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화
의식이 혼란하다. 눈앞이 새카만 밤처럼 어둡다가는 수없이 많은 별무리가 스쳐 지나가는 양 번쩍거렸다.
둔하게 느껴지는 감각 속에서 유더는 느릿느릿 아래로, 아래로 한없이 떨어져 갔다.
그는 이 감각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머리에는 남아 있지 않았지만 몸은 겪었던 경험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뜨겁고 혼곤한 열기. 언제나 단단하고 차갑던 이성에 짓눌려 고개 내밀 틈을 거의 찾지 못했던 본능이 그 달콤한 불꽃을 한껏 환영하며 반겼다. 지금은 그 무엇도 아닌 이 야만적인 감각들만이 몸의 주인이 되는 시간이었다.
마르고 건조했던 몸이 물기를 빨아들이며 한껏 부풀어 오르고, 열을 머금은 머리칼이 하느작거리며 예민한 피부를 간지럽힌다.
너는 이미 이 열기를 알고 있다. 피부 위로 올라앉은 불꽃이 유더의 귓가에 속삭였다.
기억해 봐.
기억해 보라고…….
부름에 이끌리듯, 낯설고도 익숙한 어떤 기억들이 유더의 시야 안쪽에서 스르르 떠올랐다.
‘…아…아……!’
어지러운 신음이 귓가를 찢었다. 잔뜩 거칠어져 쉬어 버린 음성이었으나 동시에 놀랄 만큼 듣는 이의 무언가를 자극하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뒤섞여 젖은 살과 살이 거칠게 쓸려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작게 끼걱거리는 나무의 비명이 그 신음을 뒤따르듯 숨 가쁘게 울리기를 반복했다.
멍하니 그 소리를 듣던 유더는 그 신음이 바로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이곳이 어디인지도.
이곳은 다름 아닌 마병단장실이었다. 그는 서류와 잉크병이 엉망으로 어질러진 너른 책상 위에 상체를 깔고 엎드려 있었다. 등 뒤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다리 사이를 찌르며 파고들 때마다 땅을 제대로 딛고 서지 못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제멋대로 휘청거렸다.
배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 너무나 커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마치 몽둥이가 배 안을 퍽퍽 때리며 날뛰는 듯한 기분이었다. 짓눌린 가슴이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데도 감각이 뒤섞여 녹아 버린 머리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흐릿한 시야에 단장실의 풍경이 비쳤다. 책상만큼이나 다른 곳들도 만만치 않게 이미 엉망이었다. 소파는 푹 꺼지고 찢겨 속을 드러냈고, 바닥에는 옷 조각들이 걸레처럼 나뒹굴었다. 한때 찻잔이었을지도 모를 도자기 조각들은 파편만 남긴 채 본래의 모습을 짐작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가득 메운 엄청난 향과 질척한 액체로 만들어진 길.
유더는 다량의 백탁과 온갖 액체로 젖어 든 흔적들이 소파에서부터 바닥, 책장, 그리고 마침내 제가 엎드려 있는 책상 근처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멍하니 훑으며 숨을 헐떡였다.
반쯤 메말라 가는 그 길의 흔적이 마치 비명처럼 느껴지는 건 어째서인가.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등 뒤에서 또다시 뜨거운 것이 퍽 치고 들어왔다. 지금까지는 그저 살 쓸리는 소리만 내던 그것이 들어와서는 안 될 것 같은 곳까지 너무나 깊이 들어온 바람에 아랫배가 불룩하게 부풀고, 마침내 엉덩잇살과 맞닿으며 철썩 소리가 났다.
‘……!’
말도 안 되는 깊은 삽입에 입술이 또다시 저절로 벌어져 소리를 토했다.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어떻게 이런 감각을 살아 있는 채로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이대로 죽는 게 아니라면 이 감각을 도무지 설명할 수 없다.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의미 없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다가는 폭발했다.
‘흐으윽……!’
솜털 끝까지 쭈뼛해지는 비명. 힘이 들어간 팔에 근육이 섰다. 곱아든 손가락이 책상을 부드득 긁다가는 또다시 쑥 빠져나가는 움직임에 밀려 힘을 잃었다.
