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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780화 (780/805)

780화

그는 잔뜩 긴장한 티가 나지만 동시에 자신감도 느껴지는 동료들의 얼굴을 지켜보다 시선을 돌려 막힘없이 설명과 지시를 이어 나가는 키시아르에게 눈길을 보냈다.

유더의 꿈 이야기를 들은 뒤로도 키시아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억지로 괜찮아 보이려 숨기거나 일부러 말하지 않는다기보다는, 그때 낸 결론대로 시간이 지나 확실히 뭔가 더 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사실 그건 유더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어. 현재로선 그 꿈의 정체를 알 만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니까. 노력한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니 이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겠지.’

서로가 서로를 걱정한다는 걸 이해하기에 이전에 저질렀던 실수는 반복하지 a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면 남는 건 감정과 태도를 감추지 않고 함께 있되 좀 더 많은 정보가 모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이제 크게 답답하거나 초조하지는 않았다. 유더는 그것이 키시아르에게 꿈 이야기를 했기 때문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이야기를 했다고 무언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일은 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생긴다.

꿈을 알게 된 뒤에도 키시아르가 변함없이 지키는 침착함이, 간혹 전보다 깊어진 눈빛으로 바라보거나 조심스럽게 매만지기는 해도 결코 피하지 않는 시선들이 유더에게는 그러한 의미를 주었다.

‘그때 역광 속에서 보았던 마지막 표정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내게 해 줄 말이 있다면 언젠가는 해 주겠지. 내가 그랬듯이.’

키시아르가 제게 재촉하지 않고 줄곧 곁에 있어 주며 믿음을 주었기에 유더는 물러나지 않고 말할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 저도 똑같이 할 생각이었다.

분명 고통스럽지만 굳이 힘들여 참지 않고도 괜찮을 수 있다는 건 낯선 감각이었다.

어쩔 수 없는 기다림을 회피라 여기지 않고 그저 기다림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새로이 익히며, 유더는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 모를 사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유더!”

회의가 끝난 뒤 유더는 곧바로 친한 동료들에게 둘러싸였다. 칸나와 가케인 외에도 에버와 데브란, 엘더 남매, 거기에 프루엘레와 레블린까지 모두 모여 있으니 이곳이 남부가 아니라 수도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키시아르는 지난번에 수도에서 임무를 수행했던 인원들을 이번 지원 목록에 모조리 포함했다. 에버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미련과 분한 마음을 다시 한번 설욕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걸 알아서인지 장난기 많은 엘더 남매조차 오늘만은 까불지 않고 내내 조용한 모습으로 진지한 얼굴을 지키면서 회의에 참여했다. 그것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이번 지원 임무에 큰 의미를 두고 왔는지 알 만했다.

“오랜만에 보니 이전보다 좀 마른 것 같아요. 식사는 잘 한 거예요?”

보자마자 그렇게 묻는 에버의 얼굴이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더 말라 보였다. 아마 현자를 놓친 일로 마음고생을 상당히 해서가 아닐까 싶었다.

“전 괜찮습니다. 그보다 에버는… 이번에 책임이 상당히 막중한 임무들만 맡았는데 괜찮겠습니까?”

“자신 없다고 말할 거라 생각해서 묻는 건 아니죠, 그거?”

에버가 콧잔등을 찡그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단장님께서 설욕할 기회를 주신 거잖아요. 현자든 누구든 이번엔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야.”

힌이 고집스러운 얼굴로 끼어들었다. 곁에서는 핀이 똑같은 얼굴로 끄덕이며 작지만 무서운 힘이 담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유더는 그들의 불타는 눈빛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친 데브란이 쑥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으흠, 여기 정말 쌓인 일 천지더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몰래 주변을 살피는 것 하나는 꽤 잘하는 편이란 말이지. 그 부분은 맡겨 둬.”

그러나 그 쑥스러운 표정은 핀의 천진난만한 악마 같은 질문에 그대로 박살 나고 말았다.

“데브란. 이번엔 뭘로 취직하려고? 여긴 남부니까… 어부?”

“아니지, 핀. 누가 뭐래도 이번엔 술집이야. 거기가 돈을 많이 주잖아.”

“…이 망할 꼬맹이들아. 내가 돈 벌려고 이 짓 하는 게 아니거든? 남의 특별한 정보 수집 비법을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엉?!”

“부업으로 돈 버는 게 쏠쏠해서 좋다던 건 어디의 누구였더라.”

“유더 앞에서 훈련도 빼먹고 부업했단 얘길 신나서 하던 건 또 누구였지?”

“야 이놈들아!”

분노한 데브란이 고함을 치기 시작하자 엘더 남매가 순식간에 다람쥐처럼 도망쳤다. 데브란이 그 뒤를 따라 달려 나가자 다른 이들이 걱정 반, 웃음 반이 섞인 목소리로 염려를 표했다.

