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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732화 (732/805)

732화

두 사람의 시선이 일순 마주쳤다.

스쳐 지나간 시선은 아주 짧았으나 유더는 그 순간 이 공격의 결과를 확신했다.

‘제대로 베었어. 성공할 수밖에 없지.’

푸른 오러에 휘감긴 검이 스쳐 지나간 뒤, 몬스터는 유더가 남긴 낙인을 중심으로 정확히 네 조각이 난 채 찢겨 무너졌다. 스스로 만들어 낸 사체를 뛰어넘어 부드럽게 착지한 키시아르의 겉옷 자락이 훅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전투 도중 체액이 묻은 탓에 이전의 깨끗한 모습은 사라졌으나 그런 것 따위가 사내의 고요하고 압도적인 강함을 더럽히지는 못했다.

잠시 후 짧게 숨을 내쉬며 검을 한번 가볍게 휘둘러 체액을 떨어낸 키시아르가 유더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

사전에 약속한 것도 아닌데 그린 듯이 완벽하게 성공해 버린 이 합동 공격을 본 이들은 바삐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유더 또한 마찬가지였다.

방금 키시아르의 움직임은 마치 제 뜻을 정확하게 읽고 움직인 것만 같았다. 아니, 분명 그랬다. 그 부분을 공격해야 한다고 딱히 말하지 않았음에도 완벽한 순간에 완벽한 때를 노려 공격을 마무리한 사내와 스쳐 지나가는 순간 느꼈던 오싹오싹한 감각이 아직도 전신에 저릿하게 남아 있었다.

그건 어쩌면 쾌감이라고 할 만도 한 그런 감각이었다.

그러나 키시아르와 마주 보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극도로 짧았다. 대화 한 번 나누기도 전에 다음으로 처리해야 할 몬스터를 끌고 온 마병단원이 찰과상투성이가 된 손을 흔들며 주의를 환기했다.

“다음!”

유더는 곧바로 몸을 날리며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다음 몬스터에 낙인을 찍고, 또 그다음 몬스터에게 낙인을 찍으면서도 전신을 지배하는 듯한 짜릿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검은 머리칼의 유더 아일이 제대로 파악조차 어려운 여러 속성을 교대로 스쳐 사용하며 몬스터의 빈틈을 만들어 낙인을 찍으면, 키시아르가 신호 하나 없이 정확하게 해당 부분을 공격하여 몬스터를 사살한다.

낙인, 사살. 그리고 또 낙인, 사살.

다음 몬스터를 끌고 오던 마병단원들이 잠시 흐트러지거나, 혹은 몬스터가 예상을 벗어난 경로로 움직이는 등의 위기가 닥쳐도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신기에 가까운 광경은 어쩔 도리 없이 시선을 끌었다. 포위망을 유지 중이던 이들도, 그리고 남부 지부 건물 지대 쪽에서 감시를 받고 있던 나그란의 별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마스터라니.”

손이 묶인 채 앉아 있던 세라는 옆에서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녀를 비롯한 나그란의 별 각성자들을 붙잡아 감시하고 있던 제국군 특수부대원이 시선을 전장에 둔 채 경악과 감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에. 내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군. 펠레타 공작께서 소드마스터셨다니…….”

“마스터가 확실한 건가? 검을 쓰면 오러와 비슷한 힘이 나오는 능력자는 우리 중에도 있잖아.”

곁에 있던 다른 제국군이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 역시도 몬스터를 상대로 조금도 밀리지 않은 채 압도적인 무위를 보이는 키시아르에게서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 그 녀석이 내 가장 친한 동기야. 그러니까 더욱 잘 알지. 저건 진짜야. 각성자의 힘으로 나오는 것과는 완전히 달라. 너도 보면 느껴지지 않아?”

반문을 들은 제국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질문에 대한 동의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어이없는 상황이지만 그 말을 듣고 있는 세라와 나그란의 별들도 마찬가지였다.

마병단장이자 펠레타 공작인 키시아르 라 오르가 각성자라는 건 누구나 안다. 그가 최근 신검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는 소식도 마찬가지로 널리 알려진 덕에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그가 저리 엄청난 실력을 지닌 검사이자 완벽한 오러를 발할 수 있는 소드마스터란 건 꿈에서도 상상치 못했다. 보고 있는데도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펠레타 공작의 움직임은 칼질 좀 한답시고 검을 들고 설치는 용병들이나, 그저 그런 기사 나으리들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마치 날 때부터 검과 하나였던 사람처럼 보였다.

세라와 그녀의 동료들이 제대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잡혀 버렸던 강한 마병단원들조차 고전 중인 몬스터를 홀로 베어 나가면서도 그의 검 끝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화려한 기교도, 주저하는 망설임도 없이 그저 베고, 또 베어 나갈 뿐.

그의 검이 닿으면 무엇이든 깨끗하게 잘렸다. 다른 이들의 공격 앞에서는 잘리긴커녕 박히는 수준의 공격조차 제대로 허용하지 않던 단단한 껍질도, 부드러워 보이면서도 끈적하게 아군을 잡아채던 내부도 키시아르의 공격 앞에서는 단 한 번을 버티지 못했다.

벤다는 행위.

그 단순함이야말로 검이란 무기의 극의이자 정체성임을 이토록 선명하게 느낀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두려웠다.