유더는 그 이상 주변을 돌아볼 수 없었다. 한번 끝까지 파고든 것이 반복하여 열린 문을 뚫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배 속이 퍽퍽 뚫릴 때마다 눈앞이 연신 번쩍거리며 제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미쳐 날뛰는 압박감, 닫혀 있는 게 당연했던 내부가 벌어지는 날카로운 고통. 그러나 그 사이에는 분명 처음 겪는 다른 감각도 존재했다. 그건 바로 쾌감이었다.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피어난 쾌감은 예상할 수 없는 순간마다 몸과 머리를 쥐어짰다. 그것이 급작스레 닥쳐올 때마다 유더는 충격으로 몸부림쳤다. 난생처음 겪는 엄청난 감각에 얼얼하게 수그러든 이성을 본능이 능숙하게 제압하고는 앞으로 나섰다.
그것은 물 만난 고기처럼 몸을 움직여 저를 범하는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충격을 느낄 때마다 배 속이 꽉꽉 조여들고 다리 사이에서 흔들대는 성기가 물을 뱉었다. 배 속 가장 깊은 곳을 거칠게 밀고 들어올 침입자를 피하고 싶은데도 본능은 오히려 엉덩이를 한껏 거칠게 뒤로 밀어 비비려 애를 썼다.
하체를 등 뒤로 서툴게 밀어붙이면서 유더는 제 몸속으로 파고든 것이 배 속을 넘어 그보다 더 위로, 훨씬 더 위로 점점 올라오는 것 같다고 느꼈다. 심장을 넘어 목과 뇌까지 꿰뚫리는 것 같은 감각은 폭력에 가까웠다.
그가 엉덩이를 밀어붙이며 헐떡이자 등 뒤의 열기가 더욱 가까워졌다. 유더보다 더욱 뜨겁게 헐떡이는 숨결이 목덜미 가까이에서 느껴졌다. 등에 완전히 맞닿은 피부가 쩍쩍 달라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할 때마다 쾌감도, 고통도 아닌 더 이상한 기분이 찾아들었다.
이제 사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교미하는 짐승에 가까운 소리를 흘리며 그는 감각을 이기지 못해 눈을 감고 떨었다. 엉망으로 번진 타액이 악문 잇새로 흘러 배고픈 이처럼 입술과 턱을 적셨다.
‘아, 아, 아, 흐, 으……!’
또다시 끝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벌써 몇 번이나 반복했음에도 끝은 매번 똑같은 두려움을 선사했다.
어딘가 높은 곳으로 한없이 몸이 끌려가며 고조되는 그 기분. 가고 싶지 않은데도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기대하듯 배 속이 마구 움찔거렸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토록 고통스럽고 두려운데 어째서 몸은 그 반대로 움직인단 말인가.
마구 흔들리는 몸을 견디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유더는 허리와 고개를 한껏 젖혔다. 그가 발버둥 치며 머리를 젓기 시작하자 등 뒤에 맞닿아 있던 이가 손을 뻗어 배와 가슴을 받쳐 끌어당겼다. 여유 없는 손길이었으나 몸을 맡길 수 있을 만큼은 단단한 팔이었다.
하얀 장갑이 반쯤 벗겨진 길고 아름다운 손.
저와 마찬가지로 욕정에 잠겨 있었으나 그럼에도 고통스러워하는 것처럼 떨리는 그 손을 내려다본 순간, 유더는 벼락같이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이성과 생각이 쾌락과 유리된 어딘가에서 잠시 눈을 떴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고통에 목이 졸리는 듯한 감각이 찾아들었다.
그건 스스로도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서툴고 풋풋했던 감정이 죽어 가는 고통이었다. 무엇을 바랐는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이런 건 바라지 않았다는 건 알았기에 내지르는 슬픔의 신음이었다.
끔찍할 만큼 어마어마한 쾌감이 파고들었지만 유더의 참담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는 오히려 더욱 어두워졌다. 그가 힘없이 몸을 늘어뜨린 채 흔들리기만 하자 잠시 후 그를 받쳐 안고 있던 사내가 몸을 숙여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거칠게 몸을 뒤흔들면서도 느리게 맞닿은 그 입술이 유더의 얼굴에 얼룩진 땀방울을, 타액을, 그리고 눈가 아래로 떨어지는 눈물까지 빨아 마셨다.
