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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화 〉낮은 돌무더기의 사나이: 6화(END) (62/225)



〈 62화 〉낮은 돌무더기의 사나이: 6화(END)

땅을 얻어 봐야 그 땅에서 우리 인류를 위해 충실히 일해줄 노예가 없다면 무엇을 하는가? ‘자칭’ 민주주의자들은 어째서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제노사이드를 행하는가? 외계인들이 자신의 땅을 지키며 노동하고, 노동의 성과물을 그들의 손으로 수확하도록 두어라! 그렇게 하면 할수록 인류는 가만히 앉아서 살을 찌울 수 있을 터이니!


우리의 늙은 제국주의자 친구들이 식민지 통치를 워낙에 악랄하게 해준 덕분에, ‘신 국방군’의 손에 ‘해방’될 외계인들이 우리 제국을 향해 느낄 고마움의 크기는 기대 이상으로 커졌다. 그들도 도의라는 것을 안다면, 자신들을 ‘해방’시켜준 은인들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보답하려들 터, 이것이 칼디르가 진정으로 노리는 바였다.



“우리의 ‘진정한 적’을 적시하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저와 함께 물리칩시다!”

“놈들의 악랄함을 모르고 있을 때도, 나는 언제나 작은 아틀란티스의 낙원보다는 대 아틀란티스의 늪에서 죽고 싶어 했어. 인제 와서 망설일 게 뭐야?”


범혁은 어느 파시스트의 말을 인용하고는 칼디르를 따라 당장에라도 어디론가 뛰쳐나갈 기세를 보였지만, 칼디르는 아직  일이 남아 있었기에 그의 요청을 정중히 거부했다. 평범한 남녀관계에 대입해서 본다면, 그것은 여성이 남성의 에스코트 제안에 뺨을 때려준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지만, 분위기가 험악해지지는 않았다.



“저는 우리와 함께할 애국자분들을 알고 있습니다. 귀하는... 그중에서도 첫 번째였지요. 지금은 아직 제가  일이 남아있어서 귀하를 데리고 가는 것이 조금 곤란합니다만, 할 일을 다 마치고 나서는 그분들과 함께 큰일을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이거 참, 영광이군! 지금 당장 함께할 수 없다는  아쉽지만... 그 검은색 양복 내가 이런 옷을 만들어서 입고 있는 걸 알고 일부러 비슷한 분위기의 옷을 골라 입고  거지?”


“바로 맞추셨습니다. 귀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장차 조직될 새로운 애국자 조직의 명칭은 ‘검은 셔츠단’이 될 것입니다.”


그로부터 칼디르와 범혁은 이에 관해서 장장 2시간에 걸쳐서 대화를 나누었고, 비록 범혁은 칼디르와의 정치적 논쟁에서 그 천재성에 걸맞지 않은 억지 논리를 펼치다가 보기 좋게 깨졌지만, 두 사람은 대화를 평화롭게 이어나갈  있었다.


칼디르로서는 자신의 계획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최고의 협력자를 구한 셈이었고, 범혁으로서는 간만에 고차원적인 담론을 펼쳐볼 기회를 얻을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둘 모두에 만족스러운 시간이 되었다.

범혁은 오래간만에 제대로  논쟁 상대를 만났다 싶어서 실컷 떠드느라고 칼디르가 검은색 양복 아래로 브래지어나 팬티를 갖춰 입지 않았다는 사실은 눈치채지도 못했다. 아마 ‘총통’이 보여준 ‘금욕적인 삶’에 환상향을  그라면 칼디르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경멸의 눈길을 보낼 터였지만, 아직은 그때가 아닌 모양이었다.



“아, 그런데... 저기에 숨어 있는 건 누구야? 너하고 이야기하느라고 여태까지는 있는 줄도 몰랐는데... 우리 말고도 누가 또 있었네?”

