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730화 (730/805)

730화

“마병단! 몬스터를 상대하느라 어렵겠지만 집중하여 내 말을 듣도록. 상황은 얼추 파악하였으니 명을 전달한다.”

푸른 기운을 뿜어 올린 검을 떨어낸 키시아르가 모두를 향하여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별달리 크게 높이지 않고서도 모두를 단번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 힘은 여과 없이 발휘되어 당혹과 혼란 속에 사로잡혀 있던 마병단원들의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몬스터가 발생할 때 균열도 함께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 이 당연한 이치에 새삼스레 놀라는 이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혹 그런 이가 여기 있나?”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악을 지르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 와중에도 몬스터를 막아 내느라 고생 중인 이들의 주변에서 몬스터가 내지르는 괴성과 쿵쿵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키시아르의 얼굴은 다급함 따위 없는 여유로운 웃음으로 가득했다. 그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을 이유 없이 안심하도록 만들어 줄 만한 미소였다.

“좋아. 현재 파악한 바로 몬스터는 여기 있는 15마리가 전부다. 아, 생각해 보니 방금 14마리가 되었던가? 저길 보니 곧 13마리가 될 것 같고.”

“아… 하하…….”

위트 있는 농담 덕에 긴장으로 파랗게 질려 있던 합격자들과 제국군들마저 어설픈 웃음을 머금었다.

“아무튼 더욱 다행한 일은 균열이 이제 사라졌으니 몬스터가 이 이상 나타날 일은 없을 것이며 그것들이 나타난 범위가 현재 우리가 포위 중인 땅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덩치가 커서 시야를 빠져나갈 염려도 없으니 숫자를 더 셀 필요는 없지.”

그게 무슨 뜻인지는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여기 있는 놈들만 전부 처리한다면 일반인의 피해 없이 일을 마무리하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희망적인 말에 모든 이들의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당혹 대신 침착함과 투지로 가득 차기 시작하는 눈빛들을 보며 키시아르가 손을 들었다.

“그러니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현 포위망을 깨트리지 않고 유지하는 데 총력을 다하며 저 몬스터들을 처리한다. 할 수 있겠는가?”

“예!”

이곳에 있는 마병단원들의 숫자는 수도의 본부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었다. 남부 지부로 파견된 이들만 모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을 이끌던 쿠르가조차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황인데도 마병단원들의 얼굴은 단단하기만 했다.

‘그러고 보면 쿠르가가 아직도 안 온 것도 좀 이상하긴 하군. 본래대로라면 우리보다 먼저 돌아와 마병단원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5명을 뽑아 헤른 2공자의 죽음과 관련된 조사를 갔어야 했는데… 어쩌면 돌아오던 도중 그쪽에도 무슨 일이 생겼을 확률이 높겠어.’

간도 크게 펠레타 공작이 탄 마차를 노릴 마음을 먹었던 놈들이다. 쿠르가와 헤른 기사들 쪽에도 무슨 일이 생겼다 한들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키시아르 또한 이 정도 파악은 분명 했을 테니 돌아와서 쿠르가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린 즉시 무언가 수를 써 두었으리라.

‘헤른의 기사들은 몰라도 쿠르가가 그냥 당해 줄 만큼 실력 없는 녀석은 아니야. 별일 없을 거라 믿는 수밖에.’

그가 마병단원들의 면면을 확인함과 동시에 키시아르 또한 다시 검을 높이 들었다.

“좋네. 그러면 본격적으로 섬멸을 시작하지. 마병단, 전원 유인전 대응 형태로! 중앙부는 나와 유더가 맡는다.”

유인전 대응 형태.

몬스터를 막아 내던 마병단원들의 눈빛이 번득이며 빛났다.

그들이 마병단에 들어온 뒤 배운 건 실전 훈련만이 아니었다. 키시아르는 그들에게 글을 읽고 쓰는 법을, 그리고 기사와 군인들이 배우는 온갖 이론적 교육에 이어 몬스터의 종류와 그 대응법까지 가르쳤다.

여기서 몬스터의 종류와 대응법은 키시아르를 따르는 펠레타 기사단이 그간 몸으로 직접 고생하며 기록해 온 정보에 의거한 수업이었기에 아주 유용했다. 처음에 막 마병단에 입단했을 때만 해도 왜 이런 것까지 배워야 하느냐며 고통스러워했던 이들도 서부에서 그 효용을 체험하고 나서는 입을 다물었을 정도였다.

그 수업에서는 몬스터와 싸울 때 갖추면 유리한 대응 형태를 여러 가지 소개했는데, 키시아르가 지시한 유인전 대응 형태도 그중 하나였다.

‘주로 움직임이 둔한 대형 몬스터가 많이 나타났을 때 사용하기 좋은 방식이지. 가장 강한 힘을 지닌 소수정예가 몬스터를 한 마리씩 상대하고, 나머지는 그동안 흩어져 나머지 몬스터를 유인하며 시간을 끈다.’

