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7화
‘이거 완전…….’
개판이군.
그것이 유더가 샬로인의 마병단 지부 앞에 이르렀을 때 처음으로 한 생각이었다.
“샬로인을 해칠 위험한 놈들은 당장 물러가라!”
“물러가라!”
“건물 임대와 관련한 신고가…! 소음이……!”
“마병단이란 곳은 책임자도 없소? 이런 식으로 무슨 일을 하겠다고! 다른 곳은 몰라도 이 남부에서는 이딴 식으로 호락호락하게 할 수 없을 것이오!”
이놈 저놈 모조리 몰려와 지부 건물 앞에서 진을 치고 난리를 벌이는 중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남부 곳곳에서 몰려온 마법사들, 주변에 거주하는 자들, 거기에 더해 짜증이 가득한 관리까지.
멀쩡한 자를 찾기가 힘들 만큼 공간을 가득 메워 정상적으로 시험을 응시하러 온 각성자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반대가 심각하다고 듣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더 개판이다. 지부에 있을 단원들이 용케도 잘 버텼군.’
“흐음. 마병단 본부 건물을 세우려고 황궁기사단 부지에 첫 삽을 떴을 때보다도 지금이 더 시끄러운 것 같은데.”
유더가 조용히 몰려든 사람들의 면면을 파악하는 사이, 키시아르가 팔짱을 낀 채 시위를 벌이는 자들을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마병단이 정말 많이 크긴 했단 느낌이야. 그렇지 않나? 아주 감개무량해.”
“……그러십니까?”
“그럼. 사실 이제야 이 광경을 마주한 게 오히려 늦었지.”
동부는 이미 안면이 있는 제클리스의 영지 쪽에 자리를 잡았기에 주변 영지에서 아니꼬워하긴 했어도 직접적으로 마주치지 않았고, 서부는 바로 직전에 싹 물갈이를 해 둔 타이누에 말뚝을 미리 박아 둔 상태였던지라 지부 건설을 반대할 자가 없었다.
하지만 남부는 아니다. 직접적인 반대의 물결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완전히 새로운 곳이었다.
그럼에도 진심으로 흥미로워하는 사내의 얼굴을 보고서야 유더의 살짝 모였던 미간이 슥 풀렸다.
“유더! 유더 맞지?”
그때, 시끄러운 사람 틈새를 뚫고 반가움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곰처럼 덩치가 좋은 사내가 터질 듯 꽉 끼는 단복 위에 긴 후드를 걸쳐 입고서 웃는 얼굴로 달려왔다.
“쿠르가.”
그는 유더가 마병단에 막 입단했을 때 방을 함께 썼던 단원 중 한 명이었다. 가케인이나 칸나처럼 특별히 깊은 친분을 쌓은 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친분이 아주 없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니었다.
입단 동기들과 남보다도 못하게 지냈던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친근한 얼굴로 다가온 쿠르가가 유더의 어깨를 펑펑 두드리고는 호쾌하게 포옹을 나누었다.
“네가 올 때까지 우리 모두 정말 오래 참았지! 긴 기다림이었어. 예정보다 좀 늦게 되었다는 단장님의 서신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아. 그러고 보니 단장님은 어디 계셔?”
“여기 있네.”
“억!”
바로 뒤에서 불쑥 들려온 목소리를 듣고 놀란 쿠르가가 뒤로 넘어갈 뻔했다가는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아니, 적당히 변장하고 오실 거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모습은 대체…….”
“마도구를 썼을 뿐이니 너무 놀라지 말게.”
“아…… 아아! 그렇군요. 그런 방법이.”
여태 마법으로 변용한 키시아르의 모습을 마주한 다른 지부의 단원들도 처음엔 제각기 놀라기는 했다. 하지만 쿠르가 정도는 아니었다.
‘수도에 있을 때도 다른 단원들에 비해 뭔가 한 박자씩 느리긴 했었지.’
하지만 쿠르가의 장점은 그 곰처럼 묵직하고 느린 모습에서 오는 무게감이다. 그는 여간해서는 외부의 자극에 흔들리지 않는, 좋게 말하자면 뚝심 있고 나쁘게 말하자면 욕을 들어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무신경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유더는 그가 이번에 남부 지부에 자원했을 때 그 성격 하나를 믿고 지부의 임시 총책임자로 추천했다.
‘저 모습을 보아하니 역시 그건 좋은 선택이었어.’
쿠르가는 주변에서 시위를 벌여 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욕설도, 소음도 그의 눈과 귀에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는 듯했다.
가장 큰 반대가 예상된 지역에 배치하기에는 그야말로 최고의 인선이었다.
“저 시위는 지부가 세워질 때부터 계속 있었나?”
“네. 하지만 인원이 이렇게 많아진 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단장님의 명대로 저런 소리에 일절 반응하지 않고 계속 모집 건만 처리했더니 날이 갈수록 사람이 많아지다가는 저리되더군요.”
