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소꿉친구의 전용 생체 오나홀: 2화
칼디르의 첫 키스, 첫 애무, 첫 절정, 첫 수유, 첫 경험, 첫 애널 등등, 거의 모든 것을 가져가신 아틀란티아 공주님이었지만, 슈가는 영유아 시절부터 함께 해온 소꿉친구라는 이점을 활용하여 몇 가지 부문에서는 아틀란티아 공주님보다 앞서 있었다.
먼저, 칼디르의 또래 중에서 알몸을 가장 먼저 본 것은 누구일까? 바로 슈가였다. 같은 성별이라 스스럼없이 속옷까지 벗어 던지고서 한이불을 덮고 꿈나라로 모험을 떠났으며, 자기는 초능력자라 굳이 씻을 필요는 없다는 칼디르를 끌어내 목욕이나 샤워를 함께한 것 역시 슈가였다.
“초능력자고 뭐고 간에 사람이 씻고 다녀야지, 칼디르! 내가 직접 거품을 내서 씻겨줄 테니 따라와!”
“슈가... 아직... 할 일이 남아있는데...”
상대방의 생일파티에 생일 모자를 씌워주고, 케이크를 구해와 촛불을 붙여주는 것 역시 서로의 몫이었다. 놀거나, 공부하거나, 밥을 먹을 때도 그 둘은 함께 했다. 칼디르가 자기는 평생 먹거나 마시거나 자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말에 귀를 틀어막고 칼디르에게 끈질기게 들러붙어 결국, 호감을 얻어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슈가였다.
두 사람의 긴밀한 관계에 대한 소문은 오래지 않아 행성요새 전체로 퍼져 나갔다. 누가 친구 아니랄까 봐, 가슴 사이즈도 똑같아서 그 두 사람이 속옷을 공유한 것까지도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슈가보다 6살 어린 여동생, 솔트가 자기 언니가 자기보다 칼디르 언니를 더 좋아한다고 불평할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가까웠다.
“아아, 칼디르... 네 몸... 너무 아름다워... 소꿉친구 알몸 사진으로 욕정해버리면... 나, 벌 받을지도 모르는데... 손가락이 자꾸 내 보지에 가네...”
두 사람의 관계가 긴밀하긴 했어도, 슈가 쪽의 감정이 더더욱 깊었고, 모유를 내뿜기 시작한 동시에 유혹 페로몬을 온몸에 두르고 다니게 된 칼디르에게 그만 영혼을 빼앗겨버린 슈가가 칼디르에게 집착하는 정도는 나날이 심해져만 갔다.
그 정도가 너무나도 심해서 지금 내가 칼디르와 같은 공기로 숨쉬고 있다면서 방방 뛰어다니거나, 칼디르가 사용한 컵에 입술을 들이대며 간접 키스라고 호들갑을 떨 정도였다. 하지만 칼디르는 슈가가 어떤 식으로 오버를 하더라도 그녀와 거리를 두기는커녕 더더욱 가까이 붙어주었다.
“응, 마침 잘 만났다 슈가야. 혹시 내 속옷 못 봤어? 요즘 들어서 내 팬티가 너무 많이 사라지는 것 같은데...”
칼디르는 슈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제나처럼 순진무구한 미소로 슈가를 대해주었고... 거리감을 느끼는 상대라면 그 상대가 자신과 동갑이거나 역으로 나이가 적다고 해도 존댓말을 쓰곤 하던 칼디르와 말을 놓고 그토록 다정다감하게 대화하는 친구는 슈가가 유일무이하다고 봐도 좋았다.
“그, 그, 그, 그...글쎄...? 나, 나, 나는... 나는 절대로! 몰라! 절대로!”
음심을 품고 있는 자신을 향해 밝은 미소를 보내주는 칼디르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그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도 몇 번인가 했다. 칼디르와 속옷을 공유하는 내가 최유력 용의자라는 건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문제인데, 그때는 왜 그렇게 말을 더듬어가면서 되도 않는 변명을 해댄 건지, 원.
