두었나 싶을 지경이었다.

“가케인! 빨리!”

나단 주커만이 한 마리를 죽이는 사이 빠져나온 다른 한 마리가 청동 사자상 뒤로 넘어가기 전, 가케인은 있는 힘껏 힘을 짜내며 그림자를 펼쳤다.

‘늦……지 않았어!’

간신히 쥐의 꼬리를 붙잡은 새카만 그림자가 위로 솟구쳤다. 가케인은 즉시 그림자로 쥐를 휘감아 터트렸다.

‘됐다! 이걸로 끝이야.’

거기까지는 좋았다. 뒤를 이어 쥐의 몸에서 튀어나올 붉은빛 또한 없앨 만반의 준비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죽은 쥐의 몸에서 흘러나온 것은 붉은빛이 아니라, 새카만 피였다.

“……어?”

공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비산한 새카만 피가 복도를 적셨다. 그와 동시에 칸나 또한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려 소리쳤다.

“몬스터의 피!”

“뭐?!”

“쥐의 피가 아니야. 쥐에게 몬스터의 피를 담아 먹인 거야……! 처음부터 여기 이 위치를 노리고… 신호……? 신호의 의미라고? 그렇다면……!”

“뭔가가 오고 있군요.”

칸나의 시선이 어지럽게 움직이다 막 동상 옆 창문을 향해 가 박힌 순간, 나단 주커만 또한 같은 곳을 향하여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창을 통하여 들어오던 달빛이 스르르 검은 그림자에 가리기 시작했다. 구름이 끼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가케인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가 창밖에서 날개를 홰치며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저건…….’

막 알에서 깨어난 새처럼 쭈글거리는 털과 피부. 하지만 날개만은 철처럼 강인하고 컸다. 날개에 비해 몸은 몹시 작았는데, 그 몸통 전체에 새카만 눈이 박혀 제각기 멋대로 다른 곳을 향해 눈동자를 굴리는 중이었다.

어디든 볼 수 있을 듯한 수십 개의 눈동자가 저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 순간 본능적으로 소름이 끼쳤다. 저런 것이 살아 있는 멀쩡한 짐승일 리는 당연히 없다.

몬스터였다.

“저거…… 우리가 배운 몬스터 도감에서 본 적 있어. 가케인. 기억나?”

칸나가 낮게 중얼거렸다.

“어둠도, 벽도, 안개와 장애물도 상관없이 목표를 찾아내어 볼 수 있는 몬스터.”

단단한 날개깃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과 긴 발톱은 상대적으로 연약한 몸을 지키기에 알맞고, 몸에는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눈이 달려 목표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것은 몸집이 저보다 작은 몬스터를 먹기에, 굶주린 그것의 앞에서 같은 몬스터의 피 냄새를 풍기는 건 금기와도 같다.

훈련 시간에 배웠던 도감 속 그림이 눈앞의 몬스터와 합쳐졌다.

‘도감 속에서 본 것보다는 작지만…… 이걸 닭이나 비둘기와 비교하긴 그것들에게 불쌍하겠지.’

“어떻게 몬스터를 황궁에…….”

“중요한 건 그런 것보다, 저놈이 여기로 들어와 구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거야!”

칸나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내겐 읽혀. 저 몬스터의 뒤에 또 다른 적이 있어!”

“그러면 저 몬스터도 쥐나 다른 기사들처럼 조종받고 있다는 뜻입니까.”

나단 주커만의 질문에 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가 잠시 후 조금 저었다.

“다른 각성자의 존재가 읽히지만, 아까 같은 조종과는 달라요! 저 몬스터는 방금 피 냄새를 맡고 알에서 깨어났어요. 그리고 그 알을 여기에 가져다 두었을 적은…… 지금 저 몬스터의 눈으로 우릴 보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시선 속에서 정보가 읽혀요.”

“기어이 이 뒤에 무엇이 있는지 보아야겠다는 의도만큼은 그 무엇보다도 확실하군요.”

나단 주커만이 숨을 내쉬며 검을 들어 올렸다.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저 몬스터 말고도 다른 몬스터가 또 있겠습니까?”

“아뇨. 없을 거라 생각해요. 느껴지는 건… 확실히 저 녀석뿐이에요.”

“알겠습니다. 완드 경은 물러나 저 몬스터에게서 정보를 최대한 읽어 주십시오. 상대는 제가 하겠습니다.”