다만 입에 모든 양기가 몰린 듯한 그 역시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했다. 범혁이 지목한 것은, 두 사람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풀숲 더미로, 칼디르가 결계를 둘러쳐서 만들어낸  공간에 누군가가 잠입해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사람의 정수리에서 삐져나온 듯한 머리털의 존재는 매우 부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머리털...로 추정되는 무언가는 범혁이 자신을 지적하자마자 흠칫 놀라며 풀숲 아래로 숨어들기까지 했는데, 아무리 봐도 사람 같았다. 그것은 칼디르의 모습을 줄곧 지켜보아 온 아틀란티아 공주님이었고, 범혁이 본 것은 공주님의 바보 털이었다.


마치 개그 만화에서 어설프게 숨어있다가 들켜서 후닥닥 움직이는 듯한 상황이었지만, 범혁은 그녀에게서 별다른 위험을 느끼지는 못했는지 공격 태세를 갖추지는 않았다. 강력한 초능력자라고는 해도, 전문적으로 훈련받지는 못한 상황이기에 이런 상황에서 적절한 공격 태세가 도대체 뭔지도 모르기도 하고 말이다.



“아, 저분은 제 주...”



“주... 쥬(jew)? 유대인이라고? 쥐새끼가 숨어든 건가?”

칼디르 역시 범혁이 그다지 심각한 반응을 보이지 않자 간단히 해명하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하마터면 ‘저분은 제 주인님이세요.’라고 할 뻔했던 것을 겨우 수습했다. 반드시 포섭해야  인물인 그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는 데 성공한 상황에서 자살골을 넣을 수는 없었기에 그런 것이었는데, 그게 엉뚱한 오해를 낳고 있었다.


“흠흠, 그렇게 인상 쓰실 것 없습니다. 저분은 제가 아는 분이십니다.”



“뭐, 네가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믿을 만한 사람이겠지.”

칼디르가 하다 말아버린 말을 ‘유대인’으로 잘못 알아듣고 바로 풀숲 더미 쪽으로 달려가던 범혁을 멈춰 세우는 데는 성공했다. 하여튼 이놈의 주둥아리가 문제다. 여기서 일이 더 틀어지기 전에 이쯤에서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



“그럼 이만... 다음에 또 만나 뵐 기회가 있을 겁니다.”



“하하하, 그래. 오늘만 날인 건 아니니까. 너 아니었으면 나도 하마터면 의료기기나 식량을 털고 다니는 의적 질이나 하고 다녔을 거다. 그래도 빨리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 뭐든지 빨리 시작하면 좋을 테니까.”



범혁이 좋은 기분으로 그 거구를 이끌고 칼디르가 쳐둔 결계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이제 그는 다시 왁자지껄하고 떠들고 있던 사람들 틈으로 녹아들어 가서는, 다른 행성에서 만든 돼지 통구이를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면서,  자신이 다시 찾아오기 전까지는 일상을 살아가게 되리라.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160cm의 칼디르는 한참 위의 범혁을 올려다보느라 뻐근해졌던 목을 풀 수 있게 되었고, 도둑고양이처럼 숨어 계시던 공주님도 바깥으로 나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게 되었다.

“이상해. 남자들은  너 같은 새끈한 백마를 보면 박아보려고 환장을 하던데, 저 사람은 너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네?”




“끼이잉... 끼잉... 주인님... 저희... 이제 아무도 없으니까... 여기서... 섹, 섹스해요... 제가 잘 빨아드릴게요...”


칼디르는 범혁이 사라지고 공주님께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범혁과 대화할  보여줬던 그 진지하던 모습은 다 집어 던지고서, 기껏 구해다 입은 양복이 더러워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공주님께 네 발로 달려가 입으로 공주님의 사타구니에 걸쳐져 있던 팬티 끈을 물어뜯었다.