너무나 별것 아닌 듯 믿을 수 없는 일을 해내고 있는 저 존재가, 그 속에 깃든 끝을 모를 무언가가 보면 볼수록 아연하게 두려워 참을 수가 없었다.

오르 제국민이라면 누구나 어릴 때 신검의 주인에 대한 옛이야기 한 자락씩은 들으며 자라게 마련이다. 신검 오르에게 선택받은 역대 주인들은 대부분 소드마스터였고, 그 검에 어울리는 실력과 격을 갖추었던 것으로 유명했다.

지금의 저 모습을 보면서 그가 신검의 새로운 주인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터였다.

그녀는 두려움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몬스터가 별안간 나타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조차 그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제압해 여기로 데려온 적들의 실력은 그들보다 훨씬 대단했다. 그토록 발악을 했음에도 세라 자신을 포함한 동료들 중 부상자는 있어도 사망자는 없다는 사실만 보아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적을 죽이는 것보다 멀쩡한 채로 사로잡는 게 두 배는 더 힘들다는 건 바보라도 아는 일이므로.

하지만 그녀를 더욱 좌절하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제국군들 사이에 섞여 그들을 감시 중인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우리 거점에 있다 사라졌던 이들이 대체 왜 여기에……!’

세라는 남부 거점에서 도망친 이들을 신경 쓸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었다. 만약 현자가 그들을 다시 데리고 오라고 말했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연락을 주고받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러기 어려웠다.

굳이 뒤쫓아 책임을 더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남국인 상인들과 함께 마을을 안정시키는 일에만 집중하려 했는데, 그것이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믿었던 남국인 상인들은 너무나 쉽게 죽어 버리고, 자신을 믿고 따라온 동료들은 모욕적으로 붙잡혔다. 같이 붙잡힌 중부 거점의 각성자들은 세라를 비롯한 남부 거점의 각성자들을 현자의 뜻을 어기고 제멋대로 나선 배신자들이라 판단한 듯 시선조차 제대로 맞추려 들지 않았다.

세라가 남부 거점에서 도망친 마병단 합격자들을 보고 놀라 대화를 나누려 하는 모습을 본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심지어 마병단 합격자들조차 세라에게 현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세라를 안타깝게, 그러나 냉정하게 바라보며 ‘우린 이제 마병단이니 당신과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 따름이었다.

목숨 하나만 건졌을 뿐, 모든 게 엉망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 모든 사실을 현자께선 알고 있었을까? 아무 말도 없이 죽어 나자빠진 남국인 상인들은?

혼란과 후회 속에서 세라는 어떻게든 도망칠 기회를 엿보았다.

지금은 어렵겠지만 저 거대하고 많은 몬스터를 상대로 설마 끝까지 펠레타 공작 혼자서만 활약할 리는 없을 터다.

실제로 그의 움직임은 현재 이전보다 지금 좀 더 느렸다. 아홉 번째 몬스터 때 평소와 다른 모양으로 변형된 다리에 유더 아일이 공격당할 뻔한 것을 쳐 내다가 팔을 한 번 스치고 나서부터 줄곧 그랬다.

펠레타 공작이 굳이 막지 않아도 유더가 무난히 공격을 받아 내리라 예상했던 이들은 왜 그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해 깜짝 놀랐으나 다행히도 큰 상처는 아닌 듯하여 이내 혼란을 가라앉혔다.

이후 유더 아일이 전보다 더욱 사납게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공격 대응 자체에는 아직까지 큰 빈틈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스친 자국대로 검게 녹아 버린 소맷자락은 본래의 흰 옷자락 사이에서 몹시 눈에 띄었다. 몬스터를 해치우는 힘 자체가 전보다 약해진 건 아니라지만, 이대로 오래 끄는 게 좋지는 않다는 걸 모두 알았다.

그래도 펠레타 공작과 유더 아일 쪽은 괴물들답게 사정이 괜찮은 편이었다. 남은 몬스터를 상대로 계속 시간을 끌고 있는 다른 마병단원들은 그보다 더욱 힘들어하는 게 느껴졌다. 붙잡고 있던 몬스터의 공격을 제대로 막지 못해 큰 부상을 당할 뻔한 위태위태한 순간이 점차 늘었다. 체력의 한계가 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대로라면 유인전 대형이 무너지거나 몇 명은 빠져야 할 테니, 이쪽에서 지원을 갈 수밖에 없으리라. 혼란이 가중되면 그 틈에 어떻게든 빠져나갈 틈을 노릴 수 있을 듯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세라가 눈치를 보며 마병단원들이 붙잡고 있는 몬스터를 노려보았다. 간접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동료를 찾아 그녀가 막 고개를 돌리려 했을 때였다.

후욱. 어디선가 작은 바람이 불었다.

잠시 후, 새파란 기운이 그들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더니 키시아르가 상대하고 있던 몬스터의 일부를 그대로 베어 날려 버렸다.

모두가 깜짝 놀란 가운데, 누군가가 높은 곳에서 착지하여 앞에 내려섰다.

남국인의 혈통이 선명한 생김새를 갖고 있는 차가운 얼굴의 기사였다.

“…주커만 경!”

누군가가 몹시도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남국인 기사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고 주군과 유더 아일이 있는 곳만을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베여 나간 몬스터가 멈춘 틈을 타 빈틈을 찔러 죽인 키시아르가 다음 몬스터가 오기까지의 틈을 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곁에 선 유더 아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단. 드디어 왔구나.”

“예. 부관 나단 주커만, 지금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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