슈가가 칼디르를 떠올리며 몰래 자위하거나 비밀 일기장을 작성하는 것 정도는 그전부터 해오던 일이었지만,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칼디르의 알몸을 촬영한 뒤에 그것을 돌려보며 자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커터 칼로 손목을 그어대며 핏빛 쾌락을 탐하기까지는 며칠 걸리지 않았다.
언제 한 번은 자해를 즐기던 끝에 자해의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싶어서 가끔 밧줄로 자기 목을 가볍게 옥죄기까지 했다. 그동안 써온 밧줄과 지금 슈가에게 사형을 선고한 밧줄은 같은 밧줄은 아니었지만, 슈가의 칼디르에 대한 감정은 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사랑’과는 몇 광년이나 떨어져 있었다.
은밀한 의미를 내포한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칼디르와 한 침대에서 ‘손만 잡고 잔’ 슈가가 칼디르의 초유를 쟁취하고 만 것은 어찌 생각하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 그 날도 정신을 잃지만 않았더라면 칼디르의 첫 경험을 가져가는 것은 공주님이 아니라 슈가 그 자신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슈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 자신도 모르고 지내왔던 제2의 인격-어떻게 해서든 칼디르를 반드시 취하겠노라는 마음-이 서서히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 셈이었다. 결국, 슈가는 더 참지 못하고 하루는 수면제를 태운 물을 칼디르에게 넌지시 건네고 그날 밤에 핑계를 대면서 칼디르보다 좀 더 늦게 방에 들어가 모든 것을 끝내려고 했다.
“혹시라도 의심할까 싶어서 며칠 전부터 매일 저녁마다 물을 갖다준 것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겠지... 후훗, 칼디르... 넌, 내 여자야...”
지금쯤 칼디르는 평소처럼 옷을 다 벗고 곤히 잠들어 있겠지. 덕분에 내가 해야 할 수고가 줄어들었어. 이제 들어가서 따먹는 것만 남은 셈이야. 그거야 눈꺼풀 뗐다가 감았다 하는 것보다도 쉽지. 헤헤, 이제 문을 열고 들어가보실...까...?
슈가는 그동안 칼디르와 함께 지내온 방의 문을 여느 때와 다름없는 방식으로 열고 들어간 순간, 치명적인 농도의 유혹 페로몬에 노출되어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우습게도 슈가가 수면제를 먹여가면서까지 재우려고 시도했던 칼디르는 그런 약물에 내성이 있는 초능력자였기에, 멀쩡히 깨어 있었다.
아니, 단순히 깨어 있는 것에서 넘어서서, 그동안 미루고 미뤄왔던 ‘계획’이라는 것을 실행에 옮기고자 다른 행성으로 떠날 채비를 갖추고 절친인 슈가에게 편지를 한 통 남긴 다음이었다.
칼디르를 재운 뒤에 이것저것 야한 짓을 잔뜩 저지르려고 들었던 것에 대한 대가일까, 정신을 겨우 차리고 눈을 뜬 것은 이미 칼디르가 행성요새를 떠서 다른 행성들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한 지 이틀이 지난 시점의 일이었다.
“뭐... 뭐라고요! 칼디르가 다른 행성에!”
“그래, 여기 칼디르가 네게 남겨두고 간 편지도 있단다. 슈, 슈가야? 갑자기 왜 그래? 괜찮으냐?”
그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슈가는 잠시 혼절해버린 것을 시작으로 며칠 동안 계속해서 원인 모를 병증을 호소했다. 칼디르와 함께 할 때는 끼니를 거르지 않던 아이가 물조차 마시지 않다가 피를 토하면서 아스트라 대령의 앞에 쓰러진 것은 칼디르가 길을 떠난 지 나흘째 되는 시점의 일이었고 말이다.
언제까지고 칼디르가 자신의 곁에서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것만 믿고 뭉그적거리다가 모든 기회를 놓쳐 버리고, 공주님께 모든 것을 가져다 바치게 된 슈가의 운명은 비극의 주인공과도 같은 것이었다.