어울리지 않게도 조심스러운, 그리고 힘겨운 그 입술의 움직임에 유더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심장이 알 수 없이 욱신거리며 이어진 몸 사이로 흐릿하게 빛이 고였다. 그러나 두 사람 중 그 사실을 알아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닿은 채 흔들리던 몸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꿰뚫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번쩍번쩍 빛나고, 마침내 몸속 가장 깊은 곳이 꿰뚫리는 소리를 듣는 듯한 착각과 함께 유더는 힘을 잃고 제 몸을 온전히 상대에게 내밀어 맡겼다.
그건 제 몸으로 상대를 완전히 삼켜 버리는 듯한 감각이었다.
모든 것이 죽고 흘러 뒤엉키는 아득한 죽음이 이곳에 있었다.
그런데도, 모든 것이 지워져 사라지는 감각 속에서도 어떤 것만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상대를 향하여 녹아 흘러갔다. 그리고 유더를 끌어안은 사내 쪽에서도 죽지 않고 남아 녹아내린 무언가가 유더에게로 흘러왔다.
유더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향하여 몸을 열었다.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갈증이 그것을 받아들인 순간 조금 차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허기에 찬 입술을 열어 헐떡이자 상대가 입을 맞추며 자연스럽게 재차 배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도 유더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는 듯 이전보다 훨씬 허기에 찬 움직임이었다.
머리가 멍해졌다. 더 뒤엉키고 싶다는 생각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책상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반쯤 추락해 의자에 몸을 걸쳤다.
그야말로 짐승 같은 행위였으나 거기에 더 이상 고통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오는 대로 신음을 내지르던 유더는 문득 멀지 않은 곳에서 거친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들었다. 아마 상대도 들었을 터였다. 하지만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그 기척을 피해 움직이지 않았다. 수치도, 이성도 사라진 세상에서 타인의 접근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으므로.
잠시 후 다급히 문이 열렸다. 엉망이 된 방 안을 훑은 뒤 그들에게 고정된 나단 주커만의 눈빛이 황망하게 가라앉는 것을 마지막으로, 유더의 의식은 또다시 먼 곳을 향해 가라앉았다…….
다음에 유더가 재차 본 것은 이전에 본 적이 있는 어떤 궁의 침실이었다. 키시아르가 어린 시절 머물렀던 작은 궁의 침실에 누운 자기 자신의 육체가 미친 듯 몸부림치는 광경을, 그는 어딘지 모르게 먼 기분으로 지켜보았다.
‘열이 너무 올랐습니다. 진통제와 해열제를 세 번이나 먹였는데도 가라앉질 않네요. 대체 왜 이런 건지…….’
‘2황자님…… 아니, 공작님께서 아직 오지 않으셨으니 알 도리가 없군. 일단 계속 땀을 닦아 내야 할 것 같으니 물과 수건을 더 가져오게!’
이건 이전 생이 아니었다. 그는 제 기억 속에서 거의 사라졌던 이번 생의 2성 발현 날, 함께 찾아왔던 발정기의 순간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이 든 시종들이 다급히 움직이며 유더의 얼굴과 몸을 닦아냈다. 그러나 고통의 신음을 작게 흘리며 몸부림치는 육체는 가라앉을 줄 모르고 계속해서 덜컥대며 움직였다.
비명을 지르지 않기에 오히려 그가 겪고 있을 더욱 끔찍한 고통을 상상하게 만드는 움직임이었다. 그것을 본 시종 한 사람이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거야 원, 보이지 않는 고신이라도 받는 것 같군. 이가 부서질 것 같으니 천이라도 물려야겠어.’
뼈가 전부 부서지고 다시 재조립되는 듯했던 2성 발현의 고통을 유더는 희미하게 떠올렸다.
시종들에게는 느껴지지 않았겠지만, 유더에게는 침실 내부를 가득 메운 짙은 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처음 태어나 단 한 번도 갈무리되지 못한 향이 주인의 주변을 마음대로 휘저으며 형태를 갖춰 가는 중이었다.
‘……상황이 어떤가.’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키시아르의 목소리였다.
유더는 아름다운 예복을 걸친 사내가 온몸을 긴장시킨 채 침실 너머를 응시하는 모습을 보았다. 키시아르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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