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757화 (757/805)

757화

“그런데… 셔펜 항구로 뒤쫓아 가던 도중, 라델 경의 움직임이 의심스럽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라델은 분명 마병단을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깝다며 셔펜 항구로 가서 먼저 조사할 것이라 주장했었다. 그러나 쿠르가 일행이 그를 뒤따라 조금 늦게 항구에 도착했을 때 조사를 하고 있는 기사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투시 능력을 지닌 선즈가 힘을 써서 어느 건물 안에 라델이 타고 간 마차가 있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아마 쿠르가는 라델의 움직임을 놓쳤을 것이다.

“그곳은 셔펜 항구를 담당하는 치안대 건물이더군요. 그때까지는 당연히 갈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선즈 대장님께서 그곳에 라델 경이 없다는 걸 알아내셨습니다.”

라델과 똑같이 조사를 하러 온 이들이라고 밝혔는데도 항구 치안대는 쿠르가 일행을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신분을 확인할 증거를 내놓으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때 머리를 짜낸 건 에몬이었다. 그는 쿠르가와 함께 입구를 지키는 경비들의 시선을 끈 다음 선즈에게 건물 안의 인원수를 살피라고 말했다. 선즈의 투시 능력으로 세세한 뭔가를 확인하는 건 몹시 힘든 일이지만, 건물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의 머릿수 정도 형태를 알아보는 건 쉽고 빠르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선즈는 친구가 벌어 준 시간을 통해 치안대 건물 안에 고작 4명의 사람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라델이 이끌고 간 기사는 5명. 라델까지 합하면 6명인 데다 치안대에 본래 있었을 사람까지 합하면 건물 안에 4명밖에 없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마차는 있는데 사람이 없고, 저희를 들여보내 주지 않는 것도 뭔가 수상했습니다. 저희는 라델 경의 움직임이 의심스럽다 판단하여 그때부터는 자체적으로 항구를 조사하며 라델 경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샬로인에는 크고 작은 항구가 여럿 존재했는데, 셔펜 항구는 규모가 작은 편이라 무역선보다는 주로 토박이들의 어선이 오고 가며 정박하는 곳이었다. 찾아야 할 범위가 그리 넓지 않다는 점에서 쿠르가 일행에게는 다행한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조사가 쉽진 않았습니다. 저희를 수상하게 본 어민들이 제대로 협조해 주지 않았고, 순찰을 돌던 치안대에게 의심을 받아 한판 붙기도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 끝에 저희는 결국 라델 경을 항구 구석, 어느 양식장에서 찾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들이 그 양식장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다.

쿠르가는 조사 도중 망가진 그물과 통발을 느릿느릿 수리하고 있던 노인과 마주쳤다. 그는 일을 한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허리가 굽고 귀가 먹은 데다 기억력까지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계속 같은 부분만 깁다가 풀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답답해진 쿠르가는 본디 남부 지방 어부의 자식이었던 경험을 살려 수리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러던 도중 무심코 나눈 대화에서 뜻밖의 단서를 찾아냈다.

‘심하게 찢어졌네요. 여긴 새우 정도나 키운다고 들었는데 어쩌다 이리 망가졌습니까?’

‘응? 뭘 세워서 키워?’

‘새우요, 어르신. 새우!’

‘어어. 샬로아 새우. 그려. 나도 키워.’

‘그래서, 왜 망가졌냐고요.’

‘응? 누가 찢어 놓고 난리를 부렸으니 그리되었지, 뭐가 더 있겠어.’

‘누가요?’

‘건 나도 모르지 더크야. 어제 찢어 둔 놈들이나 알겠지.’

‘제 이름은 더크가 아니라……. 어휴. 됐습니다. 그냥 계속할게요.’

‘더크야. 애비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라. 고작 새우 가지고는 세금 내기도 힘드니 어쩌겠어. 그냥 필요하다고 할 때 양식장을 한 번씩 빌려주고 모른 척하면 된다지 않어. 그물도, 통발도 망가지면 버리고 기우면 그만이야. 우린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응? 그러니까 화 그만 내고 그물이나 마저 깁자. 돌아가면 흔적은 새우가 모두 먹어 치우고 파도가 쓸어 갔을 게다. 바다만큼 감추기 좋은 곳은 없으니까…….’

‘…….’

그 답을 들은 순간 그물을 수리하던 쿠르가와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즈, 에몬의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이 노인의 말에 숨겨진 사실이 심상치 않으리라는 사실을 느꼈다.

‘어르신. 어르신 집이 어딥니까?’

‘아직 그물 다 안 고쳤는데?’

‘어디냐고요!’

쿠르가 일행은 노인이 수리하려고 놓아둔 통발과 그물을 압수한 뒤 그의 양식장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그곳에 먼저 와 있던 라델과 기사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 양식장은 몹시 외진 곳에 있었습니다. 새우를 양식하는 구역에는 마치 누군가 난동을 부린 것 같은 흔적이 가득했습니다. 라델 경은 그곳에서 번개에 그슬린 것처럼 엉망이 된 나무판자들을 떼어 내어 불에 태우고 있더군요. 저희는 곧바로 그를 막기 위해 달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쉬워 보였던 전투는 의외의 상황을 맞이하며 크게 바뀌었다. 그 양식장에 라델 경과 그의 부하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빨리 깨닫지 못한 탓이었다.