마치 쏜살처럼 흘러 지나가는 주마등조차 서서히 흐려져 간다. 아... 이것이 죽음일까...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여 그동안의 인생을 한순간에 되돌아보는 것에도 한계는 있었던 모양이다. 그동안에 장난 삼아 내 목을 밧줄로 조를 때는 느끼지... 못한... 감각인데... 서서히 의식이 완전한 암흑속으로 젖어들어간다.
내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눈물 콧물 침, 온몸의 액체란 액체는 쫙 빼낸 채로 힘 없이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아닐까. 이, 이렇게... 죽기는 싫...어... 살, 살려줘... 칼디르... 제발... 내가 너를 죽이려고 하긴 했지만... 용, 용서해줘... 제발... 다시는 못 된 짓 같은 거 안 할 테니까...
그래도...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지니 머릿속에서 엔도르핀이 마구 분비되어 고통은 덜어지고, 뭐라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전해져 왔다. 그와 동시에 극도의 산소부족으로 인해 서서히 검어지던 눈앞이 순간적으로 새하얘지면서 천국에 당도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자살자에게 문을 열어주는 천국은 없다지만... 내게는 앞으로 칼디르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지옥 같기만 하다.
“언니! 또 문을 걸어 잠그고 뭐하고 있는 거야! 정말이지, 칼디르 언니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나는 언니 동생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실로 억겁과도 같았던 2분이 흐르자, ‘알루미늄’이라는 뜻의 성씨인 ‘아루미나’를 물려받은 슈가와는 다르게, ‘강철’이라는 뜻을 가진 ‘스탈리나’를 성씨로 쓰는 여동생 솔트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린 슈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앞으로 몇 분 안에 그 목숨이 완전히 끊어지게 되리라.
철컥, 철컥, 철컥...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것이 화근이었다. 1초가 아까운 이 순간에, 솔트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자신과 같이 자는 대신 칼디르와 같이 자기를 택한 웬수 같은 언니 몰래 챙겨둔 열쇠를 찾느라고 툴툴거리고 있어야 했다.
끼이이익... 겨우 문을 열면서도 아직 방안에서 벌어진 참사를 제대로 보지 못한 솔트는 언니에 대한 불평불만을 계속에서 중얼거리면서 들어왔고, 천장에 목을 메달아버린 채 문쪽을 향해 혀를 쭉 내밀고 있는 언니를 목격하고 나서야 입을 다물어버렸다.
“꺄...아...? 언니... 이거 뭐야...? 거기서 뭐하는... 거야? 왜 숨을 안 쉬어...? 왜 움직이지를 않는 거야...? 거, 거기서 얼른... 내려...와...”
9살에 불과했던 솔트에게 언니의 자살 기도 순간을 최초로 목격하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고, 심장이 벌렁 벌렁거려 비명은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소리치는 대신 솔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언니에게 말을 거는 것뿐이었다. 물론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아아... 안 돼... 언니... 죽, 죽는... 거야...?”
솔트는 그 길로 언니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에 뒷걸음질을 치다가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어른인 아스트라 대령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여기서 집무실까지 시간이 충분할까, 그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직 언니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악! 누, 누구야! 대... 대령님...?”
“어이쿠! 이게 누구냐... 솔트였구나. 왜 그렇게 급하게 뛰어다니는 거야?”
“대, 대령, 님. 언니, 우리, 죽, 죽... 천장에... 밧줄... 살, 살려주...”
하늘이 돕는다는 것은 실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솔트는 때마침 슈가의 상태를 지켜보러 온 대령과 부딪혔고 마구 꼬이는 혀로 어떻게든 자초지종을 설명해보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 나라 여성 최초의 전투부대 연대장 출신이라는 짬밥이 어디로 가지는 않는지, 대령은 잘도 알아듣고는 바로 방에 뛰어들어갔다.