무작정 시간을 끌거나 유인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소수정예가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 외에는 다른 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게끔 나머지 인원들이 정확히 손발을 맞추어 움직이는 것이 이 방식의 핵심이었다.

손발만 맞으면 현재 상황에서 최고의 방식이 되겠지만 단점도 당연히 존재한다. 나머지 인원들이 제대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혹은 몬스터를 제때 보내 주지 못하거나 소수정예 측에서 시간을 맞춰 빨리 처리하지 못하면 모두가 단숨에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즉 이건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믿으며 동시에 무슨 일이 있어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고서 역할을 다해야만 효과가 발휘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키시아르는 중앙에서 오직 몬스터 상대에만 집중해야 하는 그 소수정예 역할을 자신과 유더가 맡겠다고 선언했다. 유더의 약점이 몬스터라는 걸 알면서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선택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유더가 낮게 묻자 키시아르가 반문했다.

“뭐가 말인가?”

“당연히 저를 뒤로 물리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혹 유더를 곁에 달고 키시아르 혼자 모든 공격을 홀로 해치울 심산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키시아르는 무슨 말이냐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라고 했다면 그 명에 순순히 따를 생각은 있었고?”

“아뇨.”

“그렇지?”

뻔뻔한 얼굴로 씩 웃은 사내가 진지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저 몬스터에 대해 파악하면서 내가 검을 쓸 틈만 벌어 주게. 그거면 충분해.”

“…….”

“그리고 그건 누구보다도 내 보좌가 잘할 수 있을 일이기도 하지. 그렇지 않나?”

“……예.”

유더의 힘은 현재 다소 소진된 상태다. 그 남은 힘을 쥐어짠다 해도 몬스터에게 거의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틈을 벌어주는 정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적의 시선을 끌고 아군을 위한 틈새를 만들어 내는 일에는 힘이 아니라 경험이 더욱 중요했다. 그리고 여기서 직접 몬스터를 상대해 본 경험이 가장 많은 이를 꼽자면 당연히도 유더 아일이었다.

다른 이라면 몰라도 유더가 벌어 준 틈을 이용할 사람이 키시아르 라 오르라면 충분히 원하는 바를 이뤄 낼 수 있으리라.

저 대신 공격할 이가 나선다는데 잘 해치울 수 있을지 하나도 걱정되지 않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좋아.’

싸우다 보면 나단 주커만도 돌아올 테고, 그러면 여유가 더 생길 것이다. 유더는 굳게 마음을 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키시아르가 눈을 휘어 웃었다. 그가 움켜쥔 신검의 손잡이에 감긴 끈을 잡아당기자 둘둘 감겨 있던 천이 일시에 풀려나갔다. 허름해 보였던 껍데기를 벗은 신검 오르가 드디어 본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대형을 맞춰! 단장님과 유더에게 한 놈씩 유인해서 보내!”

유더의 약점을 모를 다른 단원들은 이미 망설임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으로 상대할 놈을 몰고 온 이는 아까 유더와 함께 남국인 상인을 상대했던 예르긴 쉴러였다.

그녀는 몸 곳곳에 약간의 상처를 입은 채로도 여전히 능숙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바람을 사용하여 몬스터를 끌고 오다가 키시아르의 검을 보고 눈을 빛냈다.

“그 검……! 설마 신검입니까?! 와……아! 어이쿠.”

“조심해.”

유더는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몬스터의 공격에 잠시 한눈을 팔 뻔한 그녀를 위해 땅의 힘을 가볍게 사용했다. 가볍게 작은 부분을 움푹 파이게 만들기만 했음에도 몬스터의 거대한 몸이 기우뚱거리며 공격이 흔들렸다.

바람의 힘으로 재주넘기를 하여 훌쩍 몸을 피한 예르긴이 유더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 유더! 단장님께서 소드마스터이신 건지, 아니면 지미 같은 능력도 있으셨던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신검으로 몬스터를 잡는 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다니, 정말 기분이 좋네요! 자, 그럼 첫 번째 한 마리 잘 부탁드립니다!”

여전히 까불거림을 잃지 않은 그녀가 그 말만 남기고 뒤로 피하자마자 키시아르가 답례처럼 미소를 지으며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도록 하지.”

신검 오르가 머금은 예기가 순식간에 푸른 빛으로 뒤덮이며 주인의 뜻에 따라 날카로운 공격을 발했다.

첫 번째 몬스터가 사지와 비슷한 신체 부위를 잃고 키시아르의 손에 완전히 꿰뚫릴 때까지는 세 번의 공격이 필요했다.

“우와아아!”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몬스터가 쓰러지자 멀리서 다른 이들이 환호를 질렀다. 이 방식이 충분히 통했다는 환희가, 그리고 할 수 있다는 희망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이어서 두 번째 몬스터와 세 번째 몬스터도 마병단원들의 유인에 이끌려 그들의 앞에 당도하기 시작했다. 유더는 자신의 검과 약간의 힘을 번갈아 이용하며 몬스터들의 발악이 키시아르에게 닿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막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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