도대체 어느 쪽이 진짜 모습이고, 어느 쪽이 가짜 모습인 건지 모르겠다. 그 사람, 모처럼 이런 백마와 단둘이 대화할 기회를 얻고도 이런 새끈한 몸매에는 조금도 관심 없다는 듯이 정치·외교적, 군사적 대화만 주야장천으로 나누던데... 마키의 이런 모습을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어줄지 궁금해진다.


“나도 덕분에 너의 다른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어. 마키 네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들어있을 줄은 나도 몰랐네.”


공주님은 한 마리의 암고양이처럼 혀를 할짝거리며 자신의 보지를 빨아주는 칼디르의 머리를 살갑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칼디르는 진심으로 기쁜 듯이, 엉덩이를 살짝 흔들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공주님께서는 이제 애완동물 다루듯이 칼디르의 턱을 가볍게 간질여 주었고, 칼디르 역시 본인이 진짜 애완묘라도 된 듯이 그르릉 그르릉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모에도 이런 갭 모에가 없었다. 이건 갭 모에가 아니라 아예 이중인격이라고 해야 할 정도인데.

“그런데  사람하고  이야기 중에서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서부터가 꾸며낸 이야기야? 내 앞도 아니고, 다른 사람 앞에서  이야기니까 네 마음을 전부  곧이곧대로 말해주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바, 바로 맞추셨어요, 주인님... 저분께는 어느 정도 제 마음을 숨겼지만... 주인님 앞에서라면 모든 것을 고할 수 있어요...”

칼디르는 공주님께 자신의 정치적 관점에 관해서 고해성사하기 시작했다. 범혁의 앞에서 자신의 이론을 당당하게 펼쳐 나가던 ‘칼디르’는 어디 가고 보이지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공주님의 애완묘, ‘마키’뿐. 공주님께서는 칼디르가 말하는 것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들어주었다.



일단 범혁에게 말해준 것처럼, 칼디르 역시 인류가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종족이라는 사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만, 외계인이나 혼종인류를 혐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범혁과는 다르게 칼디르는 어린 시절에 그런 이들과 어우러져 살았던 바 있었기에, 그들에 대해 유감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




순수인류에게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수 없는 토끼 귀를 달고 다니는 슈가와 같은 친구들을 사귀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비록 종족은 다를지 몰라도, 지성체라면 우리는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니, 다른  다 떠나서, 자기 주인님 되시는 공주님께서도 외계종족이라 할 수 있는 서큐버스의 피를 타고 태어나신 ‘혼종인류’이거늘, 어찌 이를 미워할  있겠는가? 주인님을 미워하는 암 노예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가정하에서 칼디르는 언젠가 사람들 앞에 서서 연설을  일이 있을 때 ‘인류’의 정의를 ‘지구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으로 정의하는 대신, ‘지난번 루시드 제국과의 대전쟁에서 살아남은 강인한 자라면, 모두가 인류다!’라는 식으로 재정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칼디르가 생각하는 바에 따르면, ‘엄격한 의미에서의 인류 제일주의’는 결국, 광적인 종족주의-민족주의에서 좀 더 확대된 개념-의 폐단에서 벗어나지 못할 터였다. 호모 사피엔스 종만이 위대하다면, 뭐... 엄연히 제국 영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른 종족들을 싸그리 말살시켜버리기라도 할 것인가?



종족청소라니... 바로 우리가 루시드 제국으로부터 그런 것을 당했는데, 피해자로서 가해자가 되는 길을 걸어가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우리의 적들이 우리를 정말로 절멸시킬 각오로 덤벼온다면 그때는 이야기가 좀 달라져서 학살자의 악명을 얻게 되는 것을 각오할 수밖에는 없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게 칼디르의 생각이었다.



칼디르는 언젠가 그 자신이 사람들을 이끄는 지위에 올라서게 되었을 때 ‘광적인 종족주의’를 역설하는 대신, ‘좀 더 확대된 인류의 개념’을 주창함으로서 이 나라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분리주의의 역사를 끊고 약 4천여  만에 마침내 통일된 제국을 완성할 수 있게 되리라고 보았다.