키시아르는 남부에서 지부 건설에 반대가 극심하다는 보고를 처음 받았을 때부터 지부에 있는 단원들에게 ‘본부에서 보내준 공식적인 대응 매뉴얼’외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쿠르가와 남부로 파견된 단원들은 그 명을 정말로 너무나 잘 지켰다. 그 누가 자극하려 해도 절대 화를 내지 않고, 키시아르가 보내 준 공식적인 대응 답변 이외의 말은 입에 담지 않으며 꿋꿋하게 제 할 일만 하는 것.
그건 아무나 지키기 힘들지만 할 수만 있다면 적을 최고로 열받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오늘의 이 개판이란 거군.’
이제 보니 시위하는 자들이 유난히도 악에 받쳐 핏발이 선 이유가 있었다. 고작 평민 출신이라 업신여기던 이들에게 이런 개무시를 받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수고했다. 우리가 올 때까지 잘 참았어.”
“음? 아니, 뭐. 그게 힘든 일도 아니고. 다른 녀석들은 이쯤 되니 좀 피곤하다고 하긴 했지만 난 괜찮았어. 네가 시켰던 여름 극한 훈련 때에 비하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지.”
쿠르가가 씩 웃었다.
“그래서, 일단 들어가서 쉰 다음에 일을 시작할 거야?”
“아니.”
유더의 단호한 답변에 쿠르가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면?”
“일단 여기 있는 자들 중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찾아왔던 놈들을 세 명만 골라 줬으면 하는데.”
“……으음?”
잠시 후.
지원서를 대신 작성해 주는 마병단원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입단 지원서를 적고 있던 나그란의 별 각성자들은 별안간 어디선가 울려 퍼진 쿵 하는 진동에 깜짝 놀라 제각기 시선을 마주했다.
“힉. 무, 뭐야?!”
“지진은 아니지?”
“저길 봐! 문이 열린다!”
누군가 몹시 밝은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고개를 돌린 각성자들은 여태 꽉 닫혀 있던 지부 정문이 스르르 열리는 모습을 보았다. 겨울임에도 더없이 맑고 눈부신 샬로인의 햇살이 문틈 사이로 흘러 들어오며 누군가의 그림자가 역광으로 보였다.
처음에는 드디어 시위하던 이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온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밝은 햇빛이 전혀 닿지 않는 듯 어두운 검은 머리칼의 남자가 조용히, 그러나 거침없는 보폭으로 발을 내딛어 지부 내로 들어섰다.
그가 단복을 입지 않고 그저 새카만 여행자의 옷만 걸친 탓에 지원을 하러 온 이들은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던 기존 단원들은 달랐다.
“와! 드디어 왔구나!”
“이제 우리도 해방이야!”
몇 명의 단원들이 일제히 그 남자에게 달려가 환호했다. 각성자들의 지원서 접수를 도와주던 단원 또한 순식간에 든든한 미소를 짓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뭐, 뭐야…… 저 사람이 누구인데?”
어리둥절해진 나그란의 별 각성자들이 중얼대는 사이, 남자의 뒤로 또 다른 이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두 명은 키가 크긴 해도 인상이 묘하게 흐릿해 잘 인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검은 머리칼의 사내가 고개를 돌려 “들어오시죠.”라고 말한 다음 들어선 사람들은 달랐다.
방금까지만 해도 앞에서 열심히 시위를 하고 있던 자들이 아주 창백한 얼굴로 발을 끌며 지부 내로 들어섰다. 검은 머리칼의 사내를 흘끔대는 그들의 얼굴은 두려움과 분노가 반쯤 뒤범벅이 된 상태였다.
“자, 이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만한 곳에 들어섰으니 아까의 대화를 계속해 볼까요.”
검은 머리칼의 남자가 고저 없이 느릿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그들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시위를 하던 이들의 얼굴이 푹 일그러졌으나 그들은 남자에게 반대의 뜻을 밝히지는 않았다.
‘대체 이게 무슨…….’
입을 벌린 채 그 모습을 보던 나그란의 별 각성자들은 열린 문 너머로 방금까지 떠들썩하게 들려오던 시위 소리가 뚝 그쳤다는 사실을 그제야 눈치챘다. 사람이 아직 남아 있기는 한 듯한데도 이렇게나 조용해졌다니.
도대체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모두의 얼굴 위로 떠오른 의문 속에서, 일행을 이끌어 여기까지 온 실질적인 책임자인 다곤이 용기를 내어 접수 담당 마병단원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저 사람은 누굽니까? 혹시 마병단장님이라도 됩니까? 저희가 남부는 남부인데 사막에 가까운 좀 먼 곳에서 와서요…….”
혹시나 수상하게 볼까 싶어 제풀에 찔린 탓에 말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말하긴 했지만 다행히 단원은 그리 신경 쓰지 않고 웃었다.
“네? 하하.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접수하러 온 분들은 모르시겠군요. 저 사람은…….”
“……사막?”
그때, 검은 머리칼의 남자가 멀리서 이쪽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돌렸다.
머리칼 너머로 무섭도록 새카만 눈동자를 정통으로 마주한 순간, 다곤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