라델과 그들의 부하들을 제압하는 데 온 신경을 기울이던 선즈가 별안간 뭔가를 깨달은 듯 양식장 안쪽을 가리키며 무어라 말하려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들은 양식장 안에 몸을 숨기고 있다 뛰쳐나온 십수 명의 적들의 공격을 맞이해야 했다.

그들은 남국계임이 확실한 피부색을 지닌 자들과, 딱 보아도 그리 선량한 삶을 살아오지 않은 듯 보이는 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모두 위험한 무기를 소지 중이었다.

‘거기에도 남국인 상인들이 있었던 건가.’

쿠르가의 이야기를 듣던 유더의 머릿속에 생각이 스치고 지나감과 동시에 키시아르가 입을 열었다.

“아무리 세 사람뿐이었다 해도 셋 모두 어디 가서 뒤질 만한 실력자는 아니지. 그럼에도 부상을 입었다는 건 그들 중 각성자가 상당히 섞여 있었단 뜻이겠군.”

“예. 맞습니다. 마주친 적들 중 남국인은 대부분 각성자였고, 훈련을 받은 티가 났습니다. 저희는 그들을 상대하다 위기에 처했고, 어쩔 수 없이 양식장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농성했습니다. 하지만 부상을 입었기에 잠시나마 정말 위험한 상황도 각오해야 했지요.”

쿠르가, 선즈, 에몬 중 가장 전투력이 좋은 이는 쿠르가였다. 그리고 적과 근접한 거리에서 싸워야 하는 능력을 지닌 이도 쿠르가였다. 그는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떨어지는 선즈와 에몬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아낌없이 나섰고, 그 결과 등에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팔다리 하나 정도라면 몰라도 몸의 중심이 되는 등은 자칫 잘못했다간 정말 잘못되는 수가 있었다.

선즈와 에몬은 쿠르가를 살리기 위하여 기회를 엿봐 적들을 피해 양식장 안으로 숨어들어 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내내 안에서 적들을 상대하며 숨어 있었다. 선즈의 투시 능력, 그리고 산발적으로 불꽃을 붙일 수 있는 에몬의 능력이 그러한 단기 농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

“거기서 바로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 선택을 한 건 지원이 곧 올 거라 믿어서였나?”

“네. 그리고 양식장을 저희가 점거하고 있으면 이미 붙잡아 둔 자들이나 증거도 더는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해 버리고 갈 수 없었습니다. 전 마병단원입니다. 몸이야 임무를 하다 보면 언제든 다칠 수 있는 것이지만 한번 잃어버린 증거는 다시 되찾기 어렵습니다. 그런 상황에선 절대 물러나지 않는 게 저희 마병단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쿠르가는 어깨를 쭉 폈다. 꾀죄죄한 모습이었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는 몹시 크고 든든해 보였다.

“사실 저는 몸을 피하는 게 상책이리라 생각했습니다만… 쿠르가 님의 저 말씀 덕분에 저희도 많이 배웠습니다.”

에몬이 쿠르가의 말에 한마디를 보태며 머쓱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병단 남부 지부에도 때마침 엄청난 일이 생겼다는 사실을 몰랐다. 지원이 예상보다 훨씬 늦어지면서 최악의 상황까지 각오해야 했지만, 그들은 결국 악바리처럼 살아남아 키시아르가 보낸 동료들이 도착할 때까지 모든 것을 지켜 냈다.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그들을 공격하던 남국인들과 적들은 지원을 온 이들의 실력을 보고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듯 빠르게 산산이 흩어져 도망쳤다. 그들 중 몇몇은 붙잡았지만 남국인들은 하나도 붙잡지 못했다고 했다.

쿠르가는 그게 자신의 탓이라도 되는 듯 약간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키시아르는 그들의 면면을 바라보며 짤막하게, 그러나 진심이 느껴지는 어투로 말했다.

“자네들이야말로 어제의 진정한 영웅이었군.”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병단장님. 저희는 그냥 버티기만 했을 뿐입니다. 오늘 와서 들어 보니 이쪽에서 일어난 일이 훨씬 대단했던걸요. 오히려 그 상황에서 지원을 보내 주신 게 대단한 일이셨다 생각합니다.”

“저, 저도 선즈의, 아니. 선즈 대장의 말과 같은 생각입니다.”

세 사람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고 대답했지만 키시아르는 그저 작게 웃기만 했다.

“아니. 자네들은 영웅이란 말을 들어 마땅해.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어려움 속에서 도망치지 않고 목표를 위해 끝까지 버틸 수 있는 건 오직 영웅과도 같이 용기 있는 자들뿐이니까. 마병단장의 이름으로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하고 싶네.”

“…….”

“끝까지 버텨 준 자네들 덕분에 헤른 2공자의 죽음과 마병단이 당한 억울한 중상모략이 모두 잘 해결될 수 있게 될 거야. 끝까지 지켜 가져와 준 증거와 증인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챙겨 적재적소에 사용하도록 하지. 이제 돌아가서 쉬어도 좋네.”

“가… 감사합니다.”

세 사람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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