벌써 수천 년 간 인류 제일주의 정책을 유지해온 이 나라에서, 인류 중심으로 구성된 중앙정부의 영향력을 벗어나 자기네 종족만의 나라를 가지려는 분리주의 운동의 역사는 실로 오래되었다.

인류 제일주의 정권으로부터 억압을 받은 이들이 정권을 비토하며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쏘며,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눈이 벌게져서 피의 보복을 부르짖는 증오의 고리를 끊어야만, 비로소  나라가 진정한 의미의 패권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될 터였다.



결국, 범혁이 ‘외계인과 혼종인류가 완전히 제거된, 순수인류만의 나라’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칼디르는 ‘모두가 하나의 깃발 아래 어우러져 살아가는, 국민국가’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칼디르의 설명에 따르면, 루시드 제국으로 인해 빚어진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고서 이러한 ‘국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국민의 총의를 일일이 수집해야만 하는 민주주의는 너무나도 나약하며,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는 공산주의는 가뜩이나 혼란에 휩싸인 이 나라를 더더욱 깊은 나락으로 빠뜨리게  것이므로 좀  다른 방면에서 접근해 나갈 필요가 있었다.



‘개인’은 오직 ‘전체’에 속한 상태라야만 그 존재가치를 찾을  있다. 설령 그 ‘개인’이 칼디르 자신처럼 엄청난 초능력의 소유자라고 할지라도, ‘전체’에 속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



여인으로 태어나 황위 계승순위에서는 밀려난 처지였지만, 그래도 나름 황족으로서 교육을 받으신 공주님께서는 칼디르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명백하게- ‘전체주의’임을 알아차리셨다.

“그렇다는 말인즉, 너는 자의로 내 품에서 벗어날 일이 영영 없다는 말이지?”



“네, 으흐음, 음... 주인, 츄릅, 님. 그 말씀이 맞아요. 츄르르릅, 츄르릅...”


따지고 보면 이 발칙한 ‘레즈비언 커플링’도 일종의 ‘전체’라고 해석할 여지-두 명의 ‘개인’이 모여 구성한 조직이었으니까-가 있기는 했고, 공주님은 바로 그점을 노려서 여태껏 자기 보지를 빨아주는 틈틈이 기나긴 설명을 이어온 칼디르를 향해 쏘아붙이셨다.

흠... 전체주의라. 우리 아빠하고 만나게 되면 의외로 맞는 구석이 있을 거 같네. 공주님께서는 칼디르에게 농담조로 쏘아붙이시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셨다.

공주님의 아버지인 아틀라인 1세는 ‘자유지상적 사회주의자’라기보다는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자’라고   있었고, ‘민주주의자보다는 공산당원을 파시스트로 만들기 쉽다’는 말처럼 파시즘과 공산주의 사이에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었다.



“자,  스스로 벗어봐. 아무래도 우리 아빠를 빨리 만나러 가봐야 할  같으니까. 그전에 한판 벌이고 가자.”




“으흐응, 좋아요, 주인님... 주인님도 2시간 넘게 참으셨으니까... 제가 제대로 성 봉사해드릴게요...”




칼디르가 공주님의 명령에 따라 와이셔츠를 여민 단추를 똑똑 풀어나가고, 지퍼를 쭈욱 내려 아무런 속옷도 걸치지 않은 알몸을 드러내기까지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 남자에게 들킬까 봐 흥분해서 모유랑 애액을 분비해서 온몸을 뜨겁게 데워놨구만. 마침 내가 딱 따먹기 좋게 말이야. 흐흐흐...

범혁과 칼디르의 정치적 공통점과 차이점에 관해서  기회를 얻게  공주님께서 그 자리에서 한 선택은, 일단 준비된 식사를 해치우고 본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아틀란티스 파시즘의 서막은 생각 이상으로 황당한 것이어서 그 미래를 감히 머릿속에 그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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