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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760화 (760/805)

760화

그 이후에도 일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제 있었던 일들과 관련해 마병단 남부 지부로 밀려드는 수많은 연락들 사이에는 마이라 1공녀의 연락 또한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녀는 기사 라델의 소식을 듣고 무척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어젯밤 라델 경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에 걱정이 많았었지만 마병단에서 수색 지원을 한다고 하시기에 안심했었죠. 그런데 설마 라델 경 본인이 그런 일을 했을 줄은…….”

마병단에 방문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달려온 마이라 1공녀가 하룻밤 사이 몹시 피로에 젖어 버린 얼굴로 눈을 내리깔았다. 동생을 잃은 사람답게 검은 상복용 베일을 썼지만 드러나는 감정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죠?”

“함께 있던 기사들과 따로 나누어 지하에 가뒀네. 아직 잘 자고 있다더군.”

“배신자 주제에 편하기도 하군요. 하긴, 콘체 남작가의 배신자들도 제 처지들을 모르고 편하게 헛소리들을 내뱉긴 했죠.”

마이라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가시가 섞였다. 그녀는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몇 번 숨을 몰아쉰 뒤 어제 콘체 남작가로 간 뒤 있었던 일들을 말해 주었다.

“공작님의 유능한 기사께서 이미 콘체 남작가에 남아 있던 모든 자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손을 써 두고 가셨더군요. 덕분에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죠.”

어제 유더가 콘체 남작가의 저택에 방문했을 때는 바깥을 돌아다니거나 일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기에 본래의 주인이 거기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콘체 남작은 저택 안에 있었다. 다만 한심하게도 홀로 약에 취해 있었기에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몰랐을 뿐이었다.

마이라를 마주한 콘체 남작은 남국인 상인들이 평범한 손님이었을 뿐이며, 그 외엔 아무것도 몰랐다고 횡설수설 주장했다. 그는 남국인 상인들을 잡아가고 집을 파괴한 게 마이라일 것이라 생각했는지, 자신에게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가문의 사람들에게 모조리 알리겠노라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기까지 했다.

“전 콘체 남작이 그 남국인들과 함께 손을 잡고서 노린 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똑똑히 말해 주었어요. 아쉴라브를 죽이고 그다음은 저까지 치운 뒤 헤른 공작의 자리를 집어삼킬 셈이었겠지만, 이제 다 들켰으니 절대 그 뜻대로는 안 될 거라고 분명하게 알려 줬죠. 아쉴라브가 탔던 말과 그 애가 데려갔던 하인까지 잡혔다고 말하니 콘체 남작이 추하게도 발광하더군요.”

그가 발광하거나 말거나 마이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이 하려던 일을 했다. 그녀의 명을 따르는 기사들은 저택 내에 없던 그의 가솔들이 있을 만한 곳을 수소문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샬로인 외곽의 콘체 남작가 소유 별장에 머물고 있던 그의 아내와 자식들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본래 본저에서 일했을 사용인들도 대부분 그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들의 조사를 통해 마이라는 콘체 남작이 본저를 비우고 휴양을 핑계 삼아 가솔들을 별장으로 보낸 게 의도적인 결정이었음을 완전히 확신했다. 그는 남국인 상인들이 편히 숨어 있을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자신의 저택까지 내어 준, 그야말로 제대로 된 배신자 그 자체였다.

그녀는 모든 증거와 증언을 모아 헤른 공작가 전체에 알렸다. 아쉴라브 2공자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으로 인해 충격에 빠져 있던 헤른 공작가는 그 소식에 두 번 뒤집혔다.

그렇게 하룻밤 사이 수많은 일을 겪고서 돌아온 그녀는 또다시 가문 소속 기사의 배신 소식을 들었지만, 그렇다 해서 무너지지는 않았다.

“애초에 라델 경은 제 사람도, 아쉴라브의 사람도 아니었어요. 원리원칙을 따르고 가문에만 충성하는 깐깐한 사람처럼 굴었지만 실상은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며 어디에 붙어야 할지 고민하는 박쥐 중 하나였을 뿐이었던 거겠죠.”

콘체 남작이 남국인들의 손을 빌어 아쉴라브 2공자를 죽였다면, 라델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조사하러 나와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켜보며 방해하고 은폐하는 역할을 맡았었을 것이다.

“이 기회에 걸러 내었으니 잘되었군.”

“네. 아쉴라브를 죽이고 증거를 은폐하려 한 이들을 찾아냈으니 제 입장에서는 감사한 일이지만, 그런 자들이 가문 내에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기도 해요.”

하루 만에 가문 내의 배신자를 둘이나 찾아냈다. 심지어 그들이 꾸몄던 음모는 하루 이틀 사이에 마련된 것도 아니었고,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조금씩 준비하여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마이라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토록 조심성이 많았던 아쉴라브조차 말을 맡겼던 시종과 함께 길을 나섰다가 처참히 살해당했다.