“위험합니다, 주커만 경. 돕겠습니다!”

가케인이 나섰으나, 나단 주커만은 고개를 저었다.

“완드 경과 청동 동상이 있는 구역을 완벽하게 지켜 내는 쪽이 공격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검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니 당신께는 그쪽을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독에 스치기라도 하면……!”

걱정하는 가케인을 돌아본 나단 주커만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 눈썹을 모았다. 잠시 후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다소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실 두 분께서 배우신 마병단의 몬스터 도감은, 저희 펠레타 기사단에서 상대한 놈들을 토대로 오랫동안 덧붙여지며 작성된 전투 기록에 기초한 것입니다. 저는 저 몬스터를 여러 번 상대해 보았습니다. 그러니 그렇게까지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빠르게 끝내려면 이쪽이 최선입니다.”

“네?”

“그러니 지금부터 보게 되실 일은…… 비밀로 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네? 뭘… 하신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몬스터가 창문을 깨고 날아들었다. 가케인은 반사적으로 그림자를 불러내어 깨진 유리 조각을 막고는 분신으로 칸나를 낚아채어 뛰었다.

“으윽!”

몸을 한 바퀴 굴러 조금이나마 안전한 곳으로 들어간 뒤, 가케인과 칸나는 간신히 머리를 감싸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몬스터의 발톱을 단신으로 막아낸 나단 주커만의 검에서 선명한 푸른 오러가 흘러나오는 믿기 어려운 모습을 목도했다.

“맙소사…….”

그건 그야말로 압도적인 싸움이었다.

나단 주커만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인간의 힘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한 푸른 빛이 몬스터의 몸을 베고 수십 개의 눈알을 터트렸다.

지미나 다른 검기 능력자들의 것과 모습은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결과물은 전혀 달랐다. 검만으로 산을 갈랐다는 옛 소드마스터들을 떠올리게 할 만한 압도적인 기운이 그 검 끝에 서려 있었다.

그가 검을 한 번 휘두르자 몬스터의 부서지지 않는 날개깃에 금이 갔다. 두 번 휘두르자 금이 간 틈으로 파고든 검기가 날개 한쪽을 찢어 냈다. 몬스터는 검은 피를 뿌리며 몸부림쳤으나 더 이상 날 수 없어 바닥에 처박혔다. 육중한 소리가 궁 전체를 울렸다.

독과 검은 피를 약간 뒤집어쓴 나단 주커만이 오러가 맺힌 검을 든 채 몬스터를 향하여 나아갔다.

완벽한 자세로 이루어진 한 번의 공격.

끔찍한 소리와 함께 몬스터의 약점이었던 붉은색 눈알이 터져나갔다. 검은색 눈알들과 강철 같은 깃 사이에 숨은 채 희번득대던 그것이 터져 나가는 순간 엄청난 폭음이 들려오며 몬스터의 몸이 폭발했다.

“조심해요!”

세 사람 모두가 그 힘의 반발력 때문에 나가떨어졌고, 복도의 창 전체가 터지며 샹들리에가 떨어졌다.

“으윽……!”

폭발의 여파가 모두 지나간 뒤, 가케인은 겨우 고개를 조금 들며 주변을 보았다. 다행히도 더 다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가케인이 폭발 직전 그림자를 한계까지 뽑아내어 모두를 보호한 덕이었다.

칸나를 꽉 끌어안은 그림자 분신은 그녀를 여전히 다치지 않도록 쿠션처럼 보호하는 중이었고, 나단 주커만의 앞에는 독액을 막아 낸 그림자의 벽이 굳건하게 흔들거렸다. 그가 오러가 사라진 검을 주워 들며 가케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감사합니다. 잘 막아 주셨군요.”

“아야야……. 가케인, 네 분신 아니었으면 머리가 깨졌겠어.”

‘……살았다.’

가케인은 그제야 제가 마지막 할 일까지 다 해냈음을 깨닫고 털썩 드러누웠다. 그의 눈에 비친 청동 사자상 뒤편은 아주 깨끗했다. 폭발로 인해 엉망이 된 이쪽과는 정반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곳만 같았다.

그것을 보며 가케인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럴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도, 도무지 이 성취감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들이 맡겨진 임무를 완전히 완수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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