그 틈을 타 이번에는 레블린과 프루엘레가 유더에게 말을 걸었다.

“유더! 제가 드디어 정식 단원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저도요.”

그간 임시 단원으로 지내며 얼굴을 많이 익힌 덕인지 태도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편안해졌다. 하지만 가장 많이 변한 건 무엇보다도 표정이었다.

“들었습니다. 두 분 모두 축하드립니다.”

유더의 축하 인사에 두 사람은 한층 더 감회가 새로운 표정이 되었다.

“음… 하하.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유더를 만났던 날 기억이 떠올랐었는데, 갑자기 그 생각이 나네. 사실 그래서 만나게 되면 꼭 직접 알려 주고 싶었는데.”

“아, 저도 그랬었어요!”

반색한 레블린이 잠시 손을 꼼지락대며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주저하다 물었다.

“저, 그래서 말인데… 유더…도 우리한테 말을 더 편하게 해 주면 안 돼요? 완전히 다른 단원들한테 해 주는 거랑 똑같이요!”

“…….”

“그, 들어 보니까 유더는 직접적으로 요청하면 그렇게 해 준다고 해서 물어본 건데…… 혹시 불편하면…….”

침묵한 게 부정적 반응이라 생각했는지 레블린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유더의 침묵은 단순히 그가 바란 게 너무나 의외의 사항이었기 때문일 뿐이었다.

“아니. 괜찮아. 원한다면 그렇게 하지.”

“아! 다행이다! 이렇게 말하는 단원들이 정말 부러웠었는데,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아요……. 아니, 좋아!”

두 사람과의 만남이 제법 강렬하긴 했었지만, 이럴 정도였던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쩐지… 선즈와 에몬 때의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합격자의 기쁨을 무너뜨리고 싶지는 않았기에 유더는 잠자코 고개만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프루엘레가 싱긋 웃었다.

“정말 신기해. 그때만 해도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정말 이루어지긴 하는구나.”

프루엘레가 레블린과 시선을 마주하며 감회가 새로운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이내 조금 어두워졌다.

“비록 정식 단원이 되고 나서 처음 맡았던 임무를 제대로 완벽하게 수행하진 못했지만.”

“그건…….”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해 주려는 거라면 고맙지만 괜찮아. 내가 얼마나 부족했었는지는 잘 알고 있으니까. 다만… 벡 부단장님이 좀 걱정된다고 해야 하나…….”

프루엘레의 눈이 조심스럽게 에버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엘더 남매와 데브란 사이에서 오가는 난리 법석을 중재하는 중이라 이쪽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은 프루엘레가 문득 침묵을 지키는 유더와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 화들짝 어깨를 굳혔다.

“…아! 물론 나 같은 신입이 걱정할 만한 분이 아니라는 건 잘 알아! 그냥, 저번 일로 굉장히 무리하시는 것 같았어서 그게 조금……. 아아, 뭐라는 거람. 그냥 잊어 주겠어? 너무 건방진 말을 한 것 같네.”

“이쪽도 에버의 상태를 염려하고 있으니 마음은 이해해.”

“아, 그, 그래?”

단순히 걱정한다고 말했을 뿐인데 프루엘레는 이번에도 깜짝 놀랐다. 그는 유더를 아주 새삼스럽게 보며 눈을 깜박이다가, 별안간 자신의 뺨을 찰싹 때렸다.

“…단장님이 계시는데 내가 무슨 생각을.”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가서 먼저 쉬는 게 좋지 않을까.”

아무래도 상태가 안 좋아 보여 권했지만 프루엘레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뺨이 발개진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그가 영리한 사람이라고 믿을 만한 이가 없을 듯했다.

“아니야. 그보다 묻고 싶은 게 있었어. 회의 때 들은 정보에 의하면 헤른 1공녀가 마병단과 협력 상태라고 했는데, 혹시 우리 같은 사람일까?”

“음… 전에 만나거나 소식을 들어 본 적 없는 사이였나?”

“없었지. 아무래도 우린 사교계 전면에 나선 적 없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소문 정도는 들어 봤지만… 헤른 가의 귀한 적녀라는 말 외엔 그다지 아는 게 없어.”

“저도요. 부모님과 형님들은 헤른 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셔서……. 물론 다른 가문들이라고 크게 좋아한 건 아니었긴 하지만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덧붙이긴 했지만, 본래 황가를 상대할 때만 제외하면 4대 공작가끼리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걸 새삼 떠올리게 만드는 한마디였다.

“하지만, 거기에도 저 같은 분이 있다면 꼭 도와드리고 싶어요.”

자신들의 경험이 있으니 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레블린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마이라 1공녀가 각성자가 아니란 것만 빼면 정말 좋은 마음가짐이라 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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