만약 마이라가 하루라도 마병단을 늦게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녀는 마병단이 아쉴라브를 죽인 범인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했을 테고, 키시아르를 찾아오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그랬다면 음모의 전말을 깨달을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배신자들의 다음 목표가 자신인 줄도 모르고 아쉴라브의 수상쩍은 죽음으로 인한 여파 속에서 휩쓸렸을 터였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새 나도 처리당해 있었겠지.’

마병단장 키시아르와 그의 보좌가 남부에 오자마자 떠들썩하게 불법 격투장을 뒤집어 놓은 일이 여러모로 그녀에게는 천운이 되었다.

마이라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들었다.

“이곳에 오기 전, 헤른 공작가 본저에서 소식을 받았어요. 아쉴라브의 죽음에는 불쾌감만 표하셨던 아버지께서도 과연 어제 있었던 소식들에는 상당히 놀라신 것 같더군요. 아마 샬로인의 영주인 사콥 남작을 통해 마병단에 곧 연락을 보내실 것 같아요.”

“호오. 헤른 공작이 드디어 움직일 생각이 든 모양이지?”

키시아르가 미소와 함께 물었다. 마이라가 작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러실 수밖에 없지요. 줄곧 눈감아 주었던 불법 격투장 문제가 물 위에 올라와 버렸고, 후계자 중 한 사람이 죽은 데다 갑자기 몬스터까지 나타났어요. 가문 내의 배신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추가로 더 들어간다면 아버지께서도 나서실 수밖에요.”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길 바라야겠군.”

“헤른 가가 남부의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면 그래야겠죠. 제가 가문에 보낸 연락 속에 저희가 하지 못한 일을 마병단이 전부 해 주셨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안다면 지금까지처럼 물러나 있으셔서는 안 될 거라고 말했거든요.”

마이라의 성격답게 엄청나게 직설적인 발언이었다.

“흠. 그런 말을 하면 오히려 헤른 공작 측에서 화를 내지 않겠나?”

“낼 테면 내시라고 해야죠. 그 정도로 흔들릴 만큼 제 입지가 약하지는 않아요. 이번 일을 해결한 마병단과 협력한 것도 저고, 샬로인의 수습을 도운 것도 저입니다. 아쉴라브의 죽음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도 확실하게 밝혀졌으니 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약해질 일은 없어요. 이 기회를 이용할 수 있을 때 이용해야겠죠.”

마이라는 그렇게 말한 뒤 당당하게 제의했다.

“그리고 마병단이 아쉴라브를 죽이지 않았다는 게 이로써 확실해졌으니, 이제는 다시 문을 열고 자유롭게 활동해 주세요. 아직 남아 있는 불법 격투장과 그곳에서 잡혀 들어온 바보들의 조사도 이어 가셔야겠죠. 저 마이라 엘 헤른의 이름을 걸고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마이라의 말대로 그날 오후, 샬로인의 영주인 사콥 남작이 찾아왔다. 그는 여태까지 마병단장이 왔다는 소식에도 없는 사람처럼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게 거짓말처럼 공손한 태도로 인사를 한 뒤,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 그만 찾아뵙는 것이 늦어졌습니다, 펠레타 공작 전하. 마병단이 저희 샬로인에서 어떤 일들을 해 주셨는지는 저 또한 이미 알고 있었던바, 늦게나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왔습니다.”

그는 마병단이 샬로인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안 왔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긴 했지만, 그가 가져온 소식 자체는 마병단에게 그리 나쁘지 않았다.

“불법 격투장은 그간 저희에게도 큰 골칫덩이였습니다만 워낙 교묘하게 피하는 자들이라 뿌리를 뽑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마병단에서 억압되어 있는 각성자들을 찾기 위해 불법 격투장들을 조사하고자 하신다던데, 저희도 그 일을 돕겠습니다.”

그와 치안 경비대 기사들이 불법 격투장을 운영하는 조직과 서로 편의를 보아준 사실을 다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앞으로의 일을 방해라도 안 한다니 다행이기는 했다.

하지만 사콥 남작의 용건은 그런 좋은 건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몬스터를 해치운 건에 대한 감사 인사를 비롯해 자신들의 책임은 없다는 사실 확인까지 끝낸 뒤, 사콥 남작은 다음과 같은 말을 은근슬쩍 덧붙였다.

“그렇지만 이번에 불법 격투장에서 잡아들이신 이들 중 오해가 조금 있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던데… 혹,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량을 조금 베풀어 주실 수 있으실지요?”

“내가 이해력이 좀 좋지 않아서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마병단이 잡아들인 이들 중 오해로 잡힌 자들이 있었던가? 정확히 누굴 말하는 것이지?”

키시아르가 한량처럼 웃으며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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